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SM 저지 투쟁의 ‘전략적 요지’
    “여기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By mywank
        2010년 01월 15일 05: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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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 유통업체 슈퍼마켓의 입점을 저지하기 위해, 인천 갈산동 지역 중소상인들이 마련한 조그만 농성장은 SSM(기업형 슈퍼)저지 투쟁의 ‘전략적 요지’이자, 지역 속에서 진보정당 및 시민사회운동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지난달 25일 전국에서 최초로 가맹점 형태의 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개점이 기습적으로 시도되었다. 이에 지역 상인들은 5일 뒤 전국에서 최초로 대기업 SSM 가맹점에 대한 사업조정을 신청하고, 그 결과를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었다.

    중소기업청에서 이곳을 사업조정 대상으로 포함시킬 경우 전국적으로 ‘변종 슈퍼’ 개점에 제동이 걸리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사업조정을 통해 SSM(직영점)을 저지해왔던, 각 지역 상인들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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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사례와 같이, 이곳 역시 지역 풀뿌리단체들이 상인들의 투쟁에 함께하고 있었다. 현재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갈산점 입점저지 비대위(이하 비대위)’에는 민주노동당 부평구위원회,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인천여성회 등이 동참하고 있다.

    헌신적으로 연대하는 이들을 모습을 지켜보며, 평소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에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던 갈산동 사람들의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고마운 분들’, ‘언젠가는 우리가 도와줘야 할분들’이라는 평가가 상인들과 주민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14일 오후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갈산점 예정지 앞에 마련된 농성장에는 ‘삼익 슈퍼’를 운영하는 홍기욱 비대위 총무와 농성에 동참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정재식 ‘대형마트 규제, 소상공인살리기 인천대책위(이하 인천대책위)’ 사무국장, 조현제 인천연대 계양지구 사무국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농성장은 파라솔 하나에 비닐을 두른, 초라한 모습이었다. 성인 3명이 들어가기도 비좁은 공간에는 가스난로 하나가 농성자들의 언 손과 발은 녹이고 있었다. 깨알같이 적어 놓은 농성일지에는 이곳 사람들의 고달픈 일상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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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피곤한데, 수사과에서 전화가 왔어요. 나가야 되는 건지….”

    홍기욱 비대위 총무가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쓰러 내렸다. 얼마 전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가맹점주가 홍 총무를 비롯해, 비대위 공동대표인 한부영 ‘보람마트’ 사장과 김응호 민주노동당 부평구위원장, 신규철 인천대책위 집행위원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주 스스로 이런 판단을 했다고 믿는 이는 없었다.

    홍 총무는 이곳 가맹점주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사람도 다른 동네에서 8년 동안 슈퍼를 했는데, 우연히 홈플러스 본사에 갔다가 계약을 했다고 하네요. 회사에서 아무 말을 해주지 않아, 여기가 ‘분쟁지역’인지 모르고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위약금 문제 때문에 입점을 포기하기도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은 ‘가해자겸 피해자’라고 하네요.”

    갈산동 상인과 지역 활동가들은 SSM 가맹점 개점을 저기하기 위해, 지난달 23일부터 2~3명씩 ‘농성조’를 짜서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보통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인적이 뜸한 심야시간을 틈타서 ‘도둑 개점’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주)삼성테스코 측도 지난달 25일 새벽 기습적으로 이곳에서 개점을 시도했지만, 상인들의 육탄전에 막혀 실패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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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농성으로 상인들은 지칠 때로 지쳐있었다. 당초 이날 농성장에서 만나기로 한 한부영 비대위 대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개인사정이 있는 다른 상인들을 대신해, 농성장에서 밤 세기를 마다하지 않다가 몸져누웠기 때문이다. 홍 총무는 농성의 애로사항을 털어놓던 중에서도 이곳을 찾는 지역 활동가들에 대한 고마움은 빼놓지 않았다.

    “장사를 하면서 농성장을 유지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농성에 참여하려면 가게를 비워야할 경우도 생기고, 이곳 상인들은 병을 하나씩은 갖고 있어요. 그나마 정당, 시민단체 분들이 함께해주시니까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거죠. 또 사업조정 신청 등 어려운 절차도 도와주니까 저희로써는 정말 고마울 뿐이죠.”

    농성장을 찾은 정재식 인천대책위 사무국장은 “갈산동은 지난해 7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기업 SSM 직영점이 사업조정 대상으로 지정된 곳인데, 다시 가맹점 형태로 공격에 나섰다”라며 “만약 이번에 이곳이 사업조정 대상으로 지정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변종 슈퍼’들이 아무런 규제 없이 우후죽순 생겨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부영 비대위 대표의 부인은 이날도 농성장 부근에 있는 ‘보람마트’를 혼자 지키고 있었다. 매일 가게 대신 농성장에서 지내는 남편을 대신하던 그는 “농성이 장기화되면 그쪽(유통 업체)이던지 상인들이던지 모두 지치지 않겠느냐”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또 “남편이 몸이 안 좋아서 지금 집에 있지만, 밤이 되면 농성장으로 가지 않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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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SSM 가맹점을 막고자하는 절박함은 농성장에 있는 이들 못지않았다. 그는 “갈산동에서 밀려면 다 밀리게 되고, 여기서 잘 되면 앞으로 전국의 중소상인들이 웃을 수 있게 된다”며 “(중소기업청의 사업조정) 해석이 잘못 나오면, 여기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이곳 상인들만 무너지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 역시 지역 정당, 시민단체 활동가들에 대한 고마움을 감추지 않았다. “솔직히 예전에는 정당, 시민단체 분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열성적으로 상인들과 함께해주셨어요. 밤에 농성장을 지켜주기도 했고요. 기회가 되면 나중에 그분들을 돕고 싶어요.”

    갈산동 부평공고 옆에서 ‘함지마트’를 운영하는 박현숙 씨는 이날 ‘야간 농성조’ 였다. 농성장에서 밤을 세야 하는 그는 다음 날 장사가 걱정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가 있는데, 대기업 슈퍼까지 들어서면 우리는 아예 설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그래도 지금까지 3번이나 밤을 샜다”며 애써 미소를 지으려했다.

    현장에서 만난 갈산동 상인들은 절박했다. 그래서 생계까지 제쳐두고, 투쟁의 현장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중소기업청은 SSM 가맹점을 사업조정 대상으로 지정할지 여부를 보름 째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상인들의 농성은 이날로 23일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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