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쁘지도 홀가분하지도 않다"
    By mywank
        2010년 01월 06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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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30일 용산참사가 타결되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철거민 5명이 공권력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지 만 1년 다되어 가던, 345일 만의 일이다.

    굳이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기쁘거나 홀가분하지도 않고 그저 담담할 뿐이다. 이렇게도 해를 넘기지 않으려고 서두르는 사람들이 지난 1년 동안 용산문제를 방치했단 말인가?

    그 동안 용산은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다. 빈소를 지켜야할 상주는 감옥에 있고, 고인의 미망인들은 상복입고 거리를 누벼야 했다. 이들은 현 정부에게 이방인들이었다. 가는 곳마다 경찰에 의해 감금당하고, 경찰서로 끌려가고, 상복이 찢기고, 영정이 부서지고, 짓밟혀 팔이 부러지고……. 말 그대로 피눈물로 1년을 보냈다.

       
      ▲지난해 1월 용산참사 현장에서 열린 ‘뉴타운 재개발 중단 촉구 가옥주, 세입자 공동기자회견’ 모습. 사진의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이가 신동우 집행위원장 (사진=손기영 기자)

    이들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고, 수배되고, 체포되는 일이 밤낮으로 되풀이 되었다. 신부님을 비롯한 성직자들도 공권력에 의해 수모를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인가. 아마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두려웠을 것이다.

    찢어지고, 부서지고, 부러지고…

    용산참사 초기부터 이명박 정권은 이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기에 앞서 철거민들의 폭력과 불법 농성에 초점을 맞추어 ‘테러리스트’니, ‘떼잡이’니 운운하면서 철거민들의 정당한 투쟁을 보수언론을 동원하여 연일 매도하였다.

    지금의 재개발사업은 돈 있는 자들에게는 천국이요 돈 없는 자들에게는 지옥이다. 사업초기부터 상주하는, 용역이라 불리는 폭력배들의 온갖 만행에 세입자들은 그야말로 갈 곳 없어 버티고 있을 뿐이다. 시일이 지날수록 폭력배들의 만행은 극에 달한다.

    하지만 세입자들을 보호해주는 공공기관은 그 어디에도 없다. 주민들을 보호해야할 경찰들은 오히려 용역인 것처럼 행동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용역보다 앞장서서 세입자들을 탄압한다. 세입자들의 이주대책을 수립해야할 구청은 세입자들을 귀찮은 존재로만 여긴다.

    이것들이 바로 세입자들이 망루를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것마저도 용납하지 않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경찰특공대를 동원하여 살인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돈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개발이 되어야 한다

    지난 12월 2일, 동절기 강제철거에 떠밀려 마포 용강동에서 60대 철거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또다시 벌어졌다. 우리가 누차 경고했듯이 제2, 제3의 용산참사가 곳곳에서 예고되고 있다. 전국 방방골골에 산재한 재개발 현장은 도시서민의 피눈물을 요구하고 있다.

    잘라 말하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든 재개발을 전면 중단하고 재검토해야 한다. 유엔과 국제엠네스티에 이어 아시아인권위원회(AHRC)도 최근 성명을 발표하고, 한국 주택 철거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주민들이 대체 주거지를 얻을 때까지 철거를 중단하고 재개발 사업에서 폭력적인 문화를 근절시켜라’라고 촉구했다.

    따가운 시선이 두려웠는지, 서울시와 정부는 용산참사를 계기로 ‘세입자 보호를 강화하는 대책을 통해 재개발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 될 것’이라고 떠벌렸다. 하지만 재개발 문제 전문가들이 검토한 결과 세입자 보호와 관련된 내용이 오히려 후퇴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하나씩 뜯어보자.

    당국은 세입자 보상금을 부담하는 주체를 조합에서 해당 건물주가 부담하도록 변경하여 조합과 세입자 간의 분쟁의 원인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기존에 발생하던 분쟁을 가옥주와 세입자 간의 분쟁으로 이름만 바꾸어 놓은 것일 뿐, 오히려 이 규정으로 집주인은 자신의 평가금액 손실을 우려하여 사업 시행 인가 전 세입자들에게 재계약을 거부하며 쫓아내는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또 당국은 분쟁조정위원회 설치와 공공관리자제도 도입을 획기적인 재개발 문제 개선책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세입자인 당사자가 배제된 ‘분쟁조정위원회’나 철거민을 ‘떼잡이’로 매도하여 물의를 빚은 박장규 용산구청장과 같은 이들을 책임자로 두는 ‘공공관리자제도’를 과연 근본적인 개선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름만 앙상하게 남은 실질적인 개악(改惡)안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도시는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공간이다. 사회적 공간을 새롭게 꾸미기 위한 재개발이라면, 응당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삶이 보장되는 재개발이 되어야 한다. 물질만능주의, 돈으로 사고파는 자본주의 모순이 집약된 재개발은 사람의 목숨만 빼앗아 갈 뿐이다.

    이제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다

    이번 주말 용산참사로 희생된 분들의 장례는 치르지만, 구속된 농성자들의 재판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1심에서 9명 중 7명이 징역 5~6년, 2명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아들이 아버지를, 동료가 동료를 죽인 죄명으로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 되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장을 그대로 인용하여 판결문에 옮겨 담았다. 전체 수사기록의 3분의1에 해당하는 3천쪽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재판을 누가 인정하겠는가.

    또한 검찰은 유가족의 동의도 없이 시신을 강제부검하고, 또 부검과정에서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을 훼손하였다. 화재사라 볼 수 없는 정황도 포착되었다. 의문사인 것이다. 사건의 진상이 분명히 밝혀져서, 고인들의 명예 회복은 물론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한다. 용산 투쟁은 이명박 정부 들어 극적으로 후퇴하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는 싸움이자, 정의를 바로 세우는 싸움이었다. 자본의 독재에 저항하는 마지막 보루였다.

    이러한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는 1월 9일 용산참사로 희생당하신 분들의 장례를 대대적으로 치러야 한다. 서울시청광장을 추모인파로 가득 채워 다시는 용산참사와 같은 시대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후퇴와 자본의 횡포에 맞서 더 큰 싸움을 결의하는 장을 만들자. 산화해 가신 분들에게 예우를 갖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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