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원평가 막을까? 말까?
        2010년 01월 22일 10: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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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원평가가 처음 거론된 것은 95년 5월31일 김영삼 정부가 교육시장화 정책을 발표하면서부터다. 교육시장화정책 계승을 표방한 김대중 정부는 2000년 교직발전종합방안에 교원평가를 포함해 공식적인 논의를 시작하였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교육개혁의 주도권이 무기력하게도 시장 세력에게 넘어가면서 교원평가논의는 출범초기부터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중심이 되어 교원평가 연구안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2005년에 대대적인 여론화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시범학교, 시범학교 아니다

    여론 전에서 일정한 승리감을 맛본 시장 세력과 교육 관료들은 48개 교원평가시범학교를 강제하면서 사실상 교원평가를 학교개혁의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곰비임비 교원평가 시범학교를 늘린 결과 전국 1만개 학교 중에 3164개교(09년 현재)가 교원평가 시범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이건 시범학교가 아니다. 교원평가의 단계적 적용이라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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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안마련을 위한 6자협의체 구성제안(10월12일)과 교원평가 강제실시를 위한 시・도별 교육규칙 제정을 위한 교과부자문회의(1월8일)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들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성격상 늦은 감이 있기도 하다. 촛불정국이 시기를 늦춰놓았을 것이다. 다만, 교원평가를 진행하려는 자들의 시나리오에 국민들뿐 아니라, 경쟁교육에 비판적인 단체들도 중심을 잃은 채 서서히 포섭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교원평가에 학부모와 학생의 참여문제(평가주체), 수업외 평가지표 추가문제(평가영역), 인사와 보수와 연계문제(평가결과) 등 다양한 문제에서 부침의 과정이 있긴 했으나, 95년 애초 교원평가를 도입하려던 시장 세력들은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건재함을 자랑하며 정권의 배후에서 또는 전면에서 시장화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표면적인 교원평가 도입목적은 “교원의 질을 높여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교원평가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솔직한(?) 이명박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성격이 분명해진다. “학생도 경쟁하고 학교도 경쟁하는데 교사만 경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교원평가도입목적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 말이다.

    경쟁하는 교사의 모습

    교원평가도입은 “경쟁하는 교사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현재로서는 교원평가가 교사로 하여금 학생들을 일류학교로의 진입에 더 경쟁적으로 노력하게 만들 것이다. 교원평가를 바라보고, 대하는 모든 주체들도 현재의 입시교육시스템속에서 교원평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선 ‘학생, 학부모, 학교장’은 보다 좋은 학교로의 진학목표를 도와줄 교사의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성교육과 전인교육이 입시교육에 밀려난 지 오래다. 당장의 학교교육에 이해관계가 없는 ‘국민’들도 ‘철밥통 교원’을 깨고 , 저마다 한자락씩 간직하고 있는 ‘추억속의 못난이 교사들’을 단칼에 짜를 수 있는 정책을 기대한다. 결과가 약간 부정적이라 하더라도 철밥통은 사라졌으면 하는 것이고, 이상한 교사는 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교원평가를 찬성하게 만든다.

    당사자인 ‘교사’들은 무기력할 뿐이다. 학생들과 입시 경쟁 속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야자보충을 거부하지 못한다. 경쟁신화를 깨지 못하고 있는 교사들에게 자신에게 강요되는 경쟁에도 무기력할 뿐이다. 현재 무기력한 교사들을 번뜩이게 하고 선명한 길로 이끌어가야 할 교원노조조차 교육시장 세력의 시나리오에 스멀스멀 먹히고 있다. 대중조직이니, 대중의 생각과 대세에 따라야 하는 듯 말이다.

    혁신학교의 공통점

    경쟁교육이 만들어낸 비참한 한국교육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입시경쟁교육의 질적인 비약에 결정타가 될 교원평가를 막고 경쟁을 폐기할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오랫동안 다듬어지고 단단해진 시장 세력들의 시나리오에 대적할 만한 것으로 말이다. 교원평가도입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국민들의 경쟁신화를 부추키고, 교사들의 무기력과 패배감을 만연시킬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개혁을 추진하기에 어려운 조건을 만들게 될 것이다.

    입시경쟁에 지쳐있던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남한산초등학교 등 공중파를 탔던 혁신적인 학교들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시장 세력들의 표면적인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사가 노력해야 학교가 변할 수 있다.”

    하지만 교사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극과 극이다.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낸 혁신학교의 공통점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학생회를 만들어 주어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를 형식화 시키지 않고 자기 자녀의 부모로서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을 함께 아우르는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의 학교참여를 이끌어낸 점, 교사들은 교육과정 운영에 온전한 권한이 부여되고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권한을 갖고 협력하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성적경쟁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자기평가와 일상적인 활동평가를 중심으로 평가본연의 역할을 가게 만들었다. 일체의 경쟁을 비교육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자기주도성을 신뢰하고 협력과 소통의 문화를 일관성 있게 만들어가고 있다.

    인간화교육, 현실적 시나리오 필요

    교원평가는 이러한 노력과 상호모순적인 수밖에 없다. 일제고사와 입시경쟁교육과 어울리는 정책이다. 경쟁교육의 강도를 드높이고 있는 정책입안자들은 교원평가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려고만 하게 만든다. 다소간의 긴장을 줄 수 있지만 그게 전부다.

    오히려 좋은 정책이 끼여들 틈조차 막은 채 학교를 정체시키고 후퇴시킬 뿐이다. 철밥통을 깨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면 교원평가 정책은 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철밥통을 깨려하는가를 더 생각해보자. 직업과 신분의 안정은 교직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며, 자기 직업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바탕이다.

    한낱 교원평가를 놓고 아웅다웅 할 때가 아니다. 현재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이 살아 숨쉬는 학교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1만 여개의 모든 학교가 그렇게 될 수 있다. 이미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정책으로 만들 주체들이 바뀌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이다. 주체를 바꾸려는 노력도 해야 하지만, 그것은 권력을 바꾸는 문제이기에 당장 쉽지 않다.

    현재 교육개혁을 주도하는 세력들은 이전 정권에서도 세력을 행사해왔다. 다만, 이명박 정부는 교육시장화를 주도하는 세력에게 엄청난 힘을 실어주고 있을 뿐이다. 교원평가를 둘러싼 싸움은 경쟁교육을 심화시키는 사람들과 경쟁교육을 반대하고 인간화교육을 추구하는 사람들 간의 다툼이다. 인간화 교육프로그램은 충분히 있으니, 이를 현실화 시킬 시나리오를 짜고 당장 무기력에서 떨쳐 일어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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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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