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대학생에게 후불제를”
        2010년 01월 21일 10:09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임시국회를 개최하면서까지 관련법을 급히 통과시킨 덕분에 2010년 1학기 신입생부터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가 적용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여당은 그 동안 야당이 제시해온 등록금 상한제를 등록금 인상율 상한제의 형태로 수용하는 등 적극적인 양보를 하면서까지 이의 도입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대학생 당사자들은 한나라당의 안에 반대하여 국회에서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 그리고 학부모들 역시 자신들이 주장하던 등록금 후불제가 전격적으로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7분위 이하, B학점 이상만

    첫째, 이 제도가 그 적용대상을 소득 7분위 이하의 저소득층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학생 등록금으로 허리가 휘는 다수의 가구가 신청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었다. 둘째, 이자가 너무 높다. 5.8%의 금리에 복리이자가 붙는 등 학자금 융자의 금리가 너무 높은 것이다.

    셋째, B 학점 이상으로 수혜 대상자를 축소하여 초기에 수혜 대상으로 예정되었던 14만 명이 제외되었다. 넷째,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중에도 이자를 계속 내야하는 불합리가 존재한다. 다섯째, 실제로 80만 명의 대학생이 융자를 받을 경우 이 제도를 통해 정부는 향후 25년 동안 52조 원의 이자 수익을 올리게 되는 등 제도의 목적 자체가 왜곡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이번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가 이미 제도의 본래 취지를 크게 상실하였다고 생각한다. 2007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자율과 경쟁’을 통한 학교 교육의 다양화와 수월성 확보를 정책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쟁 촉진과 효율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1) 학교장 평가제를 시행하고, 학력 미달 학급의 교사에 대해서는 강제 연수를 시킬 수 있는 책임을 학교장에게 부여하며, 2) 교장의 문호를 비 교원에게도 개방하여 교장 공모제를 도입하고, 3) 교사 평가 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며, 4) 초, 중학교에 대한 일제고사를 도입하여 학력 신장을 도모하는 등 평준화 정책의 완화 및 수월성 강화 교육을 추진한다.

    4등급 카스트 제도

    둘째, 자율화와 정보 공개를 통한 교육에서의 소비자 선택권 강화라는 철학에 근거하여 1) 주요 대학의 신입생 “골라 뽑기”(cream skimming)를 제도화하고, 2) 입학 사정관 제도를 도입하는 등 대학입시의 3단계 자율화 정책을 추진하고 3) 중앙정부의 보통교육에 대한 재정책임을 지방정부에 전가하며 4)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에 따라 마이스터교와 기숙형사립고를 설립한다는 것 등이다. 이와 같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과 노선은 현재 상당 부분 실시 중이거나 추진 중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전통적 지지 세력인 외고 교장협의회 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교육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제도라는 나름의 확신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학생들의 경쟁을 촉진하고, 국가의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고교서열화를 통해 전 국민을 1등급 특목고 출신, 2등급 자사고 출신, 3등급 일반고 출신, 4등급 실업계 전문고교 출신으로 구분하는 4등급짜리의 새로운 카스트제도를 수립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주호 교과부 차관, 곽승준 국무총리실 차관, 정두언 의원 등이 조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나라당 교육정책의 철학적 근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와 차별화가 필요할 것이다. 교육정책에 대한 이들의 철학은 지난 10년 동안의 평등교육으로 하향평준화가 달성되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수월성 확보가 추진되어야 하며, 학생들의 능력에 따른 차이는 인정하되 기회의 균등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교육에 대한 이와 같은 이명박 정부의 철학과 논리만으로는 진정한 교육 대안을 만들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쟁력 문제에 대해서조차 올바른 해결책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승자 독식의 경쟁만능 체계로는 학생들의 창조성과 다양성을 키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한 단계 더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자문위원을 맡았던 서정화 홍익대 교수의 논문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 진단 및 시사점>을 보면, 이러한 이명박 교육정책에 대한 여론의 평가를 엿볼 수 있다. ‘교육행정학 연구’에 실린 이 논문에 따르면, 전국의 초·중·고교 교사, 대학 교수, 연구원, 학부모 등 4,32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현 정부의 교육개혁에 대해 교육 주체들이 평가한 점수는 5점 만점에 평균 3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수의 국민들은 현 정부의 교육정책 전반에 대해 ‘평균 이하’의 점수를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모든 대학생에게 후불제를

    만약 복지국가의 관점에 따라서 등록금 후불제를 시행한다면, 구체적인 시행방안은 다음과 같이 달라질 것이다.

    첫째, 학자금 융자 제도는 소득 7분위 이하의 중하위 소득계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모든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수혜대상이 될 수 있는 보편적인 복지제도로 시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취약계층 뿐만 아니라 과도한 등록금을 부담스러워 하는 다수의 중산층도 수혜를 받게 되면, 가계의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 증가가 실현되어, 결국 내수 진작 효과를 노릴 수 있게 된다.

    둘째, 등록금 후불제는 국민들의 교육 욕구를 담보로 하는 국가의 돈놀이 수단이 아니라, 국가가 미래의 성장 동력인 고급 인재 육성을 위한 투자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 즉, 단리 2%대의 국고채 금리 수준으로 이자를 낮추어 대학생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덜어 주어야 한다.

    셋째, B 학점 이상으로 수혜 대상자를 조정하는 방침은 대학의 학점제도 정비 등과 연동하여 단계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넷째, 융자의 금액도 대학교 등록금에 한정하지 말고, 제대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생활비와 교재비용까지도 지원하는 수준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다섯째,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중에는 이자 납입을 면제해 주는 등으로 제도 시행에 따른 행정적인 불합리는 개선되어야 한다.

    여섯째, 학생 1인당 교수 숫자와 실험실습 장비 등 대학의 교육 여건에 대한 평가 인증을 강화하여, 등록금 후불제가 무분별한 사학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용되는 것을 방지하여야 한다.

    자율과 경쟁을 통한 학교 교육의 다양화와 수월성 확보는 글로벌 경제가 보편화된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더 이상 합리적인 정책대안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복지, 재교육과 평생교육을 중시하고 교육에 대해 과감히 투자하는 적극적 복지를 통해 인적자본을 확충하고 평생 교육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지식기반 사회에서의 진정한 교육 대안이다.

    2010년 1월 21일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www.welfarestate.net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