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 돈 잔치, 덩달아 춤만 출 건가?
    사상최대 실적에 기본급 동결이라니
        2010년 01월 04일 03: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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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 현대차의 노사가 잠정합의안을 도출하고 24일 조합원 총회에서 62.21%의 찬성으로 가결됨으로써 2009년 임단협이 마무리되었다. 지부 집행부의 중도 사퇴와 교섭 중단, 신임 집행부 선거와 12월 교섭재개 등 이번 현대차 교섭은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더욱이 소위 ‘실리주의’를 표방하는 이경훈 집행부가 이번 교섭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뜨거웠다.

    불가피한 선택인가? 백기투항인가?

    그러나 핫이슈인 ‘주간연속 2교대제’에 대한 협의를 2010년으로 미룬 이번 교섭은 어떻게 보면 아주 싱겁게 마무리되었다. 합의안의 주요 내용은 기본급 동결, 성과급 300%, 일시금 500만원, 무상주 40주 외에, 몇 가지 단체협약 조항의 갱신, 사회공헌기금 40억 출연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번 교섭은 재벌의 돈 잔치에 우리가 덩달아 춤을 추는 꼴이 되고 말았다.

       
      ▲ 사진=금속노동자

    이에 대해 보수언론들의 반응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교섭과정에서 ‘노조가 파업을 무기로 너무 많은 성과급을 요구한다’고 떠벌리던 보수언론들은 이번 합의가 도출되자 마자 ‘지난 십수 년간 파업으로 점철된 단체교섭의 역사를 마무리하는 최초의 무쟁의 합의’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현대차에도 새로운 노사관계의 기초가 만들어졌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배부른 노조’, ‘귀족노조’라고 욕을 하면서 매년 과도한 임금인상요구를 들먹이던 보수언론이 왜 이번 교섭에 대해서 이렇게 호의적인 것일까?

    한편 현대차 합의안에 대한 지부 내부의 반응도 상당히 엇갈린다. "연내로 타결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조건과 기업 실적에 대한 조합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평가와 함께, "신임집행부가 사측의 물량 공세에 백기투항한 결과"라는 비판이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지부 집행부의 입장이나 현장 제조직의 비판 모두 이번 교섭의 성과를 성과급과 총액지급 수준과 연동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근본적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이번 교섭을 되돌아보면서 현재 재벌 대기업 노조운동이 봉착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를 심각하게 반문해보아야 한다.

    현대차 실적, 현대차 직원들만의 몫인가

    우리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성과배분에 대한 문제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2009년 상반기 이미 매출 14조, 경상이익 1조 3천억을 달성하고 2009년 말까지 3조 이상에 이르는 경상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상 최대의 경영실적에 대해 노동자들이 이에 합당한 성과배분을 요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2009년 현대자동차의 실적이 오직 현대자동차 직원들만의 노력과 헌신으로 달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원하청업체와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부품단가 인하, 자동차산업의 위기적 상황을 빌미로 한 다양한 세제 혜택, 신차 출시와 연동된 가격 인상, 쌍용차 사태로 인한 독점효과 등 다양한 요인들이 이번 성과에 직접적인 기여를 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희생과 지원 속에서 달성된 성과라고 한다면, 적어도 노동조합은 이번 교섭에서 재벌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좀 더 강하고 명확하게 요구했어야 했다. 물론 사회공헌기금 40억에 대한 출연이 합의되었지만, 사실상 회사의 홍보성 사회공헌 활동에 조합이 ‘얼굴마담’ 격으로 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또한 조합이 이번 교섭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독자적인 사회연대방안을 창의적으로 제안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적어도 성과급의 0.1%라도 지난 몇 년 동안 조직적으로 결의하지 못한 민주노총 비정규기금에 출연하거나, 주식수령액의 일부라도 지역 중소영세상인을 지원하기 위한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대체하는 방식 등 다른 방안을 지부가 강구했다면 사회적 고립이라는 재벌 대기업노조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기본급의 동결 문제는 심각하다. 현대차 사용자는 기본급의 인상이 어렵다는 이유로 정부의 임금동결 방침과 다른 재벌들과의 공조를 강하게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우리에게 떠넘기기 위한 책임회피에 불과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현대차와 같은 사상 최대 실적을 낸 기업에서 기본급조차 인상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과연 어느 기업에서 임금인상요구를 할 수 있을까?

    기본급 동결, 무상주 수령 심각한 결과 가져올 것

    더욱이 기본급 인상은 노동자의 생애근로기간에 따른 안정적 생활임금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작년 기본급 인상수준을 고려하고 정년까지 17년이 남았다고 가정할 때, 이번 합의안의 생애임금 손실 수준은 1인당 약 3천만원에 이른다. 결국 올해 한 몫을 잡기 위해서 안정적 소득원천을 포기한 꼴이 되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무상주의 수령이 관례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부터인가 현대차 자본은 임금협상을 통해 확정된 성과급의 일부를 주식으로 지급하고 있다. 여기에는 노동자를 종업원으로 실질적으로 포섭하기 위한 자본의 논리가 숨어 있다. 많은 조합원들이 주식 수령을 통해 어쩔 수 없이 현대차 주가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는 다시 주가 변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노조활동에 대해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고 결국 노동자로 하여금 투자자의 ‘정체성 함정’에 빠지도록 만든다. 이러한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분 확보를 통한 경영참가와 통제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집단적 주식소유 방식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든지, 아니면 무상주 수령에 대한 전면적인 제고가 요구된다.

    이와 같이 이번 현대차 교섭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다양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적어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온 고질적인 관행과 관성을 깨기 위한 모색은 멈출 수 없다.

    특히 올해는 사회적으로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제도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노사관계 지형이 형성되고 현장에서는 지난 수년간 지체되어온 주간연속 2교대제의 실현가능성 여부가 결정될 수밖에 없는 해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현대차 조합원들이 단지 ‘현장의 실리’만이 아니라, 금속노동자의 맏형으로서 ‘노동조합의 단결과 투쟁’을 선도하는 모범을 보이는 모습을 새해 벽두에 간절하게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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