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치 세력 헤쳐모여 새판짜야"
        2010년 01월 16일 08: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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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은 “진보신당이나 다른 세력이 제안하고 민주노동당이 거기 참여하는” 방식의 진보세력 새판짜기를 제안했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뿔뿔이 흩어진 세력을 모으고, 범진보세력으로 발전”하는 것이 진보정치세력의 과제이지만, “민주노동당이 중심이 되면 패권이 확장된다고 오해받을 수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대근 논설위원(사진=이재영) 

    이와 함께 이대근 논설위원은 최근 일부에서 개진되고 있는 민주당 중심의 반MB선거연합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통해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는 교훈을 망각한 과거의 유산”이며, “진보정당을 독자적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세력이 아니라, 수혈정당 외곽정당으로 파악하는 인식”이라고 맹비판했다.

    이어 이 위원은 “‘현실적 판단’만으로 정치노선을 정하자면 박근혜 중심으로 반MB를 하는 게 낫다”며 <한겨레> 홍세화 기획위원의 비판적 지지론을 비판했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민주노동당에 대해 “진보정치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시민들로부터 거부당했고, 2년 동안 몰락하는 흐름에 그대로 있었으며, 이번에도 패배하면 시민들에 의해 세 번 연속 확인사살 되는 것”이라고 비평했다.

    또 이 위원은, 진보신당에 대해 “노선과 정책의 큰 방향은 올바로 설정했지만, 서민과 노동자가 자신의 정당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지식인, 중산층 정당 이미지”라고 평했다. 아래는 지난11일 <경향신문> 논설위원실에서 이루어진 이대근 논설위원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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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선거연합론

    – 지방선거에 관련하여 다양한 선거연합 논의가 나오고 있다. 전통적인 비판적 지지론에 입각한 반MB연합론이 재현되며 홍세화, 이정희 등이 이에 동조하는 한편 손호철, 노회찬 등은 진보정치세력 중심의 선거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진보정당은 뒤로 미루고 민주당 중심으로 하자는 비판적 지지론, 민주당의 변화를 조건으로 연합하자는 의견, 진보연합 중심론 등 크게 세 가지가 있는 것 같다.

    과거보다 이런 논의, 진보정당 독자노선보다 민주당 연합 논의가 많아진 것은 정세 변화 때문이다. 바로 야당 진영에 중심이 없고 전체가 지리멸렬하다는 위기감이 비판적 지지를 만드는 요인이다. 그러나 정세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과거의 선거연합 논의는 자유주의 정당들과 진보세력의 관계에서 나온다.

    군사정권 시기에는 진보세력이 독자정당을 만들기 어려워 재야라는 형태로 존재했고, 야당은 ‘투쟁하는 야당’이었다. 따라서 이 두 세력은 동거하거나 일체화된 상태였다. 그 다음 민주화 과정 시기에 보수야당의 성격이 드러나며 분화가 시작되고, 독자정당이 형성된다.

    그러나 그 독자정당의 힘이 미미하여 비판적 지지론이 나올만한 사연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독자정당이 제대로 서게 된 민주화 이후의 시기에는 비판적 지지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즉, 비판적 지지는 분화되고 진화하는 과정의 중간에 나온 것으로, 지금 이런 것이 다시 나오는 것은 맞지 않다. 지금의 진보정당은 자유주의 정당과는 다른 진보정당의 역사성과 대중성을 가지고 있다.

    진보정당은 잔칫집 돼지가 아니다

    비판적 지지론의 또 한 측면은 운동성 부분이다. 정당으로 변화하기 전 사회운동의 정치적 방편이 비판적 지지다. 따라서 지금 비판적 지지론이 나오는 것은 정당을 통한 사회 변화를 목표하기 이전 시대, 과거의 유산이 남아 있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과거의 추억도 있을 것이고, 비판적 지지를 통해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는 교훈을 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보세력들이 자신의 요구,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당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은 역사적으로 확인됐다. 그 중요한 것을 왜 가장 중요한 선거 때 포기해야 하느냐? 굉장히 잘못된 정치적 판단이다.

    비판적 지지론은 진보정당을 독자적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세력이 아니라, 수혈정당 외곽정당으로 파악하는 인식이다. 평소에는 잘 먹여 살찌우다 잔치 때 잡아먹는 돼지로 취급하는 생각이다. 진보정당은 잔칫집 돼지가 아니다.

    – 그렇지만,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민주주의에 위기가 왔다는 인식도 있고, 또 여러 야당들이 힘을 합치면 정권을 견제하기 쉽지 않겠냐 하는 상식적 판단도 있을 것 같다.

    = 반MB연대를 안 해서 지금의 위기가 온 것 아니다. 뭉치지 못해서 이명박 정권이 등장한 것도 아니고, 뭉치지 않아서 정권이 독주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민주당도 ‘대통합민주신당’을 거친 ‘통합민주당’이지만, 이명박 정권을 견제할 아무런 힘이 없다. 문제는 MB 독주에 대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대안도, 시민 지지도 없는 세력끼리 뭉쳐봤자, 큰 힘이 안 된다.

