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원평가, 체제순응 교육 위한 억압 장치
        2010년 01월 07일 09: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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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정부 때부터 준비되고 추진되어 온 교원평가제의 시행이 눈앞에 와 있다. 최근 교육과학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내년부터 법제화와 상관없이 시도교육청의 규칙을 통해 각 학교에서 교원평가제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국회 교육상임위에서는 교원평가 법제화를 앞두고 이종걸 상임위원장이 제안한 6자협의체(민주당-한나라당, 전교조-교총,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좋은교육바른교육학부모회)가 구성되어 지난 12월 21일 법안 관련 공청회가 진행되기도 했다.

       
      ▲ 사진=교육희망

    이렇게 교원평가제의 전면 강행이 눈앞에 와 있지만 교사 대오는 물론이고 이른바 진보운동진영에서도 이렇다 할 가시적인 대응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이미 6자협의체에 전교조가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에서처럼, 그리고 참교육학부모회 등 일부 학부모단체들이 교원평가 찬성 입장을 표명해 온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교원평가를 수용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힘의 역학관계상 어쩔 수 없다”거나, “체벌 교사 등 부적격 교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원평가가 필요하다”거나 “학부모와 학생의 권리를 위해 교원평가가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를 펴왔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결국 교육을 상품으로 만들려는 저들의 프레임에 갇힌 결과이며, 특히 교원평가를 여전히 교사들의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는 협소함을 반증할 뿐이다.

    교원평가는 교육시장화의 핵심적인 장치로 단지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 학부모는 물론 국민전체의 교육권을 심각하게 왜곡시킬 뿐이다. 아래에서 교원평가가 왜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운동진영전체 나아가 전체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이 관심을 가지고 공동대응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교원평가의 현황

    교원 그중에서도 교사에 대한 평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진행중이다. 우선 근무평가라는 이름으로 관리자에 의한 교사 평가는 진행되어 왔으며, 2007년에는 교육공무원 승진규정을 개정하여, 다면평가(동료교사)를 도입함과 동시에 승진 시 반영 연수도 승진 전의 10년 간 근무평가를 반영하도록 변경하였다.

    다음 성과급 평가가 진행중이다. 성과급제는 2001년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되었다. 초기에는 교사들의 반발로 차등폭이 적었으나 이후 확대되어 2006년부터는 성과급 비중 및 차등폭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성과급은 업무(실적)에 평가를 통해 성과급을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그 항목은 수업지도, 생활지도, 담당업무, 전문성 개발 등으로 근무평가의 평가요소와 대동소이하다. 최근에는 단위 학교별 성과급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원평가이다. 교원평가는 이미 진행중이다. 2006년 67개 학교에서 시범 실시된 것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500여개로, 2009년 1761개로 그리고 2009년 9월 이후 3000여개로 확대 일로에 있다. 이는 전국의 학교가 1만 2천여개 정도임을 고려할 때 실제로 전면실시를 목전에 두고 있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2009년 9월 2일 교과부가 발표한 안에 따르면 평가 종류는 동료 교원에 의한 평가, 학생에 의한 만족도 평가, 학부모의 의한 만족도 평가로 나뉘어지는데, 평가 영역은 크게 수업지도와 학생지도로 구분된다. 학생과 학부모가 교원을 평가하는 이 시스템은 교원평가를 실시하는 소수의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국가에서도 취하지 않는 매우 극단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정부안에 의하면 평가결과 기준 미달 교사로 판명될 경우 학교장이 지역교육청 시도교육청에 의뢰하여 장기 집중연수에 투입된다. 그 비율은 아직 미발표이지만 대략 연간 400명 정도로 교원의 0.1% 수준으로 예상된다. 한편 2009년 10월 6일에 발표된 한국교육개발원 정책연구보고서에 근거하면 교원평가를 인사와 승진에 활용하는 방안도 제출된 바 있다.

    그런데 역대 정부가 교원평가를 추진해온 그리고 현재 이명박 정부가 교원평가를 강행하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교원평가 = 노동력 비용절감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며, 특히 신자유주의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 최소화(규제완화로 표현)와 공공부문의 민영화(사유화) 그리고 작은 정부를 표방한다. 이때 작은 정부는 사회공적 영역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축소 혹은 포기하는 것이며, 동시에 공기업 노동자들과 공무원에 대한 구조조정을 포함한다.

