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바타의 세계에도 계급은 있다
    By mywank
        2010년 01월 13일 09: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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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누구신지? 국가기록전산망에 기록된 13자리짜리 주민등록번호, 본관이 어느 지방인 성씨에 아무개라는 이름, 키 얼마에 몸무게는 또 얼마 등등 그 분류며 기호, 표식들은 당신을 제대로 설명하는지?

    판타지, 아바타 월드!

    해년마다 더해가는 나이 때문에 실제보다 자꾸만 더 어려보이는 신분증에 붙어 있는 사진과 날마다 거울에 비추어보는 모습 사이에 벌어져가는 차이만큼이나 현실 속에서의 자기 존재와 자신이 되고 싶은 이상적인 자기자신 사이에는 자꾸 틈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지?

    이런 존재와 이상 사이의 거리를 고민하고 좁히기 위해 인간은 종교, 철학, 예술, 그리고 과학을 발전시켜 왔다. 과학의 한쪽 극단에서는 유전자를 이리저리 바꾸어 맞춤형 인간으로 그 거리를 좁혀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생명공학이 최첨단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명을 조작하는 것은 여러 모로 위험도 하고, 기존의 생명윤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제대로 실현되기까지는 아직 한참 걸릴 듯하다.

       
      ▲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

    그러나 이제 많은 사람들은 외부에서 부여되고, 호명되고, 규정되어 있는 실제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직접 그려내고, 이름 짓고, 시시때때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자신이 될 수 있다. 어떻게? 우리에게는 이미 테크놀로지의 천국, 온라인의 바다, 충만한 가상이 빈약한 실제를 뒤덮는 버추얼 리얼리티의 세계가 있으니까.

    삼순이라는 이름이 서럽다고 번거롭게 개명신청할 필요 없이 마음에 드는 ID와 닉네임으로 새 세상에 회원가입하고, 비싼 돈 들여 성형할 필요 없이 신체는 부위별로 조립한 다음, 주린 배를 부여잡고 다이어트며 운동으로 살 뺄 필요 없이 몸매며 자세 선택해서 아바타를 만들면 끝. 끈덕지게 ‘인증’ 요구하는 사이트에는 ‘뽀샵’ 적당히 한 사진 올려주면 되고, 오프 모임 좋아하는 카페는 끊어버리면 그만.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이 정도 아바타로 충분히 즐거웠던 사람들에게 영화 <아바타>는 앞으로 ‘아바타’의 세계에도 급이 있고, 빈부격차가 있으며, 그 안에서 존재와 이상의 거리를 또 다시 겪게 되리라고 예고한다. 가상현실의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세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아바타라니!

    영화관의 빈부격차

    그런 아바타를 구경하는 데서부터 급이 나뉜다. 그 격차는 우선 영화관람료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바타>를 보았다고 다 같은 <아바타>를 본 것이 아니다. 상영방식만도 기존 영화와 같은 2D가 먼저 일반과 디지털로 나뉘고,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입체로 볼 수 있는 3D마저도 일반과 아이맥스로 나뉜다.

       
      ▲ 3D 관람용 안경을 착용한 관객들

    물론 이런 상영방식에 따라 요금도 7천원에서 무려 1만6천원까지 층이 지게 된다. 대도시에나 몇 개 들어서 있는 아이맥스 상영관은커녕 디지털 상영관도 드문 지방에 사는 사람도 서럽고, 최고 시설 갖춘 상영관에 가서 누릴 구경값에 영화 두 편보다 비싼 돈을 내기에는 지갑이 얇은 사람도 서러운 일이다. 그래도 인터넷 예매가 가능한 앞으로의 두 주까지도 제일 비싼 3D 상영관은 이미 거의 매진이다.

    그런 격차는 영화 <아바타> 안에서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실마리가 된다. 먼 우주까지 날아가 자원을 얻을 만큼 과학이 발달한 세상에서도 전쟁에 나가 다리를 못쓰게 된 상이군인이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 상이군인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가 어쩌다 운 좋게 아바타를 얻어 새롭게 땅을 딛고,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것은 엄청난 자본이 받쳐주는 실험에 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제이크는 나비족의 아바타가 아니라 그냥 자기 자신인 채로 새 다리를 얻을 수도 있단다.

    그런데 제이크가 겪어보니 실제 인간 세계에서 새 다리를 얻게 되어 봤자 자기 존재가 겨우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그런데 나비족의 아바타로 온전히 실체를 바꾸게 되면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몸은 죽더라도 영혼은 죽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로 완전히 탈바꿈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제이크는 예전 세상으로 돌아가는 대신, 새 세상에서 살기로 마음먹는다.

