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성 740일 맞는 재능교육 지부
    By 나난
        2009년 12월 30일 10: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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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0일.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이 거리에 선 시간이다. 구청과 회사에 의해 천막농성장이 강제철거 된 것만도 15번. 이제 이들은 맨몸으로 재능교육 혜화동 본사 앞을 지키고 있다. ‘노조를 인정’하고, ‘해고자를 복직’시키며, ‘단체협상을 갱신’하라는 이유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유명자 지부장은 오늘도 어김없이 재능교육 본사 앞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았다. “우리가 고통스러울수록 회사도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는 얼어가는 몸을 담요로 녹이며 농성 일자에 하루를 더 채우고 있다.

    노조, 지키는 것도 힘들다

    지난 1999년 특수고용직 노동자 최초로 단체협약을 맺고 노조전임자도 뒀던 재능교육지부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사측은 지난 2008년 삭감된 수수료를 강요하며 ‘신수수료 제도’를 요구했다. 회원에게 받지 못한 회비를 교사가 대신 납부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미 지난 2007년 5월 사측이 수수료제도를 개정하며 교사들은 적게는 1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까지 수수료가 깎인 상황에서 2차 수수료 개악안이 제시된 것. 하지만 당시만 해도 현장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유 지부장에 따르면 현장 교사의 70% 이상이 신수수료 제도가 포함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노조 역시 회사의 수수료제도 개편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자 회사는 ‘신수수료 제도에 서명하지 않으면 재계약을 약속할 수 없다’며 일선 교사를 협박했고, 대부분의 교사가 계약서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전임자도 해고했다. 수수료 문제로 시작된 재능교육지부의 싸움이 ‘노동조합 지키기’로 변화한 셈이다.

       
      ▲ 회사는 노조와의 교섭이 결렬로 끝이 나자 노조의 천막농성장과 철제펜스를 강제철거했다.(자료=재능교육지부)

    지난 7월 지부와 사측은 논의테이블을 마련했다. 사측은 단체협약이 아닌 이면합의를 요구했다. 하지만 전체 교사에 적용되는 수수료나 계약서 문제는 단체협약으로 체결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 종잇장처럼 찢어질 수 있다며 단체협약만을 주장했다.

    노조는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어떤 합의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고, 회사 역시 "단체협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완고히 했다. 어렵게 이뤄진 교섭은 끝내 아무런 진척도 없이 결렬됐으며 그날 회사는 노조의 천막농성장과 회사 정문을 가로막고 있던 철제펜스를 철거했다.

    2년 넘도록 하루 세차례 피켓시위

    이후에도 교섭을 위한 상견례가 추진됐지만 회사의 돌연 입장 변화로 물거품이 됐다. 유 지부장은 “회사는 노조가 농성을 하고 구호를 외쳐 회장의 마음이 돌아섰다고 말했지만 농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해 오던 것”이라며 “애초 회사는 교섭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재능교육지부는 오늘도 어김없이 본사 앞 콘크리트 바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 3차례에 걸쳐 피켓시위를 진행한다. 이미 2년이 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 지부장이지만 동료들을 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회사는 어김없이 노동자들을 갈라치기 했다. 농성장 철거도 용역업체 직원이 아닌 정규직 직원들을 내세웠다. 여기에 영업직 관리자들의 인사고가 평가에서 ‘조직 내 조합원 감소율’을 반영하기도 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적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밉고 다음에도 한심하고, 이제는 불쌍하다”며 동료들에 대한 마음을 내비쳤다.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취업규칙이나 임금부분에서 동종업계 최하 수준이지만 이렇다 할 항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는 “부당하게 자신들의 동료가 구조조정으로 잘려나가는 데도 혹시나 다음 차례가 자신이 될까봐 숨죽이고 있다”며 “이미 그들은 패배감에 짓눌려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패배감은 정규직 노동자들뿐만이 아니다. 함께 투쟁에 나섰던 학습지 교사들과 노조 간부 역시 투쟁이 길어짐과 함께 많은 수가 농성장을 떠나갔다. 때문에 유 지부장은 “’언제까지 갈 싸움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자료=재능교육지부)

    그는 연설 때마다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고 말해왔다. 그것은 그의 진심이다. 하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지는 싸움’이 아닌 ‘지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최소한 싸움이 시작되기 전 상황으로 회복하는 시점이 언제가 될까’이다.

    "솔직히 겁이 난다"

    그는 “처음 농성을 시작했을 당시 수수료 문제가 아닌 노동조합을 지켜야겠다며 순수하게 결합했던 조합원이나 간부들이 생계나 투쟁의 어려움으로 떨어져 나갔다”며 “남아 있는 몇 명의 간부들이 얼마나 더 비틸 수 있을까, 언제까지 가야할까를 생각하면 솔직히 겁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 교사들의 의욕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며 “현장의 교사들 사이에는 ‘싸운다고 이기겠느냐’는 두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힘을 얻고 돌아와야 하는 현장선전전에서도 도리어 힘을 잃게 된다는 그의 말은 이 같은 현장 교사들의 패배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지난 2004년 구몬학습 교사였던 이정연 씨가 회사의 가짜 신입회원 늘리기 강요에 시달리다 돌연 사망하며 학습지 교사,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가 사회가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고 이정연 씨의 담당 의사는 스트레스성 심장마비에 의한 호흡곤란 증세일거라는 의견을 냈다.

    학습지노조에 따르면 고 이정연 씨가 관리하던 203개 과목 중 ·134개 과목에 대한 회원명단이 허위가입돼 있었고, 1500만 원대의 부채를 남겼다. 유 지부장은 “이정원 교사의 사망 이후 가짜 회원 늘리기 등 학습지 교사의 노동실태에 대해 언론이 보도가 됐지만 이슈화되지는 못했다”며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조합 설립을 놓고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 싸움을 만들어야 함에도 현실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봄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의 사망과 함께 특수고용노동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잠시 떠올랐지만 노동계와 야당들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는 “특수고용노동자 대책회의 때마다 재능교육의 문제를 일개 단위노조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싸움으로 만들자고 주장하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나’, ‘힘이 없다’는 이야기 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내년 상반기 결단내는 투쟁을

    노동자이면서도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 회사에 고용돼 회사의 업무지시를 받지만 법과 회사는 이들을 ‘자영업자’라 한다. 지난 96년 대법원은 ‘학습지 교사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노동3권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재능교육 교사들은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단체협약을 통한 수수료문제 등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회사는 1차 가압류에 이어 2차 압류 진행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 지부장과 노조 간부 등은 인당 3,000~4,000만 원 정도를, 현장 조합원들은 800~900만 원 정도를 손배가압류 당한 상태다. 유 지부장은 “더 이상 내 줄 것도 가져갈 것도 없다”며 “가압류를 하건 압류를 하건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재능교육지부 학습지 교사들은 거리에서 3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유 지부장은 "눈보라가 쳐도 농성을 철수하자는 사람은 없다”며 “단식은 물론 한강대교, CCTV에도 매달려 봤다”며 “내년 상반기에는 이 상황을 결단내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꽃피는 춘삼월에는 일상생활에 돌아가 현장 조합원들을 만나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며 “봄이 되기 전에 상황이 마무리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 지부장의 임기는 오는 2010년 말까지다. 그의 꿈은 자신의 임기 내에 상황을 마무리하고 현장 조합원들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 하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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