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금먹는 하마 '민자의 전성시대'
    자본 수익성 세금으로 '완전 보장'
        2010년 01월 11일 02: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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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 정부가 추구하는 국정운용의 방향은 ‘작은 정부’이다. 그렇다고 모든 분야에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서민을 위한 사회 지출은 줄이지만, 대신 연구개발(R&D) 지출, 토목건설사업 등 민간자본을 위한 재정활동은 늘려 나간다.

    민간투자사업, 재정효율성인가 세금먹는 하마인가?

    문제는 돈이다. 감세를 통해 국가재정 수입을 줄여 놓은 탓에 민간자본을 돕고 싶어도 재정 여력이 충분치 않다. 좋은 묘안이 없을까? 그래서 등장한 것인 민간투자사업이다.

    민간투자사업은 애초 국가재정이 책임지던 철도, 항만, 도로, 학교, 복지시설 등 사회기반시설의 건설과 운영을 민간자본에게 맡기는 것이다. 정부는 초기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건설비 부담에서 벗어나고, 민간자본의 이윤 활동을 지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민간자본에게 과도한 특혜가 지급되고 있다. 이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 거세지자 작년 7월 감사원조차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착수한 상태이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재정지출의 효과 극대화를 위해 민간투자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한다.("2009~201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안") 이제 국가재정을 논의하는 데 민간투자사업은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되었다. 과연 이것이 국가재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인지, 세금 먹는 하마를 키우는 것인지 꼼꼼히 살펴보자.

    민간투자사업의 두가지 방식: 수익형(BTO), 임대형(BTL)

    민간투자사업은 크게 수익형(BTO)과 임대형(BTL)으로 나누어진다. 수익형은 민간자본이 시설을 건설하고(Build), 이것의 소유권을 국가에 이전하되(Transfer), 일정 기간 자신이 직접 운영(Operate)해 시설투자비를 회수하는 제도이다.

    임대형 사업은 민간자본이 시설을 건설하고(Build) 국가로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은(Transfer) 수익형과 동일하나, 자신의 운영권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게 빌려 주고(Lease) 임대료 형식으로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수익형 인천공항고속도로 민자사업은 직접 이용자에게 통행료를 거두고, 올해 개관할 예정인 임대형 창원 청소년과학체험관 민간사업은 개별 방문객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임대료를 전액 받는다. 일반적으로 수익형은 이용자의 사용료로 원리금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철도,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에, 임대형은 사용료로 회수가 어려운 학교, 복지 등 사회서비스 시설에 주로 적용된다.

    1994년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자본유치촉진법’이 제정될 때는 수익형만 가능했으나,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초·중등학교, 하수관, 의료, 군숙소, 기숙사, 문화시설시설 등 사회서비스 시설에 대해서도 민간투자가 가능하도록 임대형 사업이 추가되었고 법명도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으로 변경되었다.

    사회서비스 시설은 도로, 항만 등 일반 사회간접자본에 비해 사회복지 성격이 강해 수익성을 따지는 민간자본이 투자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는데, 정부가 임대 방식으로 수익을 보장해 줌에 따라 민간투자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민간사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임대형 사업은 미리 임대료 총액이 정해지기에 투자 위험이 없지만, 수익형 사업에선 이용자의 수요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기 때문에 투자 위험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최소운영수입 보장제((MRG: Minimum Revenue Guarantee)’이다.

    이 제도는 민간투자사업이 운영과정에서 사업협약에 명시된 예측수요에 이르지 못해 수입 부족이 발생할 경우 정부가 미리 정해진 기준(보통 예상수입의 80~90%)만큼 민간투자자에게 운영수입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신규학교 건설의 85%가 민간자본

    민간투자사업은 1994년 도입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민간투자 집행액은 정부의 SOC 재정투자 규모와 비교해 2003년 5.6%에 불과했지만 2008년 18.1%에 이른다. 특히 현재 신규 수도권 고속도로망의 약 40%가 수익형 민간투자로 추진 중이고, 2008년 신규학교시설의 85%, 하수관거의 41%가 임대형 민간투자로 건설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공공재정이 담당하던 사회기반 시설마저 점점 민간자본의 몫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표 1>을 보면 체결된 사업협약 규모가 2009년 6월 기준 67조원에 달한다. 단지 2009년은 경제위기 영향으로 새로운 협약 체결이 저조한 편이다. 이명박 정부가 민간투자사업 활성화를 위해 전면에 나서는 이유이다.

