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 근원은 운동의 붕괴에 있다"
        2010년 01월 06일 09: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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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명박 정부의 성격과 ‘중도 실용’(?)

    이명박 정부의 성격은 친자본, 반민주로 규정될 수 있다. 정권의 성격은 권력의 행사 내용과 행사 방식으로 확인될 수 있다.

    정권은 다양한 사회문제들 가운데 특정 과제들을 선별하여 정치의제화하고 특정 과제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의제화 과정에 시민사회와 언론도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의제화 배제나 탈의제화는 정권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국가 연구에서는 어떤 의제들이 체계적으로 배제되었는가에 주목한다.

       
      ▲ 필자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양극화는 중요한 사회문제로서 정치의제화되었고, 여전히 우리사회의 주요 문제로서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테이블에서 사라져버렸다.

    용산참사 문제가 일단락되기까지 한 해가 걸렸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은 해를 거듭해도 해결되지 않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비정규직 문제가 잠시 논의 테이블에 올랐던 것도 비정규직 보호를 통한 사회양극화 문제 해소가 아니라,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심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은 이명박 정부의 의제 선별 경향성을 잘 보여준다. 탈의제화 정치를 통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계급적 성격이다.

    이명박 정부의 계급적 성격은 이명박 정부 정책의 수혜자를 봐도 확인될 수 있다.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법인세 인하, 4대강 정비 사업, 부동산 양도․상속세 부담 경감, 대규모 주택공급 확대 및 재건축 규제 등 각종 부동산투기 규제제도의 완화 정책들은 재벌들의 숙원사항들을 관철하거나 토건자본과 부동산투기세력들에게 특혜를 주는 정책들이다.

    종합부동산세와 소득세 등의 세율 인하를 통한 부자감세 정책과 학교 서열화와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며 불평등의 대물림을 조장하는 교육정책은 상층 유산자들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들이다.

    이명박 정권의 계급적 정체성

    이처럼 이명박 정부는 노동자와 서민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고, 재벌을 정점으로 하여 자본계급, 중상층, 기득권세력을 대변하는 계급적 정체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중도가 아니라 보수이며, 보다 정확한 표현은 친자본, 친재벌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등록금후불제 및 등록금 동결 압박, 보금자리 주택, 미소금융 사업, 유가환급금 지급 등의 상당부분은 개혁-진보 진영으로부터 차용한 정책으로서 보수성으로 규정할 수 없는 정책들이지만, 이명박정부 정책의 전형이라기보다 예외적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책들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과대평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정권의 성격은 그 전체성 속에서 평가되어야 하며, 이러한 정책들은 친자본, 신자유주의 정책들의 폐해를 보정하는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의 성격을 지니며, 정치적으로는 이명박 정부 핵심들의 엄청난 재산 규모 및 땅투기 경력 등으로 크게 부각된 부도덕한 특권층 정권 이미지를 희석하며 보수 중하층을 결속하기 위한 대중주의적 성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전임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비교하여 권력 행사 내용에서의 차이보다 통치방식에서의 차이가 더 크다. 국민과 대화하고,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며 의견을 수렴하고 협의하기보다 결단하고 밀어붙이는 방식이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기는 국민, 시민사회, 야당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여권과 정부 핵심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랍 왕국의 왕세자나 재벌그룹의 총수에게서나 발견될 수 있는 전근대적인 억압적, 일방적, 하향식 지배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사회에는 적합하지 않은 비민주적 통치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법 개정과 YTN, KBS, MBC 등 주요 매체들을 중심으로 한 언론 장악 시도, 검찰의 정치도구화, 억압적 국가기구들을 동원한 노동․사회운동 탄압 등 시민사회와 노동 부문에 대한 지배 방식에서 극단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민주화의 성과를 허물고 역사를 되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반민주성으로 규정될 수 있다.

    ‘중도 실용’ 키워드의 실체는 없으나 성과는 있다.

    실용주의자 아닌 정치인, 대통령이 있는가? 이념보다 표를 더 의식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임 대통령들은 실용주의자 아니었는가?

    ‘중도 실용’은 계급적 성격을 도포하기 위한 정치적 포장술이다. 동시에, 그것은 시민들의 다수가 ‘중도 실용’이라는 현실에 기초하여 조작된 이미지 상품으로서 선행 정부들과 야당을 ‘무능한 좌파’로 상대화한 것이다. 그러한 이미지 조작 전략은 성공했고, 그 기초를 제공한 것은 바로 두 선행 정부들이었다.

    김-노 정부는 진보개혁 진영을 대변하며 지지 기반의 진보개혁 정체성을 강화하고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국유기업 사유화, 한미 FTA, 이라크파병 정책들 등으로 개혁진보 진영을 분열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지지자들을 탈이념화시키기도 했다.

    그와 함께 DJP 연합과 연정 제안 같은 정치적 행보는 자신들의 지지자들을 의식의 혼돈 속으로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김-노 정부 하에서 보수진영은 흔들리지 않고 결속력을 높이며 굳건하게 버텼고, 진보진영은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정당성을 재확인하며 김-노정부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고수했다.

