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지 마라, 겁내지 마라, 구걸 마라"
    세계 뒤흔든 신증플루, 세계적 거짓말?
        2010년 01월 10일 05:23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저는 솔제니친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쓴 <수용소 군도>에서 읽어낸 아주 좋은 표현은 자주 생각납니다. "믿지 마라, 겁내지 마라, 구걸하지 마라" (Не верь, не бойся, не проси)라는 표현은데, 이는 솔제니친이 경험한 스탈린 시대 수용소에서의 ‘생존의 제1법칙’이었습니다.

    솔제니친의 생존법칙

    그 법칙의 장점은 그 실용성에 있습니다. 그 무슨 형이상학적 도덕률에 기반한 것은 아니고,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 즉 총을 든 간수와 굶주린 정치범 사이의 ‘생존의 게임’에서 터득됐다는 것이죠. "믿지 마라"는 것은, ‘비대칭적 권력 관계’에 있어서는 전능한 권력자가 그 통치 대상물에게 ‘진실’을 말할 리가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됐다는 것이죠.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거짓말’의 발화자에 대한 청자의 제재가 가능해야 당연시되지만, 총을 든 간수에게 정치범은 무슨 제재를 가하겠어요? 그러기에 간수가 정치범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할 리가 없다는 것이죠. 만약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해 계획 목표 초과 달성되면 보다 나은 숙소로 옮겨주겠다"는 언질을 준다면, 일반 거짓말일 가능성이 99%라고 전제해 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겁내지 마라"는 것은, 겁을 내는 것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반대쪽의 횡포가 태심해질 것이라는 경험률에서 온 것이고, "구걸하지 마라"는 것은 총을 든 이들에게 ‘자비심’이란 아주 없다는 걸 그 전제로 합니다. 이미 100명을 죽게끔 혹사시킨 이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살리겠습니까? 그들에게 자비심 따위가 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개명한 천지에 왜 암흑의 수용소 세계의 생존 법칙을 이야기하느냐 항의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 세계는 구조적으로 수용소 군도와 아주 흡사해보이기 때문이죠.

    힘의 비대칭성과 압도적 권력

    이 세계의 ‘관리자’들이 갖고 있는 ‘힘’과 관리 대상자인 저 같은 사람들이 갖고 잇는 ‘힘’의 비대칭성은, 어쩌면 간수와 정치범 사이의 ‘힘의 비대칭성’과 질적으로 같을 것입니다. 물론 간수가 갖고 있는 힘은 절대적 생사여탈권이라면, 이 세상의 관리자들의 힘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입니다.

    코펜하겐에서 ‘천하의 제후’들이 회동했을 때에 그 ‘회동의 궁전’ 앞에서 "시끄럽게 한" 각국 백성 수천 명을 그냥 붙잡아서 영장 따위도 없이 하루 정도 가두어버리는, 이 정도의 힘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범죄 사실 등과 무관하게, 경찰의 눈에 "지나치게 시끄럽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하루 동안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할 수 있습니다.

    제가 미국 관료들을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옐로우스톤 공원의 나무나 컬럼비아대학에 있는 동료를 보러 간다 해도, 미 국무성의 익명의 관료는 그 어떤 이유 제시도 없이 제 여행 계획을 당장에 무산시킬 만큼의 권력을 가집니다.

    거의 80%의 독일인들이 아프간에 가 있는 독일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독일 국방부는 끄덕도 안하죠. 군대의 행방을 ‘여론’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무소불위의 국민국가와 자본이 다스리는 세계에서는 ‘다수의 국민’도 이 정도 힘이 없다면 혼자 몸의 한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간수와 정치범 사이의 관계를 방불케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제게 특히 귀중한 것은 솔제니친의 제1칙입니다. "믿지 마라". 저는 그 법칙대로 한국이나 노르웨이 ‘주류’ 신문들을 읽을 때에 일단 이게 소련 말기의 <프라우다>지와 흡사하다고 전제를 하고 봅니다. 사실은 대체로 맞지만 해석이 지배자들의 이해관계에 맞추어지거나 사실 자체도 온전하게 반영되지 않았다고 일단 전제를 하고 읽습니다.