    차라리 박근혜 중심 반MB가 현실적

    홍세화 선생 같은 분들의 논리는 ‘지금은 진보정치세력의 역량이 안 되니 민주당을 비판적 지지하자’는 것인데, 힘없는 진보정당이 힘없는 민주당 밀어준다고 무엇이 되겠느냐? ‘현실적 판단’만으로 정치노선을 정하자면 박근혜 중심으로 반MB를 하는 게 낫다.

    민주연합론 자체가 민주당이 이명박 정권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진보정당이 도와준다고 없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 도와줄만한 민주당이 먼저 돼야 한다. 민주당이 진보정치세력을 끌어들이려면 어떤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 민주연합론으로 낡은 민주당을 그대로 존속시키고, 진보정당의 정체성도 망가뜨리면 결국 공멸이다.

    – 현시점에서는 양보다 질이라는 판단인가? 그리고 이 위원이 말하는 ‘대안’이란 이념이나 정책인가?

    = 민주연합론의 중심인 민주당에게는 조직도, 이념도, 리더십도 없다. 민주당은 지난 10년의 잔존세력일 뿐이다. 잔존세력으로 이명박 정권에 맞설 수는 없다. 우선 대안노선과 그것을 실현할 리더십을 만들어야 한다.

    – 민주당 중심 선거연합론과 진보정치세력의 독자성을 중시하는 태도는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에 대한 평가가 다른 데서부터 비롯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노무현 정권을 어떻게 평가하나,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명박 정권이 신권위주의라는 주장 옳지 않아

    = 두 정권을 놓고 평가하자면 차이가 난다고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다. 대통령의 퍼스낼러티, 참모, 리더십, 정권의 행태 등이 모두 다르다. 그렇지만 뭘 가지고 비교하느냐의 문제다. 좀 떨어져서 객관적인 준거틀, 진보-중도-보수라는 기준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권을 두고 신권위주의라거나 신보수주의라는 성격 규정이 있던데, 신권위주의라는 규정은 부적합한 것 같고, 신보수주의는 맞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 이명박 정권 같은 보수화 정권을 처음 봤고, 처음 보다 보니 다 다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와 비교해보면 정말 그렇게 차이가 있는가?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발전시킨 것뿐이다. 발전시킨 게 차이라면 차이다.

       
      

    노 정권과 이 정권에서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권리가 크게 다르지 않고, 노동 배제와 탄압이 정도 차이는 조금 보이지만, 노동에 적대적인 것은 똑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노조 간부들이 잇따라 분신자살할 때 “분신자살이 정권에 대한 투쟁수단인 시대는 끝났다”며 강한 부정적 태도를 보였었다.

    단지 두 사람의 통치스타일, 개성, 검찰이나 국정원에 대한 통제-자율성 부여의 정도를 가지고 권력의 근본적 속성이 다르다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작년 12월에 있었던 ‘민들레광장’ 토론회에서, 올해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은 무덤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는데, 그런 전망을 하는 이유와 근거는 무엇인가?

    = 지난 대선 이후 진보세력의 역사적 몰락이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흐름을 거스를 힘과 노력이 없는 가운데 지방선거를 맞게 된다. 역량이 안 되는 상태에서 선거를 맞는 것이다.

    운이나 낙관만으로 선거를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조금 더 잘해보겠다고 노력하겠지만, 큰 흐름에서 이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큰 흐름과 주체의 준비 정도를 보면 이미 선거 결과가 나와 있다.

    민노당, 연이은 선거 패배에도 변화 없어

    – ‘진보세력의 역사적 몰락’이 무엇인가?

    = 민주노동당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패배했다. 진보정치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시민들로부터 거부당한 것이다. 거부당한 후 새 길로 갔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2년 동안 몰락하는 흐름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계속될 것이다. 이번에도 패배하면 시민들에 의해 세 번 연속 확인사살 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패배의 충격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충격이 새 에너지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 지난 총선과 대선 패배를 근거로 ‘역사적 몰락’이라 함은 과하지 않나? 진보정당에게는 2004년 총선에서의 성과가 예외적이었고, 오히려 선거 패배가 일상적이다.

    =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된 진보정당운동은 2004년에 도약했지만, 그 때를 정점으로 다시 몰락하는 과정에 있다. 2004년 이전에는 대중적 평가를 받을 기회 자체가 없었다고 봐야할 테지만, 도약 이후에 노선과 이념이 잘못돼 있다는 대중적 평가를 받은 것이다. 결국 2004년의 승리가 거품이었다는 것이다.

    – 잘못된 노선과 이념이 무엇이냐?