    변화한 것은 김-노의 지지 기반인 중도개혁 진영이다. 김-노정부 출범과 함께 민주-반민주 구도는 설득력을 잃어갔고, ‘민주’ 정체성을 지닌 지지 기반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집권세력의 정책과 정치적 행보로 탈이념화가 가속화된 것이다. 이들의 탈이념화로 ‘중도 실용’ 정치상품의 시장은 그만큼 크게 확대된 것이다.

    계급-이념 투표 vs 경제-쟁점 투표

    중도는 정치인 집단들의 경우 자유주의 등 특정 이념적 성향을 의미할 수 있지만, 일반 유권자들의 경우 진보-보수 스펙트럼의 중간에 위치한 이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의 부재, 이념에 대한 무관심을 의미한다.

    즉, 중도 시민들은 탈이념화된 집단으로서 여론조사 지지율 부침을 좌우하는 주요 변인이 된다. 이들은 투표장에서 계급투표, 이념투표가 아니라 경제투표, 쟁점투표 성향을 보이는 실용주의자들로서, 이명박 ‘중도 실용’ 상품의 핵심 표적이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시점 국정운영 평가에서 긍정적 평가는 1/3에 불과했지만, 임기 내 국정운영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사항으로 경제회복, 일자리창출, 물가안정 등 경제문제를 꼽은 시민들은 65.2%에 달했다. 이명박 정부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상당 부분은 이명박 정부가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가더라도 경제 상황만 나아지면 이명박 지지로 돌아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 지지율 부침은 시민들의 2/3에 달하는 경제투표 성향의 실용주의자들의 이동에 따른 결과이다. 지지율 50%는 전직 대통령들의 서거 정국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진영의 결집, 경제지표 개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실용주의자들의 지지율 상승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 분배 담론과 진보의 정책 대안

    분배 담론이 대중적 설득에 실패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진보는 분배와 사회적 양극화를 얘기해야 한다.

    진보는 성장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성장주의를 배격할 뿐이다. 스웨덴이나 브라질의 좌파 정당이 집권한 계기들은 주로 보수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로 조성되었으며, 좌파정권은 경제정책에서 상당한 성과를 보여 왔다. 스웨덴이나 브라질 좌파 정권이 적극적 분배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성장-분배 선순환 구조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라기보다 분배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분배는 경제위기 극복에 밀렸고, 그렇게 신자유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신자유주의 10년 이후 브라질에서는 좌파정당이 집권했지만 한국에서는 보수정당이 집권했다. 브라질 룰라 정부는 안정적 경제성장 속에서 빈곤퇴치(fome zero), 가족지원금(bolsa familia)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그 성과로 재집권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747에서 4대강에 이르기까지 성장주의로 일관하며 분배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지난해 경제위기 재발 이후 수출의존 경제 모델의 위험성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수시장과 분배의 논의는 잠시 있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탈의제화되어 있던 사회적 양극화 문제는 되살아나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분배 문제에 사회적 합의를 동원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더더욱 한국의 진보는 분배를 얘기해야 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얘기해야 한다. 분배와 사회적 양극화 문제에 대해 보수진영은 관심이 없고, 중도 자유주의 진영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불평등 심화의 원죄가 있어 발언권도 설득력도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평등 현상은 그 자체가 사회적 문제이며, 그에 맞서 소득․자산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것은 시민들의 권리이다.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복지권과 평등권을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은 진보의 임무이다.

    진보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정책?

    권력 근처에 있지도 않은 진보에게 돌파구가 될 정책은 없다. 하지만 진보에게 필요한 정책 대안은 논의할 수 있다. 진보의 정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민여론에 대한 영향을 목적으로 하는 ‘영향의 정치’, 다른 하나는 구체적 제도의 도입을 실현하는 ‘개혁의 정치’. 물론 진보에게 양자 모두 요구되고 있다.

    영향의 정치는 시민들의 전반적 사회정치의식 보수화 추세를 제어하고 역전시키기 위해 필요하다. 여기에는 신자유주의, 성장지상주의 패러다임에 맞서는 거대 담론도 있고, 광우병 쇠고기 협상, 4대강 운하 사업, 시장 규제 완화, 세금 인하 정책, 사교육심화 교육정책 등 구체적 정책들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이명박정부 정책의 실체를 비판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진보 진영이 늘 해오던 활동이다.

    하지만 개혁의 정치도 필요하다. 그것이 비개혁주의적 개혁일 경우 더더욱 절실하다. 진보 진영의 이념적 경직성을 재생산하고 민중 진영의 비타협성을 가시화하는 근저에는 노동시장의 안정성 없는 유연성이 있다.

    영향의 정치와 개혁의 정치

    노동시장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음으로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와 조직적 분열은 심화되고, 산업과 경제 구조의 조정이 일상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뒤늦게 파괴적 충격과 함께 추진된다. 그런 점에서 고용보험제도의 확충을 개혁의 정치 중심에 놓을 필요가 있다.

