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에 퍼져나가는 우리 목소리
    By 나난
        2010년 01월 25일 12: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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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국적 자본과 한판 붙기 위해 지구 반대편 프랑스까지 왔다. 우리 삶터인 공장을 한순간에 청산시켜버리고, 500여명의 가족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 ‘발레오’의 본사가 바로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발레오는 독일의 보쉬, 미국 델파이 등과 경쟁하는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사다. 전 세계 28개국에 125개 공장과 6만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대기업이다. 발레오공조코리아는 충남 천안에서 자동차용 에어컨 콤프레셔를 만들어온 기업으로, 2004년 발레오가 인수했다. 그 후에도 지속적인 흑자경영을 해온 곳이다.

    프랑스에 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

    하지만 경제위기가 닥치자 발레오는 본인들이 원했던 수익만 챙겨 떠나버렸다. 여전히 수주가 있고, 전망 있는 기업을 단물만 빼먹고 팽개쳐 버린 것이다. 고용보장을 전제로 모든 양보를 각오했음에도 지난 해 노사 간 대화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10월 공장을 폐쇄시키고 노동자 전원을 해고했다. ‘먹튀자본’에 노동자뿐만 아니라 공장도 당했다.

       
      ▲ "발레오 나와라!" 프랑스 발레오그룹 본사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원정투쟁단.(출처-금속노조)

    한국 교섭대표는 ‘바지 사장’에 불과했고, 우리는 노사대화의 대상조차 없었다. 결국 노동자들은 없는 돈에 발레오그룹 본사가 있는 프랑스까지 올 수밖에 없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한 회사에 20년 다녔으면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닐 만큼 다녔으면서 무슨 미련이 남아 그 고생이냐”고. “노조가 사사건건 회사 발전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으니 망한 것 아니냐”고. “회사청산을 받아들이고 위로금협상이나 하는 것이 현명한 생각 아니냐?”고.

    물론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12월 1차 프랑스 원정을 하고 나서 그 생각은 바뀌었다.

    “무모한 짓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자본 마음대로 회사 청산을 결정해도 노동자는 어떤 항의도 할 수 없으며,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회사청산시 노동자의 의견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 또 자본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하며, 해당 노동자들이 재취업될 때까지 생계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 프랑스에서의 회사 청산 절차였다.

    전화로, 퀵서비스로 해고통보를 받는 우리와는 천지 차이다. 프랑스 시민들이 발레오가 우리를 야만적으로 해고한 행위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고 우리를 취재해 갔다. 지난 1차 원정투쟁 때에는 NPA(프랑스 반자본주의 신당) 주간지에 투쟁 소식이 실리기도 했다. 프랑스 국민들에게 우리의 억울함을 알려낸 소중한 성과다.

    초국적 자본에 맞서는 노동자들은 일국에서의 싸움만으로는 빼앗긴 권리를 찾기 어렵다. 때문에 우리의 싸움은 같은 처지에 있는 모든 노동자를 대변해 새로운 투쟁교과서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노총, 사회정당, 시민들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 CGT(프랑스노동총동맹)도 발레오 규탄에 함께했다.(출처-금속노조)

    “라 메종드 메흐 도아 네고시에 딜렉트 멍.” (발레오 그룹은 직접 교섭에 나서라)
    “농농농 알라리끼다시옹.” (반대! 반대! 반대! 회사청산!)

    우리가 이곳에서 가장 많이 외치는 구호다. 아는 불어가 그래도 2문장은 된다. 아침 6시부터 준비해 8시 출근선전전으로 하루를 연다. 원정투쟁 사흘째. 프랑스 발레오노조 간부들과 간담회를 통해 “한국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라”는 결의문을 채택해 발레오그룹에 전달하고, 직접 교섭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로 했다. 너무나 고마운 연대다.

    경제위기는 ‘빌미’였을 뿐

    CGT(프랑스노동총동맹) 자동차 분과노조 및 전문가 간담회도 열렸다. 그들은 발레오 그룹의 구조조정이 그룹 발전을 위한 전문분야 강화가 아니라, ‘경비절감’을 위해서라고 진단했다. 하물며 ‘경제위기’와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세계 경제위기를 빌미로 비정규직을 우선 구조조정하면서 비정규 비율이 15%에서 6%로 낮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15%의 비정규직을 유지하기 위해 정규직을 추가로 해고한 것이다. 짐작은 했지만, 결국 그랬다. 경제위기는 ‘빌미’였고, 노동자를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겠다는 전략이었다. 거기에 우리 한국공장과 노동자, 그 가족들이 걸려든 것.

    초국적 자본의 벽 넘어 지구적 연대로

    초국적 자본의 벽은 높다. 원정투쟁 넷째 날, 금속노조 명의로 본사와 교섭을 요청했지만, 본사는 여전히 아무런 답변이 없다. 우리는 항의성 시위를 이어가기로 했다. 많은 이들이 함께 했다. 59세 백발이 성성한 프랑스 노동운동가가 불어로 ‘인터내셔널가’를 불렀다.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는 현장에 바로 우리가 서있다.

    우리는 프랑스 공무원노조 파업에도 참가했다. 꽹과리와 장구가락을 신명나게 울리며 발레오 상황을 알려내자, 정당을 비롯해 집회 참가자 모두 큰 관심을 보였다. 발레오의 횡포가 프랑스에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 * *

    이대우 – 발레오공조코리아 조합원

    * 발레오는 작년 10월 26일 충남 발레오공조코리아 공장을 폐쇄하고 회사 청산을 통보했다. 같은 달 30일자로 전 직원을 해고했다. 이에 금속노조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지회장 이택호) 조합원 100여 명은 청산 철회를 요구하며 공장에서 3개월 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회는 발레오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자의 생존은 도외시한 채 이윤만을 위해 먹튀행각을 벌였다고 반발하고 있다.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노동자들은 ‘지구 끝까지라도 쫒아가겠다’는 각오다. 이들의 해외 원정투쟁은 11월 일본, 12월 프랑스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금속노동자> 편집국.

    * 이 글은 금속노조의 인터넷 기관지 <금속노동자>에도 실린 것입니다. (http://www.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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