• "<공부의신>, 김수로 말은 독극물"
        2010년 02월 02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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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의 신>에서 김수로가 내뱉는 말들은 가히 사회적 독극물이라고 할 만합니다. 망국으로 가는 마약이라고나 할까요? 교사와 공교육의 안일함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서울대가 최고라는 현실을 시원시원하게 까발리는 것 때문에 김수로의 일갈이 각광받고 있는데요, 그 통쾌달콤함에만 취해 환호하기에는 위험성이 너무나 큽니다.

    김수로 독설에 열광하는 이유

    김수로는 교육이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사도, 학교도 모두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방향으로 재조직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교육 소비자는 1차적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뜻합니다. 이들은 또 시청자이지요. 이것으로 ‘소비자를 위하라!‘라고 부르짖는 김수로의 말에 왜 시청자들이 환호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겠다는데 세상이 싫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드라마의 한 장면

    싫은 사람은 소비자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공급자이지요. 공급자는 두 종류가 있는데요, 하나는 공급기관의 고용주이고 또 하나는 고용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고용주는 소비자를 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비자가 만족해야 자기가 운영하는 기관이 잘 되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고용된 사람들은 소비자 때문에 괴롭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대형마트 업주는 자기 업소 노동자들이 소비자를 볼 때마다 환하게 미소 지으며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하기를 바라겠지요. 반면에 노동자는 죽을 맛일 겁니다. 또, 업주는 소비자를 위해 야간영업을 원하겠지요. 반면에 잔업철야를 해야 하는 노동자는 죽을 맛입니다. 또, 업주는 소비자를 위해 가격을 깎으려고 하겠지요. 그러면 가격 깎기 위해 월급을 깎여야 하는 노동자는 죽을 맛입니다.

    그래서 소비자와 적대관계에 있는 공급자는 업주가 아닌 노동자가 됩니다. 이래서 소비자들이 노동자들의 이익조직인 노조를 그렇게 싫어하는 것이지요. 현대차의 고임금 노조를 공격하는 현대차 소비자들을 생각해보세요. 근본적인 구조가 이렇다는 말이구요, 이것이 교육분야엔 어떻게 적용이 되느냐?

    바로 노동자인 교사가 소비자(학생, 학부모)의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특히 교사들의 이익조직인 전교조는 소비자의 철천지원수가 되지요. 그래서 김수로가 소비자를 위하며 교사들을 공격하자 소비자인 시청자들이 속 시원하다고 환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반면에 교사들은 김수로에게 불만을 터뜨리지요.

    “선생들은 고객인 학생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해라? 여기가 마트점이야 편의점이야! 자기가 무슨 교육혁명가인 줄 알아요.”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단체행동에 돌입합니다. 김수로의 ‘개혁’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지요. ‘오로지 반대밖에 모르는 찌질한 무사안일 철밥통들‘ 한국사회의 교사에 대한 생각 그 자체입니다. 이렇게 시청자의 마음을 살살 긁어주는데 김수로의 말들이 인기를 얻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수요자 중심주의

    그런데 위의 대사는 틀렸습니다. 김수로는 교육혁명가가 아닙니다. 혁명이라는 건 뭔가 기존의 구조를 완전히 부수거나, 기존의 상식을 깨거나 하는 것인데, 김수로의 말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교육이 소비자를 위해야 한다는 건 기존의 구조 그 자체입니다. 이미 한국교육이 그렇게 가고 있었습니다. 즉 혁명이 아닌, 철저한 보수라고나 할까요.

    그럼 김수로의 말이 한국에서 실현된 것이 언제인가? 이런 사고방식을 일컬어 ‘수요자 중심주의’라고 하는데요, 바로 1990년대부터 이런 사고방식이 한국을 이끌기 시작합니다. 수요자들이 원하는 대로 굴러가는 경제사회체제.