    = 21세기가 된 지도 10년이나 지났다. 과거 냉전 분단시대에 형성된 가치와 논리로 한국 사람들을 가르치고, 과제를 가르치려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민주노동당은, 급변하는 사회와 욕구 다양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민족 문제, 반미 문제를 시민들에게 고루하게 강요한 잘못을 저질렀다. 리더십도 역시 참신하지 못했고.

    – 주체사상이나 권영길 의원을 거론하는 것인가?

    = 진보정당은 참신한 정당이어야 하는데, 지난 대선 때에는 거꾸로 노쇠한 느낌을 줬다. 이는 물론 개인보다는 패권을 가진 정파의 잘못이다.

    진보신당, 기반 허약한 지식인 정당

    – 민주노동당이 그렇다면 진보신당은 어떤가?

    = 노선과 정책의 큰 방향은 올바로 설정한 것 같다. 그런데 창당한 지 얼마 안 돼 대중적 기반이 없고, 서민, 저소득층, 노동자, 하층민들이 자신의 정당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지식인, 중산층 정당이라는 이미지다. 분당되면서 위에서 만들어진 정당의 한계다.

    촛불집회 때 진보신당으로의 시민 참여가 많이 늘었지만, 최근 빠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일시적 이벤트였다고 볼 수 있다. 진보신당은 근간이 허약한 게 문제다. 진보신당은 소수 스타 정치인에 의존하고, 정책 생산, 이슈 개발, 담론 주도할 능력이 없다. 존재감이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 ‘스타’나 ‘얼굴마담’이 있는 게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 노회찬이나 심상정 같은 사람이 가장 큰 자산이니, 잘 활용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두 사람의 역량을 당이 뒷받침해 당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통해 당 근간을 만들어야 한다.

    – 그렇다면 지방선거 후 진보정당의 활로는 어디서 주어지거나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 ‘진보의 재구성’을 통해 진보 진영 전체가 헤쳐모이는 충격이 됐으면 좋겠다. 민주노동당은 구진보, 낡은 진보고, 진보신당은 노선은 있으나 너무 미약하다. 그러다 보니 진보 진영 어디에도 구심이 없다.

    진보세력 판 전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중심이 되면 패권이 확장된다고 오해받을 수 있으니 진보신당이나 다른 세력이 목소리를 내고 민주노동당이 거기 참여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노, 스스로 변하는 것이 가장 중요 

    – 새 판짜기에 구체적인 구상이 있는가?

    =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노동당이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변하지 않고 기득권만 쥐고 있으니 다른 데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도 진보정치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며 정치화해야 한다.

    지금은 임종인 전 의원 같은 사람들이 갈 당이 없고, 그냥 입당하면 국회의원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뿔뿔이 흩어진 세력을 모으고, 범진보세력으로 발전해야 한다.

    – 논설위원으로 일하기 전에는 남북 관계와 국제 관계 분야를 담당하기도 했는데, 올해의 남북 관계,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전망하는가?

    = 새해에는 남국 관계에 변화가 좀 있을 것 같다. 북한이 신년공동사설에서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고, 일본의 <조선신보>는 이를 ‘정상회담에 기초해 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이라 해석했다.

    북한은 작년 하반기부터 정상회담을 타진했는데, 이명박 정권은 처음에는 부정적이다가 이후에는 안건을 제한한다는 조건으로 물밑 접촉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그동안 ‘상호주의 원칙을 지킨다’며 보수집단의 반발을 무마시켜왔기 때문에 금년에는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주변국은 ‘핵 가진 북한’과 대화하는 것이 핵무기를 승인하는 것으로 여겨질까봐 북한을 상대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관계 개선이 안 되면 3차 핵실험으로 가기 때문에 대화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도 가지고 있다.

    올해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높다

    – 그렇다면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이 높은 것인가?

    = 변수가 없다면 올해 안에 가능할 것이다.

    – 남북 정상회담이 국내 정세에 어떤 영향을 줄까?

    = 이 정권의 약점인 남북 관계가 개선되는 것이고, ‘원칙을 지키며 성과를 얻었다’고 홍보할 테니 국내 지지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 미디어법 통과, 방송국 체제 개편, 신매체 등장 등으로 언론 환경이 많이 변화되고 있다. 그리고 과거처럼 여당지, 야당지 하는 식으로 정치권에 줄서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경향신문>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려 하는가?

    = <경향신문>을 대표할 수는 없으니, 개인 견해를 말하겠다. <경향신문> 내부에서는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정론지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그 진보 정론은 당파나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한편, 우리의 가치에 의해 왜곡되는 바 없이 사회현상을 그대로 전달하는 게 우선이다. 보수도 보고 공정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신문을 만들려 한다. 다만, 의제를 던짐에 있어서는 우리의 큰 지향을 드러내고자 한다.

    <경향신문>은 이 둘 사이의 긴장을 만들고 유지하려 한다. <경향신문>은 종업원 지주제로 경영되는 독립언론이니 만큼, ‘민주화세력’ 등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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