    실업급여 수급율은 프랑스 92%, 독일 95%에 비해 한국은 현재 30% 수준에 불과하다. 실업급여 수급 기간은 독일 12개월, 스페인 24개월에 비해 현재 평균 4개월 수준에 불과하다.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은 유럽국가들의 60~80% 수준에 비해 현재 실직전 임금의 30% 이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소득수준의 불평등보다 고용 불안정성과 노동시장 보호의 불평등이 더 심각한 사회양극화 문제이다. 실업급여 제도가 노동시장 이동 비용을 최소화하며 실질적인 재취업 준비 기간의 사회보장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없애고 수급율을 80~90%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 우선적으로 요청된다.

    그와 함께 수급기간은 12개월 이상으로, 소득대체율은 60~70% 수준으로 높이고 교육훈련 제도와 연계하여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고용보험 제도의 확충을 통해 노동시장의 안정성을 강화함으로써 노동시장은 긍정적 의미의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노동계급의 분열은 완화되고 주체형성이 진전될 수 있으며, 노동계와 진보진영도 전략적 행위자로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는 것이다.

    외환위기와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경제위기 속에서 시민들은 일상화된 고용불안정성의 현실을 경험했다. 뿐만 아니라 고용보험 제도의 확충은 시민들의 공정성 개념에도 부합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고 할 수 있다.

    3. 진보 세력의 연합과 결집 문제

    모두가 진보 세력의 연합과 결집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연합과 결집 대상이 되는 진보세력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무엇을 위한 통합인지 불분명하다.

    게다가 연합과 결집을 전제로 제출되는 사회주의, 사민주의… 무슨 무슨 주의들? 식상하다. 진보진영이 이념으로 분열했는가? 그랬었다면 한국 진보운동의 전망은 어둡지 않을 것이다. 진보진영의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치졸하고 저급하다.

    이념은 덧칠된 사투리에 불과하고, 문제의 핵심은 비민주적 조직문화에 있다. 상대를 죽이지 못해서 동거하는 부정적 의미의 타협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경쟁과 연대를 통해 윈윈 게임을 추구하는 긍정적 의미의 타협, 그러한 공존의 민주적 조직문화가 담보되지 않는 한 통합은 분열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진보진영과 중도 자유주의 세력을 아우르는 통합? 이념으로 연대 혹은 통합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적에 맞서 연대하는 것이 최대치이며, 그것은 민주화 역행을 막는 반이명박, 반-반민주 선거연합이다.

    총선의 경우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선거연합조차 쉽지 않다는 점은 안산의 10.28 재보선에서 확인되었다. 대선의 경우 공동정책 도출에 기초한 선거연합의 성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것은 분명하다. 물론, 진보진영의 영향력이 그 전제 조건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진보진영의 문제는 운동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중운동은 동력을 크게 잃었고, 민주노조운동은 이명박 정부의 표적이 되어 극심한 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노총 탈퇴공작, 노조 합법성 부정, 단체협약 해지, 단체행동권 불인정, 노조의 일상활동 억압 등으로 민주노조들의 와해와 민주노총의 무력화를 추진하고 있다.

    전교조와 금속노조에 이어 공무원노조와 공공부문 노조들이 일차적 표적이 되고 있으며, 정부의 철도노조 파업 대처방식에서 이명박 정부의 정책방향이 잘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조합원들의 정규직 이기주의로 계급성과 연대성이 훼손되며 도덕적 지도력을 크게 상실했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급격한 보수화로 정규직, 비정규직의 의식 역전이 일어나며 비정규직-의식, 정규직-조직력의 노동계급 계급형성의 미스매치(mismatch) 문제 속으로 빠져 들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탄압은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운동을 그 건강성과 함께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이다.

    운동이 다 무너지는데 이념적, 담론적 대안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운동이 무너지면 선거 정치만 남는다. 운동을 통해 독자적으로 사회진보를 이룰 수 있는 힘도, 선거연합을 통해 진보의 가치를 관철하는 힘도 상실하게 된다. 중도 자유주의세력과의 선거연합은 민주당 살리기에 불과하고, 선거연합으로 집권하더라도 진보는 식객 노릇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진보는 눈 앞의 선거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 전망 속에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거대 담론보다는 작은 진보의 실험들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케랄라의 분산계획운동, 뽀르뚜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 등은 좋은 귀감이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사회들에서 전개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기업 복구를 통한 자주관리와 생산협동조합 운동도 주목해 볼만하다.

    진보 모델들이 확산되면서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시민들의 동의를 축적할 수 있으며, 진보적 실험들을 통해 진보가 통치 역량을 습득하고 통치 능력을 확인시켜줌으로써 시민들의 신뢰를 획득하며 더 큰 권력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변화는 집권 이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집권 이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사회적 헤게모니 확보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진보진영 자체의 역량 강화를 위해서도 요구되는 것이다. ‘집권전 사회변혁’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것이 진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조건 속에서 거대 담론이나 선거정치에 매몰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정도일 수 있다.

                                                       * * *

    * 이 글은 운수노동정책연구소가 발행하는 『운수노동』 통권 16호(2010년 1월 발간 예정)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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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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