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한파 & 경찰 "험난한 용산 길"
    2010년 01월 09일 06: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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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일 만에 용산으로 돌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굵은 눈발이 휘날렸고,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으며, 1년 여 전 남일당 건물에 철거민들을 몰아넣었던 경찰들은, 이번에 고인들의 남일당 가는 길을 막아섰다. 긴 운구행렬과 경찰은 곳곳에서 충돌했으며, 신용산역 인근에서는 경찰이 운구차를 막아서, 30여분 간 도로 한 복판에 갇혀 있기도 했다.

서울역에서 용산역까지 2시간 넘어

결국 운구행렬이 서울역에서 신용산역까지의 이동하는 시간은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날 경찰은 교통 통제보다 운구행렬을 통제하는데 더 신경을 쓰는 듯했고, 맞은 편에 전투경찰을 배치해 운구차를 쫒아오면서 위협적인 분위기도 조성했다. 이에 운구행렬에 참여한 시민들은 경찰에게 "뒤로 조금만 물러서라", "장례식장까지 와서 훼방놓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운구차 행렬과 교통통제를 하는 ‘무장’경찰(사진=손기영 기자)
   
  ▲유가족들과 범대위 관계자들이 노제를 지켜보고 있다.(사진=손기영 기자)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용산참사 희생자 장례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경찰은 영결식 때부터 택시 승강장까지 허락된 기존의 약속을 뒤집고 인도 위에서만 영결식을 진행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운구행렬이 이동하는데도 경찰은 편도차선도 못내주겠다며 가로 막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간신히 운구행렬이 도착하자 5시 30분 경부터 금속노조 기륭전자 김소현 분회장의 사회로 노제가 시작되었다. 노제는 민중가요 가수들의 추모곡과 송경동 시인의 추모시, 용산 유가족들과 함께 해온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문정현 신부의 조사와 유가족들의 인사말로 진행된 뒤 6시 20분, 고인들이 묻히는 마석 모란공원으로 이동했다.

제2의 참사를 막기 위해 싸움은 멈추지 말자

문정현 신부는 "용산참사는 세입자들과 철거민, 민중들을 향한 중대한 도전이었다"며 "하지만 유가족들과 그들과 함께 하는 여러분들이 막아내고 있으며, 우리는 절대로 이 도전에 무릎을 꿇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문 신부는 이어 "이제 또 다른 용산참사를 막기 위해 재벌과 권력의 이권이 얽혀있는 재개발을 막아내야 한다"며 "우리의 싸움이 끝나지 않도록 지금의 뉴타운 개발을 끝장내자"고 말했다.

연단에 오른 유족들은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고 이상림 씨 부인 전재숙 씨는 "지난 1년 간 싸워왔는데 경찰은 또 한 번 우리 앞을 막아섰다"며 "하지만 너무나도 고마운 많은 분들 덕분에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그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앞으로도 싸워나갈 것"을 다짐했다.

고 양회성 씨의 부인 김영덕 씨는 "나이 어린 전경들에게 밟혀가면서도 우리 곁을 지켜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해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제 집에 돌아가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고 윤용헌 씨의 부인 유영숙 씨는 "많은 분들이 보여준 사랑의 뜻을 잊지 않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점점 굵어지는 눈발 속에 참석자들의 머리와 어깨는 하얗게 변해갔고, 해가 지자 찬 바람은 더욱 매섭게 몰아쳤다. 지난 1년, 싸늘한 시신으로 용산 현장을 떠난 고인들이 돌아오는 길은 이토록 험난했다. 이날 노제는 노래패 꽃다지의 공연으로 막을 내렸으며, 유가족들과 장례위원회 관계자들은 버스 10여대를 나눠타고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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