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1인 시위’, 을지로서 2백일째
    By mywank
        2010년 01월 22일 05: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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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한편에서는 200여 일째 ‘1인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곳곳에서 대중가요가 흘러나오고 쇼핑을 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가득한 이곳에서, 집회·시위 현장에서나 들을 법한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선 이는 게임회사에서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로 일하고 있는 이오른 씨(32, 닉네임:Sisyphus)이다.

    이 씨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불붙은 ‘촛불’이 점차 수그러들던 지난해 6월 말, 홀로 이곳을 찾았다. 1,000일 동안 1인 시위를 벌여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꺼져가는 촛불을 다시 살리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시위 기간을 1,000일로 정한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말, 촛불의 열기가 대통령 선거로 이어져야 한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1,000일 목표로 1인 시위

    이 밖에도 검·경의 ‘촛불 탄압’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합법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1인 시위를 선택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이를 위해 이 씨는 현재 다음에 ‘1인 시위로 보여 주는 행동하는 양심(☞바로가기)’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21일 을지로입구역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오른 씨 (사진=손기영 기자) 

    그는 회사에서 야근이 있거나 몸이 아픈 날을 제외하고 매일 저녁 을지로입구역에서 ‘행복한 1인 시위’라는 이름으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는 한동안 ‘혼자’ 1인 시위를 진행했지만, 시민들의 지지가 이어져 지금까지 총 50여명 정도가 동참한 상태다.

    1인 시위에 동참을 원하는 시민들은 이 씨가 카페가 올린 공지에 미리 댓글을 달거나, 사전 예고 없이 피켓을 들고 현장으로 바로 나오기도 한다. 이어 을지로입구역 혹은 인근 명동역, 종각역 등지로 흩어져 자신의 맡은바 ‘임무’를 수행한다.

    지금까지 시민 50여명 동참

    1인 시위 209일째인 지난 21일 저녁, 이오른 씨는 두툼한 외투로 무장하고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었다. 당초 이날 야근 때문에 1인 시위가 힘들었던 그였지만,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 재판을 배당받은 신영철 대법관 기피신청을 낸다는 ‘꺼리’를 만들어, 반차(오전 근무, 오후 휴가)를 내고 이곳에 나올 수 있었다.

    언소주 회원이기도 한 이 씨는 조중동 광고주 리스트를 언소주 카페나 다음 아고라에 올린 혐의로 지난해 12월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현재 상고심을 앞두고 있기도 했다. 그는 기자를 만나자 다짜고짜 매직펜과 ‘포스트 잇’을 건네주며, ‘시민게시판’이라고 적힌 판넬에 이명박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을 적을 것을 권유했다.

       
      ▲1인 시위를 지지하며 시민들이 적어 놓은 메모들 (사진=손기영 기자) 

    “저희들이 ‘포스트엔젤’이라고 부르는 ‘시민게시판’은 1인 시위를 마음으로는 지지하지만, 동참하기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만든 공간이에요. 1인 시위에 나서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거든요. 많은 용기와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웃음)”

    지나가는 이들의 ‘호기심 대상’

    게시판에는 ‘사랑스런 MBC, 혐오스런 MB씨’, ‘네티즌이 뽑은 21세기 대형참사 1위는, 이명박 당선’, ‘2MB는 빵꾸똥꾸’ 등 재기발랄한 메모들로 가득했다. 1인 시위에 나선 이 씨는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시민들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이 씨의 이름이나 직업부터 시위에 나선 이유까지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이 씨는 “솔직히 끝까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지만, 1,000일 동안 이곳에서 1인 시위를 하면 ‘저 사람이 왜 그럴까’라며 조금이라고 관심을 가져 줄 것 같다”며 “가슴 속에는 촛불이 있지만, 잠시 불을 꺼둔 시민들이 많다. 시민들이 정치·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기 위해라도, 계속 피켓을 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7월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1인 시위를 결심하고 헌법재판소 앞에서 미디어법 반대 1인 시위에 나섰던 여성, 하이힐을 신고 3시간 동안 1인 시위에 동참한 여성, 미디어법은 찬성하지만 ‘1인 시위도 나라를 생각하는 일’이라며 자신을 이해해준 노인 등을 1인 시위를 하며 만난 ‘기억에 남는 인물’로 꼽기도 했다.

       
      ▲1인 시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모래요정(왼쪽)’으로 나선 이들이 이오른 씨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 씨는 “1인 시위 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끄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모래요정’이라는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했다. ‘모래요정’은 3~4명 정도의 ‘바람잡이’가 1인 시위자를 유심히 지켜보거나 사진을 찍는 등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위로써, ‘모래요정 바람돌이’라는 만화영화에서 명칭을 따왔다고 했다.

    1인 시위의 감초 ‘모래요정’

    이날도 1인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모래요정’들이 이 씨의 주변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모래요정’으로 나선 한 20대 여성은 “여러 가지 이유로 1인 시위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이 ‘모래요정’이라는 방식으로 동참하고 있다”며 “저도 1인 시위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워낙 부끄러움이 많아서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이후부터, 점차 줄어들고 있는 1인 시위 동참자의 수는 이 씨의 고민거리다. 그는 “얼마 전부터 저 혼자만 1인 시위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날은 그와 민주당 최문순 의원 팬카페 회원인 ‘YOOJINA(닉네임)’가 을지로입구역에서 거리를 두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요즘 강추위로 1시간 이상을 서있기 힘들다는 밝힌 이 씨가, 지난 12일 ‘1인 시위 200일’을 자축하며 카페에 남길 글은 그의 또 다른 고민을 잘 나타내 줬다. “1인 시위 1,000일을 달성하기 이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퇴진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좀 쉬엄쉬엄 살고 싶어요."

       
      ▲사진=손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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