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라리 당 해체, 민주당 분파하라
    정파적 분열정치…함께 성찰해야
        2009년 12월 23일 03: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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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대연합’과 ‘민주대연합’을 둘러싼 담론 전쟁이 시작되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지난 16일 민주당을 배제하는 ‘진보대연합 테이블 구성’을 제안한 이후 언론 매체를 통해 공방을 이어가던 논란에 <한겨레> 홍세화 기획위원이 23일 칼럼을 통해 합류하면서 이번 논쟁이 영향을 주는 자장이 넓고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노대표 발언 한가한 도발?

    포문을 연 것은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이 의원은 18일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민주대연합까지, 다 열어놓고 의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를 넘어선 더 큰 연대가 필요하면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하고 흔연히 우리 스스로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왼쪽부터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민주당 최재성 의원,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

    그는 이어 “진보의 임무는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를 실현시키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라며 “민주노동당이 가지고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은, 거름으로 썩어가도 누군가가 나를 딛고 올라서 더 잘 할 수 있다면 기꺼이 자신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서울을 비롯한 주요 지역에서 국민들의 요구는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비롯해 모든 정치세력과 시민의 힘을 모으라는 것”이라며 “공정한 경쟁의 기준은 함께 만들어갈 수 있으며, 2012년 총선, 대선까지 국민들과 사이에 확고한 믿음을 쌓아나가는 단단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 역시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노 대표의 ‘묻지마’ 기준이 허용(?)한 것은 민주노동당과의 선거연대에 불과하다”며 “마치 여소야대 환경에서 제1야당 대표가 군소야당들에게나 했음직한 한가한 도발”이라고 표현했다.

    최 의원은 이어 “‘반MB, 반한나라당 선거연대’를 만들어도 쉽지 않은 선거가 될 텐데, 범개혁진영이 한가하게 선명성 경쟁이나 하면서 말싸움이나 할 상황이 아니”라며 “노 대표는 서울시장 출마가 분열의 씨앗이 되서는 안 되며 내년 지방선거를 통해 이명박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뜻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심판받은 정권 복원 위한 연합? 황당한 일

    이에 대해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은 22일 <오마이뉴스>기고를 통해 “국민의 정부가 조금 모습을 바꾸거나, 참여정부가 이름을 바꿔 부활하는 것이 진보정당이 꿈꾸는 세상은 아닐 것”이라며 “이미 2007년 심판받았던 정권을 복원하기 위해 우리가 국민에게 ‘반MB연합’을 하자고 한다면 이만큼 황당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반MB’로 모두 뭉쳐야 한다가 아니라, 어떤 내용으로 ‘반MB’를 할 것인가에 대한 진보정당다운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며 “이러한 기준도 없이 ‘현재 어떤 내용이나 원칙보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이명박 정권 극복’이라고 한다면 정말 당황스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만약, 이 의원이 주장하는 바를 과거 민주노동당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그동안 민주노동당에 닥쳤던 그 수많은 선거에서 후보를 내서는 안 됐을 것”이라며 “그런 역사가 반복된다면 민주노동당이나 다른 진보정당은 차라리 당을 해산하고 민주당 내 진보적인 한 분파로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정치인들 간의 논쟁이 지방선거의 연대연합의 당위성에 초점이 맞춰있는 반면, 학계의 논쟁은 지난 10년의 평가와 진보정당과 자유주의 정당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서도 폭넓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정상호 명지대 교수는 20일 <프레시안> 기고에서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한다”며 노회찬 대표의 ‘진보대연합’ 노선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일방적 사죄 요구 안 돼

    정 교수는 “노 대표의 발언은 연합정치의 원칙과 정신을 훼손한 정파적 분열정치의 소산”이라며 “대연합은 최소한의 합의에 근거한 다수 정당들의 느슨한 연대를 추구하는데, 노 대표의 주장은 오히려 비타협 노선의 선명한 진보를 주창하는 독자 노선의 천명으로 독해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서영표 성공회대 교수(왼쪽)와 정상호 명지대 교수

    그는 이어 “민주당을 배제해야 하는 논리적 근거로 양극화를 초래한 민주정부 10년의 과오를 준열히 꾸짖고 개과천선하지 않으면 진보의 자격을 영구히 박탈할 것이라 위협하고 있지만 10년의 공과는 진보개혁세력의 총체적 역량과 지혜의 부족에 본질적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상대방에게 일방적 사죄를 요구할 것”이 아닌 “함께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연합정치를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만들 비례대표제가 부실하고 타협의 문화와 경험의 축적이 허약한 한국의 상황에서, 원칙과 가치의 정치를 추구하는 진보신당이나 노 대표의 입장에서 연합정치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이유 또한 헤아릴 수 있다”며 “그런 이유 때문에 이정희 의원 주장처럼 지방선거 전 진보정당의 1단계 통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서영표 성공회대 교수는 22일 <프레시안> 기고에서 정 교수의 주장에 대해 “1987년 이후 지겹도록 들어온 ‘비판적 지지론’의 변형된 판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서 교수는 “문제는 진보신당(그리고 민주노동당)이 자유주의자들과 가질 수 있는 합의 지점이 무엇인가 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진보정당에게 대연합을 제의하면서 원칙 고수를 꾸짖으려면 최소한 ‘진보’를 내보여야 한다”며 “그런데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진보는 고작해야 ‘반이명박’과 ‘반한나라당’을 넘어서지 못하고, 오히려 진보신당이 제시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과 지난 10년 정부의 모습들은 너무나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쪽수 내세우며 따라오라는 강변

    서 교수는 “현재 자유주의 세력은 어떤 비전과 원칙 아래서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지가 불명확하다”며 “이에 대한 답을 가지지 못한 정치세력이 대연합을 주장하는 것은 진보의 원칙이 아닌 쪽수로 자신의 옳음을 강변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했다. “원칙도 내용도 없이 민주당을 따라오라는 오만한 다수파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정 교수는 ‘정치적·사회적 양극화의 책임에 진보진영도 성찰해야 한다’고 하지만 10년 동안 진보세력은 자유주의 정권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다”며 “그 비판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보수파와 진보적 의제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그리고 시장맹신주의를 자연스럽게 수용했던 자신들의 오류를 비판세력에게 분담하자는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노 대표의 제안을)‘연합정치의 원칙과 정신을 훼손한 정파적 분열정치의 소산’으로밖에 인식하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이 꿈꾸는 진보는 내용이 텅 비어 있는, 전혀 진보적이지 않는 ‘진보’임을 증명해 줄 뿐”이라며 “준엄한 자기비판이 결여된 대연합의 제기는 소통과 협상의 출발점인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의 담론 전쟁은 진보 양당 내부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진보신당의 경우 당원이기도 한 홍세화 <한겨레>기획위원의 민주연합론 지지 발언은 당 대표의 공식 발표와 배치되는 것이다. 이정희 의원의 주장도 민주노동당 후보에 대한 불출마를 종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민노당 중심성을 강조하는 당내 세력과 내홍을 겪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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