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을 받들어 만든 곶감
        2010년 01월 19일 11:3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씨앗은 해마다 그 안에 경험했던 정보를 다 축적한다. 오랫동안 겪어온 일상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씨앗은 여러 곡절과 계절의 변화를 간직하고 있다. 씨앗은 다 알고 있다. 사람들도 병들었던 경험이나 어려웠던 경험들이 다 기억이 나는 것처럼 씨앗도 마찬가지다. 좋은 기운으로 건강한 땅에서 맺은 종자는 그만큼 건강한 전통을 그 안에다 쌓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해마다 자신이 겪은 생명짓중에서 자신이 잘못하고 부족한 부분들은 잘 헤아리고 가장 잘하고 즐거워했던 일들은 어떤 방식이든지 후대(後代)에 전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고 그 다음대로 또 그다음대로 이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종족(생명)을 유지하려는 본능의 발현이기도 하고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다.

    그렇게 씨앗을 들여다보니 하루 삼시세끼 내 밥상에 올라오는 먹을거리의 근본을 생각하고 궁금해 하는 버릇이 생겼다. 배추, 파, 콩, 쌀, 잡곡… 모두가 다 씨앗으로부터 출발한 것들이니 새삼스럽다. 고기도 생선도 다 씨앗(정자, 난자)에서 출발하는 거다.

    사람도 대(代)를 잇듯 내가 먹은 저 씨앗 또한 지난해 심은 것에서 나온 것이니 알곡 하나하나마다 그 안에 아로 새겨진 역사 하나하나를 온전하게 얹어 먹는 것이나 진배없다.

       
      ▲ 박명의씨 지붕밑 처마. 수수(몽달수수, 비수수, 까치수수) 등 각종 토종씨앗들 저마다의 이야기가 상서롭고 홑줄에 매달린 곶감이 초가을부터 깊은 겨울까지 세월을 빨아들이며 익어가고 있다. ‘잘 사세요’ 외부 전기등도 정겹기 그지없다.

    우토롱골 박대장금 박명의 아줌마

    경북 상주 화북면 입석1리에 박명의, 김희수씨 내외가 산다. 귀농 12년차로 한빈이와 해인이 남매를 키우며 농촌에서 토종종자 150여 가지를 품고 살아간다. 일상적인 시선으로 보면 돈 안되는 토종씨앗을 저리 애지중지 하는게 이해가 안되지만 그니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박명의 여사의 집은 ‘씨앗오쟁이’와 마찬가지다. 대(代)를 이어가는 씨앗의 명가(名家) 150개가 들어있는 작은 ‘우주보따리’다. 작은 구슬 같은 곳에 또 다른 우주가 들어있던 영화 ‘맨인블랙’의 한 장면이 생각 난다.

       
      ▲ 박명의님과 김희수님 내외의 정겨운 모습. 상주 화북에서 괴산 청주방면으로 가는 길 왼편으로 회룡골 표지석이 선명하다.

    상주시 화북 입석리는 필자가 2004~2006년 사이 3년 정도 오가며 ‘참발효퇴비농사업’을 진행했던 사무실이 있던 마을이다. 내 사무실은 입석2리였고 박명의 여사가 사는 곳은 입석1리다.

    입석1리는 ‘회룡골’이라 불린다. 높은데서 바라보면 마치 용이 휘돌아가는 형상이라 하여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름이다.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뉘어 ‘위회룡골’ ‘아래회룡골’로 부르는데 어른들 입에 달라 붙다보니 윗동네를 ‘우회룡골’ → ‘우토롱골’로 소리나는대로 부른다.

       
      ▲ 우토롱골에는 묘하게 자라난 오래된 소나무가 있고 그 밑에 동신제(洞神祭)를 지내는 작은 사당(?)이 있다. 지금도 우토롱골 사람들은 정월 초이튿날(설 다음날) 마을사람들이 다모여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동신제를 지낸다. 사당에 걸어놓은 새끼금줄은 마을의 나쁜 기운을 막아내며 마을을 지켜준다.

