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 없는 통합은 역사적 퇴행"
        2010년 01월 02일 11: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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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의 정책위 의장이기도 한 성공회대 조현연 교수가 우리 나라 진보정당운동사를 집대성한 『한국 진보정당 운동사』를 펴냈다. 

       
      ▲조현연 의장.(사진=이재영) 

    이 책은 한국 정치를 전공한 학자가 집필한 본격 연구서라는 의미뿐 아니라, 그 필자가 1997년 국민승리21 이래의 진보정당운동 현장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과거 진보정당운동의 실패를 정파, 리더십, 제도의 측면에서 고찰하고 ‘진보의 재구성’이 이 세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진보정당 재통합에 대해 “과거 성찰을 통한 혁신진보, 일상에 뿌리 내린 생활진보 없는 통합은 왜 분당했는지,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은폐하고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역사적 퇴행”이라고 주장한다.

    아래는 지난 해 12월 30일, 여의도 진보정당 중앙당사 근처 카페에서 이루어진 조현연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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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당운동의 학문적 복권이 목표

    – 이전에 내놓은 『한국 현대정치의 악몽, 국가폭력』, 『20세기 한국의 야만』에 이은 책이다. 이번 책을 『한국 진보정당 운동사』로 한 이유나 계기는 무엇인가?

    = 책 서문에도 썼는데, ‘진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과 함께 하기 어렵게 되고, 진보정당이 유력한 대안이 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과거로부터 배우자는 고민이 1차적이다. 그리고, 한국정치사를 전공하는 학자로서 진보정당운동을 한 분들의 희생 아픔 실천과 국가의 억압, 대중의 침묵을 정리해 진보정당운동을 학문적으로 복권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쓴 둘째 의미다.

    주요한 시점마다 왜 우리가 현명한 판단을 해오지 못했을까 반추해보는 것이 세 번째 의미고, 지난 십수 년 내 개인의 경험을 정리해보자는 의미도 있었다.

    원래는 2004년 총선 때까지의 진보정당사만 쓰려 했는데, 이후 분당 상황이 벌어져 그것까지 포함시키느라 출간이 2년 늦어졌다.

    – 관찰자가 아니라 적극적 참여자, 어찌 보면 진보정당운동의 주도자인데, 객관적 연구에 장애가 되는 일이 있지는 않았나?

    = 2004년 총선 때까지 내용을 쓰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그 이후의 정파 갈등, 2007년 대선, 분당 과정에 대해 쓸 때는 심리적 고통이 컸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당 밖의 관찰자라면 이 부분을 쉽게 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10여 년 동안 공동의 경험을 한 사람들을 비판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나는 선도탈당파로서 진보신당이 크게 성공하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이나 비난도 듣곤 하는데, 내 정치적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정치적 책임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 책의 주요 내용과 핵심 주장을 이야기해 달라.

    = 진보정당운동을 복권시키기 위한 연구가 이 책의 내용이다. 왜 과거의 진보정당운동이 제대로 안 됐을까? 첫 번째가 국가의 억압, 둘째가 내부의 문제 때문이다. 이 책은 주로 그 내부 들여다 보기다. 진보정당 내부의 가장 큰 문제는 보수야당에 대한 태도다. 보수야당과의 관계는 진보정당의 계륵과 같다. 셋째, 진보정당운동 내부의 양대 흐름, 통칭 NL-PD는 왜 함께 힘을 합치지 못했을까에 대한 고찰이다.

    진보정당 내부 들여다 보기

    이런 어려움들 때문에 진보정당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을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단 한 번의 예외는 2004년 총선 직후 지지도가 20% 가까이 올라갔던 짧은 시기였는데, 결국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앞서 이야기한 어려움들이 분당으로까지 나아갔다.

    정파 자체가 부정적이지는 않다. 민주노동당 안에서 정파가 부정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NL 전반의 문제가 아니라 NL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주사파의 종북주의가 정파의 건강성을 살리지 못하게 했고, 그 반대파인 PD 역시 비슷했다.

    정파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정파 스스로 성찰해야겠지만, 리더십의 문제도 중요하다. 좋은 리더십이라면 정파의 부정적 기능을 최소화하고 순기능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과거의 진보정당운동은 좋은 리더십 창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제도 문제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제도 실패가 부정적 요소를 최대화시킨 것이다.

