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재구성' 정치, 선거논리보다 우선
    2009년 12월 28일 04: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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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범진보 진영의 뜨거운 쟁점은 진보대연합, 민주대연합, 반MB연대 등 이른바 ‘연합’의 문제다. 더 나아가 진보정당들의 ‘통합’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불과 2년 전인 2007년만 해도 범진보 진영의 화제는 ‘진보의 재구성’(이하 ‘진보 재구성’)이었다. 진보 언론이라면 다 유행처럼 이런 제목을 단 기획 기사들을 쏟아냈었다. 그리고 이에 화답하듯 여러 정당, 정치조직들이 저마다 진보 재구성을 구호로 내세우며 경쟁했다.

   
  ▲ 필자

이게 고작 2년 전 일이다. 그런데도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진보 재구성 운운하는 논의는 사치스럽고 한가한 이야기 취급을 당한다.

그것은 한나라당 정권을 겪어보기 전 일일 뿐이고, 이명박 정권 때문에 신음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최대 다수 연합을 만들어 비한나라당 정권을 만드는 게 우선 급하다는 식이다. 그러니 진보 재구성은 그 이후 과제로 미루고, 당장은 연합 혹은 통합을 고민하자?

이게 앞으로 2-3년 동안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길일까. 아니, 이게 바람직한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도대체 일이 이렇게 풀려나갈 수 있는 것일까. 요즘 상황에서는 돌이나 맞기 딱 좋은 물음이다.

저주 섞인 악플들을 각오해야 할 도발에 가깝다.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반드시 던져야 할 물음이다. 이명박 정권과, 이 정권이 강요하는 현실을 정말로 극복하고 싶다면 말이다.

단기의 정치를 위해 장기의 정치를 희생시키지 말자

진보신당은 진보 재구성을 자신의 사명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고 이게 진보신당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진보 재구성에 접근하는 서로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따라서 여러 정치 세력이 진보 재구성을 얼마나 잘 실현하는지를 놓고 서로 경쟁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적어도 진보 재구성을 목표로 내세우는 한, 그 정치 세력의 시야는 여태껏 한국 정치 체제가 강요하던 것보다는 훨씬 더 먼 곳을 향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진보 재구성은 앞으로 지속될 지구 자본주의의 혼돈을 헤쳐 나갈 힘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것은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는 과업이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는 진보 세력이 그간 걸어오던 길을 그 방향에서 계속 걸어가기만 하면 될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교육, 주거 등 생활 문제에서부터 금융, 국제관계 등 거시 쟁점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신뢰를 받으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의 진로를 크게 바꿀 정책과 전략들을 구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전을 대중적 명망을 지닌 집권팀으로 육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더구나 이 집권팀은 중앙의 몇몇 장관직 정도나 채울 일개 소대 병력이 아니라 지역 곳곳과 대중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칠 군단 규모여야 한다.

정치세력의 형성은 사회적 지지 기반의 구축과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단순히 득표 기반을 늘리는 수준을 넘어서 조직된 대중의 힘이 필요하다. 사회 변화를 꾀하는 정치세력으로서는 단순히 기존 국가기구만으로 정책을 집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대중운동이 집권의 공동 주체로서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노무현 정권 실패는 반면교사

이 점에서 노무현 정권의 실패 경험은 더없이 좋은 반면교사다. 노 전 대통령 자신 이를 절감해서인지 유고의 결론 부분에서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힘이 ‘무엇에 맞선’ 것인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이것은 그가 마지막까지 넘어서지 못한 한계다. 우리는 그에게 그 답을 말해주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본의 거대 권력에 맞설’ 깨어 있는 조직된 힘이라고.

그럼 도대체 이 힘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중단된 노동운동의 전진을 다시 시작하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가로놓인 골을 넘어서 공동의 꿈과 연대감을 형성해야 한다. 민주노조 투쟁을 경험한 기성 노동자들과 앞으로 노동자가 될 젊은이들이 서로 대화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래서 비로소 한국 사회 노동‘계급’의 실체를 등장시켜야 한다. 이런 노동운동의 힘이 중심에 버티지 않는 한, 다른 국지적 시도들만으로는 결코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이런 일들이 일, 이 년 안에 가능한 것이겠는가. 아무리 한국 사회가 역동적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아니, 보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 이상의 시간을 요할 가능성이 더 높다. 씨앗 뿌리고 돌보며 추수하는 데 한 세월 족히 걸리리라. 진보 재구성의 시간 지평이 이러하다. 따라서 진보 재구성을 추진하겠다는 정당이라면, 이 정도 시간 지평을 바라보며 자신의 프로그램을 묵묵히 추진해가야 한다.

