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선언'에 누진소득세가 들어간 이유
    2010년 01월 27일 02: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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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르크스가 1848년에 쓴 <공산당 선언>을 보면 생산양식을 전면적으로 변혁시키는 방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나라마다 방책은 다르지만 선진적인 나라에서는 10가지 방책이 적용될 수 있다고 하면서 마르크스는 두 번째 방책으로 “소득에 대한 고율의 누진세”를 들고 있다. 즉, 마르크스는 ‘소득에 대한 고율의 누진세‘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전면적으로 변형시키는 방책의 하나로 간주한 것이다.

그 후의 역사는 소득에 대한 고율의 누진세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전면적으로 변형시키는 데에는 실패하였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1848년 당시의 마르크스의 인식처럼 소득에 대한 고율의 누진세는 분명히 혁명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2.

만약 모든 세금을 없애고 누진적 소득세로만 과세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의 경우 만약 모든 세금을 없애고 소득세로만 과세한다면 소득세에 법인세를 포함시킨다고 하여도 지금보다 소득세 세수가 세 배는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소득층의 실효세율은 최소한 70~80% 되어야 할 것이고,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의 실효세율도 올라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정도 되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변형을 가져올 정도가 될지도 모른다.

독일사민당이 1875년에 채택한 고타강령- 마르크스가 격렬히 비판한- 에도 “인민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간접세를 포함한 모든 조세 대신 누진적 소득세를 요구한다”는 내용이 들어갔고, 이것은 당시 독일 사민당이 소득세에 한해서는 마르크스의 생각을 계승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후의 역사는 누진적 소득세가 도입되기는 했으나 생산수단을 변형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 국가에서 소득세는 대략 전체 세수의 3분의 1 정도가 보통이고, 간접세의 비중도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정당들이 보통선거권 확대와 더불어 권력에 근접해갔지만 기존의 지배계층과 일정한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결과이기도 하고, 또한 지배계층이 혁명의 두려움 속에서 일정하게 양보를 한 결과이기도 했다.

3.

그러나,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변혁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간주했던 소득세는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에서 순수하기 전비 마련 차원에서 최초로 도입된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 같은 작가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이미 로마시대 때 속주민의 수입에 부과했던 10분의 1세가 소득세의 전신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으나, 로마의 세금과 영국에서 도입된 소득세와 가장 큰 차이는 영국의 소득세는 세율에 차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영국의 소득세는 그 도입 동기를 떠나서 누진세였다는 것이다. 연 소득이 60파운드 이상인 경우에는 1%가 조금 안되는 세율로, 연소득이 200파운드 이상인 경우에는 10%의 세율로 부과했던 것이다. 영국에서 소득세를 도입한 피트 수상은 부의 재분배는 국가가 할 것은 아니라고 했고, 전쟁 직후 소득세는 폐지되었지만, 부의 재분배를 바라는 사람에게 영국의 소득세는 여러 가지 영감을 주었을 것이 틀림없다.

만약, 피트가 도입한 10%가 아니라 더 높은 세율로 차등을 두어 과세한다면 부의 재분배는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19세기에 이르러 확대되기 시작한 공산주의자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러한 시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게다가 소득세는 영국의 지배계급의 격렬한 저항을 받기는 했지만 또다시 재정적인 필요성 때문에 1842년 부활된다. 마르크스가 1848년에 누진적 소득세를 <공산당 선언>에 포함시킨 것은 이런 정황을 본다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4.

영국의 예를 따라 각국에서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소득세를 도입하기 시작한다.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재정적 필요성이 있었고, 보통선거권 확대를 기치로 성장하는 노동자정당들 대부분이 누진적 소득세를 주요한 강령으로 삼았다는 것이 소득세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다른 한축이었다.

독일에서는 전국적인 소득세가 1891년 도입되었고, 미국에서도 남북전쟁기에 일시적으로 도입되었다가 1894년 도입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다른 나라와 달리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인해 헌법까지 개정하는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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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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