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격과 돈으로 분리되는 가자
        2010년 01월 05일 11: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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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2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문제를 한국 사회에 알리기 위해 글과 행동과 실천, 그리고 진심어린 우애를 바탕으로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해 온 소설가 오수연과 함께 몇몇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을 다녀왔다.

    함께 한 이들은 오수연을 비롯해 소설가 김남일, 시인 김해자, 문화평론가 강영희, 영화감독 남선호, 평화활동가 염창근, 다큐멘터리 감독 성혜란,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회원 한아름, 그리고 영화칼럼니스트이자 <레디앙> 문화담당 객원기자인 이안. 모두 아홉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분쟁의 현장에 발을 디디고 이루어지는 삶과 문화를 보고 느꼈으며 그 경험을 <레디앙> 독자들과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나누고자 한다. 문인은 그곳의 문인들과 만나 억압이 있는 곳에서 언어와 문학이 가진 힘을 이야기했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그곳 영화 관계자로부터 영상을 통해 이을 수 있는 교류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모든 명분을 떠나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서로 음식을 나누고, 정을 나누었다. 그런 만남과 대화가 특별하게 여겨지도록 만드는 것은 모든 만남과 대화를 가로막는 이스라엘의 철저한 ‘봉쇄’ 때문이다. 이 ‘봉쇄’는 어디서 비롯된 것이고, 어떻게 강화되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얻기 위해 지속되고 있는지 우리 모두 알아야한다.

    우리 일행의 경험이 ‘봉쇄’에 낸 틈이 지금은 비록 크지 않더라도 앞으로 거대한 균열을 일으키기를 바라며 방문단의 글들과 시편을 소개한다. 그 첫 회는 지속적으로 평화활동을 해 온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회원 염창근의 글로 시작한다. <편집자 주>

       
      ▲ 팔레스타인 서안의 중심도시 라말라. 라말라의 알마나라 광장의 시장 거리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린다.(사진=염창근)

    라말라와 가자 사이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가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가자에 대한 잔인한 봉쇄 이야기가 한 해 내내 귀를 때렸기에 잔뜩 긴장을 했지만 팔레스타인 친구가 보내 준 차를 타고 단번에 그 땅에 들어갔다. 공항에서의 검문 절차도 들어왔던 것보다는 형식적이었고 우리의 성지 여행자 행색도 이스라엘 군인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믿어주는 편이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작은 땅이기에 텔아비브에서 라말라까지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땅에 실제 발을 내딛고 나서도 잘 믿어지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땅은, 들려오는 무수한 이야기 속에서 오랫동안 상상의 영역에만 있었고 그래서인지 정말 이 땅에 서 있다는 사실은 현실감이 없었다. 처음 라말라의 알마나라 광장 옆에 내렸을 땐 낯선 거리는 물론 스산하게 부는 바람을 맞는 일조차 꿈속에 있는 듯했다.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팔레스타인에 오다니!’라고 말했을 땐, 마치 내가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팔레스타인에 대한 감정적 압박감은 매우 컸다. 팔레스타인을 향한 무조건적인 지지나 ‘피해자 팔레스타인’ 같은 고정되어버린 관념을 쉬이 떨쳐내지 못했다. 게다가 팔레스타인은 대단한 신념의 소유자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쟁의 지역이었다.

    그러나 낯선 이방인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도 늘 환대해 주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무거운 이미지가 조금씩 밀려났다. 여기에도 오랜 세월 사람이 모여 살아오고 있었고, 가난하고 억압당하고 있지만 우리들보다 훨씬 정감어린 삶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삶의 모습은 오랜 점령 속에서도 영혼을 지켜낼 수 있었던 힘의 근원처럼 다가왔다. 

       
      ▲ 낯선 이방인을 신기하게 보면서도 늘 반겨주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사진=염창근)

    번성하는 팔레스타인 라말라

    우리는 외국인 여행자였기에 팔레스타인 서안을 돌아다니는 일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검문 절차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 특히 가자 침공 이후 지난 한 해 서안지역은 검문이 부쩍 간소해졌다고 했다.

    이스라엘 지역에서 라말라로 들어갈 때 거쳐야 하는, 그 유명한 칼란디야 검문소도 스치듯 지나갔다(물론 라말라에서 나올 때는 달랐다). 수도 없이 들어왔던 검문소와 통제 문제는 입국 때부터 긴장하게는 했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은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대체로 ‘통과’의 신호를 보내주었다. 한국은 미국과 함께 오랫동안 대표적인 친이스라엘 국가이기도 했고 수많은 한국인 성지 순례자가 매년 이곳을 방문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한국인에 대한 특별대우를 확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안지역 내에서만큼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도 검문은 예전에 비해 많이 간소해졌음을 볼 수 있었다. 현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가 새로운 점령 정책의 일환으로 서안에 대해 ‘경제적 교류’를 확대하기로 했고 그에 따라 절단시켜놓은 서안의 땅에 검문 절차를 다소 느슨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자 침공의 책임을 피해 보려는 술수처럼 보였다. 이런 시행으로 이동의 통제는 전보다 나아졌지만 큰 도로로 나가는 순간 어김없이 이스라엘 군인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었고, 다른 도시에 갈 때면 때때로 검문소가 폐쇄되어 꽉 막힌 지방도로를 꼬불꼬불 곡예를 하듯 빙빙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서안지역을 벗어나 자유로이 오고갈 수 없다. 많은 팔레스타인 서안지역 사람들은 서안 이외의 땅을 가본 지 매우 오래 되었다고 했다. 예루살렘이 고향인 사람도 서안으로 오게 되면 되돌아갈 수 없었다.

