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또 넘겨
    By 나난
        2010년 01월 28일 09: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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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민주노총의 노력은 지지부진하다. 민주노총은 28일 KBS 88체육관에서 제 49차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김00 성폭력 사건 보고서 채택 건’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었지만 임성규 민주노총 전 위원장의 사퇴와 준비 부족을 이유로 보고서조차 작성되지 않았다.

    여기에 애초 안건 1번으로 채택돼 있던 안건이 중앙집행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안건 5번으로 변경되며 안건 3번인 임원 선출 이후로 밀려났다. 이에 대해 대의원들은 안건 순서가 바뀐 이유와, 임원 선출 이후로 미뤄져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김경자 여성위원장(부위원장)의 안건 설명 모습.(사진=이명익 / 노동과세계)

    이에 대해 일부 대의원들은 “피해자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는 현실에 말문이 막힌다”, “후속 사업 책임 있게 논의하겠다던 중앙집행위원회는 안건 순서를 바꾼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하느냐”, “보고서가 토론되지도, 제출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안건으로 올린 것은 기만적 행위다”라며 반발했다. 

    임 위원장 사퇴 이후 논의조차 못해

    여성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임성규 전 위원장과 1, 2차 진상조사단 등 5명이 참여하는 평가팀을 구성하고 한 차례 회의를 가졌지만 임 위원장의 사퇴 이후 제대로 된 논의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어 “지난 14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나머지 4명의 의견을 모은 평가서 초안을 제출했지만 소수의 의견이라는 한계로 인해 대의원대회 전까지 보완할 수 있는 방안과 차기 지도부가 책임지고 평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며 “공개 토론과 피해자 의견 수렴 등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순탄하게 정리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결국 보고서도 마련되지 못한 ‘김00 성폭력사건 보고서 채택 건’은 ‘다음 대의원대회 1호 의안으로 채택할 것을 당선자가 약속’하고 ‘(다음 대의원대회)채택 전에 모든 정보는 (피해자와 관계자가) 함께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됐다. 

    피해자가 직접 나서 사태해결 촉구

    이 사건의 피해자는 이날 ‘민주노총 대의원동지들께 드리는 글’을 통해 “70여 명의 대의원들이 성폭력 사건 후속조치 이행 건을 어렵게 발의하고 발제했지만 토론조차 되지 못하고 두 차례나 대의원대회가 유예됨을 보면서 조직은 해결 의지가 있는 것인지 실망스럽고 불안했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더 이상 다음으로 유예되어서는 안 된다”며 “민주노총이라는 우리의 조직이 성폭력 사건에 대해 책임지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고, 그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고 피해생존자인 저는 치유로 나아가 조금이라도 평안을 찾고 일상의 삶으로 복귀하고 싶다”고 밝혔으나 결국 피해자의 뜻을 이뤄지지 못했다. 

    대법원은 28일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인 민주노총 전 간부 김모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여러 차례 강간을 시도해 죄질이 좋지 않고 범인도피 가담 정도도 무겁다고 봐 김 씨에게 실형을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한편 오후 10시 현재 민주노총 임원 선거는 1차 투표에 대한 개표가 진행 중이며 곧 이어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 * *

    피해자가 민주노총 대의원들에게 보낸 글(전문)

    민주노총 대의원동지 여러분!

    저는 지난 2008년 12월 6일 발생한 김○○ 성폭력사건의 피해생존자입니다. 동지들! 저는 지난 4월 대의원대회에서 김00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특별위원회 보고서가 채택되고, 후속사업이 결의되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사건이 제대로 해결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폭력사건 후속사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9월 대대에서 70여명의 대의원들이 성폭력사건 후속조치 이행건을 어렵게 발의하고 발제하였지만 토론조차 되지 못하였고 두 차례나 대대가 유예됨을 보면서 조직은 해결의지가 있는 것인지 실망스럽고 불안했습니다.

