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유주의와 변혁정권 사이"
        2010년 01월 27일 09:05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최근 노동계급의 시각에서 브라질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와 룰라 정부의 경험을 분석하고 평가한 책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후마니타스)를 펴냈다.

    저자는 룰라 정부의 경험이 보여준 것은, 노동계급이 노동계급 정당을 건설하여 정치세력화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이익 실현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또 노동계급 이익의 두 축을 구성하는, 물질적 이해관계 중심의 당면 계급 이익과 생산체제 변혁을 지향하는 근본 계급 이익이 서로 갈등하는 모순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양자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따라서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가 당면 계급 이익을 중심으로 추진된다면, 집권하더라도 근본 계급 이익의 실천이 실종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집권 전략의 덫’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룰라가 집권했다고 열광하고, 변혁적 정책 펴지 않는다고 냉소하고, 쉽게 잊는 냄비 같은 반응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브라질만큼 노동자 정치세력화 하기도 어려운 조건인데,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집권 이전에 뭘 준비해야 하는지 브라질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책 출간의 의미를 설명했다.

    <레디앙>은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이 책의 머리말과 4부 ‘평가와 함의’ 부분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 브라질 룰라 대통령

    노동자당의 룰라가 2002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2003년 1월 룰라 정부가 출범했고 2006년 재선됨으로써 8년 임기 가운데 현재 1년여를 남겨 두고 있다.

    2003년 1월 브라질 뽀르뚜알레그레에서 개최된 세계사회포럼에 전 세계 좌파들이 대거 집결하여 룰라 정부의 출범을 함께 축하한 것은 동구권 붕괴 이후 사라진 대안 체제의 실험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변혁적 실천들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대와 현실

    룰라 정부는 60~70% 수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CUT와 노동자당 안팎에서 변혁적 실천의 실종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룰라 정부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한편으로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CUT와 노동자당 내 정치적 갈등을 수반하며 좌파 세력들이 지속적으로 이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글은 노동계급의 시각에서 브라질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와 룰라 정부의 경험을 분석하고 평가하고자 한다.

    1. 브라질 노동자계급과 노동자당의 집권

    군사정권하에서 상파울루 ABC 지역의 완성차 업체를 중심으로 한 금속 노동자들은 1978년 정부의 임금정책을 거부하고 사용자 측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파업 투쟁을 전개했다.

    정부의 임금 산정 기초가 되는 물가 인상률 수치 조작이 밝혀지면서 파업 노동자들은 힘을 얻었고 결국 사용자 측과의 직접 교섭을 통해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훨씬 상회하는 임금 인상률을 쟁취했다. ABC 지역 금속 노동자들의 투쟁은 타 지역, 타 산업으로 확산되면서 전국적 총파업 투쟁으로 발전했다.

    1979년과 1980년에도 ABC 지역 금속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서 시작하여 전국적 총파업 투쟁으로 확산되는 파업 투쟁의 물결은 반복되었고, ABC 지역 금속노동조합은 공식적 노동조합 조직체의 지원 없이도 전국적 수준의 파업 투쟁을 주도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ABC 지역 금속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신노동조합운동이 형성되면서 전국적 수준의 지도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신노동조합운동은 뻴레고라 불리는 전통적 어용 노동조합 세력과 어용 노조 민주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에 맞서 전국적 수준의 대안적 노동조합운동의 흐름을 조직했으며, 이를 통해 CUT가 결성되었다. 이렇게 브라질 노동운동 세력들은 CGT와 CUT라는 양대 진영으로 분화되었다.

    CGT는 코포라티즘 체계의 유지를 지지하며 국가‧자본에 대한 호응성(accountability)을 바탕으로 제도성 게임을 추구한 반면, CUT는 코포라티즘 체계의 폐기를 주장하며 노동자들에 대한 호응성에 기초해 전투성 게임을 추구했다. 이렇게 양극화되며 형성된 브라질 노동운동의 이중 구조는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다(<표 10-1> 참조).