    그들의 신분증 그린 카드는 ‘오직 서안(Only West Bank)’에만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낙인찍은 주홍글씨였다. 서안 이외의 지역으로 갈 수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은 블루 카드 신분증, 즉 이스라엘 시민으로 등록된 사람들뿐이었다. 그래서 전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이동 통제 간소화는 아무런 유화책도 되지 않아 보였다.

       
      ▲ 예루살렘과 라말라 사이에 있는 칼란디야 검문소. 두 도시는 30분 거리지만 검문소는 이동을 통제한다. 최근에 검문 절차가 간소화되었다고 했다.(사진=염창근)

    하지만 이스라엘이 ‘경제적 평화’로 통제를 열기 시작한 올 한 해 라말라에는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있는 팔레스타인 중심도시인 라말라는 급속한 경제적 번성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단번에 보기에도 라말라 곳곳에 번듯한 새 건물이 세워지고 있었고, 이 작은 언덕의 도시는 공사 소리로 울리고 있었다. 예쁜 고층 주택 건물이 라말라 주변의 언덕을 빼곡히 채우며 작은 도시는 커져가는 중이었다. 옛 건물이 자리한 중심가와 시장도 북적거렸고 가난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고갔고 화려하게 장식된 새로운 상점들이 열리고 있었다. 짧은 기간 라말라에 많은 돈이 몰렸고, ‘돈을 벌려면 라말라로 가라’는 말이 생겼다.

    라말라에는 팔레스타인이 없다

    그러나 라말라의 번성 이면에는 가자가 있었다. 1년 전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규탄했고 유엔도 600페이지에 달하는 조사 보고서를 내며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규정했다. 이스라엘을 후원했던 미국과 여러 나라들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많은 돈을 팔레스타인에 줬다.

    하지만 그 돈은 가자로 간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있는 라말라로 왔다고 했다. 자치정부를 통해 가자 복구와 지원을 위한 돈이 집행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서안과 가자는 분단되어 있었기에 가자 지원은 전혀 실행될 수 없었다. 반면 자치정부와 연결된 라말라의 일부 사람들은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기회였다.

    팔레스타인 친구들은 이런 라말라의 변화를 결코 좋게 보지 않았다. 빼앗긴 땅에 살고는 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언제나 활기를 잃지 않았는데, 지금의 이 활기는 예전과 다르다고, 돈에 매몰되어 간다고 잘라 말했다. 가자는 침공으로 학살당했고 봉쇄로 고립된 채 말라가고 있는데 라말라만 돈의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었다.

    이는 팔레스타인 전체의 경제적 발전과도 상관없을 뿐만 아니라 라말라를 다른 모든 팔레스타인 지역과 구분짓는 것처럼 보였다. 팔레스타인 친구들은 지금의 라말라에서는 팔레스타인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쓴 웃음으로 덧붙였다.

       
      ▲ 라말라에 새로 들어서는 고층 주택 건물들. 언덕을 빼곡히 채워가고 있다. (사진=염창근)

    분리되는 가자

    이동 통제의 간소화는 서안에만 적용된다는 점, 경제적 혜택은 라말라에만 이루어진다는 점이 2009년의 팔레스타인에 변화된 지점을 보여 주는 듯했다. 이 간격의 한쪽 끝에 가자가 있다. 서안은, 특히 라말라는 가자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닌 채 어떤 간극을 만들며 분리되고 있는 듯했다

    이 분리감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차이 때문에 더 선명하게 실감하게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공간적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였지만 극히 작은 공간 안에서 나누어져 있었고, 넓고 시원하게 뻗은 이스라엘의 도로나 잘 정돈되고 여유로움을 느끼게 하는 이스라엘의 거리에서 갑자기 공간 이동이라도 한 듯 비좁고 무질서하고 낡은 팔레스타인 도시가 있었다. 두 공간의 명확한 대비는 깊고 넓은 골을 한없이 압축시켜 놓은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명한 분리는 팔레스타인 라말라와 가자의 분리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1년 전,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를 지닌 가자에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3주간 폭격을 가했다. 날벼락처럼 폭격을 당한 가자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하루만에 1천 명이 죽고 다쳤다. 22일간이나 지속된 폭격은 1400명이 넘는 사람을 죽게 했고 5천 명이 넘는 사람을 다치게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가자를 완전히 봉쇄했다. 전기와 물의 공급도 차단했고 최소한의 식료품과 의료품 반입도 완전히 중단시켰다. 그야말로 전멸 작전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자 사람들은 살아내기 위해 이집트로 좁은 땅굴을 파고 식료품을 구하는 생활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이제 이집트에서도 출입을 막았고 나아가 이스라엘은 이 땅굴에도 폭격을 가했다. 그렇게 1년, 국제사회의 규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감옥 같은 봉쇄는 전혀 풀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자의 희생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번성하는 라말라의 모습이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서안도 팔레스타인이었다. 분명 현실은 가자의 그것과 다르겠지만 분리를 넘어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영혼을 지켜갈 길을 찾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1년이 되는 날, 가자에서뿐만 아니라 서안의 모든 도시에서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행동들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팔레스타인에서 전해져 왔다.

    필자 염창근은 2002년에 병역거부 운동으로 수감생활을 했으며, 이후 군대와 무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다. 이후 이라크반전운동에 참여하며 평화운동을 시작했으며, 2003년에는 이라크 반전평화팀 사무국장을 지냈다. 이때의 경험이 그에게 중동 문제, 즉 중동의 평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는 현재 중동, 평화, 무기감축 등 분야에 관심을 갖고 두루 활동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평화바닥>, <전쟁 없는 세상>, <무기제로팀>, <버마 어린이교육을 생각하는 사람들> 등의 작은 모임들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또 평화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해 평화도서관 건립을 준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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