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치 볼 것 없이 밀어붙여라"
        2010년 02월 01일 01: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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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22일, ‘한국영화를 더 많이 사랑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홈페이지 머리에 달고 있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진흥사업 공지사항에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공모심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짤막한 심사결과는 단 한 줄, ‘최종 선정 단체 : 적정단체 없음으로 재공모’.

    ‘듣보잡’ 단체 사업 주체 떠맡아

    그러더니 드디어 올해 1월 25일, 영진위는 재공모를 통해 한 단체를 선정했다. (사)시민영상문화기구라는 웬 ‘듣보잡’ 단체가 새로 사업을 떠맡을 주체로 발표되었다.

    재공모를 하겠다고 공지할 때는 어째서 지금까지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해오던 미디액트가 적정단체가 아닌지 아무런 설명도 없더니, 재공모를 하겠노라는 공지가 나간 다음에야 만들어진 (사)시민영상문화기구를 선정하면서는 주저리주저리 선정 이유를 늘어놓았다.

    ‘구성원의 전공분야(영화영상예술학, 촬영전공예술전문석사, 한국영화아카데미)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 교육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장비운영계획(미디어 환경변화에 따른 후반작업 시스템 강화 및 디지털장비의 활용을 높이기 위한 상시적인 업그레이드와 업데이트)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영상미디어센터 운영과정에서 영상미디어에 초보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민들의 미디어를 체험교육 과정을 합리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상업영화에서 다루지 않는 다양한 소재의 영화제작을 할 수 있도록 영상제작도구를 활용하는 방안 등을 계획하고 있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특히, HD와 3D 기술교육까지 대응계획을 제시하고 있어 차세대 퍼블릭 액세스 뉴미디어교육에 기여와 영향을 줄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영상미디어센터의 바탕을 만들고 꾸려오던 미디액트는 그만한 인적 구성에 못 미치고, 구체적으로 제시할 성과나 계획이 없었으며, 합리적이면서 다양한 미디어의 퍼블릭 액세스를 위해 기여도 영향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인가? 미디액트가 이렇듯 시민이 주체가 되어 미디어의 제작과 소통에 직접 참여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온 활동가들이 영진위에 사업 제안을 한 것에 대한 결실이 영상미디어센터다.

    미디액트는 그동안 정책 연구, 퍼블릭 액세스의 확대, 미디어 교육의 대중화를 이루기 위해 영상미디어센터를 꾸려왔다. 지난 8년 동안, 공적 기관으로서 민주적 운영을 통해 자본과 권련의 지배를 받는 방송국 등의 언론사로부터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미디어에 대해 수동적인 시청자에 머물지 않고 누구나가 능동적인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온 것이다.

    이상한 생각을 가진 조희문 위원장

    그런데 현 정권이 집권하면서 영진위 위원장을 맡았던 강한섭이 정부기관 가운데 영진위의 경영 실적을 꼴찌자리로 만들면서 물러나기 전에 해놓은 일이라는 게 영진위의 지원을 받는 여러 사업들에 대해 지정위탁 방식을 공모제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 사진 출처 = 블로그 ‘송씨네’

    일 못해서 쫓겨난 전임 위원장이 저지른 일을 한번 검토해 보기는커녕 냉큼 이어받아 집행한 것이 현 조희문 위원장이 지금껏 저지르고 있는 짓거리다.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 주체를 인디스페이스에서 (사)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로 바꾸더니 이번에는 미디어센터 지원사업 주체를 미디액트에서 (사)시민영상문화기구로 바꾼 것이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심사 기준이 투명하지 않은 공모제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지난 12월 31일 결국 스스로 문을 닫았다. 새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로 선정된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는 지난해 11월 설립되었으니 공모제를 미리 염두에 두고 급조된 단체일 터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 미디액트 운영진은 이미 밑그림을 짜놓고 하는 것이 분명한 공모제지만 그렇다고 공모에 참여하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탈락할 수밖에 없는 꼼수에 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짜고 치는 판에서 영진위는 1차 공모 결과 적격자가 없다며 재공모에 들어갔고, 2차 공모에서 (사)시민영상문화기구를 새 사업자로 선정한 것이다.

