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역동적 복지국가 향한 도약을"
        2009년 12월 24일 10: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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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연 많았던 2009년이 저물어간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용산 철거민 투쟁, 전임 대통령의 연이은 서거, 언론악법 날치기, 4대강 및 세종시 논란 등으로 정신없던 한 해가 가고 있다. 이 와중에도 서민들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한 세기에 한번 있을 정도라는 전 세계적 공황으로 인해 돈의 흐름은 따뜻한 윗목으로만 몰렸을 뿐, 결코 아랫목을 향하지 않았다.

    아쉬움 짙은 09년 세밑

    물론 시늉은 있었다. 정권 차원에서 중도실용이니, 서민행보니 관심은 보였지만, 내실 없는 생색내기에 불과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처음부터 ‘강부자’ 정권에 뭘 바란다는 것 자체가 허망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나마 이런 생색내기식 서민 걱정 때문에 좀 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행보를 주춤거렸다는 정도가 다행스러울 뿐이다. 아쉬움 짙은 세밑이다.

    아마도 역사는 2000년 이후 10년의 대부분을 개혁과 진보의 시기로 기록할 것이다. 이 시기는 누가 뭐래도 87년 6월 항쟁 이후 진보개혁세력의 황금기였던 것이 사실이다. 조선후기 영·정조 시절처럼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에 정조 사망 이후 부패한 사대부들이 득세하며 권력을 농단하던 시절 일군의 실학자들이 느꼈을 박탈감과 좌절감이 충분히 이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든 것을 이명박 정부만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한나라당의 최대 우군은 무능력한 민주당이라는 신문 사설이 많은 국민의 공감을 얻었다. 정권 교체와 집권의 희망을 주지 못하는 진보정당 또한 그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시민사회와 진보적인 학자들도 오늘의 현실과 내일 새로 써 나가야 할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의 현대사는 뜨거웠다. 치열했고, 사나웠다. 그 결과 이 땅의 주류 지배세력은 ‘민주화’로 대변되는 진보개혁세력에게 권력의 핵을 내주기까지 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건대, 이들이 ‘온갖 수모를 당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군기’ 잡고 싶은 욕망

    낡은 기득권 세력은 ‘부정이다, 뇌물이다, 특혜다, 투기다, 인권탄압이다, 친일이다, 주구다, 노동탄압이다’라며 온갖 불명예의 대상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렸고 망신을 당했다.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곳간도 꽤 내놓은 셈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했고, 어지간한 복지제도도 형식은 그런대로 갖추어졌다. 그 덕에 이 땅의 민초들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호사를 누리기까지 했다. 여기에 덧붙여 최고 권력까지 내어주고 10년의 세월을 이렇게 지냈으니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이 그들에게 결코 빈말이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긴 기다림 끝에 그들은 드디어 ‘권력’을 되찾았다. 여기에 더해 진보개혁세력은 10년의 집권기간을 거치며 사분오열되고 말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아왔던 진보적 노동운동 또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에 집착하면서 사회적 정당성을 상당부분 잃고 말았다.

    그런데, 이렇게 등장한 MB정부가 지금 헤매고 있다. 지난 시절 겪었던 고초에 대한 보상 심리가 강해서인지 뭔가 ‘군기’를 잡고 싶은 욕망이 곳곳에서 엿보였지만, 어지간해서는 ‘폼’이 나지 않는 모양새다. 결정적으로 월가의 붕괴와 미국 경제의 극심한 침체로 인해 만족스러운 수준의 성장 자체가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가진 자들의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강력한 재정정책과 시장개입을 통해 거품을 조성하려 하거나, 영리병원이니 서비스산업 육성이니 하는 낡은 구호를 들먹이며 중산층과 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돈 빼낼 궁리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결국, 지배적 보수집단의 품위도 지키지 못하고, 파이도 못 키우는 무능만 드러내고 말았다. 그들의 대안은 현실성과 설득력이 없다. 게다가 2012년 정권 재창출을 염두에 둔 현 정부의 성급함과 무리수는 쉽게 멈추기 어려워 보인다.

    여당 죽쒀도 대안세력 안 보여

    문제는 현 정부와 여당이 이렇게 죽을 쑤는 데도 마땅한 대안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제는 빛이 바랜 ‘민주화’라는 상표를 떼고 나면 여당이나 야당이나 ‘그것이 그것’이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세계적 경제 사정마저 불확실해지는 바람에 서민들은 쉽게 정치인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2010년 대규모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세력 간 이합집산의 궁리는 요란한 반면, 우리가 정작 추구해야 할 새로운 정치의 내용에 대한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국민들은 더욱 더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절감하듯이, 우리사회는 새로운 대안을 필요로 한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가 주장해 왔고, 앞으로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역동적 복지국가의 실현’이다. 일부 좌파에서는 이것을 개량주의라고 비판하며 삐딱하게 쳐다본다. 다른 일각에서는 서유럽 사민주의 정당들이 겪고 있는 최근의 정치적 곤란을 예로 들며 ‘복지국가’가 우리의 대안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땅의 보수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들이 내놓아야 할 몫이 아까워 시장근본주의를 앞세우며 ‘복지국가’라는 대안에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따라서 우리는 그간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주장해 온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대안이 결코 쉽지 않은 경로임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시대가 보유하고 있는 생산력의 토대 위에서 ‘복지국가의 건설’ 외에는 안정적인 경제운용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보다 현실적이고도 인간적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 논리에 기댄 경제성장 정책은 단기간의 효과는 볼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거품의 크기만큼 부작용이 클 것이며, 구조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2010년 복지국가 희망찬 첫 출발 되길

    ‘역동적 복지국가의 실현’이 단지 일부 좌파의 이념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 모두의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한 중대 과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현대사는 30년, 즉 한 세대를 주기로 큰 변화를 겪어왔다. 소설 ‘태백산맥’의 말미에 나오는 한 노인의 독백처럼 동학혁명이 끝난 뒤, 한 세대 이후 3.1운동이 있었고, 그 한 세대 후에 6.25를 겪었다. 그리고 다시 한 세대 후 5.18 광주가 있었고, 이제 우리는 또 다시 새로운 한 세대를 보냈다.

    이것은 단순한 운명론적 당위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감지하는 이 땅의 현실이 변화의 시점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한 세대의 출발점인 2010년이 복지국가의 희망찬 첫 출발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작은 차이와 이해관계를 떠나 연대와 통합의 정치력을 통해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목표와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는 진보개혁진영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2010년은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저물어 가는 한 해를 보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힘겹고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때로는 분노한다. 그러나 민중은 언제나 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의 희망을 창조해냈다. 이제 더 많은 사회정의와 연대의 솟구침이 요구된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서 가는 열 걸음이 아니라 열 사람이 함께 가는 길, 노동자 서민과 우리 모두가 함께 가는 더 큰 길을 모색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사는 세상’, ‘역동적 복지국가’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갈 것이다. 이것이 2009년 한 해를 보내며 갖게 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2010년도 소망이다.

    용산 참사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바라며, 2009년 12월 24일
    사단법인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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