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 논쟁’에 묻는다
    By 나난
        2010년 01월 16일 01: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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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아무리 조합원이라고 하더라도, 노조간부도 대의원도 아닌 노동자에게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 이야기는 김혜수-유해진 열애설처럼 현실감 떨어지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려오는 걸 보니 과연 선거는 선거인가보다. 그런데 아무리 곱씹어 헤아려 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 이른바 ‘통합후보’ 논쟁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통합후보 논쟁’

    상층의 통합논의야 ‘공식 발표’라는 것이 있을 리 없으니, 내가 접할 수 있는 정보라곤 오직 몇몇 인터넷 언론 기사와 주변 지인의 전언뿐이다. 개요인 즉슨 이렇다. 허영구 후보가 일찌감치 출마를 결정한 가운데 후보등록 마지막 날인 8일 일부 산별연맹 위원장들이 모임을 갖고 ‘통합후보’로 임성규 위원장 출마를 종용했다.

    앞서 이미 불출마 선언을 했던 임 위원장은 끝까지 거부하다가 ‘마지막 10분(임 위원장의 편지에 사용된 표현이다)’을 견디지 못하고 수락했고, 이 와중에 김영훈 후보도 등록하기에 이른다. 결국 마지막으로 자신이 가세하며 3파전 구도가 돼 ‘통합’도 물 건너간 마당에, 불출마선언 번복에 대한 부담에 시달리던 임 위원장이 3일 간의 잠적 끝에 사퇴하고, 뒤이어 4명의 부위원장 후보들도 ‘통합 실패에 따른 임성규 위원장 사퇴’를 개탄하며 줄줄이 사퇴서를 던졌다.

    내가 품은 의문은 세 가지다.

    첫째, 임성규 위원장의 출마를 종용한 일부 산별연맹 위원장들에게 허영구-김영훈 후보는 어떤 존재인가. 김 후보야 ‘깜짝 출마’라고 하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허 후보의 출마는 이미 널리 보도된 바 있었고, 후보등록 서류 역시 가장 먼저 제출했다.(민주노총 선관위에 물어봤다. 전화번호는 02-2670-9200).

    이미 두 명의 후보가 입후보한 가운데 ‘통합후보’를 표방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렇다면 허 후보나 김 후보를 지지하는 조합원들은 ‘통합의 대상’이 아니란 말인가. 그다지도 통합을 목 놓아 외치는 산별대표자들이 나머지 두 후보를 만나 통합논의를 진지하게 나눴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없다. 산별대표자들이 같은 산별대표자가 아니면 말도 섞지 않을 리도 만무할 터인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렇게 민주노총 안에서조차 통합의 대상을 입맛대로 골라잡는 것은 ‘통합’보다는 ‘편 가르기’에 가까운 것 아닌가. 이제 ‘통합’마저 선거 상품화하는 일부 산별연맹 대표자들이 참으로 보기에 민망하다.

    선거 상품화된 ‘통합’ 보기 민망

    둘째, 뒤이어 줄줄이 사퇴한 부위원장 후보들의 태도다. 민주노총 임원으로 출마할 정도면, 그만큼의 포부와 신념이 있어야 할 일이다. 부위원장 출마가 무슨 무도회장에서 웨이터 손에 이끌려 부킹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될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합후보가 무산돼 사퇴한다’니, 이건 또 무슨 해괴한 말인가.

    그런 논리라면 위원장 후보등록이 완료돼 ‘통합후보’가 무산된 것을 확인한 직후에 사퇴를 하든가, 아니면 (이미 다른 위원장 후보가 둘이나 입후보한 상황에서) 아예 등록을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다. 김 후보와 허 후보는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더구나 부위원장 줄사퇴가 불러올 효과를 예상해보자. 어디로 누구 표가 간다는 선거공학이야 그 분야 전문가들에게 들을 일이니 관두자. 사퇴한 부위원장 후보 소속 정파(민주노총 자유게시판에 가면 현장실천연대라는 조직이 홍광표 후보의 사퇴를 결정한 문서를 볼 수 있다. 이 문서가 사실이 아니라면 정정해 주시라)나 사퇴 부위원장 후보의 출마를 조직적으로 결정했다는 해당 산별연맹(공무원노조와 보건의료노조) 소속 대의원의 대의원대회 참석률이 떨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대의원대회 보이콧 주장도 심심찮게 튀어나온다. 본의든 아니든 간에, 자칫 잘못하면 ‘민주노총의 위기’를 이유로 통합을 주창하던 세력들이 ‘민주노총의 위기’를 증폭시킬 대대 무산을 조장한 것으로 몰릴 셈이 됐다. 민주노총 임원 후보로까지 나섰던 사람들에게 일말의 책임감을 기대하는 것은 소녀시대에게 빅마마의 가창력을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무망한 일이란 말인가.

    셋째, 내가 갖는 마지막 의문은 일부 산별연맹 대표자들이 갖고 있는 민주주의와 피선거권에 대한 이해도다. 조직이 위기에 처해있으니 통합을 하자는 주장, 잘못된 말도 아니고 못할 말도 아니다. 그런데 만약 ‘조직이 위기에 처한 이유’를 달리 분석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리고 ‘묻지마 통합’이 위기를 돌파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여긴다면, 이들에겐 통합후보가 위기극복의 대안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선거’는 원래 다양한 의견을 민주적으로 충돌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통합은 다수결로 되는 것이 아니다

    ‘공통점 없는 합의추대’가 공동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사용된 안 좋은 사례도 없지 않다. 그런데도 ‘통합’을 선거용 무기로 삼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려 하는 것은 조직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도대체 누가 그들에게 그만큼의 권리를 줬단 말인가.

    통합노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일부 산별대표자들이 자신들의 통합노력에 설득력과 진정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모든 세력을 대상으로 제기했어야 했으며, ‘통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결과에 대해서도 승복할 줄 알아야 한다. 통합은 말 그대로 ‘폭넓은 합의’가 있을 때 의미 있는 것이지, 다수결로 될 일이 아니다.

    그렇게 통합을 주장한다면, 이번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이명박 정권에 맞서 싸워나가겠다는 입장을 대중적으로 천명하시라. 조합원의 입장에서는 그게 훨씬 더 통합과 투쟁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농자는 당장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러도 다음 농사를 위해 마지막 종자 씨는 남겨둔다고 한다. 다른 것 다 갖다 붙여도 좋으니, 제발 통합만큼은 선거상품으로 내다 팔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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