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낮은 곳에서 흘리는 부활의 눈물
        2010년 01월 09일 12: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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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4가 철거민 참사 현장 / 점거해 들어온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 / 생각해보니 작년엔 가리봉동 기륭전자 앞 / 노상 컨테이너에서 무단으로 살았다 / 구로역 CC카메라탑을 점거하고 / 광장에서 불법 텐트 생활을 하기도 했다 / 국회의사당을 두 번이나 점거해 / 퇴거 불응으로 끌려나오기도 했다 / 전엔 대추리 빈집을 털어 살기도 했지 // 허가받을 수 없는 인생 // 그런 내 삶처럼 / 내 시도 영영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 이 세상 전체가 / 무허가였으면 좋겠다(「무허가」 전문)

       
      ▲ 시집 표지

    송경동.
    사람들은 그를 거리의 시인, 현장의 시인, 운동권 시인이라 부른다. 평택 대추리에서, 기륭전자 공장에서, 용산참사 현장에서 내내 살다시피 하며 시를 쓰고 낭독하며 살아온 까닭이다.

    오늘 355일만에 치러지는 용산 범국민장에서도 그는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을 죽임으로 밀어넣은 탐욕의 사회, 야만의 사회를 향해 피울음을 뿜어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는 떠나간 넋들과 새 세상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희망과 연대와 사랑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우연히 오게 되었지만…… 이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라고 말한다.

    송경동의 두 번째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 7천원)이 출간되었다. 『꿀잠』 이후 3년 만이다. 그의 시는 배관공으로, 목수로, 용접공으로 살아온 그가 노동 현장의 감각을 생생하게 그려낼 때 특히 빛난다.

    “2인치 대못머리는 두 번에 박아야 하고 / 3인치 대못머리는 네 번엔 박아야 / 답이 나오는 생활”(「목수일 하면서는 즐거웠다」 중에서 ) 같은 구절은 노동으로 단련된 이만이 쓸 수 있는 표현일 것이다.

    시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노동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서,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외로움을 이겨내려고 시를 쓴다”고 말한 바 있다. 외롭기 때문에, 두렵기 때문에 시를 쓰고 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현장에 있었다. 그렇기에 경찰서에 들락거릴 일도 많았다. 시집의 처음을 장식한 <혜화경찰서에서>는 그가 조사를 받으러 갔던 경찰서의 풍경을 담았다. 도로교통법 위반 때문에 잡혀온 그에게 경찰은 일년치 휴대폰 통화내역을 뽑아놓고 “알아서 불어라”라고 말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그는 이어 인간 송경동을 “캐려면” 얼마치의 휴대폰 통화기록을 들이밀거나 협박하거나 강제해서 될 일이 아니라며, 구체적으로 그를 알아내는 방법까지 일러준다. 그 방법에 가슴 한 켠이 시큰해진다.

    “내 과거를 캐려면 /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채증해놓고 얘기해야지 / 저 새들의 울음 /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 이게 뭐냐고”

    그의 시는 현실의 폭력에 저항하는 뜨거운 직설로 읽는 우리를 일깨우고 떨리게 하고 고개 돌릴 수 없게 하는 힘을 지닌다. 그의 시가 작금의 현실에서 더 아프고 감동적인 것은 자본과 권력에 부당하게 부서지고 깨지면서도 패배주의에 젖지 않고 힘없는 자들과 함께 부활의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 * *

    저자 소개 – 송경동

    1967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났다. 2001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시집 『꿀잠』을 펴낸 바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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