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크냐 마르크스냐?
        2010년 01월 05일 09: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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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스토리아 대논쟁』. 현재 5권이 출간된, 그리고 여력이 되는 한 앞으로도 계속 나올 이 시리즈물은 사실 그렇게 잘 알려진 책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들은 참 좋은 책들이다. 왜 그런가?

    우선, 그 취지가 세상을 향한 우리의 죽어버린 머리에 따끔한 자극을 준다. 저자는 현대 사회는 논쟁이 없는 사회며, 논쟁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라고 말한다. 사실 실용주의가 최고의 가치로 인정되고 효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논쟁이 사라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재앙의 그림자가 바짝 다가와 있지만 실감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크라테스의 등에’이며, 이제 우리 스스로가 등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등에와 사상가

    등에가 되기 위해 저자가 발견한 것은 주요 사상가들의 대논쟁이다. 그것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과 문제의식을 가득 담고 있는 인류 지식의 보고이다. 『히스토리아 대논쟁』을 통해 저자가 바라는 것은 단순히 많은 지식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스스로의 머리와 가슴으로 문제를 의식하고 분석하며 해결방식을 모색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독자적 사고를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이 논쟁의 일차적인 목적이다.

    다음으로, 지금/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알아야 할 주제 목록을 잘 뽑아냈고, 또 그에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줄 적합한 대가들을 잘 선정했다. 소크라테스 대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 논쟁과 사르트르 대 리오타르의 지식인 논쟁(1권), 롤스 대 노직의 정의론 논쟁과 겔렌 대 아도르노의 제도 논쟁(2권), 보비오 대 잉그라오․카터의 민주주의 논쟁과 롤스 대 켈젠-싱어의 시민불복종 논쟁(3권), 칸트 대 피터 싱어의 인간과 동물 논쟁과 도킨스 대 르원틴의 사회생물학 논쟁(4권) 로크 대 마르크스의 소유론 논쟁과 하이에크 대 케인즈의 시장과 정부 논쟁(5권) 등이 그것이다.

    셋째, 책의 구성이 신선하다. 저자인 ‘박쌤’이 준비한 핵심 질문과 주요 쟁점에 대해 입장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대가들의 주고받는 식의 ‘맞짱 논쟁’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좋은 논의와 논쟁은 사태를 명료하게 만들고 문제를 선명하게 부각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보다 넓고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참여와 실천을 자극하는 민주주의의 기관차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논쟁은 이기고 지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 서로를 새로운 영역으로 안내하는 축제로, 중요한 것은 쌍방향의 열린 소통이다. 그랬을 때 좋은 토론은 좋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지를 제대로 드러내는 것은 질문의 설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 대논쟁 시리즈는 그에 부족함이 없다.

    논쟁은 민주주의의 기관차

    넷째, 어려운 주제임에도 논지의 전개가 꽤 쉽다. 핵심을 찌르는 질문과 중간중간 던져지는 박쌤의 날카로운 지적은 대가들의 논쟁을 풍부하게 하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운데 논쟁의 바다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한다. 세상과 인간의 삶에 대한 저자의 깊은 사색과 지적인 학습 내공이 없었다면 아마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가 가장 많이 공을 들였다는 제5권의 <로크 vs. 마르크스의 소유권 논쟁>을 통해 하나씩 짚어나가 보자. 소유의 문제는 우리 삶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다양한 사회의 성격을 규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다. 예컨대 한국 사회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소유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는 필수적이며, 현실의 불평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모색에서도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박쌤에 의해 초대된 대가는 로크와 마르크스이다. 박쌤은 크게 두 부분, 즉 사적 소유는 근면에 기초하는가 아니면 착취에 기초하는가와, 인류가 지향해야 하는 바람직한 소유 방식은 무엇인가의 주제로 나누어 접근한다.

    이들의 논쟁은 불평등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로크의 말대로 소유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신성한 기본권인가, 아니면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가진 자들이 휘두르는 무기인가, 누가 인류의 미래에 대해 진정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가를 제기하면서 열띤 논쟁을 시작한다.

    소유의 근원은? 불평등의 원인은?

