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파 없는 현장 노동자가 대안"
    By 나난
        2009년 12월 22일 01: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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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최근 지난 23년간의 노동운동을 회고한 책,『길은 복잡하지 않다』(철수와영희, 15000원)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을 진단하고, 새로운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

    현대중공업 위원장에서 민주노총 위원장, 울산 동구 구청장을 지내고 현재 현대중공업 해고자로 살고 있는 이 전 위원장은 이 책에서 구청장의 경험을 통해 노동자 정치의 사례와, 노동운동가들이 어떻게 자본에 의해 명멸해가고, 자본은 어떻게 노동자들을 길들이는가에 대해서 실명비판을 통해 증언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21일 <레디앙>과 인터뷰에서 "민주노총은 대중을 대변하는 대중조직으로서 서기에 아직 미흡한 점이 있다"며 “정파에서 자유롭고 민주를 지향하는 현장 노동자가 투쟁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각 정파가 선거 때마다 후보를 내기위해 이합집산으로 모이기보다는 대중을 대변할 수 있는 현장 노동자들을 도와 투쟁의 동력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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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정부 들어 노동진영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고 있지만 민주노조운동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 10년 사이 노동운동 내부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싸울 수 있는 동력을 잃었다. 때문에 모두가 싸워야 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정말 싸워야 할 때 못 싸우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노동계 인사들이 (정권과 가깝게 지내면서 투쟁의) 근육을 다 없앴다. 싸울만한 기반이 없다. 물론 위기의식 속에 미약하게나마 결집이 시작되고 있어 향후 싸움은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지만 투쟁 동력이 생기는 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민주노총은 내부적으로 혁신을 요구받고 있으며, 외부로부터의 탄압도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나.

    = 계기가 있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탄압하니까 저항하는 게 아니다. 사실 재벌과 정권에 대한 노동자 탄압은 계속돼 왔다. 그때마다 내부 결속이 문제였다. 지금은 내부 결속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결속력이 오히려 생기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내부 결속력을 끌어안고 더 힘차게 나아갈 만한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한편, 민주노총은 위원장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내가 직선제를 주장했던 것은 조합원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국민들 앞에 어떻게 싸워야겠다’는 의지로 선거에 참여할 때,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투쟁의 동력이 생기지 않을까해서였다. 하지만 (직선제 유예로 기회를) 한 번 더 놓친 것 같다.

    선거 기간이 곧 투쟁을 끌어 모으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힘을 결집하고, 투쟁 동력을 잘 모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2009년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 민주노총은 대화와 타협의 장이 아니다. 현장의 단결과 투쟁력을 끄집어내야 하는 게 민주노총의 역할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그 부분을 놓치고 있다. 이를 바로 잡는 것만이 현장의 노동자들의 실망감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대중조직으로서 바로 서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때와 같이) 투쟁을 담보할 수 있는 동력이다.

    그런 차원에서, 민주노총이라면 민주를 지향하는 노동자가 핵심이다. 그리고 현장을 대변해야 한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을 해오며 개인이나 정파가 아닌 ‘노조와 현장 노동자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반성해야 한다. 또 정파는 선거만을 위해 이합집산으로 뭉치는 것을 넘어 ‘새로운 투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내놓고 정말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 최근 『길은 복잡하지 않다』는 책을 출간했다. 책 속에서 하고자 했던 말은 무엇인가.

    = 다시 87년으로 돌아간 것 같다. 노조의 현장 통제력이 낮아진 반면 회사의 장악력은 높아졌다. 현대중공업은 물론 지난 10년 간 노동운동 자체가 몰매를 맞아왔다. 이명박 정권 들어 탄압의 강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10년 전부터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은 계속돼 왔고, 단지 이명박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노동조합을 아예 없애려 하는 거다.

       
      

    지난 10년간 정권과 자본이 노동운동을 살려준 게 아니다. 노무현 시절 가장 많은 노동자 구속이 발생했으며, 정리해고를 입법화한 게 김대중 대통령이다. 이명박은 "너희도 했는데"라며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이라는 이름까지 없애겠다고 하는 거다.

    때문에 지난 10년간 투쟁이 안 될 정도로 심각했던 민주노총 내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파 문제가 굉장히 크다. ‘어떤 사람이 넘어져가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을 살릴 것인가?’를 생각했을 때 정답은 ‘정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다. 정파에 소속되지 않은 현장의 노동자가 투쟁을 돌파해야 한다.

    정파는 현장의 노동자들을 돕고 독려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우리의 후보를 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정파에 소속되지 않은 현장 노동자들에 어떻게 힘을 실어주고, 싸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때 그나마 투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릇된 정파의 활동을 몰아내고 진짜 노동자들의 조직으로 민주노총을 만들 때 혁신할 수 있다.

    – 최근 내년 선건연합과 정당통합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어떻게 보나.

    = 민주노총이 진보정당 통합의 문제를 쉽게 생각한 것 같다. 통합은 내용적으로 볼 때 쉽게 않다. 차라리 선거연합 형태를 제안하는 게 더 쉬웠을 것이다. 당분간 진보양당의 통합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내년 선거연합과 관련 민주당 포함 문제를 놓고 이견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나. 

    = 민주노총 입장에서 볼 때 노조가 ‘어떤 사람이 출마했으면 좋겠다’는 기준 정도만 제시하고, 이에 당이 자격에 맞는 후보를 내면 될 것 같다.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한지’, ‘노동자를 위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 후보 자격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로써 당은 그 조건에 따라 어느 선까지 연합이 가능한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그 자격에 따라 선거연합의 한계도 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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