    내가 일해 온 민주노총이란 조직은 이 사건을 공론화하고 있는 것인지, 대의원들은 사건의 진상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저와의 약속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은 채 지금까지 지내왔습니다. 또 진상규명특위 이후 조직이 저에게 물질적 피해보상을 하고자 했을 때 저는 거절하였고 이후 조직에서 저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조직 내 올바른 성평등 문화가 정착되는데 사용해달라는 저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로 인해 조직에서는‘성평등 미래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어떻게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성평등 미래위원회’는 이번 사건에 대한 근본적 진단 이후 중장기적인 과제와 기구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는 것입니까? 성폭력사건 이후 사건 해결을 위한 후속조치들은 어떤 단위에서 점검되고 집행되고 있습니까? 저는 피해자 지지모임 동지들을 통해 들려오는 얘기 외에 공식적으로 조직을 통해 들은 바가 없습니다.

    사건의 해결 과정과 조직의 노력과 실천에 대해 누구보다 더 알아야 할 피해생존자인 제가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민주노총도 성평등 미래위원회도 사건 해결을 위해, 성평등한 조직의 미래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내내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무조건 저만을 위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겪어야만 했던 상처가 죽을 만큼 괴롭고 힘들었기에 가감 없이 사실만을 말했고 조직으로부터 그 상처를 위로 받고 치유 받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저와 같은 피해생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에서, 조직 내 성폭력근절 및 성평등한 조직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길 원했을 뿐이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문제인가요?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에 대한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저의 소속연맹으로부터 저는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아픔을 겪었고, 그 아픔이 내내 제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피멍을 남겼습니다. 민주노총에서라도 그런 우를 범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진정어린 책임을 다함으로써 저의 가슴에 남아있는 피멍을 치유해주는 조직이 되어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습니다.

    이 사건이 민주노총의 도덕성을 무너져 내리게 했고 민주노총의 위상을 바닥에 떨어뜨린 결정적인 사건이었다고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 때문인 것 같아 저도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성폭력사건 때문에 도덕성과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고 조직의 위기를 걱정하고 계십니까?

    동지들! 조직은 잘못하지 않았다는 왜곡된 조직보위를 내세운다고 조직의 도덕성이 회복되지 않습니다. 조직이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각성하여 조직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조직의 도덕성과 위상, 신뢰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성폭력사건 해결을 반드시 마무리하겠다던 임성규 위원장님의 대의원대회에서의 약속을 믿어왔습니다. 그간 제대로 해결하지도 공론화하지도 못했지만, 성폭력사건 해결과정에 대해 반드시 평가해내고, 조직내에서의 공론화를 통해 1월 28일에 있을 대의원대회 전에 토론회를 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반드시 대의원대회에서 공론화하고 채택하겠다던 그 약속! 그래서 전 오늘까지 기다렸습니다.

    1월 28일 이번 대대에서 반드시‘성폭력사건 평가보고서 채택’건에 대한 안건 심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반드시 토론되어야 합니다. 대의원대회에서 두 번이나 성폭력사건에 대한 토론이 유예되는 걸 지켜보면서 너무나 불안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더 이상 다음으로 유예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민주노총이라는 우리의 조직이 성폭력사건에 대해 책임지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고 피해생존자인 저는 치유로 나아가 조금이라도 평안을 찾고 일상의 삶으로 복귀하고 싶습니다.

    대의원동지 여러분!
    더 이상 이 사건의 해결 및 공론화를 다음으로 유예하지 말아주십시오.
    지난 4월 대대에서 진상특위보고서를 채택하신 책임을 다해주십시오. 그것만이 우리 모두를 위하는 길이며 우리 모두가 살아나는 길입니다. 저의 간절한 바람이 이번 대대에서 꼭 이루어지기를 거듭 부탁! 부탁!! 또 부탁드립니다!!!

    2010년 1월 27일 피해생존자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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