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 "예비타당성 조사가 무서워"
    4대강사업 위해 제도 무력화시켜
        2010년 01월 05일 09: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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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민자 인천공항철도가 문제로 떠올랐다. 승객수요가 예측의 7%에 불과해 부족분을 정부보조금으로 메워야 하는 국가재정 사고였다. 필자는 관련 단체들과 ‘국민대책위’를 구성하고 조사에 참여했으나 사실상 진상 규명에 실패했다. 자료 장벽을 넘지 못했다.

    인천공항철도엔 예비타당성 조사 자료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천공항철도는 총 4조원이 소요되는 역대 최고 민자사업인데도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았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법제화(1999. 4)되기 세 달 전에 현대건설컨소시엄을 우선협상자로 지정해 예비타당성 조사 의무를 피해갔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사업 시작 전에 타당성을 검사하는 것이지만 사후에 타당성을 재검증하는 자료로도 쓰일 수 있다. 지금은 이 자료가 없어 인천공항철도 문제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검증하기 어렵다. 참 영특한(?) 공무원들이다.(당시 정부측 협약 서명자인 철도청장은 현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이다)

    국가재정 낭비를 막는 예비타당성조사

    전문가들의 영역에 머물렀던 예비타당성 조사가 작년부터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일등공신은 이명박정부이다. 국가재정에 구멍을 내는 큰 사고를 친 것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지원이 300억원 이상 소요되는 대규모 사업의 타당성을 사전에 평가하는 제도이다. 이는 우리나라 국가재정체계에서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민들이 정부 사업 대부분이 예산 낭비 사업이라고 생각할 만큼 불신이 큰 상황이어서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사업을 추진하는 부처가 자체적으로 타당성 조사를 벌였다. 사업 추진자가 스스로 타당성을 조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사업방식이었다.

    결과는 우려대로였다. 1994~1998년 기간 진행된 자체 타당성조사 32건 중 타당성이 없다고 판명난 것은 단 1건에 불과했다. 이 1건은 울릉도에 공항을 건설하는 선심성 ‘엉뚱’ 사업이었다.

    그러나 예비타당성 조사가 도입된 1999년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1999년 이후 2008년까지 총 378건이 조사를 받았는데, 이 중 타당성이 있다고 판명된 사업은 216건(사업수의 57%, 사업비의 51%)에 불과했다. 추진 사업의 절반이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나올 만큼 정부부처 사업들이 부실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예비타당성 조사는 국가재정 낭비를 막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해 왔다. <표 1>을 보면, 2004~2008년 5년간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문제가 있어 재조사를 받은 사업수가 68개에 달했고, 이 과정에서 총 7조 6,635억원의 예산이 절감되었다.  

       
      

    MB, 예비타당성 조사 강화하겠다고 해놓고선….

    집권 초기 이명박 정부는 국가재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감세로 인한 재정부족분을 예산절감을 통해 보전하겠다는 작은 정부론의 정책 기조에 따른 것이었다.

    심지어 집권 초 마련한 ‘2008~2012년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는 그 동안 예비타당성 조사를 회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업비를 500억원 이하로 축소하는 사례가 있었다며, 이후 400~500억원 규모의 사업에 대해서도 ‘간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벌이겠다며 재정관리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집권 1년이 지나면서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이 제도가 4대강사업, 녹색사업 등 토목사업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서려는 자신에게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작년 3월 국가재정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원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는 재무적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운 문화재 복원사업, 국방 관련 사업, 공공청사 신축사업, 남북교류협력사업 등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표 2>에서 보듯이,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10. 지역 균형발전, 긴급한 경제ㆍ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하여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으로서 기획재정부장관이 정하는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면제하도록 했다. 이제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사업을 ‘국가정책사업’으로 간주해 예비타당성 조사 없이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개정은 4대강사업을 위한 노골적인 작업이었다. 정부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항목 중 긴박한 사업 추진이 요구되는 ‘재해복구 지원’을 ‘6. 재해예방․ 복구지원’으로 수정했다. 재해예방이 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말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백번 양보해서, 정부의 설명대로 준설, 보 설치가 재해예방이라고 해도, 이것이 6개월이 소요되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못할 만큼 긴박한 사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심지어 기획재정부는 시행령 개정 이후 ‘예비타당성 조사 운용지침’을 수정해 조사 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4개월로 단축했다. 불가피하게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아야하는 경우에도 졸속으로 조사를 벌이겠다는 속셈이다.

    4대강사업, 위헌·위법 공공연히 저질러

    이 개정 시행령은 법제 체계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시행령이 모법인 국가재정법이 정한 위임 범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재정법 제38조(예비타당성 조사)는 “기획재정부장관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대규모 사업에 대한 예산을 편성하기 위하여 미리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특정 기준 이상의 대규모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라는 취지이다.