    그동안 한국에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되면서 역대 정권은 공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강행하였으며, 공무원에 대한 구조조정도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의 과정에서 공무원노조가 결성되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니며, 교원의 경우는 전교조가 존재하였기에 상대적으로 그 속도가 늦추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교원평가는 결과적으로 이른바 기준 미달 교사를 퇴출하는 것으로 정리될 것이며, 이는 비용의 절감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즉 공무원 퇴출의 핵심이 비용 절감 논리였고, 교원평가 역시 공무원 구조조정의 본질(인건비 축소와 노동 통제)과 다르지 않다.

    총자본으로 기능하는 국가 재정 운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교원 인건비는 학교 교육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2008년 교육재정 대비 65.5%)하는 투입 요소이며, 교원노동 유연화를 통한 인건비 절감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큰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4대강 정비사업과 부자감세 정책으로 인한 예산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교육, 복지, 중소기업, 지역현안사업 등을 삭감하는 것과 연동되며, 결국 소수의 이익을 위해 교육이라는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파괴하고 있는 셈이다.

    교원평가 = 일상적인 노동통제 = 체제순응적 노동력 양산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원은 이중적인 지위를 갖는다. 이는 학교의 성격에서도 기인한다. 학교는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체제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성하는 지배계급의 도구이다. 이런 점에서 교사는 지배권력의 말단에 서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과연 학교가 그렇게 지배계급의 의도대로 일방향으로만 기능하는가? 교사를 비롯한 교육노동자와 수업노동을 수행하는 학생들 또한 수동적인 존재이기만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되는 과정이 살아있는 인간을 소외시키며 이로 인해 노동자가 필연적으로 저항할 수 밖에 없듯이, 교육의 상품화의 과정 또한 노동력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과정으로 갈등을 야기시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결국 학교는 가치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이해가 충돌하는 지점이 된다. 즉,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되는 교육과 학교를 상품화, 시장화하는 과정에서 이윤을 획득하는 소수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생계비(임금)의 상당 부분을 교육비용으로 반강제적으로 지출당해야 하는 노동자 민중과의 이해가 충돌하게 된다.

    교육노동이 산노동이 아니라 죽은노동으로 변질되고 스스로의 노동으로부터도 소외되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교육노동자들의 저항과 이를 억누르고 권력과 자본이 시종으로 길들이고자 하는 노동통제가 충돌하게 된다. 또 노동 내부에서는 지배권력과 자본에 굴종하거나 타협하려는 경향과 그렇지 않는 경향이 충돌한다.

    한편 교육과정에서도 이해가 대립한다. 자본과 국가권력의 입장에서는 교육과정이 체제순응적인 인간을 양성하는데 적합하도록 통제하고 싶어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교과서 개정을 진행하는 것과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입하려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즉 교육내용에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입시 위주 교육과정을 통해 악무한적인 경쟁이 일상화되면서 개개인에게 경쟁논리를 내면화시켜 내는 것이다. 결국 미래세대의 구성원들에게 교육노동자들이 어떤 교육을 시키는가는 자본과 노동 모두에게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교원이 체제순응적인 존재로 일상적으로 통제되는가 아닌가는 지배계급에게는 사활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으며, 바로 여기서 교원평가의 문제가 단지 교사들의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국민국가 구성원의 절대 다수인 노동자 민중의 이해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교원평가가 이러한 지배계급의 노동통제 수단이 될 것임은 이미 수없이 확인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정부 방침에 대항하고… 길거리에 나오고 벽보 부치는 그런 공직자는 자격없다”고 발언 한 것이나, 최근 국가 및 지방 공무원의 복무규정 및 보수규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노동조합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도 부를 수 없으며,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입장 표명도 못하게 하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교원평가를 통해 저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잘못된 정부정책에 대해 양심적인 목소리를 내는 교사들을 퇴출 즉 분리 제거하고, 살아남은 교원들은 일상적인 통제 틀 즉 교원평가 시스템으로 묶어 체제순응적 인간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평가에서 살아남기 위한 교사간의 경쟁은 다시 입시경쟁하에서 학생간 경쟁의 심화로 확대되면서 종국에는 악무한적 경쟁논리가 인간내면을 지배하고, 결국 자본이 원하는 마치 좀비와도 같은 체제순응적인 인간들로 넘쳐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교원평가 = 분할지배