그런데 최근 대세인 각종 연합 및 통합 논의들은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 지평을 전제한다. 이들이 염두에 두는 것은 다음 번 선거, 다음 다음 번 선거의 시간 지평이다. 이들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패배시키고 결국에는 다음 정권을 한나라당 아닌 정권으로 만드는 게 과제다. 진보 재구성에 비해서는 확실히 단기적인 시야이며, 따라서 훨씬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작금의 연합 및 통합 논의들은 이 단기 시간 지평을 정치적 고려와 선택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럴 경우, 차기 혹은 차차기 선거에 승리할 가장 효과적인 세력 결집과 배열에 도달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일이 된다. 이게 진보정당 무조건 통합론이고, 민주대연합론이다.

선거가 아니라 시대를 내다보자

그런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진보 재구성이 요구하는 장기 시간 지평의 정치를 희생시킨다. 매번 다음 선거 승리를 위해 이합집산을 거듭한다면, 5년, 10년 뒤를 내다보며 묵묵히 자신의 프로그램을 실천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기 시간 지평을 중요시하다 보면, 장기 시간 지평은 사라지고 단기 시간 지평의 연속적인 매듭만 남게 된다. 이 경우 10년의 시간은 2년마다 찾아오는 선거 정치의 시간이 5번 반복되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10년이 지난 뒤라도 한국 정치는 분명 지금의 한국 정치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거대 보수 양당이 권력을 주고받는 것도 현재 모양 그대로일 테고, 이와 함께 사회 세력들 역시 현재의 정체와 교착 상태를 이어갈 것이다.

   
  ▲ 2008년초 열린 17대 대선평가포럼

그리고 이런 상태로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혼란스럽게 격동하는 지구 자본주의 질서에 마주해 있을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수준의 정치가들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선택지만을 제시하고 있을 테고, 한국 정치는 지구적 수준의 위기에 속수무책이리라. 나침반도, 키도, 선장도 없이 폭풍을 마주한 배, 그것이 한국호의 모습일 것이다. 결국 대중의 삶만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워질 게 뻔하다.

이런 어리석음을 범할 수는 없다. 한국 정치의 주류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의 선택을 반복한다 할지라도, 모두가 다 여기에 부화뇌동해서는 안 된다. 단기 시간의 정치를 위해 장기 시간의 정치를 희생시키지는 말자. 선거만이 아니라 시대를 내다보고 이에 답하는 정치를 만들어가자. 이것이 곧 진보 재구성이라는 애초의 올바른 문제의식을 대중 정치로 살려낼 유일한 길이다.

진보정당 무조건 통합론이 아니라 연합전선을 제대로 해보자

미래 집권팀과 사회적 지지 기반을 형성할 전략이 서로 다르다면, 당을 달리 하는 게 맞다. 저마다 정치 실험을 지속하면서 서로 경쟁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그 성과를 놓고 그 때 그 때 대중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진보 재구성은 이렇게 서로 다른 프로젝트가 경쟁함으로써 보다 역동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보다 많은 변이가 보다 풍부한 역동성을 낳는다는 것은 진화론의 진리다.

따라서 진보정당 무조건 통합론은 답이 될 수 없다. 진보신당 내 대다수가 과거 민주노동당의 분열을 낳은 이 당의 특정 경향과는 집권팀을 함께 구성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데, 어떻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두 당의 단순 통합이 가능하겠는가. 이것은 여전히 민주노동당에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 믿는, 민주노동당 내 상당수 흐름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흐름이나 사회당에게 자신의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통합정당의 한 분파가 되라는 것 역시 무례하고 무리한 공세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연합전선’의 가능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서로 다른 당들이 공동 행동을 모색하는 연합전선은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며, 또한 필요하다. 지금 진보 진영에게 필요한 것은 진보정당 무조건 통합론이 아니라 바로 이 연합전선 논의를 활성화하고 이것을 실현시키는 일이다.

