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주의, 상식-양심 문제로 단순화해야"
        2010년 01월 31일 11: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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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노르웨이 안에서 사회주의 운동사를 전공하는 사람들 빼고서는 학생들은 물론 교수 사이에서도 칼 카우츠키(1854~1938)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저만 해도 소련 시절 고교에서 레닌의 『무산계급의 혁명과 배교자 카우츠키』(1918년)를 필독서로 읽어야 되는 관계로 일찍부터 체코 출신의 이 독일 사민주의자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사실, 『무산계급의 혁명과 배교자 카우츠키』를 처음 읽었을 때에 저는 – 아마도 이 책을 무조건 읽으라고 하는 ‘권력’ 그 자체에 대한 반발 때문이겠지만 – 저자인 레닌보다 레닌의 공격을 받고 있었던 카우츠키에 대해 어쩌면 더 호감을 갖고 있었어요.

    부드러운 사회주의자

    일부 카우츠키의 말이 아예 예언처럼 들려서 그런 것인가요? 예컨대 "계급독재를 빙자한 당 독재는 결국 폭력 기구들의 독재, 그리고 일인 독재로 변질되게 돼 있다"는 카우츠키의 말을 레닌이 호되게 반박했지만, 레닌의 서거 이후의 러시아의 역사를 약간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적중했는지 알 것입니다.

       
      ▲레닌(왼쪽)가 카우츠키. 

    폭력자 자신들을 변질시킬 폭력이라는 수단의 위험성에 대해 예고하고 있었던 카우츠키의 이야기를, 대형 폭력을 하도 많이 겪어온 20세기 후반의 소련에서는 어디까지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하여간, 이 책을 읽은 뒤로는 제가 레닌보다 어쩌면 ‘부드러운 사회주의자’ 카우츠키에 대해 더 관심을 갖는 사람이 됐는데, 소련이 곧 무너져 새로운 세대에게는 레닌도 카우츠키도 조롱거리이자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1990년대에는 당대의 세계적인 특징인, 우파들이 벌이는 ‘승리자들의 향연’과 (강온의 차이 없이)사회주의를 위시한 모든 ‘거대 담론’에 대한 공격이 개시됐습니다. 돈벌이와 소비의 담론을 제외하고요. 물론 벌이와 소비는 ‘담론’이라기보다는 이미 다수의 고질적 중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다시 읽기 하는 지금 저는 과거와 달리 차라리 레닌의 입장에 더 많은 공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카우츠키의 ‘민주적 절차 그 자체’의 가치에 대한 변론에 레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란 결국 유산계급독재에 대한 가식이며 노동자들을 속이는 기만 전술"이라면서 ‘민주적’ 열강들이 벌이는 식민지 반란의 유혈 진압 등을 예로 든 것이었습니다.

    노예 고통을 공유한 혁명주의자

    물론 좌파가 나름의 정치력을 가진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도 ‘가식’이라기보다는 적어도 좌파적 의제 알리기의 도구이자, 좌파의 위력화, 대중화의 도구가 될 수 있긴 하지만, "민주 열강들도 식민지 노예들의 피를 그 손에 마구 묻힌다"는 레닌의 말도 어쩌면 정확한 예언이라 할 수도 있지요.

    카우츠키의 정치 무대였던 ‘민주국’ 독일이 아프간에 보낸 군대가, 또 하나의 ‘민주 열강’인 미국의 폭격기에 탈레반이 도취했다는 연료 적재 차량의 폭격을 주문했다가 결국 100여명의 아프간의 어린이와 여인 등 민간인들을 참살케 한 최근의 사건을 보시기를.

    독일이 ‘민주국’이라고 해서 독일 장교가 주문한 폭탄을 맞게 된 아프간 어린이가 덜 아프게 죽게 되는 것인가요? 거기에다 더 치욕스러운 것은, 아프간 파병을 적극 추진한 독일의 주요 정치 세력 중의 하나는 바로 카우츠키가 몸을 담았던 사민당이라는 것입니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잔혹성’을 (상당 부분 사실적 근거 있게) 비난한 이들의 후예들이 이제 아프간 아이들의 피를 손에 묻히는 걸 보니 어떤 슬픈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참, 유일하게 아프간 파병을 반대해온 좌파당은 카우츠키보다 차라리 레닌의 후예라고 봐야 할 터인데, 그것까지 생각한다면 거의 100년 전의 카우츠키와 레닌의 격한 논쟁을 단순하게 ‘민주주의자 카우츠키 대 독재자 레닌’이라고 처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럽 중심주의적인, 너무나 유럽 중심주의적인 ‘민주주의자’ 카우츠키와 달리 ‘독재자’ 레닌은 식민지 노예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점, 레닌의 혁명론이야말로 식민지 노예들에게 훨씬 더 설득력이 강했던 점 등도 망각하면 안 될 것입니다.

