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보다 힘센 자본의 고집
By 나난
    2009년 12월 30일 11: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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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이 끝나가는 지금,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연말연시를 차가운 길에서 보내는 이들이 있다. 끝나지 않은,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는 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중에는 지난 2005년부터 1천일이 넘게 싸워온 기륭전자 노동자들도 있고, 올해부터 싸움을 시작한 예인선 노동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지난한 투쟁을 이어가며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들에게 집중됐던 사회적 이목이 새롭게 투쟁에 뛰어든 또 다른 노동자들로 옮겨가는 동안에도 이들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일할 권리인 ‘고용을 보장’하면 쉽게 끝날 이들의 싸움은 왜 이토록 끝이 나지 않는 걸까.

1. 예인선 노동자

   
  ▲ 사진=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지난 23일, 노동조합을 ‘인정’해달라며 울산 예인선 노조원들이 울산시내를 돌며 삼보일배로 호소에 나섰다. 어느 덧 다섯 달, 지난 여름 노동조합을 결성한 이후 사측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하고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나온 것이다. 

1000t급 이상 중·대형 선박이 부두에 안전하게 접안하거나 출항하도록 돕는 예인선 노조원들, 특히 선장들은 그동안 노동자 아닌 노동자로 살아왔다. 항만예인선 노조가 지난 8일 발표한 예인선 노동자들의 근무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34.7%가 1주일에 15시간 이상 연장근무를 하고 있었고 79.6%는 제대로 된 휴일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선박사들은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자 “선장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면서도 이들을 고용주의 입장에서 ‘해고’했다. 말 그대로 형용모순인 셈이다.

더욱이 지난 8일 울산지법이 ”선장은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가 아니다”라며 노동자임을 분명히 했고, 24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울산항 예인선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예인선 선장을 해고한 것은 부당해고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사측은 막무가내였다.

예인선 노동자들, 특히 울산지부는 여전히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울산남구가 21일 째 단식농성을 벌이며 이들이 설치한 천막을 강제로 철거하기도 했다.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는 그 한 마디가 이들을 장기투쟁의 길로 접어들에 만든 것이다.

2. 공공노조 국민체육진흥공단비정규직지부

   
  ▲ 사진=공공노조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지난 2007년 말, 비정규직 노조가 설립되자 비정규직 노조 간부 6명의 계약을 해지하고 조합원 250여명을 원거리로 인사 발령했다가 지난해 9월 ‘부당전직 및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전원 복직시켰다. 하지만 불과 3개월 만에 또 다시 이들을 포함한 14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해고판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200여일이 넘게 투쟁해 온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또 다시 차디 찬 거리로 내몰렸고 공단은 이들을 해고한 직후 보란 듯이 66명의 행정인턴을 채용했다. 이 과정에서 동료였던 한국노총 국민체육진흥공단 일반노조는 이들의 해고를 사전에 동의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그렇게 이들의 가슴을 또 한 번 무너졌다.

해고자들은 절망에 빠졌고, 남은 자들도 사측의 외면에 가슴을 졸이고 있다. 비정규직 지부는 사측과 단체교섭을 요청했지만 사측은 비정규직지부가 ‘복수노조’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결국 지난한 소송의 길에 접어들었고, 지난 7일, 대법원이 공단에 ‘지부와 성실하게 단체교섭에 응하라’고 판결했지만 사측이 비정규직과 ‘성실한’교섭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3. 발레오공조 코리아

   
  ▲ 삭발 중인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이택호 지회장 (사진=금속노조)

일본과 프랑스까지 다녀왔지만 발레오 공조 코리아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은 철회되지 않고 있다. 전 세계 28개 나라에 125개 공장과 6만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해왔던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10월 21일, 충남 천안에 위치한 자동차 에어컨용 콤퓨레셔(공기압축기) 제조업체인 발레오공조 코리아는 “노조가 강성이라 물량 확보가 어렵다”며 전체 직원 187명 가운데 92명을 구조조정하고, 남은 인원의 실질임금을 50% 이상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30일에는 공장 폐쇄를 일방 통보했다.

하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지난 8월 사측이 한 차례 위와 같은 내용의 구조조정안을 노조에 통보했을 당시, 노조는 “고용이 보장된다면 모든 것을 열고 논의하겠다”며 열린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회사는 “다른 안은 없다”며 25차례의 교섭을 사실상 결렬시켰다.

노동자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지난달 23일에는 발레오공조코리아의 청산을 결정했던 일본 발레오본사에 교섭을 요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원정투쟁을 떠났고, 지난 8일에는 본사가 있는 프랑스로 원정투쟁을 떠났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대기업은 노동자들에게 묵묵부답이었다.

4. 콜트콜텍

   
  ▲ 콜트콜텍 일본 원정투쟁단이 지난 11월 길거리에서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콜트콜텍 블로그)

예술가의 손에서 아름다웠던 기타가 자본가의 손에서 노동탄압의 도구로 탈바꿈했다. 발단은 세계 기타시장의 30%를 차지하는 콜트콜텍이 2007년 경영악화를 이유로 전체 생산직 노동자 160명 중 56명을 정리하면서 부터다. 2010년을 눈앞에 둔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그렇게 천 일이 넘는 긴 싸움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기업의 성과는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과 각종 산업재해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회사를 지켜온 생산직 노동자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린다. 그러나 더 서운한 것은 “1000억 원대 재산가가 된 사장이 있지도 않은 ‘경영위기’를 내세워 20여 년간 콜트콜텍을 지켜온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했다”는 것.

