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중앙, 언론통폐합 성토
    2010년 01월 08일 09: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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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이 1980년 11월 자행한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해직이 정권을 장악하고 체제순응적인 언론 구조를 만들기 위한 불법적이고 부당한 조치였다는 사실을 국가기관이 처음 확인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1980년 전두환 국군보안사령부 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동아방송 등을 비롯한 64개 언론사의 강제통폐합을 단행했다고 7일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이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며 관련 피해자들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8일자 아침신문들은 이를 비중 있게 다뤘으며, 특히 당시 동아방송과 동양방송을 각각 빼앗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가 두드러졌다. 8일자 아침신문들은 1면과 사설 등에서 관련소식을 전하며 피해구제를 촉구했다.

자기 집 앞 눈을 치우지 않으면 최고 1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소방방재청의 정책제안에 신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다음은 8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세종시 수정안 반대"/ 박근혜 정면 반발>
국민일보 <"세종시 수정안 당론돼도 반대">
동아일보 <노트북에 도청방지 버튼 단다>
서울신문 <103년만의 설란(雪亂) 대책이 과태료?>
세계일보 <박근혜 "세종시 수정안 반대">
조선일보 <311만명 ‘준비 안된 은퇴’ 시작>
중앙일보 <"국가는 피해자에게 사과, 적절한 구제조치 취하라">
한겨레 <"세종시 수정안 반대">
한국일보 <설…설…북 ‘뭔가 있다’>

동아·중앙, 언론통폐합 보도 두드러져

2980년 언론강제통폐합 사건은 전두환 정권이 1980년 11월 신문 28개, 방송 29개, 통신 7개 등 64개 언론사를 신문 14개, 방송 3개, 통신 1개 등 18개 언론사로 통폐합한 것과 172종의 정기간행물 폐간, 1000여 명의 언론인이 강제해직된 사건을 가리킨다.

신군부는 방송의 공익성을 확보한다는 명분하에 방송사 수뇌부를 교체함과 동시에 DBS(동아방송, 당시 동아일보 계열), TBC(동양방송, 당시 중앙일보 계열), 대구한국FM, 전일방송, 서해방송을 KBS로 통합했고 CBS의 보도·광고 기능을 정지시켰다.

MBC의 경우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 고려화재(현 쌍용화재) 등 기업들이 소유한 문화방송 주식 70%는 문화공보부에 기부 채납된 뒤 재무부를 거쳐 KBS에 현물출자됐다. 마산·울산·삼척·춘천 문화방송 주식은 부정축재 재산으로 농림부에 환수 조치된 후 MBC(문화방송)이 100% 인수토록 하는 방법으로 방송을 단일체제로 묶었다.

신문들은 7개의 종합일간지 중 신아일보가 경향신문에 통폐합돼 6개사로 줄었고, 석간 서울신문은 조간으로 바뀌어 조석간 각 3개지로 재편됐다. 경제지는 4개사(서울경제, 내외경제, 매일경제, 현대경제)중 서울경제와 내외경제가 각각 한국일보와 코리아헤럴드로 통폐합돼 2개사로 줄었다. 통신사의 경우 시사통신·경제통신·산업통신 등이 해산됐고, 동양통신과 합동통신이 통합해 정부가 소유하는 단일 통신사(연합통신)로 만들었다. 지방지도 14개에서 10개사로 축소시켰다.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의 7일 성명에 따르면, 80년 언론인 불법 강제 해직은 그 해 5월 광주항쟁 당시 신군부의 광주양민 학살에 전국 언론인들이 저항한 것에 대해 취해진 언론인 학살 행위다. 광주항쟁기간 동안 전국 언론사 기자들은 검열 및 제작 거부에 돌입해 신군부의 민간인 학살에 항의했다. 광주항쟁기간 동안 신군부에 저항한 세력은 광주일원의 시민들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언론인들이 유일했다.

신군부는 광주항쟁이 중단된 이후 정권 찬탈을 시도하면서 신군부에 저항한 언론인들의 제거를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언론 사주들은 신군부의 요구에 순응해 동료 언론인들을 해직하는 조치를 취했다. 언론 사주들의 그런 행위에 대해서는 아직껏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으나, 불법 해직의 진상 규명을 위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고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는 촉구하고 있다.

   
  ▲ 동아일보 1월8일자 5면.  
 

진실화해위는 당시 사주들이 보안사로부터 하달 받은 명단보다 더 많은 언론인을 끼워 넣어 해직시킨 것으로 판단되는 정황과 진술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진 못했다고 7일 밝히기도 했다. 8일자 대부분의 아침신문이 이 사안을 다뤘지만, 어감은 달랐다. 신군부의 요구에 순응한 것이 아닌, 무력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1면 기사 <"동아방송 등 64개 언론사 통폐합 불법… 국가는 사과-피해구제 조치 취해야">에 이어 4·5면에 관련기사를 실었다. 4면 머리기사 제목은 <"포기각서 안 쓰면 못나간다"…보안사 지하실서 군홧발 폭행>, 5면 머리기사 제목은 <권총-칼 찬 채 "동아방송 안 넘기면 동아일보 없애버리겠다">로 달았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군보안사령부는 1980년 11월14일 오후 6시경부터 통폐합 대상인 언론사 대표들을 소환해 언론사를 포기하는 각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당시 김상만 동아일보 회장과 이동욱 사장은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보안사 지하실로 소환됐다.