    카우츠키와 레닌, 역사의 패배자

    하여간, 카우츠키와 레닌, 즉 사민주의와 혁명적 공산주의 두 원조를 생각하면, 둘 다 결국 역사의 무대에서 패배자가 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카우츠키가 그토록 좋아했던 ‘민주적 절차’대로 히틀러가 집권하여 카우츠키가 노년을 보냈던 오스트리아를 합병시키자 카우츠키가 거의 죽기 직전에 고통스러운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것이고, 레닌이 그토록 믿었던 ‘혁명적 전위정당’은 결국 보수적 관료단체가 돼, 끝에 가서 아예 자기 파괴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자본주의의 복귀로 진행한 것입니다.

    카우츠키가 그토록 헌신했던 독일 사민당이 사실상 ‘수정신자유주의’ 길로 가버렸으며, 소련 공산당을 계승했다는 러시아연방공산당은 스탈린주의와 종교적 민족주의의 범벅이가 돼 보기 역겨운 꼴만 계속 보여줍니다. 고전적 의미의 카우츠키 노선도 레닌의 노선도 1990년대 신자유주의적 폭풍을 견디지 못한 것인 셈이죠.

    단, 레닌의 후예라고 할 급진적인 사회주의자들이 그나마 신식민지 침략전쟁이나 복지국가 체제 해체에 대한 반대를 훨씬 더 강력하고 원칙주의적으로 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 카우츠키의 후예들과 달리 – 권력과 관계가 멀어서 그런 부분도 있죠. 신자유주의적 사회에서 일단 집권에 성공한 이상 ‘혁명 정신’은 말할 것도 없고, 단순한 인간적 윤리라도 그대로 간직하기가 힘든 건 사실입니다.

    그러면, 카우츠키도 레닌도 궁극적인 이상으로 공통적으로 삼았던 노동자들에 의한, 노동자들을 위한 ‘민주적 사회주의’, 각자가 제 일터의 주인이 되어서 신나게, 자신의 자아실현을 이루어내면서 일할 수 있는 ‘즐겁고 평등한 사회’를 향해서 나아가자면, 카우츠키나 레닌에 대한 집단적 기억들이 이제 가물가물하게 된 이 무서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구체적 과제를 중심으로 한 광폭 연합

    저는 이 커다란 문제에 관련하여 나중에 상술할 생각입니다만, 여기에서 한 가지 간단하게 지적하자면 진보정당의 전통적인 ‘정치 투쟁'(비혁명적 상황에서는 당연히 선거 형태의 투쟁)도 중요하지만, ‘정당’의 의미 자체가 점차 쇠퇴해가는 관료/자본 주도의 이 시대에는 무엇보다 구체적 문제들을 중심으로 하는 광범위의 ‘연합’들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국회에 10명의 민중 의원들을 보내든, 극적으로 30~40명을 보내는 데에 성공하든,(이거는 거의 ‘기적’ 이야기죠) 어차피 신자유주의의 질주를 막기가 역부족일 수는 있지만, 신자유주의의 주요 병폐들을 여타의 사회세력들과 연대해서 막을 수 있다면 이건 벌써 모두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승리’일 것입니다.

    문제별 연합이라면, 예를 들어서 ‘파병 저지를 위한 연합’, ‘일체 체벌의 무조건적 철폐를 위한 연합’, ‘대학 평준화를 위한 연합’ 등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만약 진보정당이 한국 군인들이 아프간인들의 피를 손에 묻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모든 상식인들을 하나의 운동으로 단결시켜 파병과 같은 망국적 망동을 정말 정지시킬 수 있게 된다면 이는 국치를 면하게 하는 대경사일 것입니다.

    ‘거리의 정치’를 통해 ‘정치’의 영역을 넓혀 일상을 정치화시키는 동시에 정치를 일상화시키는 길, 그리고 사회주의를 무엇보다 ‘상식과 양심의 단순한 문제’로 만드는 길은 제가 보기에는 장기적으로 카우츠키와 레닌의 한계를 동시에 뛰어넘을 길일 것 같습니다.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다음 기회에 또 상술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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