콜트악기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를 조사한 자료를 보면, 생산직 노동자의 40%가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고, 59%는 유기용제 노출로 인한 직업병이 의심되며, 36%는 기관지 천식, 40%는 만성기관지염으로 나타났다. 20대부터 콜트콜텍에서 일해 온 4~50대의 노동자는 그렇게 자신을 희생해 왔지만, 돌아온 것은 비인간적 대우와 ‘구조조정’의 철퇴였다.

결국 노동자들은 10월 15일, 고압전기가 흐르는 송전탑 위로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1월 25일, 콜텍 본사 점거농성을 벌이다 공권력에 의해 연행되기도 했다. 이후 독일로, 일본으로, 콜트콜텍의 부당해고를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지만, 여전히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또 다시 이 추운 겨울을 넘겨야 할 상황에 처했다.

서울고법이 11월 27일 콜텍악기(대전공장) 해고노동자 26명에 대해 “사용자 측이 해고 요건을 갖추지 못한 만큼 이들을 복직시키라”고 판결했고, 이에 앞서 지난 4월 행정소송에서도 ‘부당해고’ 판결이 내려진 바 있지만, 사측은 묵묵부답이다.

5. 기륭전자

   
  ▲ 지난 여름, 소복을 입고 ILO 총회에 참석한 김소연 기륭전자분회장

‘기륭전자’는 어느새 잊혀진 이름이 되었다. 지난 여름, 김소연 분회장의 94일간의 단식으로 많은 사람들의 애를 태웠던 기륭전자 농성은 여전히 회사 앞 콘테이너 박스에서 계속되고 있지만 이제는 찾는 이들의 발길도 뜸하다.

지난 2005년, ‘문자해고’를 당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2010년이 되는 지금까지 복직이 요원하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현장점거파업, 천막농성, 삭발, 삼보일배, 고공농성, 단식, 미국원정투쟁, 철탑 망루 농성, 그야말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으나 사측은 천막을 부수고, 무시하고, 비웃었다.

지난해 국제노동기구(ILO)는 기륭전자에 ‘불법파견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권고안을 내렸다. 정부가 아닌 사측에 대한 ILO의 권고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측은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여기에 지난 5월 말, 고법은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남녀 임금 차별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6. 동희오토

   
  ▲ 동희오토 해고자들이 촛불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충남 서산에 위치한 ‘동희오토’는 ‘비정규직의 무덤’이자 ‘절망의 공장’으로 불린다. 계약해지와 징계해고, 그리고 위장폐업 까지, 사측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곳을 무덤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수십개의 외주업체로 구성되어 구조적으로 해고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동희오토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

동희오토 해고자들은 여전히 복직과 직접고용 등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지만, 이들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올 가을에는 관변단체가 농성 천막을 찾아와 노동자들을 폭행했고 경찰은 이들의 천막을 강제로 철거했다. 지자체와 지방의회는 노동자들의 애환을 무시하고 연일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다.

동희오토가 만드는 ‘모닝’은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2001년 국내 첫 완성차 위탁생산 업체로 설립된 동희오토는 온통 비정규직 생산직 노동자 뿐이다. 1위차는 그렇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을 먹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동희오토 옷 입고는 돌아다닐 수 없다’, ‘동희오토 직원에겐 결혼도 안 시킨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이들은 회사와 지역으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되고 있다.

6. 동우화인켐

   
  ▲ 금속노조 경기지역투쟁본부가 ‘삼성 무노조 경영 동우화인켐 비정규직 노동자 탄압’을 규탄하며 지난 6월 서초동 삼성본관 앞 기자회견을 가졌다.(사진=이은영 기자)

거대 권력 삼성과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1차 하청업체인 동우화인켐 노동자들이 지난해 5월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노동조합을 결성했지만 사측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고 노조 임시 사무실인 컨테이너는 강제 철거했다.

그 동안 동우화인켐 노동자들은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금품갈취, 강제잔업과 특근, 여성 노동자에 대한 화장실 출입증 제도 등 비인격적 대우에 시달려왔다. 이 같은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만든 노동조합임에도 사측은 11명의 노조 간부를 해고했다. 그리고 동우화인켐 노동자들은 그 배후로 삼성을 지목했다.

이들은 곧바로 삼성과의 ‘무모해 보이는’ 싸움을 시작했다. 삼성이 ‘무풍지대’로 자랑해왔던 서초동 삼성타워 앞에서 기자회견과 일인시위를 벌이면서 노동탄압을 알렸다. 그러나 삼성은 이들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서초동 앞 시위 참석자들을 검찰에 고발한 것.

여기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권력과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은 한 가닥 기대를 걸었던 복수노조법이 정부와 한나라당의 유예 움직임으로 더욱 절망스러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조합 인정과 해고자 복직,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거대 삼성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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