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유당 노선이 현실적 전략이다"
    2010년 01월 18일 09: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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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회민주주의연대, 좋은정책포럼, 혁신네트워크가 ‘노동운동, 활로는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오는 19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주최하는 토론회에서 발표될 필자의 발제문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노동운동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노동운동의 위기적 상황을 가져온 요인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가 차세대 노동운동의 깃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러 가지 쟁점을 내포하고 있는 이 글이 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는 현 시기에 의미 있는 논쟁을 촉발시키기를 기대하며,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몇 차례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4. 사회민주주의(SD)는 차세대 노동운동의 깃발이다

흔히 사회민주주의를 개량주의라고 한다. 이 개량주의라는 말은 노동운동에서 타협주의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동안 노동운동이 사업장의 담장을 넘지 못하다보니 할 수 있는 타협이라는 것이 작은 타협들이었다. 그래서 그 타협을 하는 과정에서 비공식 대화들이 있었다.

그런데 비공식 대화를 위해 밀실에서 만나는가, 양주를 마시는가, 이런 사소한 것들이 노동운동에서 매우 큰 문제처럼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걸 하면 개량주의자, 즉 타협주의자고 안 하면 혁명주의, 비타협적이고 전투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투쟁의 마무리와 타협을 투명하게 한다”는 자부심을 가진 노동운동가들이 자기보다 덜 투명하다고 생각되는 노동운동가들을 가리켜 사회민주주의자, 개량주의자라고 부르고 더 심하게 욕을 할 때는 어용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코민테른 결성 시기에 공산주의자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가졌던 맹렬한 적대감은 20세기 말, 21세기 초 한국의 노동운동에 와서 ‘사회민주주의자’라는 말 속에 담겨 ‘배신자, 나쁜 놈’이라는 의미로 쓰였던 것이다.

사민주의자라는 욕설 또는 타협주의자

그래서 많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나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해왔다. 그 실제적 의미는 “나는 타협주의자가 아니다” 정도였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는 지금까지 노동운동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사회민주주의는 지금까지 노동운동의 실패에 대하여 책임이 없는 처지가 되었다.

사회민주주의는 한국 노동운동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위해서,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 때를 묻히지 않고 숨겨두었던 깃발인 셈이다. 그래서 바로 사회민주주의(SD)는 차세대 노동운동의 깃발이다.

한편으로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흔히 사회민주주의를 이미 낡은 것이라 한다. “그 무슨 케케묵은 소리냐?”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2,000년이나 되고 불교는 2,500년이나 된 낡은 것이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도 2,500년이나 된 것이고 사회주의는 200년이나 되었으며, 시장(市場)을 인정하는 현대 사회민주주의는 1, 2차 대전과 스탈린 독재 등을 경험한 후 1951년에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확립되었으니 이제 겨우 60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식인들은 유럽 선진국의 일류 좌파 지식인들(바로 유학생 시절 그들의 스승이다!)의 흉내를 내고 싶어 한다. 그들은 선진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자기 나라 사회민주당, 노동당, 사회당을 비판하는 소리들을 흉내 낸다.

유럽 선진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100년 전부터 내걸었던 강령을 거의 실현하고, 이제 자기들이 이룬 것을 지키는데 급급하여 ‘보수정당’이 되어버린 듯한 당연한(?) 현상을 비판한다.

유렵과 한국의 사민주의

유럽 선진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에게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이 신좌파, 극좌파 정당들도 만들고 있다. 당연한 현상이다. 예를 들면 노르웨이의 사회주의좌파당 같은 정당들은 이미 복지국가가 실현된 나라에서 등장하고 있다.

집권당, 또는 제1야당으로서 오늘의 국정을 책임져야 할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현실주의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좌파, 극좌파 정당들이 크게 보아 사회민주주의운동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제 겨우 후진국을 벗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 세계사의 최첨단을 가는 유럽 선진국의 지식인 흉내를 낸다는 데 있다. 물론 세계 학계의 최신의 논의를 따라 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과 선진국 현실을 혼동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에 대한 비판적 언사들을 흉내 낼 때 우리나라에는 비판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선진국의 신좌파, 극좌파 정당들에 관심을 가질 때 우리나라 근로대중은 그들에게서 지적 허영과 사치를 느낀다.