당시 보안사 직원들은 권총을 차고 착검을 하고 있었고, 신군부의 방침을 거부할 경우 수사 등 법적처리를 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김 회장과 이 사장은 두 시간여 동안 각서 작성 요구에 불응했으나 각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동아일보에 어떠한 위해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강박감에 휩싸여 ‘동아방송 허가와 관련한 일체의 권한과 기자재를 포기하고 이를 KBS에 양도한다’는 각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동아일보는 보도했다.

이번 진실규명을 통해 전두환 정권이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를 통폐합하겠다"며 동아일보 경영진을 압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이원홍 KBS 사장은 "동아일보가 불응할 경우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를 합병하여 동국신문으로 만든다는 소문을 들었다. 동아일보를 없앤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었고 여러 가지 말이 나돌았다"고 진술했다. 결국 동아방송은 모든 권리와 재산을 41억여 원에 넘겨주었으며 사원 239명이 KBS로 옮겼다.

중앙일보도 1면 기사 외에 4·5·6면에서 관련기사를 담았다. 특히 중앙일보는 5면 기사 <군사작전 같은 ‘K-공작계획’ 전두환 ‘언론조종반’에 서명>에 이은 6면 기사 <"신군부 방송 장악 위해 강제 폐방"/ TBC 왜 문닫게 됐나>에서 당시 황인용 TBC 아나운서의 마지막 방송을 지면에 옮기기도 했다.

   
  ▲ 중앙일보 1월8일자 6면.  
 

"’동양방송-. 동양방송은 이제 무거운 짐을 풀어놓고 조용히 잠들려고 합니다. 동양방송의 17년 역사가 막을…내리고…있…습니다(울먹임). 오늘 자정을 기해 여러분 곁을 떠나려 합니다.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입니다. 남은 5분이…남은 5분이 너무 야속합니다…. (울먹임).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감사합니다. 여러분…이제 3분 남았습니다. 여기는 HLKC 639킬로헤르츠 동양…방…송…입니다.’

1980년 11월 30일 자정. 동양방송(TBC)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진행자 황인용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울먹임의 연속이었다. 같은 날 오후 8시45분부터 방영된 TBC TV의 고별 특집방송도 침울함 그 자체였다.

TBC가 키운 스타 이은하는 ‘TBC 고별방송’ 프로그램에서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란 노래를 부르다 흐느끼고 말았다. ‘대본 내용 그대로, 비장하지 않게, 우는 사람이 없도록 할 것’이라는 신군부 측의 주문을 어긴 것이다. 이 괘씸죄로 그는 3개월간 방송 출연이 금지됐다. 한국 방송의 한 획을 그은 TBC는 이렇게 민주사회에선 상상할 수 없는 탄압과 폭거, 비통함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울경제도 1면 기사에 이어 4면 머리기사 <본지 ‘강탈 당한 8년’ 보상 길 열려>에서 관련소식을 전했다.

   
  ▲ 서울경제 1월8일자 4면.  
 

"분명한 점은 서울경제신문의 폐간이 다른 매체보다 훨씬 강압적으로, 불리한 조건으로 진행됐으며 자매지인 한국일보에게도 두고두고 부담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서울경제신문의 폐간에 항거하는 당시 한국일보 장강재 회장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한 신군부는 ‘내년(1981년)에는 미스 유니버스 서울대회가 예정돼 있어 스포츠신문인 일간 스포츠는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 서울경제신문이 아까우면 한국일보를 폐간하라’고 다그쳤다.

결국 폐간된 서울경제신문은 폐간되고 한국일보도 막심한 경영압박 요인을 안게 됐다. 무엇보다 단 한 푼의 보상도 받지 못했다. 언론통폐합 당시 조금씩이나마 보상받았던 타 언론사와는 달리 한국일보는 한 금융회사가 1979년 약 150억원에 인수를 희망했던 알짜배기인 서울경제신문을 빼앗기고도 언론사 중 유일하게 금전보상 대상에 빠졌다.

서울경제신문의 폐간 자체도 타격이지만 편집국 기자 70여명을 비롯한 서울경제신문의 직원 300여명을 그대로 인수받음으로써 떠안게 된 경영 비효율 요인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언론사간 무한경쟁에서 한국일보 그룹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환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까지 낳았다."

자기 집 앞 눈 안치우면 과태료 100만원?

정부가 집 앞 눈을 치우지 않는 사람에게 최고 1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과 같은 폭설이 또 오면 민·관이 합동으로 대처해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실효성 논란과 함께 폭설로 인한 교통마비 등 혼란의 책임을 시민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신문은 1면 기사와 사설에서 정부를 비판했다. 서울신문은 "100만원의 과태료로 폭설로 멈춘 서울을 움직일 수 있을까"라며 "정부가 빗나간 기상 예보와 초기 대처 미흡으로 생긴 혼란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긴 것이라는 지적이 거세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문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6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7.4%가 ‘처벌(과태료) 조항 도입에 반대한다.’고 밝히는 등 찬성 25.1%보다 2배 이상 많았다"고 전했다.

   
  ▲ 서울신문 1월8일자 사설.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눈 치우기 처벌 조항은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면서 "오히려 분쟁만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사설 <‘내집앞 눈’ 다짜고짜 100만원 과태료 성급했다>에서 "정부의 자기반성은 없고 국민들에게 다짜고짜 과태료 100만원을 물려 집앞 눈을 치우겠다는 발상의 행정편의주의적"이라고 성토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사설 <‘내 집 앞 눈 안치우면 과태료’ 할 만하다>에서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지하철 역 구내나 버스 터미널을 금연 구역으로 정해놓고 범칙금을 내게 한 뒤 흡연이 사라진 것처럼, 시민의식은 어느 한 순간 끌어올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 조선일보 1월8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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