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조선산업 폭풍이 몰려온다
        2009년 12월 28일 09: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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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태종대 앞바다. 하늘색보다 더 짙은 푸른색을 지닌 바다 위로 멀리 커다란 컨테이너 선박들이 떠있는 것이 보인다. "선주들이 안 가져간 배들이야, 저게." 연륜이 쌓인 한 한진중공업 노조 간부가 말한다. 선주들이 건조한 배를 가져가지 않았다. 왜? 배를 가져가도 경기 침체로 쓸 데가 없거나 잔금을 치를 돈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선주들은 차라리 정박 비용을 무는 것을 선호한다.

    대형 조선소들이 소속돼 있는 한국조선협회나 조선사들은 선박 수주가 취소되거나 인도가 지연된 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을 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조선소 노동자들은 부산, 목포, 울산 앞바다에서 자신들이 만든 배가 선주에게 인도되지 않고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것을 종종 목격하고 있다.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컨테이너 선박

    조선업은 배 한 척 만드는 공정 기간도 1~2년이나 되고 호황기에는 무려 3~4년 동안의 주문도 이뤄지는 대규모 산업이다. 그렇지만 금융업과 가장 밀접한 산업이며, 근본적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기 때문에 세계경기에 아주 민감하다.

    선박대금은 일반적으로 5회(수주계약, 스틸컷팅-설계도면에 맞게 철판을 자르는일, 킬 레잉-용골을 설치하는 것, 진수, 인도)에 걸쳐 균등하게 결제되지만 신용도에 따라 신용이 좋으면 계약시 선수금이 40%, 나쁘면 10%를 주고 받는다.

    여기서 선주인 해운사가 20% 정도 자기 자본을 부담하고 80% 정도를 금융기관으로부터 조달한다. 해운호황기에는 선주들의 자기자본 부담비율이 10% 수준까지 하락한다. 

    다시 말해 선주들은 자기 자본이 없으나 고가의 선박을 담보로 은행 등 선박금융에 돈을 빌리고, 조선소는 선수금 받은 돈으로 배를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수주계약과 최종 인도 사이의 시간이 길며, 이 사이를 잇고 있는 해운사(선주)-조선소-은행-보증보험 등 복잡하게 엮인 선박금융구조 때문에 환 헤지(hedge), 파생상품 같은 금융 상품들이 끼어들어 있다.

    즉 신규수주(계약)-건조(수주잔량)-인도 등의 장기간에 걸친 선박제작 과정에 금융이 개입되기 때문에 조선소는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환 헤지를 하게 되고, 조선소의 환 헤지는 주로 선물환을 이용하여 이루어지면 중소조선소에서는 수수료를 적게 지불하기 위해 옵션이나 파생상품을 이용했다.

    그러나 조선업의 선대금 및 분할금, 후공사 방식은 경제위기 상황으로 토막나기 시작했다. 미국, 유럽 등의 경기가 축소됨에 따라 이들 지역 수출이 위축되자 원자재를 운반하며 기술력이 많이 필요없는 중소형 벌크선의 계약 취소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최근에는 대형 화물선인 컨테이너선의 계약 취소 및 인도 연기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업 경기가 위축되면서 선박금융 대출은 신중해지기 때문이다. 심각하면 인도 연기 및 계약 취소로 이어졌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조선업의 전망은 장밋빛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장밋빛 조선호황이 현재 조선업 위기의 진정한 배경을 낳았다.

    2003~2007년 조선호황 ‘좋았던 시절’

    2003~2007년까지 조선업은 봇물처럼 터지는 신규수주, 풍부한 자금 등으로 최대 호황을 맞이했다. 그중 한국 조선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1위다. 올해 7월 기준 수주잔량 기준으로 현대중, 대우조선, 삼성중, 현대미포, STX조선, 현대삼호중 등이 1위부터 6위까지 차지하고 있다. 2006년엔 7위가 한진중공업으로 상위권 모두 한국 조선소들이 싹쓸이했다.

       
      ▲ 세계조선업계 수주잔량순위(2009년 7월말 기준)

    대형조선소들은 넘치는 수주를 해결하기 위해 야드를 확대하고 해외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현대미포조선은 베트남에 비나신 수리조선소를, 대우조선과 삼성중은 중국에,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빅 조선소를 지었다. STX조선은 중국 다렌에 블록공장을 지었을 뿐 아니라 세계 2위 크루즈선 야커야즈를 8억 달러에 지분 32% 정도를 인수했다. 중소 블록업체였던 성동조선해양은 신조에 뛰어들어 단숨에 한진중공업을 제치고 2008년 9위에 올랐다.