    신노동조합운동과 노동자당 창당

    노동운동의 이중 구조는 산업구조 재편 과정에도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브라질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산업화를 주도한 자동차 산업의 경우 1990년대부터 신공장 건설과 함께 구조 재편을 겪게 되었다. 구공장들이 밀집된 ABC 지역의 금속노동조합들은 전투성 게임을 통해 구조 조정을 저지하며 노동조건을 꾸준히 개선해 온 가운데, 완성차 업체들은 그린필드의 신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취약한 신공장들에서는 자본의 의도에 따라 유연성이 극대화된 기술 체계와 작업 조직이 자리 잡았고,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음으로써 ABC 지역 구공장들과 그린필드 신공장들 사이의 노동조건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으며 자동차 산업 내 기술 체계 및 작업 조직과 노동조건의 이중 구조가 정착되었다.

    신노동조합운동은 노동조합들의 전국적 결집체로 CUT를 결성하여 노동조합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를 위해 노동자당을 창당했다. 노동자당은 각종 공직 선거들에 참여했으며, 지방의회와 지자체에 진출하면서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정치 공간에서 노동계급과 하층 서민들을 대변하고, 부패 정치인들 속에서 청렴한 정치적 실천을 통해 스스로를 차별화하며 지방의회에서부터 지분을 확대해 나갔다.

       
      ▲ 브라질 노동자당 당원 대회

    지방의회에 이어 지자체들까지 장악하게 되면서 노동자당은 새로운 행정 모델들을 선보이기 시작했으며, 참여 예산제와 같은 정책 대안들을 중심으로 행정‧통치 능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노동자당 대통령 후보 룰라는 1989년 대선에서 2위를 차지해 결선투표에 진출한 이래 1994년과 1998년 대선에서 모두 차점자로 브라질사회민주당의 까르도주 후보에 패배했으나, 2002년 대선에서 브라질사회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노동자당 룰라의 대선 승리는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 성과인 동시에 계급 형성을 더욱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 룰라 정부의 성격 : 성과와 한계

    노동자당은 브라질 사회의 변화를 역설해 왔고 룰라 정부 또한 변화를 약속하며 출범했지만, 출범 첫해부터 까르도주 정부와 차별성이 없으며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비판은 룰라 정부의 임기 내내 지속되어 왔다.

    룰라 정부와 까르도주 정부의 연속성을 지적하는 주장들의 준거는 경제정책이며, 비판의 핵심은 룰라 정부도 까르도주 정부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룰라 정부와 까르도주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교하면 <표 10-2>에서와 같이 일정 정도 연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까르도주 정부와의 연속성은 통화주의 정책에서 두드러지고 있으며, 그 핵심은 긴축재정 운영, 고금리 유지, 브라질 통화의 고평가였다.

    룰라 정부는 신자유주의적이었나?

    하지만 이러한 통화주의 정책들은 외견상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외환 보유고의 다섯 배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외채, GDP의 57%에 달하는 정부 부채와 그로 인해 누적되는 재정 적자, 좌파 정부에 의한 인플레이션 유발 우려와 선거 국면에 고개를 들기 시작한 물가 상승률이 연평균 1,000%의 인플레이션을 10년 정도 경험한 브라질인들의 공포심 등 브라질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고려하면 룰라 정부의 선택이었다기보다는 구조적 조건들에 의해 강요된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룰라 정부는 까르도주 정부가 추진하던 사유화 정책을 중단하고, 시장 개방을 조절하며 수출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한편, 미국 중심의 중남미 경제통합을 거부하고 메르꼬수르 중심의 지역 경제 통합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등 개입주의 경제‧통상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로 경제사회개발위원회를 조직하여 사회보장제도와 재정 및 세제 개혁 등 정부의 주요 경제‧사회정책의 수립 방향을 협의하도록 하는 한편, 경제사회개발은행과 산업통상부를 중심으로 산업 발전과 수출 촉진을 위한 적극적 시장 개입과 인프라 구축을 추진했다.

