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비-장비, 정치적 가족이 되다
        2009년 12월 24일 10: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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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억수씨

    "정치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핑계에 있다."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유비는 원술을 공격하라는 황실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다. 사실 유비는 전혀 원술을 공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황제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비는 ‘뭔가 하는 척’을 하면서 황제의 불필요한 명령을 무력화 시킬 핑계를 찾고 싶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별 핑계가 없을 때라면, 사태를 진전 시켜 가면서 핑계거리를 계속 얻어가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호탕한 장비, 한번 믿어봐?

    유비가 장비를 불러 말했다.
    “이보게 장비 아우! 내가 일단 군사를 일으키긴 하겠으나, 대충 싸우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적당한 핑계를 찾아서 돌아올 테니 그동안만 서주성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게.”

    “걱정 마시유 형님, 내 벌써 술도 끊었소. 하하! 서주성은 걱정 붙들어 매시유.”
    장비는 능글능글한 말투로 호탕하게 말했다. 유비는 아무래도 장비가 못미더웠으나 그 순간 장비가 워낙 호탕하게 말을 하는 통에, 갑자기 뭔지 모를 믿음이 솟아나는 듯했다. 그렇게 유비는 관우와 함께 3만의 마보군을 거느리고 원술이 있는 남양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유비의 입장에서는 핑계거리를 얻기 위한 진군이었다.

    한편, 원술 진영도 이미 조조의 은밀한 편지를 받고 유비가 쳐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무렵 원술은 하남 땅에서 착실히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원술의 세력은 날로 커져서 명문인 원씨 일족 중에서도 원소와 함께 가장 큰 위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원술은 한참 잘 나가는 마당에 유비라는 듣도 보도 못한 장수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으니 가소롭기 까지 했다.

    “이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잡것들이 쳐들어온다니 누가 나가서 상대해주겠는가?”
    “제가 가서 하룻강아지 같은 유비의 목을 베어오겠습니다.”

    몸집이 큰 기령이라는 장수였다. 원술은 그 자리에서 상장 기령에게 10만의 군사를 내주고 유비군을 쓸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원술군의 상장 기령은 힘이 센 장사 출신인데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50근짜리 삼첨도를 잘 쓰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청룡언월도 대 삼첨도

    기령은 원술이 내준 10만 대군을 이끌고 유비를 맞으러 나갔다가 임회라는 지역에서 유비군과 맞닥뜨렸다. 양군은 전투대형을 갖추고 벌판 위에서 진을 짰다. 금방이라도 전투가 시작될 듯한 분위기가 벌판을 휘감았다. 이 때 기령이 나와 소리를 질러댔다.

    "네 이놈 유비야!! 네가 감히 분수도 모르고 우리 원술장군의 영역을 침범한단 말이냐!"
    기령의 말에 유비도 지지 않고 외쳤다.
    "나는 천자의 조서를 받들고 왔다. 원술에게 어서 나와 황제의 명을 받으라고 전해라.!"

    유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령이 말을 박차며 달려 나왔다. 그러자 유비측에서는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말을 달려 나갔다. 먼저 달려 나온 기령이 창도 먼저 휘둘렀다. 기령은 무게 50근짜리 삼첨도로 관우를 내리쳤다. 그러자 관우가 80근짜리 청룡도를 휘둘러 기령의 삼첨도를 가볍게 막아냈다.

    두 장수는 한참을 맞붙었지만 30여 합이 어우러지도록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결국 체력이 떨어진 기령이 먼저 말머리를 돌렸다. 초기의 기싸움에서 대장이 뒤로 밀리자 배후의 주력군도 뒤따라 퇴각하기 시작했다. 유비측에서 일제히 함성이 올랐다. 기령은 군사를 뒤로 물려 회음하구까지 물러나 진을 쳤다.

    기령은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관우와의 접전 이후에는 좀처럼 싸우려 들지 않았다. 애당초 싸울 의사도 없었고 군사도 적은 유비 역시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양측은 서로를 관망하며 대치하기 시작했다.