    그래서 산촌 유학하는 아이들은 박명의님을 부를 때 ‘우토롱골 아줌마’로 부른다. 산촌유학은 도시학교 학생들이 전학을 하지 않고도 일정기간을 시골에 거주하며 시골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다.

    “왜 귀농을 하셨어요?”
    “가장 간단하게 살고 싶어서요” 참 무심(?)한 듯한 대답이 툭 나온다. 뭔가 사연 있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다. 간명했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한줄로 녹여낸 것이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박명의님은 결혼하기 전 90년대 중반까지 도시에서 그림을 그렸다. 문득 문득 시골에 가서 그림도 그리고 농사도 지으면서 살아보자, 돈이 필요하면 품이라도 팔아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2000년도 38살 되던 해 푸른누리공동체 심성수련 프로그램에서 신랑 김희수씨를 만나 데이트 4번 만에 결혼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 아들 한빈이와 막 학교에 입학한 딸내미 해인이를 두고 있다.

    두 사람에게 도시생활은 웬지 짐을 잔뜩 가지고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쓰레기만이라도 싸놓지 않는 삶’을 살아보자. ‘온전하게 순환하는 삶’은 아니더라도 ‘가장 간단하게 사는 방향’으로 가자고 마음먹었다.

    해서 결혼하자마자 승주를 거쳐 덕유산자락의 품 거창에다 살림을 꾸리고 농촌생활을 시작했고 4년을 살고 2006년 이곳 상주 화북으로 이사를 했다.

    우토롱골 아줌마는 재주가 많다. 황토염색도 하고 장구도 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옷도 맵시있게 잘 만든다. 신랑 김희수씨는 나무를 다루는 목수다.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의 전통가옥을 짓는다. 집을 지어주고 덕(德)을 쌓는다. 그러다보니 우토롱골 집과 농사는 거의 대부분을 박명의씨가 지킨다. 그래도 두 사람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채 살아간다. 서로의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협력한다.

    박명의씨는 어릴 때부터 농사일이 재미있고 익숙했다. 심은 씨앗이 땅에서 움터 올라 올때면 납작 업드려 눈 가까이 파릇파릇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을 느꼈고, 허리춤까지 올라오고 키만큼 자라나면 그만큼 꼬맹이 박명의의 신명도 커갔다.

    그래서였나. 귀농 12년차의 삶은 풍성하다는 느낌을 준다. 문화적 다양성이 보이고 이야기가 풍부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40대 후반 그 또래 도시가정에서의 삶의 이야기보다 훨씬 재미있고 풍요롭다는 생각이 든다. 네온사인 번화가도 아니고 아파트도 아니고, 물질도 풍족하지는 않지만 ‘자연의 품’ ‘대지의 향기’ ‘이웃과의 어울림’ 같은 맛깔스런 컨텐츠(이야기)가 풍부해서 그런 것이지 싶다.

    지치지 않고 농사를, 그것도 돈 되는 종자들만 골라 올인하는 다른 이들에 비해 오롯이 토종종자의 생명짓을 잇기 위한 농사를 짓는 고단함이야 묻어나지만 씨앗을 심고 거둘 때마다 드는 든든함으로 한세상 살아가는 것이다.

    씨앗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그들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 것, 그 조그만 생명체들이 천배만배로 커져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는 과정’을 들여다 볼 때마다 언제든지 다시 일할기운이 샘솟는다.

       
      ▲

    볕이 좋은 날은 씨앗들을 꺼내 ‘볕 마중’을 한다. 아이들과 박명의씨에게는 씨앗들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다. 살아가는 ‘근거’이고 ‘길동무’ 같은 존재다. 아이들의 두손 모은 표정을 보면 순환되는 기(氣)가 보인다.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알곡으로 알곡에서 아이들에게로… 그리고 아이들의 싱그런 기운은 다시 자연의 품으로 올라간다.

