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른 풀 부활’ 신화와 물리학
    [취재현장] 김선동 “난 물리학도, 무지하지 않다”
        2012년 05월 10일 08: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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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른 풀 다시 살아나” 발언으로, 국회 최루가스 공격 이후 다시 유명세를 탄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어제 9일 오후 3시 50분 경 예고 없이 국회 정론관에 등장했다. 김미희 당선자와 함께였다. 그는 직전에 있었던 조준호 비례후보 투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반박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김 의원은 ‘통합진보당 19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입장을 밝히는 이날의 기자회견을 주도했다. 그는 기자회견에 앞서 “마른 풀 다시 살아나”에 대해 의 발언을 해명해야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 의원은 투표용지가 포스트잇처럼 한 장씩 뜯어져 있어야 하는데, 개표 이후 이를 가지런히 겹쳐 보관하면서 접착제가 있던 부분이 서로 맞닿아지면서 2~3장 정도씩 붙어있더라는 ‘증언’이 있다는 소개했다. 기적 같은 사실을 ‘간증’할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해명하고 있는 김선동 의원 (사진=장여진 기자)

    김 의원은 이러한 ‘간증’을 근거로, “조사위가 발표한 그 투표용지들이 개표 전 투표함에서 나온 것인지, 개표 후 투표함인 것인지, 특히 묶어 놓은 데서 나온 것인지 여부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 “저는 물리학 전공자입니다. 무지하지 않습니다.” 일부 기자들은 키득대며 웃음을 참지 못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우습기도 했지만, 언필칭 진보정치인, 김선동이 보여주는 이런 모습은 처참하고 슬펐다.

    기자는 도대체 투표용지에 발라져 있는 접착제가 얼마나 강한 것이면, 떨어졌다가도 다시 붙을 수 있는지, ‘마른 풀’이 어떻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김수영 시인의 ‘풀’과 같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지, 얼마나 꼼꼼하게 각을 맞추어 보관했으면 그런 놀라운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너무 궁금해 조사위 보고서에 첨부된 사진을 다시 보았다.

    조사위가 첨부한 증거 사진 (사진=통합진보당)

    ‘간증’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기적이었다. 기적의 간증자의 주장대로 ‘단지 겹쳐 쌓아놓았더니 어느 순간 붙어있더라.’는 말을 믿는 것은 거의 ‘부활’을 믿고 받아들이는 종교 수준의 신심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재현을, 부활의 경험을 갈구한다. 하지만 기적은 반복되는 것도, 자주 일어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하다고 체념하곤 한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이라는 조직 내에서는 ‘마른 풀 살아나는’ 기적은 희귀한 것도 아니다.

    2~6장씩 다시 붙는 기적을 낳은 곳만 해도 12개 투표소다. 더 놀라운 것은 다시 붙은 투표용지의 일련번호도 순차적으로 돼 있는 건 무엇인가. 김 의원의 ‘무식하지 않음’을 입증하기 위해 동원된 ‘물리학’은 이 기적 앞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몇 가지만 더 얘기하자. 명백한 부정 투표용지가 어떻게 투표함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집어넣은 사람은 선거인명부와 대조해 투표권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 후 한 장씩 뜯어서 나누어주는 역할을 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장투표 관리자의 공모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 개표 시 뭉텅이 표를 발견했으면서도 이를 선관위에 보고하지 않은 개표 담당자들도 공범이 아니면,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김 의원은 “마른 풀 다시 살아나”의 증언자를 간증을 하는 자는 ‘위증’까지 한 셈으로 철저하게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따라서, 기적을 보았노라고 간증한 개표담당자와 이러한 ‘간증’ 때문에 시선이 본인들에게 쏠릴까봐 벌벌 떨고 있을 현장투표관리자를 매우 치면, 누가 뭉텅이표를 던졌는지 어떤 연유에서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세 명은 모두 공모의 주체들일 가능성이 높다. 여러 장의 표를 요구한 사람, 그것을 건네준 사람, 알고도 눈감은 사람. 그리고 이러한 ‘범죄’는 한 군데가 아닌 12군데에서 벌어졌다. 총 36명이다. 양심 고백 한 명 없이 조용한 것은 철저히 조직적 행위였음을 반증한다.

    이와는 다른 문제이나 이들의 행동에 따르는 일관적인 불신감을 다시 한 번 높여준 사건도 발생했다. 이들은 진상조사위원회 결과 보고 발표 주체를 ‘통합진보당 19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라고 표현해 마치 당선자 전체의 뜻인 것으로 오해를 유도하는 듯했다.

    하지만 기자회견 도중에 통합진보당의 한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당선자 일동이 아니라, 세 명이 하는 것”이라는 문자를 보내오자 이후 대변인실에서 배포한 자료에는 ‘당선자 3인’을 명시했다. 김선동, 김미희, 오병윤. 무엇 하나 깔끔, 상큼하게 처리하는 게 없다. 칙칙하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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