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생민주 대 시장독재 대립 구도"
        2009년 12월 24일 11: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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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가 사는 마을에 쥐처럼 생긴 고양이가 대통령을 했습니다. 이 쥐처럼 생긴 고양이는 요직에 쥐들을 기용하고, 청와대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도 불러제끼며 쥐들을 안심시키고는 쥐들을 한마리씩 잡아 먹었습니다.

    쥐와 고양이

    쥐처럼 생긴 고양이를 일찌감치 알아 본 진보적인 쥐들은 "고양이가 왜 쥐 흉내를 내느냐? 고양이면 차라리 고양이 답게 굴라!"고 비판했습니다. 같은 쥐로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쥐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그 쥐처럼 생긴 고양이를 몰아냈습니다.

       
      ▲ 필자

    그런데 이번에는 고양이답게 생긴 고양이가 쥐들의 마을에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요직에도 고소영이라는 고양이를 앉혔습니다. 이 고양이는 거리낌 없이 고양이질을 해댑니다. 쥐들은 이리저리 내몰리면서 혼비백산합니다.

    이 고양이는 포식가입니다. 4대강, 세종시, 미디어법 등등 한꺼번에 먹어치웁니다. 이 고양이의 공포스런 전제 정치는 공포의 전염병을 확산시킵니다. 진보적인 쥐들조차 고양이다운 고양이의 전제정치를 물리칠 수만 있다면 ‘묻지마 연대’를 해도 좋다는 공포스런 연대론을 확산시킵니다.

    과연 그래도 한마리씩 물려가 먹히던 때가 나았을까요? 이 반민주적 수구 고양이와 맞서 싸우기 위해 다시 쥐처럼 생긴 고양이와 한 편이 되어야 합니까? 쥐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쥐들끼리 뭉쳐야 하지 않을까요?

    ‘민생’ 민주 대 시장독재 대립구도

    홍세화 선생님이 어제 한겨레 칼럼을 통해 민주-반민주의 대립구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제가 이해하는 구도는 ‘민생’ 민주-시장독재의 대립구도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민주의 문제는 반독재 민주화라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홍 선생님이 지적하신대로 "두 차례 성립한 민주정권은 그들에 맞서 사회부문들을 민주화하려고 노력하면서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대신 신자유주의를 채택하면서 이를 우회하거나 봉합하는 데 그쳤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난 10년간 집권했던 민주화세력은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체제에 투항함으로써 사회양극화를 부채질했습니다. 스스로 불러들인 시장적 가치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되면서 민주화세력은 무능 세력으로까지 낙인찍혔고, 결국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는 대중의 불만에 부딪히며 과거 개발독재의 향수에 기댄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주었지요.

    선생님의 말씀처럼 민주-반민주의 구도가 희석되어 민주 세력은 스스로 무장해제했는데 반민주 수구세력은 강고하다는 것이 우리를 절망과 무기력에 빠뜨리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반민주 수구세력에 대항하는 민주화 세력의 대동단결론을 외쳐야 하는 것입니까?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경기 도지사 선거는? 부산시장 선거에서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도 한나라당에 대항할 수 있는 힘있는 세력이 민주당이니 민주당을 밀어주면 된다는 단순한 논법은 아닐 것이라 믿습니다.

    지나친 단순화에 대한 우려

    권위주의 정권과 다를 바 없는 이명박 정권의 일방주의 통치방식에 대해 제대로 된 저항이 조직되지 않고 있는 것이 시민사회가 스스로 민주-반민주의 대립구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지적하셨는데 지나친 단순화가 아닐까요?

    과거라면 대학생들의 강력한 저항이 있었을 거라고 하셨는데 과거와 같이 학생운동이 동원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겠지요. 지금 대학에 학생운동이 어디에 있습니까? 취업 학원으로 변한지 오래이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이른바 민주화세력 10년간 진행되어 온 신자유주의 시장화 전략 때문이 아닙니까?

    노동조합의 저항이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사실 지난 집권한 민주화 세력이 추진한 노동유연화 정책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노동시장 분단,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 간의 격차 심화에 노동운동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상태를 극복하지 못한 탓도 있지 않습니까?

    백척간두 진일보라는 말이 있더군요. 백척간두, 그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용감하게 한 발 내딛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홍선생님의 민주-반민주 구도의 재정립 주장은 진보신당처럼 이념이나 가치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정당에서 말하기 어려운 화두라는 점에서 진일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전제 정치라는 백척간두에서 민주-반민주 구도의 재정립으로 진일보를 해야 한다는 것도 수긍이 갑니다.

    그렇습니다. 힘없는 정의는 무책임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의 선택도 그러했습니다. 진보정당을 선택하는 건 늘 ‘사표’로 치부되었고, 진보정당의 성장을 배제하는 선거 환경에서 늘 자기 실력 이하의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선택한 민주정부 10년의 결과가 바로 이명박 정권이었습니다. 힘을 선택했지만 그것은 정의가 아니었습니다. 정의냐, 힘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정의로운 힘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은 ‘진보대연합에 기초를 둔’ 선거연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 배제 ‘오버’ 측면도 있지만

    이 선거연대는 홍기표의 글과 같이 전술적인 문제이므로 민주당을 애초부터 배제한다고 명시한 것은 ‘오버’였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후 범야권 선거연대에 나선다 하더라도 우선 가치에 기반을 둔 ‘진보대연합’을 통해 진보의 결집을 이루고 그 힘으로 자유주의 개혁세력과 제휴를 하든 타협을 하든, 독립적으로 가든 해야지 개별적으로 ‘신민주연합’ 구도에 함몰되어서는 과거의 비판적 지지와 별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바로 이런 점을 명확히 하자는 취지에서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대연합이라는 표현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대연합이라는 명시적 표현이 불러온 후폭풍을 충분히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홍세화 선생님까지 민주-반민주의 재정립을 말씀하시는 지경이니 노회찬 대표도 충분히 ‘정치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보대연합’은 2010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의 연대전략의 나아갈 방향을 밝힌 것이기도 하지만 선거 이후 진보의 재구성으로 나아가는 보다 전략적 수준의 지향이기도 하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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