    모든 지배계급의 지배 전술 중의 하나는 피지배계급을 분할하고 서로간의 대립을 부추기는 것이다. 노동자에 대한 통제의 경우 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로, 내국인 노동자와과 외국인(이주) 노동자로, 정규직와 비정규직으로… 끊임없이 분할하고 단결을 거세시키고자 한다. 또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다지만 출신 지역에 의한 분할 대립 구도는 종종 아직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분할지배는 교육영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교육의 본질이 사회구성원의 재생산의 과정이자, 사회구성원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누려야 할 사회적인 보편적인 권리이며, 교원(교사, 비교사 등 교육노동자), 학생, 학부모 등 제 교육주체들의 협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 바로 교육시장화의 논리이다. 이에 의하면 교육은 사회구성원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가 아니라, 물건처럼 사고파는 상품이다. 상품이기 때문에 공급자와 구매자가 존재하고, 이때 구매자는 학생과 학부모가 되는 것이다.

    보편적인 권리를 상품으로 둔갑시키는 과정에는 하나의 장치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와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정당화하는 시스템, 즉 학벌이다. 이는 대학과 학문의 위계서열화로 재구조화되어 왔으며, 학벌사회로의 진입장치인 입시제도는 그 자체로 이윤을 생산하는 기제로 최근에는 대학은 물론 초중고교마저도 노골적인 이윤추구의 도구로 전환시키고자 한다.

    당연히 학벌사회의 상위로 진입하려는 욕망이 대중을 지배하면서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가 점증하고 반면 진입의 벽은 높아 그 비용이 상승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입의 벽이 높다는 것은 교육이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계급재생산의 기제로, 다시 말해 부자에게는 부의 대물림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며, 그 자체로 불평등을 재구조화는 기제로 변질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결국 사회적으로 입시경쟁의 심화, 폭등하는 사교육비로 나타나고 있으며, 교육문제의 사회적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차단당하고 있는 절대다수의 대중들에게는 학교교육의 실패로 그리고 교사의 문제로 화살이 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한국교육의 구조적인 병폐의 원인에 대한 진지한 진단과 성찰은 사라지고 오직 즉자적인 분노만이 교사에게 집중되는 셈이다.

    교원의 질 제고를 위해 필요한 것은?

    앞에서 교원평가를 강행하는 지배세력의 의도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즉 교원의 질 제고이다. 교원평가를 강행하면서 정부당국이 앞에 내세우는 것은 바로 교원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여기에 일부 학부모 단체들이 맞장구를 쳐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교원평가제로 교사의 전문성이 함양될 것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이미 평가항목과 평가방식에 확인되었듯이 결국 평가에서 살아남는 것은 교장과 정부정책에 순응하는 이른바 ‘꼰대’들일 것이다.
    그동안 교육운동진영은 교원의 전문성과 관련하여 다양한 대안을 제출해 왔다.

    우선 교원의 양성 임용체계가 보다 전문화되고 이에 대한 국가적인 책무가 확대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반대이다. 여전히 교원은 부족한데도 교원정원을 동결시키는가 하면, 심지어 교육대와 사대를 통페합하려는가 하면 단기교사 자격증 부여 방안을 추진하는 등 정부가 파행을 조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다음 교육과정에 편성에 대한 교사의 권한 강화, 연구활동을 위한 지원, 안식년 도입 등 교사의 능력개발을 위한 지원 등 제도적인 보장을 확대이다.

    마지막으로 교육환경이 근본적으로 개선이다. 저출산으로 취학아동수가 과거보다 줄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법정 정원 확보나 표준수업 시수 제정 그리고 교육시설을 포함한 교육환경은 열악하다. 또한 급식비를 포함, 교육비용의 민간부담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교육예산을 축소시키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입시경쟁체제는 초중등교육의 환경을 근본적으로 왜곡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교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인 정비가 우선 시행되어져야 함에도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공교육 실패의 책임으로 오로지 교사에게로 책임을 돌리고 있으며, 여기에 교육소비자라는 프레임에 사로잡힌 자들이 부화뇌동하고 있는 것이다.

    교원평가로 부적격 교사를 걸러낼 수 있나?

    그럼에도 왜 유독 교사에게 불만이 집중되는가? 이는 무엇보다 앞에서 언급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와 교사의 역할과 지위 때문이다. 동시에 그에 근거한 학교 안에서의 교사와 비교사,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간의 비대칭적 심지어는 위계적인 질서에서 비롯된다.