       
      

    임대형사업, 향후 20년간 임대료 28조원

    정부는 민간자본이 공공부문에 투입되면 효율성이 증진되고, 국가재정 부담도 줄어든다고 주장한다(조봉환 2008).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정부의 입장에선 자신의 임기 기간에 초기 건설비 지출을 줄일 수 있겠지만, 국민의 입장에선 민간자본에게 특혜 수익을 제공하기 위해 비싼 이용료나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임대형 민간사업자는 임대료 형식으로 투자수익(5년 만기 국채수익률 + ∝)를 정부로부터 보장받는다. 아무런 투자 위험 없이 국채수익률에 가산율이 더 붙은 수익을 얻고, 더불어 건설과정에서 가격 담합과 하도급 차액을 통해 막대한 추가 이익을 거둘 수 있다.

    국회예산처 분석에 의하면, 2009년 5월 현재까지 실시협약이 체결된 임대형 사업에서만 정부가 향후 20년간 총 28조원을 민간자본에게 지급해야 한다. 2013년 이후 매년 1조 4천억원 이상의 세금이 민간사업자에게 임대료로 나가는 것이다.

    수익형사업의 특혜, 최소운영수입보장제

    수익형 사업에서 세금 낭비는 ‘최소운영수입 보장제(MRG)’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제도는 1999년 외환위기 이후 어려워진 건설회사를 살리기 위해 도입되었는데, 자본의 투자 위험을 정부가 부담하는 특혜 조치이며 예측 수요 부풀리기 논란을 낳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수익형 사업을 보면, 실제 수입이 예측수입에 비해 턱없이 낮다. 그만큼 민간자본이 국고보조금 더 받아 내기 위해 예측수요를 과대 계상했다는 의혹이 커진다. <표 2>에서 보듯이 인천공항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등 대부분 민자고속도로 사업의 경우 실제 운영수입이 예측 운영수입의 절반을 조금 넘고 있고, 이에 정부는 약속한 최소수입 보장율에 따라 매년 수백억원씩 지원하고 있다.

       
      

    민간투자사업 중 최악의 사례로 꼽히는 것이 인천공항철도이다. 인천공항철도는 2001년에 수익형 사업으로 협약이 체결되었는데, 정부가 30년 운영기간 동안 예측수요의 90%까지 수입을 보장해주는 사업이다. 그런데 인천공항철도가 운행을 시작한 2007년 이래 승객수가 예측 수요의 7% 내외에 불과해 정부는 2007년 1,040억원, 2008년 1,666억원을 지급했다. 결국 정부는 작년 말 인천공항철도를 한국철도공사가 인수하는 ‘민자계약 해지’ 조치를 취해야 했다.

    작년에 선보인 지하철 9호선도 눈여겨볼 민간투자사업이다. 9호선은 시설은 현대적이지만 요금은 다른 지하철과 동일하다. 과연 민간투자사업의 성과일까?

    애초 지하철 9호선 민간투자사업자는 서울시에 1,582원의 구간 요금을 요구했다. 실시협약서에 민간투자자에게 보장된 실질수익률(8.9%)을 달성하기 위한 요금 수준이란다. 하지만 다른 지하철과 동일하게 900원으로 정해졌다. 이 사업의 최소운영수입보장율은 90%이다. 요금 차이만큼 막대한 보조금이 민간투자자에게 지급될 것이다.

    며칠 전 <연합뉴스>에서 서울시 모 자치구 의장의 신년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지난해 성과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의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지하철 9호선 기본요금을 900원으로 책정되도록 한 것이 가장 자랑스러운 성과"라고.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수를 쳐야할지 울어야 할지.

    최소운영수입 보장제 폐지 대신 다른 특혜 제공

    최소운영수입 보장제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작년 10월 기획재정부는 최소운영수입 보장제를 완전 폐지했다. 더 이상 이 제도를 유지하기엔 여론의 비판이 너무 거센 탓이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이후 민간투자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무엇을 믿고 이러는 것일까? 역시 이명박 정부다웠다. 최소운영수입 보장제를 폐지하는 대신 유사한 특혜제도를 다음과 같이 신설했다(기획재정부,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제2차 민자사업 활성화방안 마련” 2009.8.12).

    첫째, 민간투자 사업자에게 투입원가 회수를 보장했다. 최소운영수입 보장제만큼 강력하진 않지만 최소한 국채 수준의 기본수익률은 어떠한 경우든 보장해주기로 했다. 지원 방식 기준이 예측수요 대신 기본수익률도 바뀌었을 뿐 여전히 변형된 형태의 정부보조금 제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둘째, 본사업의 수익성을 보완하기 위해 부대사업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기로 했다. 민간투자사업 대상은 사회서비스 시설이어서 주변에 관광숙박시설, 대규모점포·도매배송업단지, 택지개발 등의 부대사업이 발생한다. 지금은 여기서 생기는 추가 이익을 정부와 민간자본이 절반씩 나눠 가지는데 앞으로는 민간사업자가 더 챙겨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민간투자사업 진행 중 외부투자(타인자본) 조달구조 변경으로 발생하는 이익도 모두 민간사업자가 취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시장금리 변화로 민간사업자가 외부자금을 현행보다 더 낮은 금리로 조달할 경우 발생하는 이자 차이 이익을 모두 민간사업자 몫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정부와 민간자본이 반반씩 이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민간자본 귀책으로 인한 계약 해지 시 건설비 지급보상금 상향, 민간사업자 자금조달 지원 및 세제 혜택 등 이명박 정부의 세심한 배려(?)가 더 있다. 이제 민간사업자들은 사회기반시설 본사업에서 기본수익을 얻으면서 초과이윤이 생기는 부대사업에 더 몰입할 것이며, 자신의 귀책사유로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도 상당한 원금을 보상받는 안전판을 얻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향후 민간투자사업 활성화를 자신있게 말할 만하다.(과연 개혁언론은 최소운영수입 보장제 폐지를 어떻게 보도했을까? 한겨레신문 2009년 11월 8일자 “민자사업 적자 국고보전 안한다”를 참고하기 바란다).

