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일하고 죄인처럼 쫓겨나
사람이 안 죽고도 이겨야 합니다"
By 나난
    2010년 01월 22일 03: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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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앞 노상에 그가 앉았다. 그는 “죽거나 병신 돼가며 평생을 일했던 아저씨들이 죄인처럼 쫓겨나는 걸 눈뜨고 지켜볼 수가 없었다”며 사측의 구조조정 방침과 소리 소문 없이 잘려나가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 보장’을 위해 지난 13일부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죽도록 일하고, 죄인처럼 쫓겨나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노상 단식농성을 9일째 맞은 지난 21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났다.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한 그의 몸은 가냘팠고, 추운 날씨로부터 그를 보호해 줄 작은 텐트는 도로를 지나가는 차량에 한 없이 흔들렸다. 그가 조선소 노동자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을 토로할 때마다 부르튼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부두 앞이라 그런지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차는 한 시간도 채 못 되는 인터뷰 시간 동안 수십 차례 텐트 앞 도로를 오갔다. 그때마다 김 지도위원의 몸만큼이나 작은 텐트는 어김없이 요동쳤다. 그는 “큰 차들이 덮치는 것 같아 잠이 깊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민주노총 부산본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도 “저 육중하고 폭력적인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탱크 같은 저것들이 어느 순간 내 몸을 짓이기고, 골을 빠개고, 바퀴에 뇌수를 너덜너덜 매달고 지나갈 것 같은 환상”이라며 “아사가 아니라 그걸로 죽지 싶습니다. 로드킬”이라며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현재 그의 고민은 두말 할 것 없는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이다. 지난해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울산과 다대포 공장 매각설과 수주 물량의 필리핀 수빅조선소 이전, 하청 협력업체에 단행되고 있는 최저입찰제로 노동자들은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해고 괴담, 비정규직 1천명 소리없이 사라졌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 해만 비정규직 1,000명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있다”며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이 잘려나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진중공업이 지난해부터 최저입찰제를 시행한 이후 협력업체들은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렸고, 단가를 줄이기 위해 수많은 비정규직이 잘려나갔다.

현재 노조에서조차 그 수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여기에 그나마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조차 주 5일 근무가 시행되고 잔업을 할 수 없게 돼 임금이 약 100만 원 정도 줄어들었다.  과거 250만원 수준에서 이제는 140만원 정도로 대폭 삭감된 것이다.

그는 “어디서부터 문제 제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노조 집행부 역시 정규직 구조조정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어 비정규직은 방치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비정규직은 나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비정규직. 그것은 한진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890만이 비정규직인 사회는 일상화됐고, 민주노조운동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 “비정규직 직접 고용”을 수도 없이 외쳤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그대로다.

김 지도위원은 “조선업의 경우 하나의 협력업체가 블록-조립-탑재-도크 블록 쌓기까지 하나의 공정을 도급받아 진행하다 보니 영도조선소에서 다시 울산으로, 다시 현대중공업, 미포조선으로 옮겨 다니며 일을 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해고는 일상이며 해고된다고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좌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60대 하청노동자의 상담 내용

그는 며칠 전 출근시위 도중 만난 60대 하청노동자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해 11월 민주화운동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해고된 지 24년 만에 명예회복과 부당해고 결정을 받은 그는 매일 아침 출근시위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 60대 하청노동자는 출근하다가 김 지도위원과 함께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던 한 조합원에게 다가와서 “회사에서 사표를 쓰라는데, 퇴직금을 받고 나가는 게 나은지, 해고수당과 실업수당을 받는 게 나은지”를 물어봤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사진=이은영 기자)

유인물을 나눠주던 조합원은 “60년 평생 힘들게 살아왔는데, 마지막에라도 큰 소리 한 번 쳐야 할 것 아니냐”며 “싸우라”고 조언했지만 며칠 뒤 그 하청노동자는 결국 사표를 냈다. 이유는 “실업수당보다 퇴직금이 10만 원 더 많아서”였다. 

