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의 시대, 사랑이 혁명이다
    2010년 01월 19일 10: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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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가 특별한 온천을 준비했다. 올겨울 폭설과 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10대, 20대의 몸과 마음을 찾아가는 이동식 스파(SPA-Sexuality Politics Academy)로 따뜻하게 풀어주겠다는 계획이다. 이번에 기획된 성정치 강좌는 총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되며, 강연 후기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사람들을 성정치의 무서운 매력으로 빠트리겠단 어두운 음모(혹은 헛된 기대)로 준비된 10대, 20대를 위한 성정치 강의 SPA. 그 첫 강연은 지난 1월 13일 최신식 판옵티콘 이화여대 ECC에서 준비되었다.

그리 넓지 않은 강의실이었지만 그곳을 가득채운 30명 남짓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대로 첫 SPA 강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은 춥고, 밖은 어둡고, 길에는 눈이 쌓여있고. 하지만 간식이 넘쳐나는 즐거운 SPA시간은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몸의 피로를 풀듯 편안하고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나에게 아이템을 달라

   
  ▲ 이날 강사로 나선 엄기호 (사진=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강사 엄기호는 『닥쳐라, 세계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를 펴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이다. 그는 만화 원피스와 미래소년 코난의 차이를 물으며 강의를 시작했다. ‘미래소년 코난’에서 주인공은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회귀하는 구조로 종결이 나는 ‘내러티브’인 반면 만화 ‘원피스’에서는 주인공들의 모험이 끝없이 계속 이어지는 ‘에피소드’이다.

코난의 시대가 ‘내러티브’를 통해 성장을 한다면, ‘원피스’의 시대는 끝없는 ‘에피소드’를 반복할 뿐 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 둘의 구조적 차이가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랑, 연애, 그리고 성을 말해준다. 우리는 더 이상 ‘내러티브’의 가능성을 믿지 않고 ‘에피소드’처럼 사랑을 향유한다.

이런 ‘에피소드’의 시대는 모든 게 게임의 아이템처럼 물신화된다. 이 시대의 연애는 교환이 가능한 ‘상품’을 필요로 한다. 그 상품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전의 연애가 우리가 감히 ‘나 가방 사줘’ 라고 말할 수 없었던, 언어화 할 수 없던 무엇으로 구성되었다면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랑은 끊임없는 득템의 연쇄로 이루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득템의 순간들은 서로 다른 각각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고 업그레이드가 아닌 ‘옆그레이드’를 거쳐 거듭된다는 것이다. 물질 뿐만 아니라 육체(당신의 찰진 꿀벅지), 욕망 역시 아이템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템은 생애사를 주관하는 ‘인물’이 아니라 ‘캐릭터’를 위해 존재한다.

당신의 연애는 쾌락인가 서사인가?

‘당신의 연애는 쾌락인가 서사인가?’ 이것은 신자유주의 시대 속 캐릭터들에게 던져지는 의문이다. 우리의 삶은 만남#1, 만남#2 와 같은 연관성 없는 에피소드들로 ‘나열’되는가, 생애사라는 고유의 내러티브로 ‘연결’되는가. 이 둘 중 어떤 방식의 삶이 더 낫다, 혹은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지만 확실히 지금의 우리는 에피소드들이 패치워크로 이어 붙여진 시대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잉여인간이자 속물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나의 유의미함을 보물 찾듯 발굴해야 한다. 외부의 세계가 나에게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는 ‘당신이 얼마나 쓸모없는 인간인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대의가 아닌 물신화를 좇아 삶을 구성하는 이들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인 속물이다. 속물에겐 사랑 역시 교환될 수 있는 무엇이다. 누군가의 결혼은 공통의 아이템(우리의 집, 우리의 차)을 찾아 함께 모험을 떠날 파트너와 맺는 종신 계약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 시대에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그렇기에 다시 한 번 ‘사랑’이 이 시대에 필요한 과제라 주장했다.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시대이기에, 사랑은 이 시대를 거스르는 도전이고, 변화라는 것이다. 어떤 아이템도 필요 없이, ‘그를 사랑하기에 사랑한다’는 동어반복의 도전이 이 시대에는 필요하다.  

   
  ▲ 사진=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그는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이 시대가 우리에게 금지하는 많은 것들을 통해서 우리 삶의 내러티브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기 위해선 ‘잘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잘 될 리가 없다’는 체념의 마음으로 도전해야 한다는 역설이 필요하단다.

사랑이 오고 간 내 마음엔 상처가 너무 많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시간에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왜 하필 사랑을 통해 성장해야 하는가?” 어찌 보면 1시간동안 그가 말한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랑은 없다’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사랑이야말로 자신의 바닥끝까지를 보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 한 순간에 타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도 연애에 의해서다’ 고 답했다.

사실 이 말이야말로 가슴 짠하고 목구멍이 턱 막히는 진실이다. 어찌됐건 치졸하게 굴고, 발악하고, 울고불고 가슴을 두드리며 나를 (마음으로) ‘봐달라고’ 말 건네는 사람은 당신의 연인이 아닌가. 나는 연애상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낭비나 허송세월로 이야기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진지한 사색과 비굴한 인간성을 대면하는 숙제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엄기호 강사는 길에서 본 시 한 구절을 말해 주었다. “마을 근처 나무엔 상처가 너무 많다. 그런데 내게는 상처가 하나도 없다” 외떨어진 당신의 육신에는 어떤 흔적이 남아있는가? 당신의 역사에 작고 가는 생채기라도 남아있다면 속물의 사랑 법은 유효한 셈이다.

묻자면, 신자유주의 시대에 속물은 어떻게 사랑하는가? 어설픈 바느질 솜씨로 이어 붙였을 지라도 속물의 사랑에도 그 나름의 정성이 있다. 속물의 시대에는 사랑이야말로 혁명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혁명을 이룬다. 아이러니 하지만 비록 그것이 환상이라 해도, 우리는 사랑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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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정치와 연애하라! – 커밍아웃 레즈비언 국회의원의 꿈(2008년 총선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 최현숙)은 1월 20일(수) 오후 3시 숭실대 형남공학관 321호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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