    수요자가 다양한 자동차를 원한다? 삼성승용차가 생겼지요. 그래서 외환위기가 터졌습니다. 수요자가 주택대출을 원한다? 대출해줘야지요. 그래서 부동산버블이 생겼습니다. 수요자가 대형마트를 원한다? 유통자유화해야지요. 그래서 지역민생경제가 파탄났습니다. 수요자가 미국 영화 선택할 자유를 보장해줘야 한다? 스크린쿼터 축소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라가 십수 년 간 흘러온 것인데요, 교육분야는 언제 이렇게 되었느냐. 바로 1995년에 수요자 중심주의 교육개혁안이 나옵니다. 그후 이것이 한국 교육정책의 기조가 되었구요, 당연히 이때부터 전교조 등 교사들과 정부당국, 수요자들은 원수지간이 됩니다.

    자, 수요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줍니다. 김수로처럼요. 수요자가 서울대 입시를 원한다? 학교는 입시교육을 해야 합니다. 수요자가 일류고등학교를 원한다? 자사고, 특목고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수요자라는 게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지요. 각자 가정환경이 천차만별입니다. 지불할 수 있는 돈도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수요자들에 맞게 맞춤학교들도 생겨나야 합니다. 비싼 학교, 싸구려 학교. 그리하여 수요자들을 위해 한국은 일류대 등록금 수천만 원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수요자들을 위해 경직되고 획일적인 의료보험 없애고 고액병원도 만들어야)

       
      ▲ 드라마의 한 장면

    학교선택권과 등록금선택권을 받은 수요자들이 교사선택권도 원한다? 교원평가를 통해 교사들을 분류해 수요자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합니다. 교원평가는 수요자를 위해 교사에게 가해지는 채찍이지요. 수요자가 완전히 자유롭게 선택하고 원하는 서비스를 받는 곳은 사교육 시장입니다. 그러므로 경직된 철밥통 공교육 체제는 사교육 시장을 모델로 구조조정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김수로가 전면 해고 재고용까지 주장하는 것이지요.

    지난 십수 년 간 이런 방향으로 교육개혁이 진행되어왔고, 거기에 저항했던 전교조는 반대만 하는 집단이기주의 세력으로 찍혔습니다. 이렇게 수요자 중심주의 교육정책이 계속 진행되면 결국 한국에서 정규직 교사와 교사노조는 사라지고 사교육 시장처럼 유연한 입시교육 서비스업체들만 남을 겁니다. 그럼 당연히 교육도 사라지고, 그에 따라 나라도 망하겠지요. 교육이 국가의 근본인데 그게 무너졌으니 나라가 온전하겠습니까?

    수요자들의 탐욕, 국가가 나서 조절해야

    위에 냉소적으로 설명한 것처럼 수요자 중심주의는 이미 한국사회를 1990년대부터 이끌어왔던 사고방식이고 그에 따라 경제, 사회, 교육 모든 부문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린 지난 10여 년의 민생파탄을 정리하고 다른 방향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김수로는 지난 10여 년 우리가 살아온 대로, 앞으로도 더 ‘빡세게’ 가자는 겁니다. 교사 전원해고는 기존의 수요자 중심주의자들도 감히 주장하지 못했던 극단적인 방법인데, 김수로는 이것까지 주장합니다. 이러면 ‘파탄 포에버’일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사회적 독극물이라는 겁니다.

    수요자 중심주의는 수요자들을 위하자고 하기 때문에 듣기엔 매우 달콤하지만 그 안에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습니다. 교육 부문에서 수요자들을 위하자 수요자들이 입시경쟁과 사교육에 스스로 치어 모두 죽어가고 있습니다. 수요자의 이기심과 탐욕, 그것이 만악의 근원인 것입니다. 수요자들이 원하는 일류학교, 귀족학교, 입시경쟁, 사교육 같은 것들을 국가가 금지하는 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수요자 중심주의를 쳐야 할 시점에 김수로는 거꾸로 말하고 있으니 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이것 말고도 지적할 것이 또 있는데 수요자 중심주의에서 너무 내용이 길어졌네요. 여기까지만 해도 김수로의 말들이 독극물이라는 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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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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