    대다수의 교사들은 학교라는 공간 안의 비교사 노동자들보다 자신들이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업무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대다수의 교사들은 학생들은 훈육과 통제의 대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학부모들은 자녀를 학교에 맡긴 심정으로 늘 교사의 권력에 주눅들게 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대학서열화와 입시경쟁체제는 이러한 비대칭적이며 위계적인 질서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런 구조하에서 잊을만하면 툭툭 터져나오는 이른바 ‘부적적교사’의 문제는 입시경쟁체제와 맞물리면서 공교육 실패의 책임이 마치 교사에게 있는 것처럼 교사집단에 대한 마녀사냥을 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교원평가로 이른바 부적격교사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는 상식적으로 봐도 분명하다. 전교조 교사가 비전교조 교사를 단순 비교해보자. 누가 학생들에게 스스럼없이 인격적인 모욕과 체벌을 가해 왔는가? 이른바 촌지 거부운동을 했던 집단이 누구인가? 일제고사라는 반교육적인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교사집단은 누구인가?

    교원평가제는 부적격 교사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부적격교사라 할지라도 잘못된 정부정책에 침묵 혹은 동조하고 교장에게 아부하며 시험풀이 기술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자들이라면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이후 교단을 장악할 것이다.

    교원평가는 우리 모두의 실천과제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교원평가는 단지 교사의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씨가 말하는 “정부 방침에 대항하고… 길거리에 나오고 벽보 부치는” 교사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교사들이 교단에서 사라지고 나면 학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들이 교원평가를 교사들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외면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누구일까? 가장 일차적인 피해자는 학생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종국에는 사회구성원 전체의 교육권의 박탈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교원평가 저지는 교사들만의 투쟁이 될 수 없다. 교원평가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고 교육주체들의 공동투쟁을 모색하여 한다. “전교조 교사들이 짤릴 것 같으니 도와 달라”는 따위의 연대가 아니라, 교육시장화를 막아내기 위해서 교육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함께 싸우는 것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평가를 통한 위계서열화와 이를 통해 교육시장화 학교시장화를 획책하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일제고사로, 비교사 노동자들에게는 업무평가로 그리고 교사들은 교원평가라는 칼을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교원이라도 할 때는 광의로는 교사와 비교사 노동자를 모두 망라하는 것으로 비교사 노동자의 구조조정저지 투쟁과 교사노동자의 교원평가저지 투쟁에 상호간에 연대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는 비단 초중등 분야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분야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고 공동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례로 현재의 교사들이 구조조정 당하는 것을 외면하는 예비교사들이라면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또 미래형 교육과정이 통폐합 될 해당 교과 교사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관련 대학과 학과의 문제로 연동되듯이, 초중등 영역의 학교시장화는 이미 진행되어온 대학 부문 등의 시장화를 더욱 극단으로 내몰 것이다. 또 굳이 이런 논리적 연관을 따지지 않더라도 교육자체가 사회적 문제라도 했을 때 과연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세력은 얼마나 될 것인가?

    위계적인 학교구조를 혁파가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원평가를 찬성하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지 교육문제의 본질, 경쟁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 무지의 결과인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이 교원평가에 찬성하거나 혹은 교원평가가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못한 것에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권력관계에서 근거한다. 그리고 이 권력관계가 근본적으로 혁파되지 않는 한 교사와 학생간의 비적대적인 모순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사 개인이 학생들에게 결코 체벌을 하지 않겠다는 식의 다짐을 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때문에 이러한 권력관계 위계적인 학교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운동에 노동조합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현재국면에서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무상교육 실현 운동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무상교육 실현이라는 구호만으로는 현재의 학교 안에서의 교육주체들, 특히 학생과 학부모들이 겪고 있는 비대칭적 위계적 질서를 즉각적으로 해소해주지 못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전교조는 2006년에 학교자치(위원회)와 교장선출 보직제 등을 대안으로 제출한 바 있으며, 법제화 이전의 실천방안으로 학부모 의견개진권의 실질화와 학급 학부모-교사 협의회 설치, 학생-교사 협의회와 학생회 실질화, 교과/학년협의회 활성화 등이 제시된 바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성과를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되며, 비록 학교자치가 근본적으로 제한적이라 할 지라도 다양한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학생들에게 권력을! 모든 평가의 폐지를! 교육주체의 소통을 가로막는 그리하여 학교 자치를 가로막는 근본적인 것들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제도 안과 제도 밖에서의 실험들이 소통되고 환류되어 확장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공동실천과 실험이 강고해 보이기만 한 지배질서의 균열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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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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