    그러자니 자신을 보낸 세상과 맞서 싸워야한다. 제이크에게 아바타를 제공해준 자본의 입장에서는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다. 그래서 양쪽이 치열하게 싸우고, 환영을 통해 입체로 구현된 그 싸움을 관객은 구경한다. 구경 중에 최고라는 불구경, 싸움구경을 ‘활동사진’이 아니라 ‘입체적 영상’을 통해 체험하듯 보게 되는 것이다.

    <아바타> 1편 = <전우치> 60편

    그저 배우의 움직임만이 아니라 감정까지 잡아내겠다는 신기술은, 모션 캡처가 아니라 무려 ‘이모우션 캡처’라는 정교한 장비를 통해, 촬영을 마친 다음 후반 작업에서의 컴퓨터 그래픽 작업이 아니라 촬영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배우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지운다.

    수많은 스탭을 이끌고 배경에 걸맞을 만한 지역으로 로케이션을 가거나 공들여 야외세트를 지을 필요도 없이 배우들은 미리 약속된 동선에 맞춰 카메라와 첨단 장비로 둘러싸인 실내 세트 안에서 연기를 펼치기만 하면 나머지는 테크놀로지가 알아서 다 만들어 내준다.

    그러자니 <아바타>에 들어간 제작비가 대략 5억달러, 어림잡아 1백억원짜리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 <전우치> 60 편을 만들 수 있는 액수다. 한국 시장만 놓고 보자면 <전우치>도 <아바타> 절반 정도의 관객을 불러들였으니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에 꽤 쏠쏠한 장사인 것 같다.

    그러나 <아바타>, 제임스 카메론, 헐리우드의 시장은 세계다. 거기다 이미 후속편을 예고하고 있으며, 영화 서사나 그래픽의 성격은 딱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 맞춤이다. 영화 끝나고 나면 디즈니 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 지브리 박물관 못지않은 테마파크로 주구장창 떼돈을 벌 만한 그야말로 ‘원소스 멀티유즈’ 아이템이다. 돈 놓고 돈 먹기랄까.

       
      ▲ 영화 <전우치>의 한 장면

    입체가 아니라 4D라는 게 <아바타>와 다르긴 하지만 마침 <전우치>도 특별한 방식으로 일반 영화보다 비싸게 상영되고 있다. 영화 장면에 따라 때때로 관객의 의자가 흔들린다거나, 앞뒤로 바람이 분다거나, 물도 튄다거나 하는 게 4D 방식이다. 이렇게 보는 것도 무려 1만4천원이나 든다.

    영화 제작기술 발전의 귀결

    이런 식으로 영화는 새로운 장치로 탈바꿈하면서 점점 비싼 오락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감동보다는 재미를, 사유보다는 체험을 앞세운 영화가 대세가 되어갈 것이다. 가뜩이나 다른 대중매체에 비해 비용이며 장비, 시간, 인력이 많이 들어가는 영화는 이미 산업논리에 크게 휘둘려왔다.

    당장 올해 제작을 준비하는 여러 영화들이 부분적으로 3D나 4D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한정된 자본은 몇 편의 대작 위주로 몰릴 것이고, 지금보다 더많은 상영관이 특별상영 시설로 바뀔 것이고, 거기에 들어간 본전을 뽑기 위해 작은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스크린은 더욱더 줄어들 것이다.

    <아바타>를 따라잡으려고 새로 장비 사들이고, 시설 갖추고, 극장 짓는 동안 세계를 주름잡는 영화산업은 그 장치며 기술에 로열티를 붙여 장사에 나설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내용이 아니라 ‘기술과 장치’에 승부를 걸고 나서는 영화들은 <전우치>에서 전우치(강동원)가 분신술로 만들어낸 아바타들이 요괴와 맞서 싸우다 힘이 부치면 픽픽 쓰러져 도로 싸리 빗자루로 되돌아가듯이 맥없이 무너질 것이다.

    이렇게 다른 영화들이 <아바타>의 아바타가 되고자 기를 쓰는 동안 원조 <아바타>는 영화장치의 기준을 또다시 바꾸어 버리려 할 것이다. 아바타라는 말이 원래의 종교적 의미보다 사이버 테크놀로지의 용어로 더 많이 쓰이고 있듯이.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들은 아바타를 멋지게 꾸미는데 몇 번의 클릭 말고도 너무 많은 사이버 머니를 요구하는 인터넷 사이트보다는 무료 제공 아이템으로도 버틸 수 있는 사이트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심지어 아바타 관리 자체가 싫증나고 귀찮아서 내던져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영화가 이런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줄 수 있기를. 책 한 권 값보다 영화관람료가 턱없이 비싼 세상이 너무 빨리 일반화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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