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왜 이곳을 위험하다고 하는가?
    By mywank
        2009년 12월 23일 09: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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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라말라, 사방이 콘크리트 장벽으로 에워싸인 봉쇄지역 팔레스타인의 수도. 12월 2일 한국을 떠나 이곳으로 오기 전, 팔레스타인에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모든 지인들은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위험한 곳에 꼭 가야해?”
    “거기 너무 위험한 곳 아니야?”

    "살아 돌아와"

    잘 다녀오라는 인사 대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기왕 가는 거, 어쩔 수 없지만 조심해서 다녀와.”
    심지어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았다.
    “살아 돌아와.”

    그러나 팔레스타인이라는 대신 ‘이스라엘’에 가게 되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사뭇 달라졌다. “와! 부럽다.”
    “성지에 가서 사진 좀 많이 찍어와.”
    “나도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좋겠다.”

    나름 중동 지역을 다녀온 적이 있다는 언론사 기자 친구는 혹시라도 벌어질 위험한 상황에 대비해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이쪽 지역 특파원이 있는 언론사를 이리저리 알아봐 주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지역에 있는 특파원이라고 해봤자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공영방송 기자였고, 한인회가 꾸려져 있는 이스라엘에 민간 통신원을 운영하는 정도가 고작 한국 언론의 이 지역에 대한 정보력 수준이었다.

       
      ▲베들레헴 평화 센터 앞 광장에 있는 이스라엘 점령지역과 팔레스타인 봉쇄지역 변천 안내판 중 지도 (사진=이안) 

    어째서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이토록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팔레스타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팔레스타인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막상 이곳까지 이르는 여정에서 알게 된 것은 팔레스타인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제대로 다다르기까지가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며, 이제 이곳을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면서 새록새록 느끼게 되는 것은 팔레스타인에서 지내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이곳을 떠나는 과정이 들어오기보다 더 힘겹고 까탈스러우리라는 것이다.

    누가 이곳을 위험하다고 하는가

    팔레스타인 영화감독 일리야 슐레이만의 영화 <팔레스타인 The day that remains>에서 주인공 역을 직접 연기한 감독이 아무리 잘 닦인 도로를 차로 달려도 텔아비브 공항에 닿지 못하고, 마침내 도시를 철통같이 에워싼 높다란 장벽을 장대높이뛰기 막대를 짚고 뛰어넘는 장면은 실제가 아니라 판타지로 보인다.

    그 까닭은 그 장면이 기가 막힌 특수효과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져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은 아무도 그 장벽 너머로 나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이 위험하다는 인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스스로 되물어야만 한다. 어떤 언론사도 이곳에 들어와 제대로 현실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사는 모습을 함께 나누지 않았으면서 이곳을 위험하다고 한다. 그 위험은 누구를 견주어 말하는 것인가?

    팔레스타인 정세가 위험하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이라면, 그 위험은 팔레스타인이라는 봉쇄된 지역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을 단단히 틀어막고 있는 자들로부터 오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벽 안 예수의 14처 가운데 하나인 교회 앞에 있는 이스라엘 병사들 (사진=이안) 

    팔레스타인을 찾는 사람이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고 지레 짐작할 때, 그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위협적이라는 속뜻으로 하는 말이 될 것이다. 아랍 지역을 혼자 여행하는 여성은 강간당할 위험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여행안내서의 정보가 아랍 문화권 남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것이 엄청난 잘못이듯,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는 것은 비딱한 시선이다.

    사실 서울의 밤거리나 뉴욕의 밤거리가 세상 어느 곳 못지않게 여성에게 위험스럽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곳을 봉쇄하거나 피하기는커녕 더 많이 찾아 누비고 다니지 않는가? 그러니까 팔레스타인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나 팔레스타인 지역 자체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것이다.

    이곳이 위험한 진짜 이유

    그런데도 이곳은 위험하다. 이스라엘 공항에서는 행선지를 꼬치꼬치 물어보고, 도로 곳곳에 검문소를 만들어 길을 막고 짐을 검사하며, 여기저기 군인들이 총을 겨누고 서서 감시의 눈을 번득인다. 정말 위험한 것은 바로 이 폭력적인 감시와 봉쇄 자체다.

    이스라엘은 권한다. 예루살렘, 베들레헴, 사해, 마사다를 여행하라고. 거기서 관광도 하고, 물건도 사고, 신앙도 새로이 다지라고. 그러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은 막는다. 팔레스타인 사람은 만나지도 말고, 팔레스타인 지역에 들어서지도 말라고. 그들과 만나고 그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은 잠재적 테러리스트라고.

    며칠 앞서 한국으로 돌아간 일행로부터 소식이 왔다. 아랍어 어린이 그림책 몇 권 때문에 공항에서 곤욕을 치렀으니 조심하라고. 왜 아랍어 책을 가지고 있느냐며 꼬치꼬치 캐묻고, 모든 짐을 다 풀어 헤치고, 겉옷 다 벗겨서 온몸을 더듬어가며 검색을 하더란다. 아랍어로 된 것은 명함 한 장, 포장비닐 봉투 하나도 갖고 나오지 말라는 당부에 참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 팔레스타인을 누군가 직접 보는 것, 편견없는 시선으로 본 것이 봉쇄 장벽을 넘어 바깥 세상에 알려지는 것, 그래서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정세는 불안하되 팔레스타인 자체는 위험하지 않다는 진실이 알려지는 것이야말로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 위험인 것이다.

       
      ▲베들레험 봉쇄 장벽 일부 (사진=이안) 

    이제 하루 뒤에는 짐을 꾸리고 다시 이스라엘 군이 지키는 체크 포인트의 검문과 검색대를 거쳐 이곳을 떠날 것이다. 내가 직접 보고, 느끼고, 겪은 것들, 내가 만난 사람들, 함께 나눈 시간들을 여행 보따리가 아니라 머리와 가슴에 간직하고 한국에 돌아갈 것이다.

    위험한 이스라엘 공항

    그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은 그저 남들 하기 힘든 여행에 대한 경험담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막아서는 폭력적 봉쇄에 자그마한 틈을 내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그 틈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틈새를 지난 이로서 해야만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교류해온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일행과 함께 한 경험을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나누고자 한다. 이야기에 귀 기울일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기를. 스무날이라는 짧은 기간, 한 개인이 보고 겪은 것이 비록 작고 어눌할 지라도 구경거리가 아니라 생각거리가 되기를.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항의 위험한 검문검색에서 무사히 돌아가 한국의 벗들과 세밑 인사를 나누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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