김 지도위원은 “하청노동자들에게 그런 삶은 일상화됐다”며 “처음에는 분노했겠지만 (이제는) 분노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안다”며 안타까워했다. 아울러 그는 “나는 천막에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이 하나도 없다”고 토로했다.

정규직도 벼랑 끝에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 칼날은 여전히 날을 세우고 있다. 하청 비정규직이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데 이어 이제는 정규직에 대해서도 희망퇴직, 정리해고, 분사까지 합해 총 1,000여 명의 노동자가 벼랑 끝에 서 있다.

26일로 예정됐던 정리해고자 명단 발표는 일시 중단됐지만, 언제 다시 휘몰아칠지 모르는 정리해고 바람에 ‘내가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현장을 휘감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회사의 구조조정 방침 통보 이후 노조 보고대회에서 조합원들의 분노가 높았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은 그 누구보다 상흔과 부채감을 지닌 사람들이다. 지난 1991년 고 박창수 위원장의 의문사와 지난 2003년 600명의 구조조정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주익 지회장과 함께 싸우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몸을 던진 고 곽재규 조합원.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에게 이들은 마음의 빚이오, 상처다. 이에 김 지도위원은 “조합원들은 2003년 자기들이 모이지 않아 2명이 죽었다는 자책감이 있다”며 “때문에 우리 조합원들은 당시에 대한 공포감으로 현재의 구조조정 방침에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지만, 집행부가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으며… 무조건 집회에 참석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단식 6일째 되는 날 ‘김주익은 우리가 죽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날부터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고 박종태 지회장은 지난 5월 대한통운의 73명 해고통보에 맞서 투쟁을 이끌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단식 6일째, 김주익은 우리가 죽였구나 생각 들어"

   
  ▲조선소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위험천만’ 4자로 설명된다.(사진=이은영 기자)

김 지도위원은 “목을 맨 그의 심정이 어땠겠느냐”며 “운동한답시고 다니면서도 나 역시 쌍용차 사태는 남의 일이었다”며 “남의 일이라고 치부한 것에 대한 죄를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다. 

그는 2003년 이후 또 다시 불거진 정리해고에 연대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현재의 운동은 “개인의 사고에 매몰돼 주위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예전에는 노동자들의 시야가 넓었지만 이제는 (경주마의 시야를 가리는 것처럼) 노동자들의 시야가 가려져 집과 자신의 공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지회에 대해서도 “민주노조운동 24년이라고 하지만 노조가 어용화된 세월이 길었고, 민주노조 집행부도 허송세월을 했다”며 “진짜 조합원들의 주체적인 의지를 역동성을 살려내는 활동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0년간의 노동운동은 고인 물과 같다”며 “고인 운동이 썩는 걸 눈으로 목격하면서도 본인은 썩은 물에 들어가 있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진단의 단골메뉴로 지적되는 ‘이명박 정권 집권’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도 “언제는 적이 강하지 않았느냐”며 “노무현 정권은 노동자를 너무 잘 알아서 위기였고, 김대중 정권 때는 운동권이 정권으로 많이 흡수돼 전선이 쳐지지 않아서 위기였다”고 평가했다. 

조합원들 "단식 풀라" 호소

그는 특히 ‘임단협-산재사고-휴가-추석성과급-연말성과급’등으로 1년 365일 공장 안에 갖힌 운동에 대해 “우리 모두는 우물 안 개구리로, 정작 위기는 우리”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런 상황에서 연대를 외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겠느냐”며 “당장 내일 모이지 않아 다른 사람이 죽는 것보다 내 손가락에 가시 박힌 게 훨씬 아픈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그는 지역에서 대안을 찾았다. 그는 “연대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산별정신이었다면, 그 방안은 지역이 돼야 한다”며 “한진중공업 사태가 터졌을 때 당장 30분~1시간 내에 달려올 수 있는 부산지역 노조끼리의 연대가 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전노협 당시 민주노총의 1/10도 안 되는 규모였지만 지노협을 중심으로 활동이 이뤄졌기에 운동이 힘을 얻었다”며 “당시에는 노점상, 여성노동자들이 모두 지노협에 들어와 있었기에 철거현장, 노점상 단속 현장에 노동자들이 함께 결합해 투쟁했다”고 되돌아봤다. 하지만 “한 공장 안에 함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끌어안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점상과 어떻게 연대하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단식은 22일 현재 10일째를 맞고 있다. 그의 단식을 지켜보는 이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난 20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진행된 금속노조 주최 ‘조선소 구조조정 분쇄, 한진중공업 불법 정리해고 분쇄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에 참여한 수많은 조합원이 그의 텐트를 찾았다.