연합전선은 전혀 생소한 정치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진보 좌파 정치에서 아주 고전적인 정치 행위다. 프랑스에서는 1930년대에 파시즘의 득세를 막기 위해 사회당과 공산당이 연합전선을 결성한 바 있고, 1970년대에도 사회당과 공산당이 공동의 강령에 합의하여 연합전선을 형성한 경험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1990년대부터 범진보 세력이 ‘올리브 동맹’이라는 연합전선을 만들어 선거에 뛰어들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어느 나라든 진보 정당, 정치조직들이 수십 개가 되지만, 이것이 분열로 매도당하지 않는다. 이들이 서로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광범한 연합전선을 형성해 현실 정치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통합론보다 연합전선 논의 활성하시켜야 

흥미로운 사례로는 우루과이의 현 집권당인 확대전선을 들 수 있다. 이 조직은 사실은 사회당, 민중참여운동, 공산당 등 여러 개의 정당, 정치조직들의 연합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확대전선이라는 연합전선을 통해 선거에 대응한다. 물론 우루과이의 독특한 선거 제도 때문에 이런 조직 형태가 가능한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참신한 참고 사례임에 분명하다.

한국의 경우에도 지금 필요한 것은 진보 정당, 정치조직들이 복수인 것을 인정하고 이들 사이에 연합전선을 활성화화는 일이다. 자본 권력에 맞서 싸우는 세력들이 연합전선을 결성해야 한다. 여기에는 단지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사회당뿐만 아니라 앞으로 건설될 예정인 사회주의노동자정당까지 함께 해야 한다.

연합전선의 각 당들은 주요 당면 과제에 대해 일상적으로 협의하고, 필요한 경우 공동 실천을 벌일 것이다. 물론 공동 실천 목록에는 선거 대응도 포함된다.

이 대목에서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연합전선을 할 거라면 왜 당을 함께 하지는 못하는가? 이 물음에는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연합전선이란 게 애초에 당이 다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서로 공통점도 있지만 또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차이도 존재하기 때문에 당을 달리 하는 상황에서, 경쟁을 전제로 한 협력을 모색하는 게 연합전선의 정치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딱 이렇지 않은가.

게다가 연합전선이 당을 함께 하는 것보다 결코 ‘하등한’ 정치 행위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연합전선이 급조된 당보다는 여러 모로 훨씬 바람직하다.

급조된 통합정당보다 연합전선이 바람직

과거 민주노동당처럼 급조된 당 안에서는 모든 중요한 차이와 경쟁이 당 내 파벌 정치로 귀결된다. 이것은 대중의 시야 바깥에서 이뤄지는 가장 불건전한 정치 행위다. 이런 행위를 반복하면서 성장한 정치 세력은 파벌 정치의 능력만 과잉 발달하게 된다.

비록 요행히 집권하는 일이 있더라도, 이들은 국가기구 안에서 파벌 정치 행태를 반복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단지 이들 세력 자신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반면 연합전선의 정치에서는 차이와 경쟁이 당과 당 사이의 협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대중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공개 정치이고, 그 심판자는 결국 여론이다. 연합전선 내의 협상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대중 정치이고, 이런 정치 행위의 반복은 연합전선 참가 세력들의 집권 및 사회 변혁 능력을 강화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런 협상 정치를 반복하는 가운데, 하나의 당으로 발전적으로 통합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

‘통합’은 이런 노력의 시간 뒤에야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우선 해야 할 것은 제대로 된 연합전선을 실천하는 일이다.

선거 정치의 게임의 논리가 아니라 의제가 중심이어야 한다

요즘 이야기되는 ‘진보대연합’론이 바로 이러한 연합전선의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반MB연대를 이야기하는 ‘민주대연합’론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이 둘은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는 구상들이다.

   
  

물론 진보대연합 노선과 민주대연합 노선이 서로 경쟁한다 할지라도, 어떤 상황에서는 둘 사이의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특정한 국면에 아래로부터 대중의 요구가 빗발친다면, 한시적인 협력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반드시 확실히 해야 할 게 있다. 선거 대응이라는 단기 정치를 위해 장기 정치의 목표와 전망을 희생시키는 게 아니라 반대로 철저히 후자를 위해 전자를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단기 시간 지평의 대응을 장기 시간 지평의 정치를 추진하는 한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선거 정치는 진보 재구성의 정치에 종속되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게 의제를 중심으로 한 대화와 협력이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 첫 반응은 대체로 비웃음일 것이다. 대개 다음과 같이 반문하며 콧방귀를 뀔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의제가 뭐가 중요하냐, 후보(혹은 힘, 혹은 실리 등등)가 중요하지.”