    이러한 개입주의 경제정책들은 까르도주 정부의 정책과는 대조되는 것들로서, 룰라 정부의 경제정책은 일정 정도 까르도주 정부와 연속성을 지니되 상당 정도 차별성을 보여 주며, 그 차별성의 핵심은 신자유주의의 거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통화주의와 개입주의 경제정책의 조합을 통해 2004년에는 높은 경제성장률과 전 산업에 걸친 고른 생산 증대와 고용 창출의 성과를 기록함으로써 룰라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에도 경제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게 되었다.

    차별성 보여준 사회정책

    룰라 정부의 차별성은 경제정책보다 사회정책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룰라 정부는 사회정책 항목들의 예산을 직접 지출 부문을 중심으로 대폭 증액했고, 빈곤 퇴치 운동과 가족 지원금 제도를 통해 저소득층 가족들에게 일정액의 기초 생활비를 지급하고 미취학 연령 어린이 가족에게 자녀 취학을 전제로 소득을 지원하는 등 저소득층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 역점을 두었다.

    또한 노동 빈곤층의 임금 인상을 통해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제고하는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주로 비공식 부문 노동자를 중심으로 사회부조 정책을 추진했다. 한편, 농촌 지역 무토지 농민들을 위해 농지개혁에 박차를 가해 토지 수령 가족 수를 확대하되 경작 가능 토지 제공, 농업용수 공급, 기술 및 신용 지원 등 효율적 경작을 위한 지원도 병행했다.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은 까르도주 정부에 비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전개되었으며, 그 결과 실질적 효과를 수반했다. 사회정책의 성과는 빈곤층의 대거 감축과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을 통한 실질적 불평등 완화였다. <표 10-3>에서 볼 수 있듯이 까르도주 시기 불평등 완화 정도는 미약했으나, 룰라 정부 들어 불평등이 급격하게 완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당은 창당 이래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변혁적 정책들을 꾸준히 주창해 왔으며, 은행 및 기간산업의 국유화, 외채 지불 중지, 급진적 토지개혁이 그 핵심이었다. 룰라 정부가 노동자당의 국민들과의 오랜 약속들 가운데 부분적으로라도 실천한 것은 토지개혁밖에 없으며, 그것은 전임 까르도주 정부에 비해 다소 진전되었으나 급진적이라 부르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다.

    룰라 정부의 변혁적 정책 평가

    한편, 외채의 경우 지불 중지를 선언하지 않고 재정 압박을 감수하면서도 모범적으로 변제해 나갔고, 국유화의 경우 까르도주 정부하에서 전개되던 사유화를 중단했을 뿐 국유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

    이처럼 룰라 정부하에서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변혁적 정책들은 거의 추진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변혁적 정책 실천의 부재 현상은 룰라 정부 2기에 들어서도 지속되었다.

    2기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을 구성하는 경제성장 촉진 프로그램(PAC)의 내용을 보아도 석유화학 부문과 수력 에너지 부문의 정부 지분을 증대하고, 정유 공장 건설,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바이오 디젤 공장 및 에탄올 공장 신설 등 에너지산업에 대한 적극적 투자 정책을 추진하지만 소유권 구조의 급진적 전환은 결여되어 있다.

    국영 브라질 은행이 파산 직전의 지역 은행 몇 개를 인수한 사례는 있지만 주요 은행의 소유권 구조를 변혁한 사례는 없다. 룰라 정부는 사회주의 체제 이행을 위한 변혁 정책은 거의 추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룰라 정부의 성격은 까르도주 정부의 신자유주의와 차별화되고, 노동자당이 지속적으로 주창하던 사회주의 변혁 정권과도 차별화된다. 결국 룰라 정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적 소유권 체계를 부정하지 않고, 그 기반 위에서 빈곤 및 불평등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소하는 자본제 국가의 한 유형에 불과한 것이다. 즉 룰라 정부는 자본주의 복지국가 혹은 사회민주주의 국가로 규정할 수 있다.

    브라질은 여타 제3세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군사 쿠데타에 이은 군사독재의 개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를 풍미한 포드주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었는데, 룰라 정부는 군사독재와 포드주의 실종으로 후퇴되었던 사회경제적 민주화 과정을 복원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