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하다 죽지 않기'가 소원될 순 없죠"
        2010년 01월 08일 09: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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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2010년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뭐예요?”
    “당연히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정규직화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일하는 최 훈 조합원의 답장이 씩씩하다. 당연히 정규직으로 채용했어야 할 자리에 비정규직을 사용해 노예로 부려먹었으니, 새해 소망은 당연히 ‘정규직화’이고, 더 나아가 비정규직이라는 ‘몹쓸 일자리’를 없애는 ‘비정규직 철폐’다.

    비정규직의 새해 소망

    2005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가 공장에서 쫓겨난 지 6년차가 된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이 보내온 문자도 여전히 씩씩하다.

    “당근 정규직으로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과 파견법 문제 공론화해서 폐기투쟁에 나서는 것이죠.”

    기륭전자 회사는 여전히 끄떡도 하지 않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소망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못된 법’을 없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너무 당연한 요구고, 새해 바람이다. 하지만 현실의 높은 벽을 절감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꿈이 아주 소박해져버렸다.

    “전원 복직하고 원청회사에 노조활동을 인정받는 거죠.” GM대우차 부평공장 비정규직 신현창
    “비정규직 노조만이라도 조직률이 70% 되는 것”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박정훈
    “열심히 일하고 차별받지 않는 한 해가 되는 것”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 김진용
    “현대차 1사1조직”(현대차 정규직노조에 비정규직이 가입하는 것) 현대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조봉환

    언제 짤릴 지 모르는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 신세가 아니라 정규직으로 안정된 일자리에서 일하는 꿈이 아니라, 비정규직 자리라도 좋으니 복직해서 일하고, 헌법이 보장한 노조활동을 인정받는 것이 새해 소망이 됐다.



    정규직과의 차별을 없애는 것은 이후의 과제라 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 노조에 가입해 해고나 불이익을 당할 때 함께 해달라는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밀어달라는 소망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망이 소박해진 것은 현실의 높은 벽이 첫 번째 원인이기도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의 손’을 힘 있게 내밀어주지 않았던 탓도 크다.

    2005년 노동부가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던 1만명의 노동자들에게 불법파견 판정, 즉 당연히 정규직으로 채용했어야 할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채용했다는 결정을 내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열심히 싸웠지만 정규직의 연대는 미약했고, 그렇게 5년이 지나버렸다.

    2008년 가을 경제위기 이후 GM대우 부평공장에서 일하던 1천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짤려나갔고, 현대차에서도 600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공장을 떠났다. 기아차 모닝을 만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포스코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도, 쌍용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이런데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오죽할까 싶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꿈이 소박해졌는지도 모른다.

       
      ▲ 사진=대우조선 노동조합

    그런데 새해 첫 날 들려온 소식은 1월 2일 대우조선에서 가스가 누출돼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돌아가셨다는 뉴스다. 대우조선 노사가 2009년 1월 초 ‘가스질식사고 재발방지 대책’을 합의했었지만, 회사는 1년이 넘도록 ‘가스 차단 밸브 설치’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고, 이런 비참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세계적 조선소인 대우조선에는 6천명의 정규직 노동자와 2만명에 이르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한다. 정규직보다 세 배나 되는 비정규직이, 그것도 가장 위험하고 힘든 공정에서 일하고 있으니 산업재해 사고도 비정규직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규직의 연대의 손길

    그렇다고 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새해 소망이 ‘일하다 죽지 않기’가 될 수는 없다. 어쩌면 2010년 꼭 이뤄졌으면 하는 비정규직의 꿈은 어쩌면 ‘정규직의 연대의 손길’인 것 같다.

    일하다 죽지 않기 위해서도, 비정규직이 우선 해고되지 않기 위해서도, 비정규직이 복직되기 위해서도, 그리고 정규직화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서도 정규직 노조, 정규직 노동자와의 굳건한 연대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1월 6일 오후 4시 기륭전자 본사 앞에서 영하 10도가 넘는 한파 속에서도 50여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새해 첫 집회를 열고, 올해는 꼭 일터로 돌아가자고 다짐했다. 6년 동안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새해 소망과 850만 비정규직의 꿈을 위해 올해는 정규직 연대의 정이 펄펄 끓어 넘쳤으면 좋겠다.

    2010년 1월 6일 기륭전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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