    신종플루 대유행과 제약업체의 이권

    그리고 여태까지 그렇게 해서 손해를 본 적은 없어요. 한 실례를 들겠습니다. 몇 개월 전부터 노르웨이 신문들이 ‘신종플루 유행’을 대서특필하여 마치 전인류를 위협하는 새로운 페스트인 것처럼 보도하면서 "국민 모두 일제히 예방 주사를 맞기"를 소리 높여 촉구한 결과, 현재로서 노르웨이 총인구의 한 절반 정도 예방 접종을 했다고 합니다. 참 말 잘 듣는 백성인 셈이죠. 그만큼의 주사를 준비할 힘을 갖고 있는 국가도 ‘강성 국가’임에 틀림없고요.

    저는 일단 접종 백신을 제조하는 업체쪽의 로비 등이 주효하여 침소봉대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접종을 맞을 생각도 없이 그냥 가만히 지냈어요. 그런데 어제 노르웨이 보수 일간지 <아프텐보스텐>지를 다시 보니 역시 제 생각대로이었군요.

    이제 보니 세계보건기구는 아마도 대형 약품 업체의 로비 때문에 경고의 수준을 지나치게 상향 조정한 것이고, 실제로 이렇게 ‘강매’한 백신은 많은 나라에서 하도 과도하게 구매됬기에 그 잉여분의 처치가 곤란하다 합니다. 사실, 이와 같은 내용을 다른 노르웨이 매체들도 지금 다루고 있어요 (예컨대 여기: http://www.vg.no/helse/svineinfluensa/artikkel.php?artid=592992)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죠. 지난 해에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신종플루로 죽은 사람들이 200여 명이었다면, 예년 같으면 일반 독감 등으로 죽는 이들은 2000~6000명에 달하거든요. 즉, 사망건의 통계를 보는 등 기초적 조사만 해도 ‘세계적 대유행’ 이야기가 얼마나 우스운지 다 알 수가 있었어요.

    그리고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사가 제조하는 백신의 내용을 분석해 거기에서 thiomersal 등 수은을 기반으로 하는 일부 성분을 봐도, 병보다 그 약이 더 위험하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그러면 GlaxoSmithKline사나 노바티스(Novartis)사를 대단히 이롭게 한 – 사실상 무에서 하나의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낸 – 세계적인 패닉, 신문과 텔레비전의 공포에 질린 어조에 왜 이렇게도 많은 멀쩡한 이들은 넘어갔을까요? 이건 단순히 ‘정보 접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 세계 관리자들에게 ‘선심’은 없다

    인터넷 시대에는 각종 질병으로 인한 사망사고 통계를 약 5분만에 따내 대조, 비교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건 ‘태도’의 문제입니다. 대다수의 세계인들은 매체에 대해서는 ‘아무리 과장을 해도 과연 생거짓말까진 하겠나’ 싶어 대체로 저들이 전하는 내용을 믿는 것이고, GlaxoSmithKline사나 Novartis사가 수익을 아닌 ‘다수의 건강’을 위해서 영업하는 줄을 믿는 모양입니다.

    즉, 이 세계 ‘관리자’들의 ‘선심’을 믿는 셈이죠. 바로 이 부분을 ‘솔제니친의 법칙’은 가장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저들이 정말로 ‘선심’이 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걸로 봐서는 예전에 있었을지도 모를 선심도 이미 포기했을 것입니다.

    진실로 판명되기 전까지는 권력자들이 하는 말은 아마도 거짓말이라고 전제하면서 살면, 일면으로는 편합니다. 온갖 ‘월드컵 열풍’이니 ‘노풍’이니 ‘신종플루 패닉’이니 집단 광기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일면으로는 이게 좀 외로운 생활 태도이기도 합니다. 한데, 내면의 외로움이야말로 진실에 제일 근접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