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 코리아'를 보고 절망하셨나요?
        2009년 12월 22일 10: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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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기자의 개인블로그에 연재하고 있는 ’20대 생태보고서’ 시리즈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글은 블로그에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습니다. 지난 12월 2일 취업포털 사이트 ‘잡 코리아’로 부터 ‘명예훼손 및 기타 침해신고’를 받아 다음에 의해 차단됐기 때문입니다.

    다음을 비롯한 포털은 게시물에 대해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권리 침해신고가 들어오면 게시자에 사전 통보도 하지 않고, 일단 ‘차단’합니다. 이후 복원 절차는 매우 복잡해서 대부분의 권리침해자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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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행법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인터넷 공간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제정된 관련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통제하는 부정적 효과도 만만치 않습니다. <레디앙>이 잡 코리아이 요청으로, 다음에 의해 차단된 기자의 글을 싣는 것은 이 같은 부정적 효과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편집자 주>

    “하루에 12번은 더 들어갈 걸요? 거 뭐 종류가 많기도 하잖아요, 잡코리아, 인쿠르트, 사람인, 그리고 전문직 채용하는 사이트까지, 하루 종일 일하면서도 시간만 나면 틈틈이 들어가는 거예요, 여기서 한 달에 2백도 안되는 돈 받아봐야 내 미래도 없고, 그런데 거기 다 들어가 봐도 느끼는 건 좌절밖에 없어요. 날 찾는 회사는 없거든요”

    20대들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홈페이지는? 물론, 여러 가지 많을 것이다. 사람마다 취향도 다르고, 관심 있는 분야도 다를 테니. 하지만 이 사이트만은, 20대 누구나 가장 많이 들어가는 사이트 중 하나일 것이다. 바로 ‘잡 코리아’ 같은 구직사이트다.

       
      ▲ 취업 포털 사이트 ‘잡코리아’ 초기화면

    자칭 ‘국내 최대 취업포털’이라는 ‘잡 코리아’에 들어가 보면 두 번 놀랜다. 1. 아직도 직원을 구하지 못한 엄청난 수의 회사들(아니, 이렇게 많은데 실업자는 왜 이렇게 많은 거야?) 2. 그렇게 엄청나게 방대한 회사들을, 이곳에서는 정확히 딱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 .

    분노의 클릭질

    먹이를 찾아 취업포털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들의 눈을 번쩍 틔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대기업 공채’ 소식이다. 삼성류의 대기업은 “삼가 내 스펙에 가당치 않다”며 겸손해 하는 이들은, 잡코리아 전면에 배치된(주로 TV CF에 나오는) 기업들을 ‘저 정도면 먹고 살만한 기업’으로 분류해 타깃으로 삼고, 이들에 대한 분노의 클릭질을 시작한다.

    그리고 느낀다. “아!! 안 가, 그리고 못 가!”, 저렇게 수많은 회사들이 온화한 엄마 미소를 머금고 우리를 바라보지만, 결국 그 가면 뒤에 숨겨진 진실들을 보면 ‘절망’이란 두 글자도 아깝다. “땀 흘려 일하는 누구나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던 대통령 아저씨, “젊을 때 어디 가서든 일하라”던 대통령 아저씨, “우린 어디 가란 말입니까!”

    우선 안 가는 곳. “월 350 보장”이라며 굶주린 하이에나들을 대놓고 유혹하는 배너들은 텔레마케터 모집일 가능성이 약 98% 정도 된다. 텔레마케터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절대 그 유혹에 넘어가진 않지만 ‘350’이라는 경외감 드는 수치에 숭배의 마음이 들어 ‘혹’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또한 사실. 하지만 유념해야 한다. 이들이 왜 저렇게 고액연봉을 내세우고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상시 채용을 하는지,

    성과 상관없이 주신다굽쇼?

    내 경험을 말하자면 텔레마케터로 처음 들어간 당시 ‘교육팀장’이란 분들이 새로 온 사람들에게 교육을 시작하며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하루에 10건 정도만 해낸다는 기분으로 오늘도 파이팅”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전달(전화의 달인)’이 아니면 이는 달성 불가능한 수치다. 보통 배너에서도 “성과 상관없이 드려요”를 강조하지만, 에. 그게 말이 되나?

