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나라의 '사교육'
        2009년 12월 23일 10: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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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사교육에 많이 참여하고 사교육비도 많이 냅니다.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일입니다. 그런데 ‘공부 잘 한다’와 ‘사교육 많이 받는다’라는 두 가지 말을 가지고 그동안에는 한 쪽으로만 생각해오지 않았을까요. “사교육을 많이 받아서 공부를 잘 한다”라고 말입니다.

    21일 통계청이 <한국의 사회동향 2009>를 내놓았습니다. 교육 분야도 있는데, 국제 학력평가의 성적이나 취업률, 실업률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사교육의 몇 가지 특성도 알려주는데 재밌습니다.

    우린 공부 잘할수록 사교육 많이 받아

    TIMSS(팀스)라고 여러 나라 학생들이 수학과 과학 문제를 풀고 이를 비교하는 국제적인 ‘연구’가 있습니다. ‘연구’라고 따옴표를 붙인 이유는 MB의 일제고사처럼 단순하게 점수로 줄세우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교육을 얼마나 받는지, 수학공부가 어느 정도 즐거운지, 과학을 잘한다고 생각하는지 등의 내용도 함께 조사하여 점수와의 관계를 살피기 때문에 일종의 ‘연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그래프가 나옵니다. 물론 통계청이 <한국의 사회동향 2009>에서 소개한 겁니다.

       
      

    각 나라마다 막대가 5개 있는데, 오른쪽으로 갈수록 소위 ‘점수 잘 나오는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막대의 길이는 사교육받는 학생들의 비율입니다. 막대가 길면 사교육 많이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사교육

    한국은 오른쪽 막대일수록 길어집니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사교육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미국, 영국, 일본,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는 이상합니다. 왼쪽 막대가 가장 길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짧아집니다. 점수 적은 학생이 사교육 많이 받고, 점수 높은 학생이 사교육을 적게 받습니다. 싱가포르의 최상위권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한국만 특이합니다. 우린 매일 접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안에서만 상식일 수 있습니다. 우린 사교육 많이 받으니까 공부를 잘 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그게 맞다면, 다른 나라의 그래프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볼 필요도 있습니다. “사교육 많이 받아 공부 잘 한다”로만 고정해놓지 말고, 역으로 “공부 잘하는 학생이 사교육을 많이 받는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다른 나라는 공부 못 하는 학생이 개인과외를 많이 받습니다. 공부를 못 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공부를 메꾸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즉, ‘보충’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점수가 낮은 학생의 막대가 긴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런 국가에서는 “공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을 받는다”라고 말해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대입니다. 공부 잘 할수록 사교육을 더 받습니다. 아니, 공부를 잘 하는데도 과외를 많이 받습니다. ‘보충’이나 ‘메꾸기’가 아닙니다. 보충해야 할 필요성은 뒤쳐진 학생들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소위 범생이들이 학원을 더 열심히 다니는 이유는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누군가를 누르고 올라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범생이 세계의 압력은 훨씬 심합니다. 승리에 대한 갈망과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집단보다 더합니다. 양질의 사교육이라고 ‘소문난 곳’에 더욱 매진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공교육 부실과 사교육을 연관시키면 안됩니다. “공교육이 경쟁적이어서 사교육을 받는다”라고 해야 합니다.

    MB ‘경쟁교육’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

    앞선 그래프는 2003년 데이터입니다. 최근 수치가 아닙니다. 당연히 학계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조금씩 있어왔습니다. 작년 2008년 말에도 ‘사교육 수요 분석: 학습보충론과 미래투자론’과 ‘공교육체제 발전 전략과 사교육 수요 간의 관련성 탐색’ 등 2편의 논문이 발표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사교육의 원인을 아직도 부실한 공교육이나 보충에서 찾는 연구자가 주변에 계시다면, 최근 경향에 둔감하거나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번째 논문은 이런 제언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교육 절감을 위해 실효성 있는 정책적 대안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의 내실화 방안뿐만 아니라 공교육 체제 및 노동시장구조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 한국의 학생들이 학력보충(remedial)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이후 대학진학 및 노동시장에서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기제(enrichment)를 목적으로 사교육을 더욱더 수요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교육 수요 절감은 공교육체제 발전을 위한 양적 전략이나 학교교육의 내실화 전략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쌓여온 공교육체제의 경쟁적 서열구조와 최근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반한 노동구조가 사교육의 수요를 더욱더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학교만 가지고는 안 된다

    학교만 어떻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줄세워진 학교와 서열화된 노동에 대해 적절한 조치도 필요하다고 밝힙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치하에서는 당분간 요원한 일입니다. 22일 교과부는 내년 2010년 업무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업무 계획에서는 △3월부터 초중고 모든 교원에게 교원평가를 실시하고 △빠르면 연말에 학교별로 일제고사 성적을 공시하며 △국립대 교수들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등의 정책을 중점 추진한다고 밝힙니다.

    학교간 경쟁을 더욱 부추기고, 교사와 교수들은 노무관리도 겸해 더욱 경쟁시킬 요량입니다. 여기에 자율형 사립고와 자율형 공립고를 각각 50개씩 도합 100개를 만들 계획입니다.

    경쟁 때문에 사교육을 찾는데, ‘경쟁교육’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정부는 밝힙니다. 줄세우기가 문제인데, 줄을 더 세우겠다고 천명합니다. 훌륭한 처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경쟁에서 도태된 패배자를 양산하여 사교육비를 줄이려고 하나 봅니다. 그래서 내년을 ‘사교육비 절감의 원년’으로 정했나 봅니다.

    약간의 개그도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교육이 광장히 좋은 줄 알고 그러는데, 나는 사실 불만이 많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아닙니다. 이것도 쓴웃음을 짓게 하지만, 다른 게 있습니다.

    교과부는 올 한 해의 미흡한 점으로 가장 먼저 ‘교육정책에 대한 현장 체감도 부족’을 듭니다. “교육개혁 정책들의 낮은 현장 체감도로 자발적인 변화가 미흡”했다고 평가합니다. MB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느낌이 부족하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뼈저리게 체감할 수 있도록 더욱 고삐를 죄나 봅니다. 그리고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하나 봅니다. 아무 때나 ‘자발’이라는 말을 갖다 붙입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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