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 진상을 밝혀달라" 유족 절규
    355일만의 장례식, 서울역광장 엄수
    By mywank
        2010년 01월 09일 03: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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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참사 355일 만에 철거민들의 영결식이 9일 낮 12시 서울역광장에서 거행됐다. 고 이상림, 이성수, 윤용헌, 양회성, 한대성 씨 등 5명의 ‘용산 열사’들은 이명박 정권의 폭력성과 비정함을 세상에 알린 채, 마지막 이별을 고했다. 1년 가까운 투쟁으로 지칠 대로 지친 유가족들은 이날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날 오전 9시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발인식이 진행된 뒤, 운구행렬은 장충단공원, 퇴계로 등을 거쳐 오전 11시 55분경 서울역광장에 도착했다. 추모인파가 광장을 가득 메운 채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비통함과 슬픔에 벌써부터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고인들의 영정을 앞세우고 운구행렬이 서울역광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영결식이 열린 서울역광장을 가득 메운 추모인파 (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영결식에는 야4당 대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시민 등 각계각층의 5천여 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지만, 정부와 한나라당 측 인사들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또 수배 중인 박래군, 이종회 용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과 남경남 전철연 의장은 이날 경찰의 봉쇄로 끝내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용산 수배자’들은 이날 오전 발인식 이후 명동성당을 찾은 유가족들에게 “이명박 정권에 맞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다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장례가 끝이 아니다. 앞으로 함께 싸워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반드시 하겠다”고 밝혔다고 영결식 사회를 맡은 김태연 ‘용산 장례위’ 상임집행위원장이 전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용산참사 진상규명’, ‘살인개발 중단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영결식이 투쟁의 끝이 아님을 알렸다. 유가족들 역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수사기록 공개, 구속자․수배자 문제 해결을 위해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영결식에 참석한 용산참사 유가족들 (사진-=손기영 기자)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고 이상림씨의 아들 충연 씨(왼쪽). (사진=손기영 기자)

    고 이상림 씨의 부인 전재숙 씨는 ‘유가족 인사’에서 “막상 돌아가신 분들을 땅에 묻으려니까 갖가지 회한이 밀려온다”며 “비록 오늘 고인들의 육신은 땅에 묻겠지만 그 명예는 언제 회복될 수 있을지, 그리고 열 손가락을 깨물어도 안 아플 아들은 언제 나올지 모르는 감옥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 ‘어미’의 마음은 어떻겠느냐”며 오열했다.

    그는 “지금 고인들을 땅에 묻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가슴에 묻는 것”이라며 “여러분들께 당부 드린다. 돌아가신 분들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진실을 밝혀 달라. 아들과 구속자들이 무죄로 나올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달라. 다시는 힘없는 철거민들이 망루에 오르지 않는 세상을 만들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열사약력 소개 및 용산투쟁 경과 보고가 진행된 뒤, 각계 인사들의 조사가 이어졌다. 이강실 상임장례위원장(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은 “이제 고인들을 대신해 우리들이 망루를 세워야 한다. 다시는 용산참사가 발생되지 않도록 민주주의와 인권의 망루를 만들자.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심장깊이 열사들을 품고 망루에 오르자”고 말했다.

       
      ▲김미선 씨의 진혼무 (사진=손기영 기자) 
       
      ▲사진=손기영 기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지난 밤 주먹이 떨려 잠을 못 잤다. 정권의 마루에 앉아있는 이명박이 이 자리에 와서 ‘사람을 많이 죽였다. 사죄한다’며 큰 절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니냐. 그러지 못한 것은 열사들을 또 한 번 죽이는 것”이라며 “제 마음에는 열사들을 묻겠지만, 삽질은 못하겠다. 삽질을 해서 묻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이명박”이라고 규탄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오늘도 우리는 ‘장례 투쟁’을 하고 있다. 이분들이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나서 ‘장례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죽었다고 영원히 죽은 것이 아니다”며 “오늘 마석(모란공원)에 있는 동지들이 5분의 새로운 동지가 온다고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을 등져도 이 분들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야4당 대표들의 조사도 이어졌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소망마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 마지막 가는 날까지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하지만 이제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당신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시작이다. 당신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일들을 분명히 밝히겠다”고 밝혔다.

       
      ▲영결식의 마지막 순서로 참석자들이 고인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임들께서는 따뜻한 아버지였으며, 가난했지만 가족의 행복을 위해 소박하게 살아가는 이 땅의 서민이었다”며 “천인공노할 만행을 1년이 다되도록 밝히지 못한 정치권, 야당 무능함을 용서하소서. 울부짖는 가족들의 원한을 남은 자들이 이루겠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을 위해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송영오 창조한국당 대표는 “참혹한 죽음으로 망루에서 내려온 영령들에게 어떠한 말을 조사로 대신하겠느냐”며 “이명박 정권은 용산참사 이후 사죄와 책임자 처벌은커녕 죽음의 위기를 넘긴 분들에게 책임을 떠넘겨 감옥으로 보냈다. 다시는 용산참사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영령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고라면 이렇게 억울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가 고인들께 말씀드린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하지만 언제까지 죄송해 있지는 않겠다. 고인들이 남긴 가족과 벗들과 함께 철거민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약자들이 힘을 갖는 세상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민중가수 안치환 씨와 박준 씨는 조가를, 김정환 시인은 ‘서울특별시 용산 4지구, 남일당, 355일, 쉿쉿 바람소리’라는 조시를 고인들에게 바쳤다. 이날 영결식은 참석자들이 무대에 마련된 고인들의 영정에 헌화하는 것을 끝으로 오후 2시 35분경 마무리 되었으며, 이어서 용산참사 현장에서 노제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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