하지만 우리가 하자는 게 바로 그러한 정치판을 바꾸자는 것이다. 이미지 경쟁과 이합집산만이 판치는 한국의 선거 정치에서 의제가 대중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상황이 예외적인 게 아니라 일상적인 것으로 정착될 때 진보 정치의 전반적 성장도 가능하다.

‘민주대연합론’ 강력히 반대해야 하는 이유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선거의 게임 논리에 따라서 후보 단일화만을 이야기하는 ‘민주대연합’론에 강력히 반대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그런 유혹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첨예한 의제들을 공개적으로 논의, 협상하고 그 합의에 따라 정치 행위를 펼치는 것만이 진보 세력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다.

의제에는 제한이 없어야 한다. 지방 선거가 가깝다고 해서 지방 정치와 직결된 의제만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지방 선거는 한 계기일 뿐, 앞으로 한국 사회의 방향을 결정할 과제들을 확인하고 그 과제들을 해결할 주체를 형성하는 게 목표라면,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와 관련된 모든 사안들을 쟁점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2009년 8월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묻지마 반MB연대가 아니라 반MB ‘대안’ 연대여야 한다며 제시한 정책 합의 기준들이 여전히 중요하다. 그것은 “(1) 비정규직 문제 해결 – 기존 기간제보호법 및 파견법 폐지와 기간제 사용 사유 제한 도입, (2) 복지 확대 – 부자 증세와 실업부조제도 도입, (3) 토건국가 해체 – 4대 강 살리기 사업 저지와 토지 및 주택 공개념 도입, (4)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이었다.

노 대표는 12월 16일에 “진보진영의 전면적 선거연합”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 반대, 한미 FTA 저지, 고교 및 대학 평준화를 통한 교육대혁명, 무상의료 확대, 대선 결선투표제와 총선 비례대표제 전면 도입 등”을 공동 강령의 내용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의제 바탕으로 한 경쟁과 협력을

하나같이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들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한미 FTA 저지 등은 지난 시기에 ‘민주’ 정권들이 잘못 했던 것을 반성하고 시정하는 핵심 조치들이다. 교육대혁명, 무상의료 확대, 토지 및 주택 공개념, 실업부조제도 도입 등은 앞으로 우리가 건설해가야 할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놓는 일이다. 그리고 대선 결선투표제와 총선 비례대표제 전면 도입은 민주화 이후 오히려 민주주의를 퇴보시켜온 정치제도들을 혁파하자는 것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의 유고 『진보의 미래』 에서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오류와 한계였다고 회고한 것들이기도 하다. 노동 유연화, 즉 비정규직 문제를 보자. 그는 “우리가 진짜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에요. 핵심적으로 아주 중요한 벽이 무너진 것은 노동의 유연성을, 우리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이에요”라고 토로한다.

복지 확대에 대해서는 또 뭐라고 자성하는가. “‘복지비 그냥 올해까지 30프로, 내년까지 40프로, 내후년까지 50프로 올려.’ 그냥 쫙 그어 버렸어야 되는데, 앉아서 ‘이거 몇 프로 올랐어요?’ 했으니 … 지금 생각하면 그래요. 그래 무식하게 했어야 되는데 바보같이 해서 …”

이런 걸 공동의 과제로 논의하고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생경한 이념의 뒤를 따르자는 게 아니다. 전 정권의 최고 책임자가 전 정권의 가장 커다란 한계였다고 스스로 인정한 내용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단지 한나라당 아닌 정치인이 단체장에 당선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일이 아니다. 얼어붙은 대중의 열정을 다시 깨워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새로운 시대가 움트고 있다는 메시지뿐이다.

온갖 고상한 수식어로 치장한 선거 정치의 게임의 논리는 그런 메시지가 될 수 없다. 의제에 바탕을 둔 경쟁과 협력만이 그런 메시지의 발원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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