    그런데 사무국 구성원의 다양한 전공분야, 미디어체험 교육과정의 합리성, 뉴미디어 기술교육계획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아 새 사업자로 선정됐다는 시민영상문화기구의 이사장은 영화와 아무런 상관없는 축구평론가이자 문예창작과 교수 장원재다. 그리고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도 소속되어있는 우파 문화단체 문화미래포럼의 사무국장 김종국 홍익대 교수가 새 미디어센터의 소장직을 맡게 될 거란다.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은 그간 영화계가 정치와 연결되면서 이상한 분위기가 많았다면서 자신이 할 일은 "영화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작업이며, 영화계를 정치적으로만 보려는 시선을 영화 자체로 돌려놓는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폐지 주장하던 영진위 위원장 덥석

    인간은 사회적 존재고, 사회적 존재가 사는 사회는 어느 하나 정치적이지 않은 게 없다. 더군다나 영화처럼 산업에서 문화까지, 오락에서 예술까지 두루 아우르는 분야에서 정치적이지 않은 영화 자체가 가능할 수 있을까? 조희문 자신조차 영화에 대해 그동안 숱하게 정치적 입장에서 행동해오지 않았던가?

    한미 FTA의 첨예한 쟁점이었던 스크린쿼터 폐지를 주장하며 한국 영화를 오로지 산업논리로 파악하고, 뉴라이트 소속으로 이명박 대통령인수위에서 정치권을 기웃거리더니, 우파 문화단체인 문화미래포럼의 일원으로서 영화계 좌파 척결을 구호로 이른바 ‘한예종 해체’를 주장한 인물이다.

    그리고 참 우습게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영상원이 설립되던 당시에는 조희문도 강한섭도 모두 그 학교 교수가 되겠다고 지원했던 인물들이다. 참 뒤끝 있고 앙심 많은 인물들이랄밖에. 스크린쿼터를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거세던 당시, 조희문은 스크린 쿼터를 지켜내려는 영진위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더랬다. 그러더니 지금은 자신이 그 영진위의 위원장 자리에 덥석 앉은 것이다.

    조희문은 "영진위 사업이 주로 영화계 지원인데, 이것이 여전히 유효한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영진위는 시장이 자율성을 갖고 저절로 굴러가도록 돕는 역할에 주력해서 궁극적으로는 영진위의 할 일이 별로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문화를 시장의 논리로만 파악한다면 미래는 없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영화진흥사업’은 당장 시장에서 뽑아낼 이익보다 더 오래 이어지고, 더 넓게 퍼지며, 더 깊이 파고들어 몇몇 자본의 소유주가 아니라 모든 시민 주체가 영화와 미디어를 누리게 하는 사업이 되어야한다.

    문화, 망치는 데는 한 순간

    고영재 <워낭소리> 제작자는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의 지평을 넓힌 ‘<워낭소리>나 <우리학교>’ 모두 미디액트에서 일하고 퍼블릭 액세스를 배우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한다. 미디액트 창립 때부터 운영위원회를 맡아온 임순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감독은 지금껏 많은 단체나 기관의 운영위원을 맡아 봤지만 미디액트만큼 사무국이 일을 완벽하고 꼼꼼하게 처리하는 단체가 없었다며 작년 감사 때도 트집잡힐 게 없는 조직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미디액트가 공모에서 탈락한 것은 미디액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는 정권 차원의 문제라고 파악한다.

    <송환>의 김동원 감독은 사업이 운영될 만한 곳에 위탁됐다면, 적어도 연관 있는 이들이 맡았다면 이번 결과를 수긍할 수 있겠지만 이번 사업 담당위원인 이미연 위원이 배제되고 업무와 상관없는 정초신 부위원장이 심사에 참여한 것이나, 심사평이랍시고 ‘일본, 프랑스 독립영화를 튼다니 좋다’, ‘3D카메라를 준비한다니 좋다’ 따위 평가를 내리는 심사위원을 위촉한 경위는 영진위가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진위는 지금까지 해오던 32개 사업을 올해는 15개 사업으로 축소한다. 경영 효율화와 투명화라는 명분 아래 전체 15개 사업 중 12개(80%)를 외부 업체에 위탁한다. 조 위원장은 "중요한 건 일을 벌이는 게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하는 자세"라고 강조하는데, 지금까지 해온 모습을 보면 이런 절차를 통해 어떤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질지는 너무도 뻔하다.

    영화와 미디어를 단지 장악의 대상으로, 선전선동의 도구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만 여기는 현 정권의 문화정책이 선택한 조희문 위원장은 자신을 임용하지 않은 한예종에 대해 복수의 칼을 겨눌 것이며, 신자유주의 시장논리에 따라 스크린 쿼터는 더 줄일 것이며, 수익성 많이 내는 상업영화와 멀티플렉스에 선택과 집중의 은혜를 베풀 것이다.

    문화라는 것은 일구는데 공을 들이기는 어려워도 망쳐버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어렵사리 일구어낸 참여 미디어의 공간 영상미디어센터가 망가지는 것을 봐야한다는 것은 참으로 소름끼치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 전으로 미디어의 수준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미 미디어센터를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이 참여와 소통의 방법을 배우고, 직접 제작에 참여하고, 세상과 나누는 방법을 만들어냈던 경험마저 10년 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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