    장비의 어린 시절

    한편 유비가 술을 먹지 말라는 신신당부 끝에 출정하자, 장비는 처음에 비교적 성실한 자세로 성을 지켰다. 애당초 유비에게 약속한 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음은 물론이고 부하들도 사납게 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큰형인 유비가 전쟁터에서 고생한다 하여 자신도 잠자리에서조차 갑옷을 벗지 않았다. 한마디로 전에 없던 모범생 노릇이었다.

    사실 장비도 그동안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술을 많이 먹고 부하들을 험하게 다루는 버릇은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장비는 언제부턴가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그러던 중에 맏형인 유비로부터 ‘술 때문에 널 못 믿겠다’는 식의 얘기를 듣자 ‘이번에야 말로 꼭 술을 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끊어야 한다는 욕망 과제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유비가 떠난 뒤에, 장비가 곰곰 생각해 보니 자기 부하들에게 그동안 너무 박하게 군 것 같았다. 장비는 아닌게 아니라 아랫사람들에게 무지막지한 인간이었다. 걸핏하면 부하들을 폭행했다. 그것은 장비의 각박한 삶 때문에 생긴 버릇이었다.

    어릴 때부터 가난한 환경에서 억척스럽게 살아오면서 장비는 자기보다 힘이 없는 존재들을 막 대하는 습성이 생겼다. 장비는 이번 기회에 술도 끊고 뭔가 병졸들에게 따뜻한 인상을 심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비에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봉인해 둔 술 창고를 개방해서 군사들에게 모두 나눠 주면 좋지 않을까?’

    술 창고의 술을 모두 나눠줘 버리면 장비로서는 더 이상 술 유혹을 겪지 않아도 되고, 군사들에게도 인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장비는 좋은 생각을 한 것 같아 당장 군사들에게 술을 나눠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병졸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곧바로 이게 웬 떡인가 싶어 모두들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장군님, 딱 한 잔만"

    그런데 그중 일부 군사들이 장비에게 같이 먹자며 술을 권했다.
    "장군님, 한 잔만 드십시오."

    장비가 멀리 서서 군사들의 술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으니, 자기들끼리만 마시기엔 눈치가 보였던 병졸들이 장비에게 술을 권한 것이었다. 장비는 몇 번 거절하지도 않고 그만 술잔을 받아 마시고 말았다. 사실 장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군사들에게 술을 나눠주자는 핑계를 내세워 술 창고를 뜯고 싶었던 심리가 작용하고 있었다.

    ‘그럼 딱 한 잔만…’
    장비는 그렇게 한 잔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그 한 잔이 목구멍을 거쳐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순간 장비의 억제되어 있던 욕망 체계가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끊었던 술을 일단 다시 먹기 시작하자 참을 수 없는 욕망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다음 명령이 이어졌다.

    "여봐라, 술을 더 가져 오너라."
    그렇게 얼마나 마셨을까? 장비가 한참 취흥을 돋우고 있는데 옆에 부장 조표가 눈에 띠였다. 조표는 나이든 장수였는데 서주성에 와서 알게 된 자로 그동안 장비에게 별로 고분고분한 눈치가 아니라 은근히 기분 나쁜 구석이 있던 장수였다. 그렇지만 장비는 이제 그런 사소한 기분 나쁨은 모두 잊고 모든 부하들을 따뜻하게 대하기로 결심했다. 장비는 큰 맘을 먹고 조표에게 술잔을 권했다.

    "장군 저는 술을 전혀 먹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조표는 술을 거절했다. 장비는 자기가 큰 마음을 먹고 내민 술잔을 부하가 거절하자 벌컥 화를 내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화가 난 것은 아니었고 단지 늘 부하들을 겁주기 위해 장비가 자주 하던 행동이었다.

    "어째서 안 마시겠다는 말이냐?"
    장비는 눈을 부라리며 조표를 노려보았다.
    "장군, 저는 정말 술을 입에 대지 못하는 체질입니다."

