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정권이 아니라 노동운동"
        2010년 01월 01일 05:32 오후

    Print Friendly

    깊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엄동설한의 깜깜한 밤에 맨발로 길을 잃고 헤매는 형국이랄까? 모든 이들이 노동의 위기를 감지하고 큰소리로 외치고 있지만 길은 보이지 않는다. 답답하고 혼란스러웠던 2009년을 지나면서, 그리고 한바탕 폭풍이 불 것만 같은 2010년을 맞는 느낌이 그렇다.

    2010년, 한바탕 폭풍이 불어올 것 같은

       
      ▲필자

    2009년 우리 노동사회는 암울했다.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대규모의 구조조정과 해고사태가 속출했지만 IMF 외환위기 때와 달리 사회적 쟁점조차 되지 못했다. 특히 비정규노동자와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그리고 청년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가 더욱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 상황에서 ‘비정규직 100만 해고대란설’을 앞세워 비정규 법을 개악하려 했던 이명박 정부의 후안무치(厚顔無恥)는 사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약자에겐 무관심하고 심지어 적대적이었던 우리사회의 현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여름을 지나면서 대통령의 지지도가 더 올라갔던 것을 잊을 수 없다.

    집권 2년차의 이명박 정부는 올해 들어 수구정권 본래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 정부는 쌍용차 노동자의 목숨을 건 투쟁조차도 가볍게 무시했다. 거꾸로 쌍용차 진압을 계기로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했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에 대한 몰상식한 억압을 시도하는 한편, 철도노조에 대해서는 군사정권의 수법인 ‘파업유도 공작’을 서슴없이 실행하기도 했다.

    노동탄압의 칼날은 전체 민주노조운동과 민주노총에 맞춰져 있었다. 연말의 복수노조, 전임자임금지급 법 개정 논란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민주노조의 토대를 허물겠다는 권력과 자본의 뚜렷한 의지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아니라 노동운동이다. 김대중,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계승한 현 정권의 반(反) 노동자성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민주노조운동의 심각한 구조적 위기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아니라 노동운동

    연초부터 민주노총 내부에서 성폭력 사태가 불거졌고, 지도부는 또다시 사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거치면서 잠시 불었던 노동운동 혁신의 바람은 여름을 넘기지 못했다. 비정규직 논란, 쌍용차 파업, 공무원노조 철도노조 탄압국면을 거치며 민주노조운동의 실력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현장의 투쟁동력이 바닥인 상황에서 지도부가 사용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한국노총과의 연대는 그 귀결이자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총파업투쟁을 공언했던 한국노총 지도부의 어용적 행태가 역설적으로 민주노조의 위상을 세워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진보정당에 대한 ‘묻지마 통합요구’도 대안을 찾지 못한 민주노총의 무리수를 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서 들려온 어느 완성차노조의 무쟁의-임금동결과 1천만 원이 넘는 성과격려금 합의 소식은 암울한 2009년의 노동사회를 더 어둡게 만들었다.

    2010년, 올해는 작년과 다른 한 해일 수 있을까?
    그리고 노동운동은 문제의 실마리를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할까?

    노사관계 반동화 본격 진행

    이명박 정권은 이전 정부보다 더 뚜렷하게 신자유주의 반 노동자 정권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이른바 ‘노동개혁이나 노동민주화 의제’의 제약에서 해방된 첫 번째 신자유주의정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도 실용주의’라는 정치적 포장이나 ‘2010 지방선거’에 대한 정치적 고려가 노동정책의 변화를 불러올 여지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집권 직후부터 공언했던 노사관계의 반동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작년에 국가가 집중했던 공공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 시장화 공세와 노조 공격이 올해에는 민간부문으로 확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정권은 독점재벌, 전경련의 시대 역행적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고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정리해고 요건 완화, 파견노동 대폭 확대, 파업 시 대체노동 허용, 유니언 숍제도 삭제, 법정퇴직금 폐지 등이 포함될 것이다.

    또 노사관계 정책은 무엇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조운동, 그 핵심 사업장에 대한 파괴공작으로 집중될 것이다. 이는 공무원노조에 대한 탄압, 그리고 최근의 복수노조, 전임자임금지급 금지에 대한 정책들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요컨대 객관적 조건에서 본다면 2010년의 노동정치는 보다 암울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 환경과 국가의 정책 방향에서 변수를 찾을 수 없다면 남은 문제는 다시금 노동운동일 수밖에 없다. 산별노조들과 민주노총 새 집행부의 전략적 대응이 유일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년까지 민주노총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진단은 충분히 이루어졌다. 이제 남은 문제는 민주노조의 지도부, 활동가들이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에 나설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노동운동, 새로운 전략의 수립과 실천

    지금까지 민주노조운동은 자신의 변화로부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책임은 외부의 적에게 있으며 자신의 변화 없이 외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어왔던 것이다. 국가와 자본이 그 일차적인 적이며, 때로는 보수야당, 시민사회운동이나 분열한 진보정당도 그렇게 인식되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노동정치와 그 결과는 이런 방식의 대응이 성공할 수 없는 전략적 오류임을 누누이 보여줬다.

    민주노조들은 노사정위 등 3자 합의기구나 보수야당에 대한 정치적 기대가 해답이 아니란 점을 충분히 확인한 바 있었다. ‘진보정당 통합’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정치적 의존도 마찬가지였다. 또 민주노총 중심의 전통적인 총파업 선언과 상층투쟁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불도저 방식으로 밀어붙이는 정권과 자본에 대해 대중동원 방식의 저항투쟁 위주로 대응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효력이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이 모든 것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보다 명료하게 확인되고 있다. 문제는 민주노조운동이 스스로 혁신하고 변화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지난 20년간의 전투적 조합주의, 기업별 경제주의의 관성을 끊어내고 새로운 전략적 방침을 내부로부터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무늬만 산별’을 넘어서서 기업별 노조의 성채를 허물기 위한 실제적, 노조 내부적 투쟁에 산별노조의 활동가들이 나설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전략적 전망을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지도부가 제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 것이다. 또 진보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의 낡은 고리를 끊어내고 스스로 조합원들의 낮은 정치의식과 씨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 것이다.

    올봄 출범하는 민주노총 새 지도부 앞에는 엄청난 무게의 역사적 과제가 놓여있다. 전통적인 지도부 역할을 충실히 답습하는 지도부가 된다면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선거나 정당이라는 손쉬운 우회로를 찾아서도 안 된다. 국가와 자본에 맞서기 전에, 그리고 우회로를 찾기보다 내부의 혁신을 먼저 꾀하는 전략적 변화의 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

    총연맹 지도부의 전략적 혁신은 산별노조의 핵심 활동가들의 변화된 관점과 실천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필요한 덕목은 ‘단식농성’과 ‘구속불사’의 용기만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수천 명의 활동가들, 단위 민주노조들을 전략적 혁신에 동참시킬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일 것이다.

    민주노조는 여전히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민중의 기본생존권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다. 민주노조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 한 새벽은 올 것이다. 올해는 그 등불에 새로운 심지를 꽂고 방향을 다시 틀어잡아 멀리 비추어 새벽을 기다리는 희망의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