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현장에서 미래를 전망하다
By mywank
    2010년 01월 07일 02: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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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현장은 ‘여기 사람이 있다!’라고 외치며 비인간과 싸웠던 현장입니다

장례식을 치르기로 결정하고 기자회견을 하던 날 유가족들이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통곡을 했던 그 울음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거의 1년이 다되도록 장례식을 치루지 못하고 시신을 냉동고에 안치한 채 지내왔던 지난 세월의 수많은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그동안 이를 악물고 참았던 울음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온 것입니다.

지극히 평범하게 살았던 이들이 어느 날 철거민이 되고 갑자기 무시무시한 공권력에 의해 남편을 잃고 격렬한 투쟁의 한복판에서 지내왔던 그 삶은, 용산참사 이전의 그 분들의 인생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신의 남편이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과정에서 죽임을 당했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장례식을 치룰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정부가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고인들과 철거민들에게 떠넘겨서 이들을 방화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범으로 기소하여 재판을 강행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용산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도했던 이강실 상임대표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그러므로 진상규명없이, 고인들의 명예회복없이, 억울한 자들을 감옥에 그대로 둔 채, 장례식을 치루고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온다는 것은 양심과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할 수 없는 비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앞으로 500군데가 넘는 곳에서 용산4구역처럼 살인적인 재개발이 진행이 될텐데, 이번 용산참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비인간적인 재개발정책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용산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유가족의 투쟁은 극히 인간적인 도리와 질서와 양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지, 정부가 믿고 싶었던 것처럼 어떤 폭력집단의 이기적인 탐심에 의해서 자행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장례식 치루고 적당히 마무리 짓고 싶은 유혹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살해당한 가족의 한을 풀지 않고 진실을 밝히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바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1년간 용산싸움은 바로 인간과 비인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망루에 사람이 있다, 철거민도 사람이다, 사람중심의 재개발을 실시하라고 외치면서 돈과 권력 때문에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들에게 참 사람이 외치는 절규였습니다.

용산현장은 인권과 민생을 지키는 망루였습니다

작년 새해 벽두에 일어난 용산사건은 민생이 공권력에 의해 잔인하게 유린된 지난 한해를 미리 보여준 예언자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지난 2009년은 현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을 1년 안에 되찾겠다고, 공권력을 총동원하여 국민들의 손발을 묶고 악법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부자들의 금고를 가득 채운 해였습니다.

용산참사는 이런 정부의 실체를 똑똑하게 보여주는 거울이었습니다. 이명박대통령이 ‘중도실용 서민’ 정책을 표방하면서 떡볶이와 오뎅을 사 먹고 이곳 저곳 헤집고 다니며 서민행보를 할 때 이것이 거짓이요 위선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곳이 바로 용산참사현장이었습니다.

용산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민생을 말하고 인권을 말하고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벌거벗은 줄도 모르고 화려한 옷에 휘감겨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벌거벗은 임금님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용산현장은 인권과 민생이 유린되는 곳에서는 어디에나 함께하면서 작년 한 해 우리 국민들의 인권과 민생을 지키는 망루역할을 했습니다.

용산현장은 평등, 정의, 평화를 이루는 민주주의의 성지였습니다

작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인간적인 사랑과 나눔과 보살핌이 풍성하게 이루어진 가장 따뜻한 공간은 바로 용산참사 현장이었습니다. 용산참사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껴안으면서 조금이라도 유가족의 고통을 같이 나누겠다고,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왔으며 진심에서 우러난 성금을 보내주었습니다. 물질중심의 가치관과 생존경쟁의 아귀다툼 속에서 갈수록 공동체성과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현대인에게 용산은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을 일깨워주고 사람냄새가 풀풀 풍기는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시켜준 성지였습니다.

천주교신부님들은 거의 8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에서 미사를 집례했고 4개월 이상 이 곳에 비닐천막을 치고 상주하시면서 용산현장의 지킴이가 되셨습니다. 개신교목사님들은 3개월 전부터 목요일마다 개신교예배를 주관했고 주일이면 연합예배를 이곳에서 드렸습니다. 예술인들은 음악, 미술, 연극, 영상, 책과 각종 다양한 공연 등을 통해서 용산문제를 같이 느끼고 생각하고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수백개의 단체들이 모여 만든 범국민대책위는 집회, 기자회견, 일인시위, 삼보일배, 촛불문화제, 미사, 예배, 국민법정, 단식 등에 참여하면서 1년 가까운 싸움을 한 치의 타협과 물러섬이 없이 의연하게 수행해왔습니다. 용산현장에 오면 사람들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와 겸손과 용기와 인내와 희망을 배우면서 평등과 정의가 넘치는 평화의 세상을 꿈꿉니다.

용산현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전망대입니다

용산현장에 와야 현실이 제대로 보이며 미래를 전망할 수 있습니다. 거품부양 경기와 비효율적인 서민정책에 가리워져 안개처럼 뿌옇게 보였던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여기 용산현장에 오면 거울을 보는 것처럼 환하게 보입니다.

‘디자인 서울’이라는 화려한 색조화장에 현혹되어 보이지 않던 철거민들의 애환과 눈물이 이곳에서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경찰, 검찰, 판사 등 온갖 공권력을 동원하여 감추려했던 용산참사의 진실은 용산에 오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용산현장은 현실의 정확한 실체를 직시하게 하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해주는 전망대입니다.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지만 아직 진상규명도 책임자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철거민들은 감옥에 그대로 있고 수배자들은 장례식 이후 감옥으로 가게 될 것이며 살인적인 재개발은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1년간의 용산투쟁은 이런 모든 문제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또 다른 용산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제 검찰은 3천 쪽의 수사기록을 제출하고 판사는 공정하고 합법적인 재판을 실시해야 합니다. 정부는 살인적인 재개발정책을 바꿔 폭력이 없는 재개발, 인간중심의 재개발, 원주민이 재정착하는 재개발, 세입자의 권리가 존중되는 재개발, 주거권이 보장되는 재개발의 모델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1월 9일 장례식을 치루고 나면 용산현장은 용역직원들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용산현장은 이미 여기를 다녀간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둥지를 틀고 인간중심의 세상을 잉태하고 부화시키며 인권과 민주주의와 민생의 성지로 거듭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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