    민간투자사업의 세 가지 특징

    민간투자사업은 우리나라에서 김영삼 정부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등 정권을 가리지 않고 내내 늘어나고 있다. 권력이 점차 시장으로 이동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민간투자사업이 지니는 세 가지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민간투자사업은 ‘공공부문 민영화’의 21세기 형태이다. 국제적으로 보면, 지분 매각방식의 전통적 민영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이제는 공민합작투자(PPP: Public Private Partnership)라는 이름으로 소유는 정부가 지니되 건설과 운영을 민간자본이 장악하는 세련된 방식의 민영화가 확장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민간투자사업 역시 이러한 시장만능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둘째, 민간투자사업은 정부의 초기 건설비 부담을 줄여주지만 중장기적으로 정부의 부담을 오히려 증대시킨다. 정부가 직접 재원을 조달해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고 운영할 경우 소요되는 비용은 국채 이자 수준이지만, 민간투자사업에서는 ‘국채 수익률 + ∝’를 제공해야 하기에 국가재정 부담은 더 커진다.

    셋째,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수익은 항상 위험을 수반하기 마련인데, 민간투자사업에서 이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민간투자사업자는 수익형사업에서 최소운영수입 혹은 변형 지원제도로, 임대형사업에선 사전에 정해진 임대료로 협약수익률을 보장받아 투자 위험에서 자유롭다.

    정부가 민간투자사업은 민간의 창의력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굳이 꼽으라면 예측수요를 부풀리는 창의력, 건설과정에서 비용 차익을 늘리는 창의력뿐이다.

    대안을 찾아서

    민간투자사업은 집권세력에게 참 매력적인 것이다. 자신의 임기 동안에 초기 건설재정 부담을 피하면서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이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높은 이용료를 내거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진보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수익성이 아니라 사회공공성 가치를 다루는 학교, 주거, 교통 등 사회기반시설의 건설과 운영은 공적 주체가 책임지는 게 정도다. 향후 민간투자사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이미 시작된 민간투자사업은 국가재정 낭비가 큰 사업의 순으로 계약을 해지해 정부가 직접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인천공항철도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전환프로그램의 시작이어야 한다.

    둘째, 지금 당장 정부예산으로 건설 재원을 모두 마련하기 어렵다면, 민간투자방식보다는 국채를 활용하는 것이 옳다. 이는 민간투자자에게 국채수익률을 넘는 ‘+∝’를 제공하지 않기에 중장기적으로 국가재정을 절감하는 길이다. (최근 ‘국가채무 논란’이 불거져 있지만 필요한 국채는 발행해야 하고, 동시에 재정건전성의 근본 원인이 과다 지출이 아니라 작은 직접세 수입에 있다는 점을 공론화해야 한다)

    셋째, 향후 사회기반시설 건설에 국민연금기금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임대형 사업은 정부가 기본 수익을 보장하므로 국민연금기금에게 공공성, 안정성, 적정수익성을 동시에 제공한다. 국민연금기금이 참여할 경우, 사회기반시설의 선정, 건설, 운영하는 과정에 지역사회, 연금가입자, 연금공단 등이 주체가 되는 민주적 공공부문 지배구조 모델도 만들어질 수 있다. 필요하다면, ‘사회기반시설에대한연기금투자법'(가칭)을 제정하여 국민연금기금의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위한 법적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

    넷째, 정부가 민간투자사업에서 내세우는 ‘공공부문의 비효율성, 민간부문의 창의성’ 이데올로기에 근본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공공부문 혁신운동’이 시급하다. 진보운동이 아무리 민간자본의 특혜를 지적하더라도 국민들이 공공부문을 신뢰하지 않는 한 큰 힘을 가지기 어렵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초동주체가 되어 ‘공공부문 관료성 타파’ 운동을 벌여야 한다. 이는 최근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공공부문 노동운동을 목죄는 이명박정부의 공세에 대항하는 진지를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다음호에서 “국가재정과 지방재정의 관계”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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