    새 진보정당의 과제인 진보의 재구성은 정파, 리더십, 제도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에 대한 것이다.

    – 세 가지 요소에 이념은 포함되지 않는가?

       
      ▲사진=이재영

    = 정파를 이념이라 볼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진보의 재구성은 이념의 다양성이다. 지금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라면 각자의 이념과 노선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하나의 길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시대와 호흡하지 못하는 이념

    물론 좋은 이념과 나쁜 이념이 있겠지만, 지금 더 큰 문제는 이념 자체가 아니다. 주사파를 예로 들자면 주체사상 자체의 문제점보다 그들이 시대와 호흡하면서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이 더 크다.

    사회주의나 사민주의가 새 이념에 시사점을 주겠지만, 그 자체를 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념 논쟁을 다시 하려면 무슨 ‘주의’냐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지향할 것이냐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

    진보신당이 내세우고 있는 네 가치 – 평등, 생태, 평화, 연대가 새 가치 정립의 논의 지점일 수도 있다. 이 네 가치 중 굳이 어떤 것을 우선 꼽아야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아직 평등을 중요시한다.

    – 과거의 진보정당사가 주는 교훈으로 볼 때 새 진보정당운동의 활로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 진보정당은 민중, 민주, 민족, 노동자 등의 여러 화두를 이야기했지만 지식인의 자기 만족에 그친 경향이 있다. 일상에 뿌리 내린 생활진보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지역이 대두된다. 태어나고 자라고 생활하는 공간인 지역에서는 기능적 구조물인 민중이나 민족이 쉽게 다가오기 어렵다. 기능적 구조물인 민중이나 민족이 지역과 결합하도록 해야 한다. 단지 지역활동을 열심히 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역이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다시 봐야 한다.

    과거 성찰을 통한 혁신진보, 일상에 뿌리 내린 생활진보에 기초해야 새로운 진보정당, 통합진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는 것이다. 혁신도 생활도 없이 민주노총식 대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혁신과 생활에 뿌리내리지 못한 통합은 무의미

    – 책의 내용에 비추어 요즘의 선거연합 논의를 평가한다면 어떤가?

    = ‘반MB’라는 것은 진보신당의 의지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다. 반MB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반MB냐가 문제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의 ‘묻지마 반MB’는 옳지 않다.

    친노세력 국민참여당은 김대중 5년, 노무현 5년 동안 무엇이 잘못됐는지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잘못한 것보다 잘한 게 많다”며 진보정치 세력에게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등장했는가를 묻고 싶다.

    참여정부 5년의 결과가 이명박 괴물 정부의 출현이다. 친노세력과 민주당은 서민들 먹고 사는 문제를 내버려두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몰두하여 양극화를 부른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혁신해야 ‘반MB 대안연대’에 들어올 수 있다.

    진보정당끼리의 선거연합에 관련하여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통합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퇴행이다. 이런 통합은 왜 분당했는지,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은폐하고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현 시기의 선거연대는 당 통합과는 관계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 박사논문에서도 그렇고 이번 책에서도 박노해의 <참된 시작>을 인용해놓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패배 인정이 참된 시작의 자양분

    = 90년대에 한국정치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비합법 쪽과 간접적 관계를 맺었었는데, 마침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학술운동이 어려움에 처하고 하면서 실패나 패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었다. 그러다가 박노해의 시를 보고 패배와 실패가 새로운 시작의 자양분이 될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시간이 많이 지나 분당 과정, 내 개인적으로는 10년의 패배, 함께 했던 사람들의 패배를 겪으며 그 시가 다시 떠올랐다. 우선, 실패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 역사를 새 디딤돌로 삼자는 마음가짐이다.

    – 학자로서 다음 연구 계획은 뭔가?

    = 박사과정 때 출판사하는 후배와 이야기하다 세 가지 주제로 책을 내고 싶다고 얘기했던 적이 있다. 부패, 폭력, 진보가 그 세 주제다. 맨 처음 『한국 현대정치의 악몽, 국가폭력』 등 폭력에 대한 책을 냈고, 이번에 진보정당에 대한 책을 냈다. 부패가 남았는데, 내년 정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권력형 부패를 다루는 책을 절반 정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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