    로크는 이성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사적 소유권의 모색하면서, 소유론에 기초를 두고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근대적 주체를 제시한다. 이에 마르크스의 딴지걸기가 시작된다. 로크의 소유론이 신분적 소유나 착취에 대해서는 반론이 될 수 있겠지만,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한 자본가의 끝없는 소유를 정당화하는 길을 터준,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착취를 합리화시켜주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소유 문제를 둘러싼 이들의 논쟁은 박쌤의 개입에 의해 사적 소유에 의한 독점의 문제, 시초 축적과 인클로저 운동의 관계, 상속(권)의 문제, 소유권과 평화 및 폭력의 문제, 소유권과 개인의 자유와의 관계 등의 문제로 확장되어 나간다. 이어 누가 틀렸는지 옳았는지 판정 없이 논쟁의 주제는 인류가 지향해야 하는 바람직한 소유 방식은 무엇인가로 이어진다.

    마르크스는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 사이의 충돌이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모순이라는 전제 아래, 바람직한 소유 방식으로 소유의 성격을 사회적인 것으로 바꾸어 생산과 소유의 성격을 일치시키는 것, 즉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소유의 사회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어느 누구에게 사적 소유를 폐지할 권리가 있는가’를 물으며 로크는, 사적 소유의 폐지란 사회가 개인의 것을 약탈하는 것이며, 그것은 소유를 본질로 하는 인간(인간은 소유하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인간을 사회로 종속시키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맞선다.

    마르크스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사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를 구분하지 않는 채, 사적 소유의 폐지가 마치 개인적인 소유물 일체를 다 앗아가버리는 것으로 보는 것은 무지에 기초한 것 아니면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선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국유화부터 임노동자기금까지

    논쟁은 역시 박쌤의 탁월한 개입에 의해 국유화 문제와 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국가의 공기업화를 둘러싼 쟁점, 노동자 경영 참여와 공동결정의 제도, 주식회사 제도와 종업원 지주제, 스웨덴의 임금노동자 기금을 통한 자본의 사회화 추구 전략, 협동조합 방식의 소유형태 등 다양한 소유 방식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정보에 대한 소유권 문제도 짚어진다. 마르크스와 로크의 고민보다도, 마르크스와 로크의 이름을 빈 박쌤의 고뇌와 성찰이 더 크게 다가오는 대목들이다.

    사적 소유권의 정당성 문제로 시작해서 역사적 경험 속에서 나타난 다양한 소유방식에 대한 평가, 그리고 대안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정리처럼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는 논쟁이었다. 이 책은 소유론과 관련한 그동안의 논쟁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우리가 새롭게 고민해야 할 과제들을 제시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해하기 쉽고 또 재미있기 때문이며, 그렇다고 가벼운 것이 아니라 저자의 사려깊은 사색과 성찰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ilovezorva’를 아이디로 사용하는, 참된 자유를 꿈꾸는 그의 사색과 성찰은 로크와 마르크스의 이름과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소유문제에 접근할 때는 언제나 현실의 인간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성적인 인간의 틀을 만들어 현실의 인간을 이 틀에 맞추려고 한다. 현실의 인간은 자신을 위해 일하고, 그 성과물을 소유하고 사용할 때도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로크)

    “기존 사회주의 사회가 붕괴한 현실에서 자본주의적 소유를 넘어서는 소유 문제를 다루는 것 자체가 많은 편견과 싸우는 과정이다.”(마르크스)

    “무언가를 소유하고, 능력을 갖추고, 가치를 지니는 것, 이런 것은 우리의 평안을 깨뜨리고 괴롭힌다. 소유가 우리를 괴롭히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궁핍을 모르게 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더욱 크게 부풀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물이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할 때, 우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더군다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착취해서 재산을 증식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은가.

    나는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은 능력을 지니고, 더 나은 가치를 지니고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런 욕망은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애정이 결핍되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이다.”(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끝으로 저자의 준비된 프레임 속에서 대가들의 논쟁이 전개됨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들의 풍부한 상상력의 발동에 혹시라도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염려 아닌 염려를 살짝 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금/여기에게 전개되는 이야기들을 구체적인 사례로 좀 더 많이 다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염려와 아쉬움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맞짱 논쟁의 또 다른 향연을 가져올 저자의 다음 책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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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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