    조표는 술잔을 받는 척도 하지 않으면서 고지식하게 계속 술 먹기를 거부했다. 타협을 모르는 인간이었다. 그러자 장비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여포 장인, 곤장을 맞다

    "이놈! 네가 감히 내 명령을 어기려 드느냐!"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상대가 너무 뻣뻣하게 나오자 장비도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했다. 장비는 옆에 있던 군사에게 조표를 끌어내리게 했다. 그러자 장비의 난폭한 성격을 알고 있던 조표는 더욱 안절부절했다. 위기감을 느낀 조표는 그 순간 큰 실언을 하고 말았다.

    "장군, 내 사위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용서해 주시오."
    "네놈의 사위가 누구길래 그러느냐?"
    "여포입니다."

    그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여포란 말에 장비는 이번에는 정말로 속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뭐. 여포라고! 그 방자한 여포가 정말 너의 사위란 말이냐? 이런… 내 정말 네놈에게 곤장을 칠 작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네놈이 여포의 장인이라니 이젠 용서할 수가 없겠다."

    장비는 조표를 끌어내리더니 직접 곤장을 들고 조표를 때리기 시작했다. 술김에 옛날 버릇이 다시 나온 것이었다. 장비가 한참 동안이나 조표를 때린 다음에야 주변의 간곡한 만류로 폭행을 멈출 수 있었다. 조표는 다른 군사의 부축으로 겨우 돌아갔다. 이로써 장비는 술을 먹지 말고 부하들을 때리지 말라는 유비의 두 가지 당부를 모두 어기고 말았다. 2관왕을 달성한 것이다.

    그렇게 죄 없이 얻어맞은 조표의 마음속에는 장비에 대한 앙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조표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소패에 있는 사위, 여포에게 몰래 사람을 보냈다. 소패성까지는 불과 40리밖에 떨어져있지 않았다. 멀지 않은 거리였다. 조표의 부하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난 여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하늘에서 온 희소식이군…"
    조표의 서찰에는 ‘지금 서주성은 장비 혼자 지키고 있으며, 오늘은 군사들과 함께 모두 술에 취해 있기 때문에 오늘밤에 군사를 일으키면 서주성의 주인을 손쉽게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여포, 갑옷 입고 말에 오르다

    여포는 장비가 시시때때로 자기에게 시비를 걸던 일이 생각났다. 기회있을 때마다 장비는 자기에게 대놓고 욕을 했지만, 유비와 의형제를 맺은 동생이라 차마 대응을 못하고 있었다. 묵혀 두었던 원한이 갑자기 떠오르자 여포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여포는 즉시 갑옷을 꿰입고 말에 올랐다.

    유비에게 몸을 의탁하러 올 때만 해도 ‘이제 다시는 누군가를 배신하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그 따위 거추장스런 기억은 말에 오르는 순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적토마는 오랜만에 갑옷 입은 주인을 태우고 쏜살같이 밤길을 달렸다. 소패성에서 여포와 함께하던 기병 5백기가 그 뒤를 따랐음은 물론이다. 여포군은 밤길을 달려 삽시간에 서주성에 이르렀다.

    한편 성안에서는 조표 일행이 여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성문을 지키는 군사들은 조표가 자기 쪽 부하들로 바꿔놓고 있었다. 조표는 곧바로 성문을 활짝 열어 여포군을 불러들였다.

    한편, 장비는 얼마나 많은 술을 퍼 먹었는지 심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그날 밤, 장비는 술에 취했다기보다는 오랫동안 스스로 억눌러두었던 자기 욕망에 취해있었다. 장비에겐 잠시나마 행복한 저녁이었다. 그런데 그 행복한 밤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디선가 창칼이 어지럽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자 장비가 잠결에 눈을 떴다. 왠지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고 종종 늙은 남자들의 굵은 비명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갑자기 머리끝에서부터 엄습해오는 공포감에 놀라 장비는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잠시 전까지 자기 욕망에 취할 대로 취해 있던 장비는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장비, 도망가다

    ‘아뿔사! 큰일이로다!’

    장비는 다행히 갑옷을 입은 채 자고 있었다. 급한 대로 늘 가까이 세워두는 장팔사모를 꼬나들고 뛰쳐나갔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여기저기서 방금 전까지 같이 술을 먹던 군사들이 시체가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장비는 말 위에 뛰어올라 장팔사모를 들고 성 안의 광장으로 나아갔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알아봐야 했다. 술김에 자세히 보니 조표의 부하들과 여포의 군사들이 한통속이 되어 날뛰고 있었다.