       
      

    집 마루에 눈에 띄는 앙증맞고 예쁜 녀석들이 있었다. 토종옥수수들인데 색깔이 얼마나 야물고 영롱한지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알갱이 하나하나 같은게 없다. 다 제각각이다. 노란 두 녀석은 팝콘 만드는 옥수수란다. 단단하기는 강철 알구슬과 진배없다.

    박명의씨는 토종종자를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종자를 나누어준다. 나누어야 널리 퍼지고 종자가 보존되기 때문이다. 옥천 산계뜰영농조합법인 이선우대표가 ‘선비잡이콩’을 물어봐달라 요청해서 물었더니 있단다. 또 종자로 그냥 나누어 드리겠다고 선뜻 그분 휴대폰전화 달라고 한다. 그렇게 선비잡이콩은 상주 박명의님 품을 떠나 옥천에서도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우토롱골 박대장금 곶감을 만나다.

       
      ▲ 자연의 품안에서 감들은 저마다 각각 다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며 곶감이 되어간다. 같은 장소지만 각자가 달려있는 위치에 따라 다르다. 1월10일경 곶감의 모습인데 시간이 더 가면서 수분은 자연스레 더 말라갈것이고 곶감은 정점을 향해 익어갈것이다.

    필자가 11월 초 박명의씨 댁에 다니러갔을때다. 남편 김희수씨가 인상 좋은 동네청년과 감을 깎고 있었다. 손과 작은 기계를 이용하여 깎았다. 11월 첫서리가 내릴 무렵 추위가 오기전 상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사랑방에서 따끈한 차한잔 나누면서 곶감이야기가 따라 붙었다.

    곶감 이야기에는 빠짐없이 호랑이가 등장한다. “떡하나 주면 안잡아먹지~” 으레 호랑이놈이 떡장수에게 던지는 멘트다. 먹이의 간을 보는것이다. 소금장수도 그랬고 소장수에게도 그랬다. 세상에 호랑이를 당할 존재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호랑이가 물어간다고 해도 무시하고 앙앙 우는 어린손자를 달래기 위해 “곶감하나 줄까?” 할머니가 던진 한마디에 울음을 뚝 그치는 아이를 보고 ‘곶감’이 자기보다 더 무서운 놈인줄 알고 도망갔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은근히 통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호랑이도 밉지는 않았다. 어딘가 한구석은 어리버리하게 보이는 호랑이는 친근한 상상속에서 내 곁으로 다가섰으니까.

    곶감은 우리네 생활속에서 단맛의 정수(精髓)였다. 오죽 달고 입맛에 맞았으면 단맛과 관련된 속담이다 싶으면 곶감이 단연 으뜸으로 많을까.

    –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 먹듯'(알뜰히 모아 둔 것을 힘들이지 않고 하나씩 빼어 먹어 없앤 다는 뜻)
    – ‘곶감 죽을 먹고 엿목판에 엎드러졌다'(연달아 좋은 수가 생겼다는 뜻)
    – ‘곶감 죽을 쑤어 먹었나'(왜 웃느냐고 핀잔주는 말)
    –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달다'(뒷일 생각 않고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것만 한다는 뜻)

    사랑방 좌담에서 나는 박명의씨 내외에게 곶감을 조금만 더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했다. 안병권고향보따리의 이야기로 깊은 겨울(동지섣달과 정월달)에 안성맞춤이지 싶어서였다.

    토종씨앗은 팔기 위해서 농사짓는게 아니라 종자보존을 위한 농사이므로 이것저것 손은 많이 가지만 생활비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 해서 감이라도 일부 깎아 곶감으로 만들어 생활비에 보태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고, 가족들의 겨울간식용 이었는데 내가 조금 더 부탁을 했다.

