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성찰에서 ‘생활진보’로 재출발
    2010년 01월 25일 08: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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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는 잘 알려진 대로 우리시대 대표적인 좌파 정치학자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비판한 진보진영에 대해 ‘진보원리주의’로 반박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가 바로 손호철 교수였다.

   
  ▲ 책 표지

『빵과 자유를 위한 정치』(손호철, 해피스토리, 13,000원)는 한 마디로 ‘민주정부 10년’과 ‘87년 체제’의 역설 혹은 퇴행성을 가장 거침없이 비판해 온 진보정치학자의 이명박 정권 2년에 대한 비판 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특유의 반어법과 직설화법을 사용하여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일갈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1년은 이 대통령이 작심을 하고 자신의 임기 초부터 박(근혜) 의원의 차기 대통령 선거운동을 해주고 나선 1년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난 경선에서 당원투표에서 박 의원에게 패배하고도 일반 국민들의 여론조사에 의해 자신이 승리한 것에 대해, 나아가 이 같은 결과에 승복한 박 의원에 대해, 빚을 갚기 위한 속 깊은 배려인가?”

“이제 우리가 희망을 거는 것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친미성이다. 이들의 뿌리 깊은 친미성이 언제나처럼 제 힘을 발휘해 이들이 탈냉전과 탈신자유주의 노선으로 나가기를 기원해본다. 친미성이 우리를 배신이야 하겠는가? 친미, 만만세다.”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21세기의 박정희’, ‘신자유주의 발전국가’, ‘노가다 정치’로 명명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정권의 정책과 정치행태는 매우 모순적이고, 자신들의 바람과는 달리 ‘후진적’이다. 그럼 이러한 ‘후진정권’ 치하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과 민주화운동세력)은 어떠한가? 손 교수의 이들에 대한 평가는 한 단어로 정리된다. ‘무능’이다.

“여당 시절에는 다수 의석을 가지고도 개혁법안을 관철시키지 못하는 무능을 보이더니, 야당이 돼서도 여당의 독주를 막지 못하는 무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허긴 없었던 능력이 갑자기 생기겠는가? 무능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투지마저 없는 것이다.”

여당 때 민주당과 야당 민주당의 일관성은? 무능!

능력의 부재는 민주당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자산이다. 일례로 쌍용차 사태의 근원이 되었던 중국 상하이자동차로의 매각 결정 당사자가 당시 산자부장관이었던 정세균 현 민주당대표였다는 점, 김근태 열린우리당 대표(그는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한 몇 안되는 당내인사 중 한 명이었다)시절 한나라당과 연대하여 비정규직 확대법안을 통과시킨 점 등을 이 책은 잘 상기시켜 주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치세력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능력과 덕목은 바로 ‘자기성찰’이라는 점을 그 역시 빼놓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소통 부재는 말할 것도 없지만, MB정권 2년 동안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맞물려 오만과 독선이 ‘남탓’의 알리바이를 통해 재생산되는데 대한 우려도 민주세력의 자기성찰이 부족한 데서 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를 ‘악마화’하고 반MB를 ‘신성시’해 MB에 반대하는 것 그 자체가 ‘민주’고 ‘진보’라고 착각"하는 "지적 퇴화”도 자기성찰에 대한 게으름이라는 것이다.

소통부재는 진보진영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는 대중과의 소통에 서툰 진보진영의 문제를 구체적이지 못한 지나친 관념성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의 대안은 진보진영이 “생활진보”로 환골탈태하는 것이다.

“추상적인 반신자유주의의 구호나 강령을 넘어서 고용, 주거, 교육, 건강, 노후와 같은 소위 민중들의 ‘5대 불안’과 관련한 구체적인 현실분석과 발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생활진보’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단순한 기존의 정치세력이나 정파들이 연대하는 ‘상층부연합’을 넘어서 대중 속으로 들어가 이들 속에서 ‘풀뿌리 복지대연합’, ‘풀뿌리 민생대연합’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생활진보’, ‘구체적인 현실분석과 발본적인 대안’에 대한 요구와 자기 반성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마저 추상적인 구호가 돼버린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필자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와 진보대연합에 대한 원칙 등에 대해 손호철 교수와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의 앞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회고 부분을 읽고 나서는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 X와 개인 X를 나눌 수 있을까?

즉 정치인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 정치인 김대중과 대통령 김대중에 평가는 분리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 분리해서 평가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공과가 평가의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 합당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정치인과 대통령(더 정확히 얘기하면 대통령 이전과 이후)이라는 지위나 환경에 따라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지역주의에 대한 도전정신이 한나라당과의 연정 제안으로까지 진화한 과정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제2, 제3의 ‘진정한’ 바보 노무현을 양산”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또한 70년대 지배담론이자 성장전략이었던 조국근대화론에 맞서 강력한 도전 담론이었던 ‘대중경제론’의 변화와 현실적 적용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당시 IMF 경제위기라는 환경적 변화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대응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경제관 속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발본적’으로 고찰해 보는 것도 공은 공, 과는 과라는 개별적인 평가를 극복하는 중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다.

이제 학술연구보다는 컬럼을 통한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에 더 비중을 두는 듯해 아쉬운 점은 있으나, 칼보다 예리한 펜끝의 서늘함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선사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위안과 기대를 가져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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