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선진화된 전철역 & 슬픈 풍경들
    2010년 01월 04일 02: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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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4일 새해 첫 출근날 아침 8시 부천 소사역.

20~30분을 기다려 들어오는 전철은 문마다 겨우 다섯 명 정도만을 태운채 떠나버리고, 남겨진 수백 명이 넘는 이들은 암담한 표정으로 기약없이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이 떠날 때마다 사람들은 애타는 목소리로 회사와 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연을 전한다.

비명 울려퍼지는 출근길 부천 소사역

다시 들어오는 전철도 맨 앞줄의 서너 명만을 태운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진다. 전철에 몸으로 돌진하지만 이내 튕겨져나간다. 앳된 얼굴의 학생들은 곧장 전철타기를 포기하고 떠난다. 그러나 함부로 출근하지 않으면 ‘해고 수치’가 높아지는 ‘직딩’들의 얼굴은 점점 굳어간다.

   
  ▲4일 아침, 새해 첫 출근 길 부평역 모습.

"오늘 출근하지 말고 쉬고 낼 나오세요."

이런 맘좋은 ‘사장님’을 만났다면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방구석에 누워 모처럼의 휴식을 보낼 텐데… 그러나 오늘 일하지 않으면 하루 일당이 깎이고, 앞으로 계속 출근하지 못할까 두려운 노동자들은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발발 동동 구른다.

아침 10시 역곡역.
서울로 가는 직통열차가 한참을 멈춰서 있더니 열차가 더 이상 운행할 수 없다며 모두 내리라고 한다. 왜 운행하지 않는지, 무슨 사고가 났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다. 전철은 단번에 수백 명의 노동자를 플랫폼에 쏟아놓고 불을 꺼버린다. 발디딜 틈조차 없다.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한다.

"중부지방에 내린 폭설로 인해 전철 운행이 지연되고 있사오니, 급한 용무가 있으신 분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이 10분 간격으로 나온다. 녹음된 듯 똑같은 내용이다. 왜 직통열차는 멈춰 선 건지, 언제 출근을 할 수 있을지, 언제쯤 전철을 탈 수 있을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자동화, 선진화 그리고 탈인간화

역곡역 역무실 앞. 한 승객이 항의한다. 왜 열차운행이 중단됐는지, 어디서 사고가 났는지 묻지만 철도공사 직원은 "잘 모르겠다"는 말과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승객들의 항의는 계속되고, 전화벨은 수도 없이 울린다. 전화를 받아 상황을 설명할 사람도 없다.

한 여성노동자가 들어온다. 전철이 오지 않아 제때 출근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적은 ‘확인증’을 끊어달라고 한다. 애절한 표정이다. 뉴스만 봐도 알 텐데, 그녀의 ‘사장님’은 ‘지각 사유’를 적은 확인증을 꼭 가져와야 한다고 했을까? 서글프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 눈보라와 추위에 기운을 잃어버린 아주머니, 갑자기 내린 전철역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역무실로 찾아든다. 도움을 요청하고, 하소연하고, 항의하고, 따뜻한 물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해서다.

그러나 전철역엔 이들을 맞이할 사람이 없다. 모두 ‘자동화’되었다. 정부와 철도공사 말대로 ‘선진화’되었다. 사람을 쫓아낸 그 자리에 ‘매표기계’가 말 없이 서있다.

몸이 불편한 노인이 오면 나와서 부축해주고, 길을 묻는 어린 소년에게 친절히 전철타는 방향을 알려주고, 역무실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던 그 많은 사람들을 어디로 보냈을까? 물어볼 사람도, 하소연할 사람도, 항의를 받을 사람도 없는 전철역, 폭설로 인한 지각보다 더 서러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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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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