    장비는 그들을 향해 나아가 사모창을 휘둘렀으나 아직 취기가 가시지 않아 창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서주성을 지키던 군사들은 술에 취한 상태로 자다가 기습을 당해 지리멸렬이었다. 게다가 그들을 이끄는 장수마저 없으니 죽는 자보다는 대부분 항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장군, 여포가 조표와 짜고 야간 기습을 감행했습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그때 부장 18기가 장비에게 뛰어와 상황을 알렸다. 그들은 장비를 호위하며 성의 동쪽으로 혈로를 열어 서주성을 빠져 나갔다. 조표는 장비가 동문을 향해 도망쳤다는 말을 듣고 기병 수십 기를 이끌고 뒤쫓았다.

    "이놈 장비야, 어딜 가느냐! 당장 이 조표의 칼을 받아라!"
    "으잉? 저게 누군가? 조표놈이 아닌가!"

    뒤에서 문득 조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장비는 도망치다 말고 갑자기 말머리를 홱 돌렸다. 장비가 취했다고는 하나 조표는 장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부드득 이를 갈며 달려간 장비는 단칼에 조표의 목을 날려버렸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원한에 사무치자 고도의 집중력이 되살아난 것이다. 고지식한 조표의 뒤를 따르던 수십 명의 군사들도 장비의 장팔사모 앞에서 모두 목 없는 귀신이 되어 나무토막처럼 말위에서 툭툭 굴러 떨어졌다. 몸에 온통 피가 튄 장비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관우의 격노

    "아! 이놈의 술 때문에 내가 또 다시 일을 저질렀구나."
    그런 탄식과 함께 장비는 얼마 되지 않는 자기 군사를 이끌고 쓸쓸히 유비가 있는 회남 땅으로 향했다.

    얼마 후 장비와 그의 장졸들이 비참한 몰골을 하고 유비의 막사에 도착했다. 장비는 고개를 숙이고 조표와 여포가 서로 내통하여 서주성을 빼앗았다고 알렸다.

    "형님, 살아서 얼굴을 뵈올 면목이 없습니다."
    묵묵히 장비의 말을 듣고 있던 관우가 물었다.
    "형님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모두 성 안에 남겨두고 왔습니다."

    장비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관우가 격노했다.
    "성을 떠나올 때 술을 삼가라고 그토록 당부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찌 큰 형님의 가족들까지 모두 남겨놓고 혼자 살아왔단 말이냐."

    관우의 고함 소리에 눈물을 글썽이던 장비가 갑자기 칼을 빼들고 제 목을 찌르려 했다. 이를 본 유비가 깜짝 놀라 칼을 빼앗았다.
    "형님, 제 목을 쳐 주십시오. 저는 죽어야 할 놈입니다."

    유비는 장비가 서주성을 떠나 자신의 주둔지에 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충분히 예상했고 걱정했던 상황이 정확히 맞아 떨어져 눈앞의 현실이 되자 유비는 더욱 속이 답답해졌다.
    ‘어떻게 얻은 서주성인데…’

    해결 안 되는 욕망 과제

    마음 같아선 당장 저 장비 녀석의 머리통이라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그러나 잠시 후 유비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장비를 탓해 무엇하랴? 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이 바뀌자 유비는 곧바로 장비를 이해해 주기로 결심했다. 유비는 장비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형제는 수족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고 했다. 옷은 찢어지면 다시 지을 수 있으나 손발이 끊어지면 어찌 이을 수가 있겠느냐? 비록 성과 가솔을 잃었다고는 하나, 그만한 일로 어찌 내가 너를 버릴 수 있겠느냐."

    곁에서 관우가 그 말을 가만히 듣다 보니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유비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욕망 과제를 하나씩 갖고 있다. 나도 말은 못하지만 사람인 이상 어찌 너처럼 해결하지 못한 욕망이 없겠느냐!"

    그렇게 타인의 욕망과 그의 한계를 이해해주고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유비는 장비와 진정한 정치적 가족으로 묶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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