    우토롱골 아줌마는 옛날방식으로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말리고 손질하고 정성을 쏟는다. 보기 좋은 빨간색으로의 착색이나 탄닌 성분의 산화방지를 위하여 유황가스를 피워 대량으로 생산하는 곶감과는 컨셉이 다르다. 이유야 어찌하든 유황이 타면서 나오는 황(S)성분이 우리 몸에 좋을 리는 없다.

       
      

    왼쪽 사진에 보기에도 좋고 맛나게 보이는 녀석은 정상적으로 익어가는 친구고 유황을 피우지 않고 재래방식으로 말리므로 오른쪽 사진처럼 검푸른 곰팡이들이 달라붙는 녀석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곶감들도 다 똑같은 조건하에서 출발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낙오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 친구들의 운명이라 하겠다.

    정상적인 친구들은 고객들에게 나누어 드릴 것이고 상처받은 친구들은 별도로 모아서 겨우내 박명의씨네 겨울간식으로 요것조것 손질해서 먹는다.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스템에서는 유황을 피워(훈증) 이와 같은 상품의 변질을 인위적으로 막아내는 것이다.

    감을 깎아서 걸고 난 초기의 날씨가 좌우한다. 올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습기가 많고 우중충한 날씨가 많아 낙오하는 녀석들이 많이 생겨나 박명의씨 마음을 조바심나게 했다.

       
      ▲ 곶감은 정말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 우토롱골 아줌마와 둘이서 맛을 보는데 아무 생각이 안난다. 그저 맛나다는 생각밖에…

    간혹 왼쪽사진처럼 꼭지 근처 속 과육이 검은색을 띄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상한게 아니다. 일교차가 극심한 상태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게 되면서 검은속내를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맛은 더 좋다. 이 상태에서 시간이 더 경과하면 할수록 수분이 증발하면서 내부의 단맛이 세상 구경을 위해 밖으로 나오게 된다. 하얗게 피는 분(粉)은 바로 ‘감의 단맛이 현신(現身)한 것’이다.

    예전 우리 어머님들이 만드셨던 방식 그대로 지붕 처마밑이나 마당에 한켠에 만든 사방이 개방된 가공실에서 걸어두고 말렸다. 그러다보니 지난 두달여간 우여곡절도 많았다. 한동안 날이 개운치가 않아서 곶감이 익어가는 과정이 순탄치 못해서 차일피일 미루어지기 일쑤였다. 날이 잘 안받쳐준다고 우토롱골 아줌마는 걱정을 하곤 했다. 그래도 고르고 골라내면 1월 중순 이후에는 맛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여간 다행한일이 아니다.

    내가 한눈에 반한 이유는 토종씨앗을 품고 땅의 성질을 잘 헤아리는 박명의씨 식구들의 마음과 정성으로 만든 곶감이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마땅하지 싶어서다. 양은 많지 않지만 그를 만드느라 들어간 정성은 하늘만큼임을 알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가공한 곶감들은 상온에서 보관하면 금방 거뭇거뭇해지므로 냉장고에 보관해야 한다. 하지만 재래방식으로 건조하는 곶감은 예전에 그랬듯이 뽀얗게 분이나면서 시간만큼 내력도 쌓여가며 두고두고 여러 곳에 쓰인다.

    우토롱골 곶감은 150가지의 토종씨앗을 받아들여 150개 저마다의 대(代)를 잇는 ‘생명살이’를 마주하고 품었던 사람이 만든 ‘보석’이다. 인위적인 물리력이나 화학적인 강제력은 배제되고 곶감 본래의 성질과 우토롱골아줌마 식구들의 정성으로 이루어진 합작품이다.

    ‘우리집 작은 곡식’들은 저마다 꿈을 꾸고 있다.
    푸른하늘 아래 고운 싹 틔울 날을…

    우토롱골 아줌마의 독백이다.
    햇님, 물님, 바람님, 구름님, 땅님, 똥님 고맙습니다.

    우토롱골 곶감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다. 모진풍파 이겨내고 저마다 이유있는 이야기로 구구절절 보석이 된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