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은 무엇을 주된 투쟁 목표로 하는가? 그것은 사회임금이다. ‘기업임금 올리기’ 노동운동은 한계에 왔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전략적 목표로 하여 너무나 낮은 우리나라의 사회임금을 높이기 위한 노동운동이 곧 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이다. 사회임금은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도 이익이 된다. 나아가 자영업자들에게도 이익이 된다. 그래서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 가는 노동운동’이 될 것이다.

양대 노총 통합을 지지한다

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이 지금까지의 민주노조운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차세대 노동운동을 시작한다면 1세대 한국노총, 2세대 민주노총에 이어 제3노총이라도 만들 것인가? 아니다. 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은 노동운동의 분열을 지지하지 않는다.

물론 사회민주주의 차세대 노동운동은 한국노총은 ‘어용’이고 민주노총은 ‘민주’라는 도식을 거부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통합을 지지한다. 그것이 노동자 대중이 바라는 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복수노조 허용, 노조전임자 임금 문제 등의 거센 파고(波高)를 넘어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하여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사회민주주의는 독자정당 노선, ‘노동당 노선’을 고집하지 않는다. 한국의 선거제도와 문화, 역사적 조건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면 노동자계급의 독자정당이 아니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할 정당이 있어야 한다는 요구를 분명히 한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경험한 민주노동당의 절반의 성공에 뒤이은 좌절로 드러난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한계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앞으로 나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은 한국의 현재 선거제도, 정치문화 속에서 ‘노동+자유’당 노선을 현실적인 전략으로 인정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공상으로 낭비할 시간이 없으므로, 이른바 진보적 정치학자들의 ‘희망과 주장’에 근거하여 정치세력화의 전략을 세우지 않는다.

지금까지 전세계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사회민주주의자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도하고자 하지 않았으며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적 풍토가 맞지 않는 곳에서 굳이 ‘사회민주당’을 창당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100년 전 영국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대중정당으로서 ‘노동당’을 창당하였다.

미래의 주인, 우리의 희망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노동’당이 대중정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면 ‘노동+자유’당이라도 만들고자 한다. 이런 전략을 사회민주주의자는 “이념은 순수하게, 정치는 현실적으로!”라는 슬로건으로 표현한다.

1987년 이후에 성인(成人)이 된 세대, 20대와 30대는 1987년 이전에 성인이 사람들과 매우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그 이전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어떤 강박관념과 고정관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개인주의자’로 보이기도 하고 ‘실리주의자’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미래의 주인이고 우리의 희망이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민주화운동 세대가 떨치지 못하는 피해의식과 환상, 강박과 금기가 없다. 그래서 차세대는 정직하다.

사회민주주의는 바로 1987년 이후에 성인이 된 세대, 민주화 이후 세대, 이른바 2030세대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데올로기이며 철학이다. 그러므로 1987년에 시작된 민주노조운동이 차세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NL이나 PD와 같은 민주화운동 시기의 이데올로기, 후진국형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라는 선진국형 이데올로기로 재무장할 필요가 있다. 1987년에 노동운동을 시작한 노동운동가들은 지치고 힘들지만 다음 세대를 위하여 스스로가 가로막고 있던 문을 열 의무가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역사가 오래되고 여러 나라, 여러 시대에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였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의 넓은 폭과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세력을 묶을 수 있는 깃발이다. 종교와 신앙을 달리하는 사람이나 지적(知的)인 배경이 다른 사람도 사회민주주의의 깃발 아래 함께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정파’ 하나

또 사회민주주의는 다수 국민들에게 선진문물(先進文物)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는 대중 정치의 이념으로서도 커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노동운동이 사회민주주의 깃발을 내걸면 많은 국민대중은 신뢰감을 가지고 노동운동의 주장을 진지하게 들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민주주의가 노동운동에 뿌리내릴 때 노동운동은 국민적 영향력을 회복할 것이다.

급격하게 진행되는 사회양극화로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한국에서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새로운 진보’는 곧 사회민주주의운동이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이 ‘역동적 복지국가’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민주주의운동을 해야 진보운동을 이끌어갈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 철학으로 재무장한 노동운동은 진보적 사회운동 전체를 이끌어가는 원래의 위치, 시민운동에게 빼앗긴 자기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작년에 ‘사회연대전략’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사회연대전략을 실제로 진지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사회민주주의 깃발을 앞세우고 NL과 PD를 몰아내는 사상 혁명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연대전략을 실제로 실천하려 하고, 민주노총의 혁신을 진정으로 바라는 노동운동가들은 사회민주주의의 깃발을 중심으로 ‘차세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해야 한다. 그것은 강신준 교수가 요청한 ‘제대로 된’ 정파의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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