    (물론 텔레마케터라는 전쟁터에서도 살아남는 자들이 있다. 나 같은 경우야 전화를 걸자마자 “저 초면에 죄송하지만…”이라며, 자신감 제로베이스로 시작하니만큼(이거 정말 내 적성 아니다) 당연히 도태당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정말 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어쨌건, 이 일이 아니면 진정한 의미의 ‘구직자 유혹 본격 격정 액션활극’이 펼쳐지는 셈인데, 정말 클릭질을 할수록 놀라운 것은 이들 기업들이 모두 다른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격의 경우에는 마치 단 한 명의 인사 담당자가 작성한 듯 똑같다는 것이다.(지원자격 만드는 것도 용역을 주는 건가!)

    ⓛ 초대졸/대졸(그래도 연령, 성별제한이 철폐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라 해야 하나)
    ② 3.0/4.5 이상(우리는 안다. 대학생들이 요새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4.0도 넘치고 넘치는 세상에 나 같은 3.4 따위가 용기가 나겠는가, 게다가 이게 최소 기준이라는데!)
    ③ 공인어학점수 TOEIC 700이상(가끔 양심 없는 것들은 800이상을 요구하기도), 토플(CBT/IBT) 210/77, TEPS 634, HSK 7급 이상인자(심지어, 난 이것들이 뭔지도 모른다. 으악)

    영어되는 창의적 인재?

    보통 이것들이 ‘지원 자격’이란 것들인데, 자기들도 뭔가 부족함을 느끼는지 늘 광고 상단에는 그럴 듯한 문구를 넣는다. 그것도 똑같이. 그게 뭐냐면, “창의력 있는 인재들을 모집 합니다”, “젊음의 도전, 당신을 기다립니다”, 덕분에 나 같은 사람들, 도전 정신도, 창의력도 없는 놈이 되어버렸다.

    아니 대체 도전하는 젊음과 창의력은 온통 대학에서 4.0이상의 점수를 받고 영어 달달 외워서 토익 700~800점을 맞아야만 한다는 말인가? 이것이 물론 필요조건일 수는 있겠지만, 저것이 충분조건이던가? 고졸이거나, 대학에서 좀 놀았고, 영어 좀 못하는 젊은 사람들은 창의력을 가질 수 없나?(구체적 이야기는 다다음에)

    ‘토익’이란 기준도 그렇다. 굳이 영어가 필요하지 않는 직종에 영어를 기준으로 삼는 이유는 무엇인가? 창의력 있는 사람들 중 영어를 쓰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닌, 영어를 쓰는 사람 중 창의력 있는 인재를 구해놓고, 채용기준 맨 앞에 당당하게 ‘창의력’을 요구하는 철판은 무엇인가?(요 얘기는 다음에)

    “토익 하나 매달리기도 사실 급급해, 난 알바도 해서 대학등록금도 갚고, 용돈도 벌어 써야 하거든, 토익 하나 보는데 얼만 줄 알아? 39,000원이거든, 한 번만 보냐? 아냐, 거의 매달 이 돈이 나가야해, 시험료만, 책값, 학원값, 사실 혼자 공부할 수도 있지, 그런데 토익도 공식이 있다고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불안해 죽겠거든.”

    ‘사기’이거나 ‘절망’이거나

    취업포털은 결국 20대들에게 ‘사기’이거나, ‘절망의 땅’이거나. 둘 중 하나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제시하거나, ‘급여’나 ‘회사명성’을 기준으로(물론 그 만큼 광고비를 낼 수 있는 회사겠지) 화려한 배너들을 나열해 놓고,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깊은 절망감을 느끼게 만드는.

    물론 요 녀석들 덕에 구직자들은 예전보다야 쉽게 일자리를 구하고, 회사는 쉽게 직원을 구할 수 있게 되는 등, ‘상호부조’의 기능이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펙 좋은 분’들은 사이트 초기화면에서 놀게 하고, ‘암 것도 없는 놈’들은 맞는 회사 찾기도 힘들게 하는 이 사이트의 속사정에는 ‘돈벌이’라는 또 다른 자본주의 논리가 숨어있다.

    이곳에 나열된 기업 하나하나를 보고 있자니, 마치 우리는 대졸이 아니라면, TOEIC 점수가 미미하다면, 외국어 하나 못한다면 그야말로 쓸데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에 쉽게 노출된다. 마치 저 지원 기준들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최저 기준선인 것처럼. 그런 곳에 클릭질만 해대는 너는 그 최저 기준에도 못 미치는, 인간도 아닌 것처럼.

    20대들이 사회의 첫 발을 내 딛는 곳이 이곳이라. 20대들이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어떤 직종이 맞는지 도움을 주기보다는 화려한 급여기준을 보게 하며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 취업포털. 오늘도 수백만의 20대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스펙을 점검하고 좌절한다.

    취업포털은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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