       
      ▲ 후발 중소조선소의 건조량 및 수주잔량(자료 : 클락슨, 월드 쉽야드 모니터, 2008. 11)

    조선업은 계약과 인도 시기가 멀기 때문에 수주가 적어져도 수주잔량 때문에 외형적으로는 수출산업이 증대하는 구조다. 그렇다하더라도 한국의 수출 산업에서 조선은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 수출상위품목과 비중변화 (출처: 삼성경제연구소)

    덩달아 철강원자재인 조선용 후판은 가격이 급속히 뛰어올랐어도 2009년엔 후판 공급부족 상태가 예상됐다. 2007년 국내 후판 실수요의 79.2%가 조선업에서 사용되었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가 오기 전까지 조선업은 주택부동산과 더불어 가장 큰 호황의 수혜자였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2003∼2007년 중 신조선 수주량이 연평균 14.9% 증가했고 건조량은 연평균 11.8%, 수출액은 24.4%, 설비투자는 무려 36.7%나 증가했다. 중국 조선업이 바짝 쫓아오고 있지만 한국 조선업은 여전히 독보적인 존재다.

       
      ▲ 자료 : Clarkson, 2009. 3, 홍성인(2009. 5)에서 재인용

    급속한 성장은 대형조선소들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한국조선협회에 소속된 현대중, 삼성중, 대우조선,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 STX조선, SLS조선, 대선조선 등 9개 조선소가 국내 조선업에서 2007년 건조량 기준 전체의 90.6%, 수주잔량은 2008년 9월말 전체의 80.2%를 차지했다. 특히 현대중, 삼성중, 대우조선 소위 빅3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건조량에서 58.2%, 수주잔량에서 52.2%로 국내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선박 수주 98% 감소

    그러나 2008년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기점으로 전면화된 세계 경제위기는 조선업에 매우 큰 타격을 줬다. 지난해 11월 이후 선박 수주가 뚝 끊기면서 수주 가뭄이 1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조선협회 회원사 9개사가 올 9월까지 수주한 선박은 모두 9척 23만CGT(보정총톤수)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척수로는 95%, 톤수로는 98%나 줄어든 것이다. 게다가 내년까지 전 세계 신조선 수주잔량 가운데 약 40%가 계약이 취소되거나 인도가 연기 및 지연될 것이라고 예상도 있다. 올해 3분기까지만 해도 30%가 인도 지연이 됐다.

    신조선 가격도 전년 대비 30~50%나 폭락하면서 전 세계 신조선 수주잔량 4,640억불 가운데 약 2,000억불 정도가 공중 분해되어 버렸다. 돈에 쪼들린 일부 조선소들은 계약취소된 배들을 다시 할인해서 판매하고 있다. 수주 가뭄으로 대형조선사들은 현금성 자산이 줄어들자 앞다퉈 사채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현대중은 3,000원, 삼성중 7,000억원, 대우조선 5,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회사채 발행은 7~8년 만이다.

    최근 12월까지 대우조선, 현대미포조선, STX조선 등에서 수주가 발생해 대형조선소들은 다소 숨통을 틔였다. 특히 대우조선은 29척으로 올해 신규 수주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윤희섭 BNP 파라바스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에 수주한 선박의 선수금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대우조선해양의 공격적인 수주 전략이 유동성 확보의 필요성이 절박하다는 징후인지, 아니면 납기연장에 따른 일감 공백으로 인해 수주 물량 확보가 절박한 것인지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대형조선소는 고가의 FPSO(바다 위에서 석유 및 가스를 채굴, 저장, 하역할 수 있는 부유식 석유시추구조물) 선박의 선수금을 계약총액의 고작 한자리 숫자 비율로 받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선박수요는 3,960만CGT로 예상되는데, 전 세계 조선업계의 건조능력은 2012년에 이미 5,000만CGT를 넘어설 전망이다. 선박과 이를 짓기 위한 생산설비가 과잉생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조선업의 위기는 바로 조선업 호황이 낳은 과잉생산에서 이어졌다.

    이명박과 자본 해법 ‘구조조정’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조선소 및 해운사 구조조정을 올 초부터 시작했다. 자금운용이 풍부한 일부 선주사들은 중국처럼 정부가 계약 취소된 선박들을 사들이는 지원책 등을 완강히 반대한다.

    왜냐면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없는 선주사, 조선소가 도태되면 과잉된 선복량(선박이 실을 수 있는 화물총량)이 손쉽게 감축되고 운 좋으면 아주 헐값으로 기술력이 좋은 조선소나 선박을 사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최대 선주사인 CMA CGM의 파산위기는 다른 선주사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구조조정이 모든 것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 예컨대, 지금 국가 부도 위기 위험에 처한 그리스는 전 세계 수주 잔량의 3분의 1수준인 899척을 발주한 세계 최대 선주국이다. 국내 현대중, 현대삼호중, 현대미포조선, STX조선해양, 대우조선, 한진중공업 등이 수주한 물량이 무려 총 200척에 달한다. 최악의 경우 그리스 선주사들의 위기는 세계 대형조선소들의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위기의 대가를 치를 사람은 단지 일부 자본들만이 아닌 것 같다. 상위권에 속한 대형 조선소 고위급 간부는 "조선업계는 내년 상반기까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것은 단지 관망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하겠다는 방향이다.

    경쟁력이 있든 없든 구조조정의 가능성은 조선소 노동자 누구에게도 열려 있다는 뜻이다. 바야흐로 2010년 조선산업을 덮칠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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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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