    그런데 시행령이 규모 기준을 넘어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서 면제함으로써 모법의 의무 조항을 무력화하고 있다. 이는 국가 재정법의 위임 한계를 벗어난 것이어서 헌법 위반에 속한다.(대한민국헌법 제75조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4대강사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책사업들을 예비타당성 조사 없이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위기 대응, 지역균형발전 등 정책적 추진이 필요한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할 것을 공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2012년까지 총 50조원을 들여 추진하는 녹색뉴딜사업이 그것이다. 이 사업들에는 4대강사업 외에 녹색교통망 구축(철도건설, 환승시설, 자전거도로 등), 환경에너지타운 건설, 재해위험지구 정비사업 등이 포함되어 있다.

    결국 4대강사업 예산 22.2조원 중 핵심사업인 준설, 보 설치 등을 포함해 총 89%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4대강사업 예산이 국회에서 의결되지 않았는데도 공사를 착공하는 위법 행위도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지난 11월 26일 약 1만 명이 참여한 국민소송단이 4대강사업의 중단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보수적 법원이 어떻게 판결을 내릴지 알 수 없지만, 이 소송기간에도 4대강사업 공사는 진행될 것이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지닌 구조적 문제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예비타당성 조사는 우리나라 국가재정체계에서 이루어진 개혁 중 하나이다. 하지만 애초 이 제도 역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핵심 문제로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예비타당성 조사는 사업평가에서 재무적 가치만을 협소하게 반영할 뿐 외부경제효과인 사회공공적 가치를 무시한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그림 1>에서 보듯이, 경제성 분석, 정책적 분석, 지역균형발전 분석을 수행한 후 각 결과를 토대로 종합적인 결론을 내린다. 최종적으로 다기준분석수치(AHP: Analytic Hierarchy Process)가 0.5 이상이면 사업타당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이 때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경제성 분석이다. 정책적 분석, 지역균형발전 분석은 사업추진자의 주관성이 반영되기 때문에 사실상 경제성 분석만 통과하면 예비타당성 조사는 관문을 넘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성 분석에서는 비용편익 분석(B/C: Cost-Benefit Analysis)이 결정적 영향력을 지닌다. 이것이 1 이상이면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비용편익이 지나치게 재무적 가치로만 구성된다. 예를 들어, 비용에선 재정비용 외의 환경비용이 포함되지 않고, 편익에선 사회기반시설이 지니는 외부경제효과(사회공공 효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예비타당성 조사는 법률적으로도 한계를 지니고 있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수행하라는 의무만 명시할 뿐, 그 결과 처리에 대한 조항이 없다. 그 결과 2003~2007년에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평가수치(AHP)가 기준선인 0.5 미만임에도 사업이 강행된 것이 21개에 이른다.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의미있게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비타당성 조사의 진보적 개혁방안

    예비타당성 조사를 어떻게 올바로 살려낼 것인가? 예비타당성 조사는 진보운동에게 보수정권의 재정 낭비를 막고 이를 공론화할 수 있는 중요한 제도적 토대이다. 비록 정부의 입맛대로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 자료를 재검증하면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예비타당성 조사는 미래 진보정권이 운용해야할 재정관리 수단이다. 진보적 예비타당성 조사 방안을 요구하고 현실화해야 한다. 이후 진보운동의 과제는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예비타당성 조사를 무력화한 이명박 정부의 개악 조치를 원상 회복해야 한다. 4대강사업 국민소송단의 법적 대응활동과 별도도 법 개정 국민운동이 요청된다.

    둘째, 예비타당성 조사 주체의 개혁이 요청된다. 현재는 기획재정부장관의 요청에 의해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가 총괄하여 예비타당성 조사를 수행한다. 관련 조사팀에 정부 정책 기조와 다른 가치를 지닌 이해관계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예비타당성 조사 평가 기준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 지금은 비용편익 분석에서 ‘시장성’을 반영한 재무적 가치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반면 환경·인권·고용·지역사회 등 사회공공적 가치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 사업이 국가가 수행하는 사회적 시설임을 감안하면 공공성을 반영하는 대안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적용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넷째,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 결과를 무시할 수 없도록 관련 조항이 보완되어야 한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재조사 의무화, 심층 공청회, 고강도 예산심의 등 제도적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MB 임기 내내 예비타당성조사 개악 문제 제기해야

    앞의 ‘전략적 재정배분’에서도 강조하였듯이, 국가재정은 집권세력의 핵심적 국정운용수단이다. 또한 국가재정은 야당세력인 진보운동에게 정권의 국정운용을 비판, 견제할 수 있는 정치적, 계급적 계기를 제공해 준다. 진보운동은 MB 임기 내내 2008년 부자감세와 함께 국가재정에 큰 구멍을 낸 예비타당성 조사 개악 문제를 파고들어가야 한다. (다음호에서 “세금먹는 하마, 민간투자사업”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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