술에 취해 아픈 마음을 전해는 조합원은 물론 “단식을 풀라”며 호소하는 조합원도 있었다. 그가 단식농성에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한 조합원이 찾아와 “김 지도위원이 단식에 들어간 이후 3일 째 아침밥을 먹지 못하고 있다”며 “누나가 그렇게 있는데 내가 어떻게 아침밥을 먹나, 너무 힘들다. 단식 좀 풀라”고 전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김진숙의 눈물

많은 사람이 그의 단식에 가슴 아파하고 있다. 특히나 3명의 동지를 떠나 보낸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은 걱정과 함께 두려움을 표했다. 회사의 구조조정 계획이 희망퇴직 등 어떠한 형식으로든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그의 단식을 중단시키고 노조가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

부산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이제 갓 들어선 노조가 정리해고 투쟁을 힘차게 이어나갈 수 있을지 우려가 된다”며 “회사의 의지가 확고한 상황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단식을 중단시킬 명분을 찾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노사는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노사는 ‘공정에 방해가 되는 행위는 자제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리고 26일 정리해고자 명단 발표를 미루고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회사의 구조조정 방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김 지도위원은 “26일에 명단 발표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며 “잔업을 빼고, 현장 분위기를 혼란스럽게 조성해 갈등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이은영 기자)

그는 “노조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명단을 발표할 것”이라며 “명예퇴직으로 정리해서 정년 1~2년 남은 사람들의 잔업을 없애고, ‘차라리 위로금 받고 나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 아저씨들을 회사에서 쫓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조선 경제는 평균 배의 수명과 같이 한다”며 “한진중공업의 경우 벌크선과 콘테이너선을 생산하기에 10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이번의 구조조정 방침은 회사가 주장하는 “경영상의 어려움”이 아닌 “노조 말살”이라고 주장했다.

24년만의 현장 복귀가 꿈

그의 꿈은 “현장 복귀”다. “언제든 가볍게 털고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그는 각종 조직의 ‘장’ 자리도 마다했다. 그는 여전히 24년 전처럼 공장에서 ‘아저씨’들과 일하던 그때를 꿈꾸고 있다.

언젠가 돌아갈 현장이기에 그는, 그와 함께 할 ‘아저씨’들의 고용보장을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거리에 앉았다. 그는 지난 18일 민주노총 부산본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월은 영락없는 그 세월인데 저만 중늙은이가 되어 그 세월 앞에 홀로 마주섰습니다. 과거가 지속되는 걸 인정할 수 없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저는 과거로부터도 미래로부터도 고립됐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길바닥에 나앉아 굶는 이것밖에 할 게 없겠다고 마음을 굳히며 그래도 거창한 꿈을 품었습니다. 민주노총이 당장 천막을 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단위노조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한진중공업 앞에서 태종대까지 천막이 늘어설 것이고 그럼 이길 것이다. 사람이 안 죽고도 이길 것이다. 김주익도 그런 마음으로 홀로 크레인위에 올랐겠지요. 엿새를 이러고 있어보니 김주익은… 우리가 죽였습디다. 내가….”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시절 유일한 여성 용접사였던 김 지도위원은 1987년 노동조합 운동으로 해고됐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민주화운동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해고된 지 24년 만에 명예회복과 부당해고 결정을 받았으나 이는 법적 구속력은 없다. 복직을 위한 24년의 투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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